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이 갑이다-138화 (138/341)

# 138

레벨이 갑이다

138화

“오빠, 근데 진짜 있을까?”

“어떤 거?”

“오빠가 자작에게 말한 거.”

“아, 그거? 전설이 아니라 유일만 줘도 다들 눈에 불을 켜고 덤벼들걸.”

“하지만 증거가 있어야 사람들이 믿을 텐데?”

“그거야 우리 방송을 이용하면 되잖아.”

“그건 그런데…….”

“걱정 마. 원래 권력은 공백을 허용하지 않잖아.”

“그거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말인데?”

“여튼, 분명 어떤 놈이든 거기를 꿰차고 있을 거야.”

“응.”

이서우의 확신에 찬 말에 이설아도 고개를 끄덕였다.

경쟁 관계가 치열한 곳이라면 이서우의 말처럼 누군가는 반드시 비어 있는 땅을 차지하려 했을 것이다.

이서우의 존재를 알기 때문에 적어도 이전보다는 강력한 존재들을 배치해 놓았을 테니 강한 종속자들이 올 테고, 그럴수록 높은 아이템이 드롭될 확률이 높다. 이미 이서우를 통해 강력한 아이템이 나오는걸 알지만 근처에는 종속자가 더 이상 없어 유일 이상의 아이템도 획득하기 쉽지 않은 처지였다.

이서우가 내놓은 해결책이 바로 그거였다.

높은 등급의 아이템을 주는 몬스터가 꽤 많이 있다는 소문만 내도 유저들은 자연스럽게 모이게 된다.

물론 유저들도 더 멀리 나가면 좋은 아이템을 주는 몬스터가 있는 것쯤은 알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추측하는 것과 직접 눈으로 보는 건 다르다.

이서우는 또 한 번 강력한 아이템을 얻어 방송을 통해 보여 줄 생각이었다.

물론 이설아의 우려처럼 그곳에 원하는 것이 있어야 한다. 그것도 하나만 구할 수 있다는 인식이 아니라 꽤 높은 비율로 보스급 몬스터를 잡을 수 있다는 기대감까지 살려야 했다.

“참, 오빠, 마나 비약 올려 놓은 거 봤어. 근데, 값을 너무 올린 거 아냐?”

“어차피 돈 있는 놈들만 쓸 건데, 뭐.”

이서우는 수익 분배 조정 과정에서 이설아가 너무 손해 보는 것 같아서 시세보다 저렴하게 비약을 꾸준히 제공해 주겠다고 했다.

그래서 그녀가 신경 쓸 문제는 아니었지만 돈독이 올랐다면서 비약 제작자를 욕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걱정이 되었다.

비약을 만들 수 있는 존재가 전장의 지배자라는 것은 오직 이설아와 김소연만 알고 있어 이서우의 이름은 나오지 않고 있지만 영원한 비밀은 없는 법이다.

언제든 사람들이 알게 되면 이서우에 대한 비난이 커질 수도 있었다.

누가 자기 남자 친구가 욕 먹는 걸 좋아할까.

하지만 이서우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누가 뭐라고 하든 자신의 의지로 한 일이기에 부끄럽지 않았다.

“뭐, 오빠가 알아서 잘하겠지.”

“돈독 올랐다면서 욕 하는 거 보고 그러는구나? 괜찮아. 어차피 돈 없는 사람들은 물약 위주로 쓰잖아. 그건 내려 놨으니