# 137
레벨이 갑이다
137화
“공기 좋다.”
어차피 뇌가 느끼는 것이어서 실제 공기가 좋은 것은 아니지만 며칠 만에 접속하니 모든 게 새롭게 느껴졌다. 평소라면 퀘스트부터 했겠지만 지금은 미소를 지으며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는 여유까지 부렸다.
유저들이 오지 못하도록 구분된 지역이어서 사람들은 별로 보이지 않았지만, NPC들은 생각보다 많이 늘어나 있었다.
“꽤 북적거리네. 또 추가로 사람들이 온 건가.”
“그럴지도 몰라. 하이 레벨 지역에 유저가 100만이 넘었다고 하더라고.”
“사이먼 자작님부터 한 번 만나 봐야겠는데?”
“바로 가 볼 거야?”
“근처니까 갔다가 가자.”
“응.”
사이먼 자작이 있는 곳으로 가자 경비병이 이서우를 알아보고 친절히 안내해 주었다.
이곳은 한 달이 넘는 시간이니 그동안 꽤 많은 게 바뀌어 있었다.
사이먼 자작의 거처도 꽤 화려해졌다. 그래 봐야 통나무로 만들어진 것이지만 규모가 수천 평에 달했다.
“기술자들을 꽤 많이 썼나 보네.”
“뚝딱하면 하루만에도 통나무집이 완성되니 그동안 확장을 많이 했나 봐.”
“백작님께서 모험가 중에서 뛰어난 기술자들을 대거 투입해 주셔서 변화가 가능했던 겁니다.”
“그렇군요.”
앞서 걷던 경비병이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친절히 설명해주었다.
“전 여기까집니다.”
“네. 고맙습니다.”
사이먼 자작의 거처까지 안내한 경비병은 간단히 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노크를 하고 들어가자 사이먼 자작이 벌떡 일어나 반갑게 맞아 주었다.
“이 사람아, 왜 이제야 나타났는가.”
“일이 좀 있었습니다. 제가 없는 동안 별일은 없으셨지요?”
“일단 여기 좀 앉게.”
“네.”
이서우와 이설아는 화려하게 놓여 있는 의자에 앉았다. 테이블에도 꽃이 놓여 있어 화사함이 돋보였다.
통나무로 지어진 곳이지만 사이먼 자작이 머무는 곳은 조각이나 그림, 금장식으로 꾸며진 것들이 꽤 많았다.
“자네가 없는 동안 이곳도 꽤 많이 변했지. 혹시 둘러보았는가?”
“도착하자마자 자작님에게 온 겁니다.”
“그랬구먼. 아마 나가 보면 꽤 많은 것이 변했을 것이네. 일단 받아들일 수 있는 인원이 대폭 늘어나서 북적거릴 거야.”
“얼마나 많이 늘어난 겁니까?”
“위성도시도 확장을 했고, 몇 군데 만들었으니 200만은 넘을 것이네.”
“짧은 시간에 엄청난 일을 하셨네요.”
“다 자네의 노고가 있었기 때문이네. 백작님께서 추가로 병력을 지원해 주셔서 이제는 어느 정도 안심이라네.”
“잘되었습니다. 사실 위성도시들이 조금 걱정이었거든요.”
“처음에는 나도 걱정했는데, 백작님께서 유능한 모험가들을 대거 붙여 주셔서 정말 순식간에 10만 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곳이 되었지. 지금도 계속 확장 중이라네.”
이번 기회로 생산직 유저들이 엄청난 혜택을 보았다.
보수도 좋았고, 하이 레벨 지역에 머물 수 있어서 그들에게는 일석이조의 일이었다.
이곳에 있는 생산직만 해도 수십만 명에 달했다. 그러니 빠른 시간에 확장이 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이다.
“이제는 한 시름 놓을 수 있겠군요.”
“그렇지도 않다네.”
“또 무슨 일이 터진 겁니까?”
“안정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확장을 하고 싶어서 난리라네.”
“확장이라고요?”
이서우는 내실을 다질 때라고 여겼는데, 뜬금없이 확장이라니.
항상 욕심이 지나치면 사고가 터지는 법이다.
이곳에 정착한 지 몇 달 되지도 않았다.
아직은 확장이라는 말을 쉽게 꺼낼 시기가 아니었다.
물론 이미 자리를 잡은 지역을 확장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하지만 사이먼 자작이 말하는 확장은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
“현재 50킬로미터 지점까지는 안정적으로 확장을 했네. 한데, 더 넓은 곳을 가고 싶어 한다는 게 문제야.”
“백작님이 그런 건가요?”
“아닐세. 훨씬 윗분의 말씀이시네.”
“아!”
이서우는 누군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황제구나. 이곳으로 사람도 지원해 줄 정도로 관심이 있었으니 빨리 영역을 넓히고 싶었겠지. 하지만 급하게 먹은 떡이 체하기 마련인데.’
이서우는 우려의 표정을 지었다.
“그분께서 내리신 지시라면 백작님도 따르지 않을 수 없겠군요.”
“그렇지. 그래서 더 고민이라네. 어디까지 어떤 식으로 확장해야 할지 감이 안 오더란 말일세.”
“주변은 좀 살펴보셨습니까?”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서는 정찰이 필수다. 주변에 대해 알아야 계획이 나올 수 있었다.
“살펴봤지. 모험가들이 많아져서 몬스터가 아무리 많아도 안심은 되네만, 전쟁이 벌어지면 모험가들이 쉽게 나서지 않는다는 게 문제네.”
“보상을 크게 걸면 되지 않을까요?”
“지금 제국의 제정이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네. 그래서 이번에 백작님께서 창고를 꽤 많이 비우셔야 할 판이지. 그것 때문에도 걱정이 조금 있으시다네.”
“백작님께 모두 일임하셨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다네. 입장료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모든 걸 다 맡겨 버리신 거지. 실제로 돈이 꽤 많이 들어오고 있어 거절할 명분도 없다네.”
“일인당 1골드니 벌써 몇백만 골드는 모였겠군요.”
“들어올 때마다 1골드니 벌써 1천만 골드 정도 모였네.”
“헉! 엄청나네요.”
일반 지역의 던전을 이용하는 유저들이 있기에 한 사람이 여러 차례 이동하니 엄청난 금액이 되었다.
돈이 빠른 속도로 모일 때는 조세프 백작도 기분이 좋았지만, 황제에게 영역 확장 명령을 받게 되니 쌓인 돈만큼이나 걱정도 늘었다.
“걱정만 키우는 애물단지나 다름없네. 그래서 자네에게 한 가지 미안한 부탁을 해야겠네.”
“부탁이라고 하시면…….”
사이먼 자작은 미안하다고 했지만 이서우는 전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부탁은 곧 퀘스트라는 뜻이니까.
“여기를 잠깐 봐주게.”
사이먼 자작은 탁자 밑 공간에서 뭔가를 꺼내 올려 놓았다.
그것은 종이뭉치였는데, 펼치자 지도가 나왔다.
“현재 우리가 자리를 잡은 곳은 여기까지네. 전체로 보면 정말 티끌밖에 되지 않는 영역이지. 사실, 그 때문에 그분께서도 영역을 확장하라는 지시를 하신 것일 테지.”
이서우는 사이먼 자작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을 유심히 살폈다. 그의 말대로 지도에서 그냥 점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작았다.
위에 지도를 걷어 내자 확대된 모습이 나왔는데, 그제야 조금 알아볼 수 있었다.
“여기, 여기, 여기, 그리고 여기가 최근에 형성된 마을이네.”
“총 몇 군데인가요?”
“이곳을 제외하면 현재로서는 열 군데네. 적어도 2배 이상은 확장해야 해서 상당히 부담스러운 상황이지.”
“그러면 총 열 군데의 마을을 더 만들어야 한다는 뜻입니까?”
“아닐세. 범위가 2배라는 뜻이네.”
“그러면 50킬로미터를 더 넓혀야 한다는 건데, 스무 곳은 되어야 할 텐데요?”
“그러니 백작님과 내가 고민하는 게 아닌가.”
현재 그들이 있는 위치에서는 거리가 멀어질수록 땅의 넓이는 훨씬 더 커진다.
거리가 2배로 늘어나면 실제 땅덩어리는 거의 4배 가까이 확장 되는 것이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마을의 숫자도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스무 곳도 사실 적게 잡은 걸세. 안정적이 되려면 더 많이 필요해. 모험가들을 많이 수용할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그들이 마을을 위해 나선다는 보장이 없으니 병력이 너무 부족한 실정이라네.”
“그나마 이곳에는 이제 병력을 많이 상주시키지 않아도 되지 않나요?”
“맞네. 여기에 있는 인원으로 세 마을 정도는 충분히 커버가 가능하지. 문제는 이제 더 이상 병력의 지원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네.”
“병력의 지원도 없는데 어떻게 스무 곳의 마을을 관리하시려고…….”
“그것 때문에 며칠 밤을 고민했는지 모르네. 그때 자네가 떠오르지 뭔가. 자네라면 분명 무슨 방법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네.”
이서우와의 친밀도가 최고조에 달하면서 조세프 백작도, 사이먼 자작도 그에 대해 무한한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지금까지 그가 나서서 해결되지 않은 일이 없기 때문에 더욱 그런 것일지도 몰랐다.
‘흠, 유저들을 이용하는 방법밖에 없는데……. 아, 그러면 되겠구나.’
이서우의 표정이 밝아지자 걱정을 담은 사이먼 자작의 눈빛이 밝아졌다.
“좋은 생각이 떠오른 건가?”
“저라고 뾰족한 수가 있는 건 아니지만 한 가지 떠오르는 게 있기는 합니다.”
“자네 의견을 말해 보게.”
“소문을 내는 겁니다.”
“소문?”
“네.”
“하지만 거짓 소문을 잘못 내면 반감만 사지 않겠나.”
“아닙니다. 꼭 틀린 말도 아니거든요.”
“하긴, 사실에 근거한 거라면 상관없겠지. 어서 말해 보게.”
“네. 제가 생각한 방법은…….”
이서우는 친절하게 사이먼 자작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모든 이야기를 들은 사이먼 자작은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허허허, 왜 그 간단한 걸 생각 못 했는지 모르겠구먼. 그럼 자네 말대로 하세. 하지만 그전에 그곳에 대한 정찰은 필수네.”
“물론입니다. 신뢰도를 높이려면 당연히 그래야지요.”
“성공하면 내 크게 보상하겠네.”
-영역 확장을 도와라.
조세프 백작은 황제에게 더 넓은 영역을 확보하라는 명령을 전달받고 고민에 빠진다.
거절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한 백작은 사이먼 자작에게 명령을 전달하게 된다.
고민이 자작에게 전달되었으나 해결 방법은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 사이먼 자작은 당신을 떠올렸고, 당신이 이번 일을 해결해 줄 거라 굳게 믿었다.
난이도 : B+
완료 조건 : 영역을 확장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면 된다.
성공 시 보상 : 3레벨 경험치. 5천 골드. 명성 3,000.
실패 시 : 5레벨 다운.
“제게 맡겨 주십시오. 반드시 성공해 내겠습니다.”
“믿음이 가는구먼. 그럼 부탁하네.”
“네, 자작님.”
이서우는 사이먼 자작과 대화를 끝내고 밖으로 나왔다.
퀘스트를 받은 것은 좋은데, 이설아는 살짝 걱정이 되는지 염려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오빠, 괜찮겠어?”
“덕분에 우리 방송 재료도 나오고 좋잖아.”
“100킬로미터 밖이면 그들의 영역에도 포함되는데, 찾는 게 없으면 어쩌려고?”
이서우가 말한 방법을 그녀도 들었다. 가능성은 있지만 그렇다고 걱정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서우는 자신만만한 표정이었다.
“그렇게 당하고서 대비를 하지 않는다면 망해야지. 일단 정비부터 하고 가 보자.”
“응. 도시가 어떻게 변했는지도 볼 겸.”
사람들이 몇 배나 늘었다고 하니 궁금했다.
NPC가 이용하는 공간을 벗어나자 유저들이 바글바글했다.
“오빠, 그새 공방들도 많이 늘었고 카페나 호프집들도 많이 생겼어.”
“그러게. 쉴 곳이 많이 늘었네. 가게들도 엄청 늘었고.”
“꼭 20년 전 지하철역 모습과 비슷하네.”
“아, 나도 사진으로 봤어. 진짜 콩나물시루라는 말이 왜 나왔는지 이해할 수 있겠더라.”
요즘은 출, 퇴근 시간 지하철역에 사람이 그렇게 북적거리지 않는다. 배차 간격이 3분에서 5분으로 짧은 데다가 속도가 워낙 빨라 사람이 몰릴 틈이 없었다.
열차의 속도가 과거보다 3배 정도 빠르다.
고속 열차의 경우는 5배까지 빠르고, 급행은 정차하는 역이 적고, 속도까지 빨라 과거와 같은 모습은 볼 수 없었다.
게다가 하이퍼루프 등 교통수단이 많아진 것도 복잡한 도시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 이유였다.
비교적 한가한 도시가 되다 보니 그들에게는 지금의 모습이 낯설었다.
물론 일반 지역에도 사람들이 꽤 많았지만 이곳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그나마 사람들이 몰린 상업 지구를 벗어나면 사정이 조금은 나은 편이었다.
지나가도 서로 부딪치는 횟수가 줄어들어서 이동하기는 좋았다. 하지만 결코 적은 인원은 아니었다.
“진짜 몇 배는 많아졌네. 얼른 정비부터 하자.”
“응, 오빠.”
두 사람은 사냥에 필요한 소모품 아이템들을 꼼꼼하게 챙겼다.
특히 이서우는 재료 아이템을 왕창 샀다. 생산 기술을 올리기 위해서였다.
그러면서 만들어 놓았던 마나 물약을 팔았다.
‘참, 비약은 좀 팔아야겠다.’
비약의 가격이 생각보다 많이 올랐다.
최하급이 2골드가 채 되지 않았는데, 어느새 10골드까지 올랐다. 하급도 30골드까지 치솟아 이서우는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어차피 비약은 돈 많은 사람들이 사는 거니까 좀 더 올려도 되겠네.’
누구의 도움도 없이 스스로 장비를 맞추고, 레벨을 올리는 사람들은 비약을 사지 않는다.
차라리 조금씩 쉬면서 하는 걸 택한다.
그 사이 파티원들과 대화도 하면서 인맥을 만드는 것이다.
돈이 많은 사람들은 마나 물약은 기본이고 비약까지 즐겨 사용한다.
하지만 비약이 생기면서 시간이 아깝다고 휴식마저도 최소화해서 관계 형성이 용이하지 못했다.
게다가 비약을 쓰게 되면서 돈이 없는 사람들과 파티를 잘 하지 않으려 했다.
이서우는 차라리 잘됐다고 여겼다.
괜히 가난하다고 무시하는 것보다 비슷한 사람들끼리 파티를 하면 분쟁도 그만큼 적어 더 좋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때부터 이서우는 비약의 가격을 확 올려 버렸다.
비약의 가격은 최하급이 20골드였고, 하급은 50골드였다.
어차피 중산층 이하의 유저들은 비약을 쓰지 않으니 고가전략을 선택했다.
대신 현질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물약 가격을 조금 내렸다.
‘역시 그래도 살 놈은 다 산단 말이야.’
정리를 끝낸 이서우는 이설아와 함께 마을을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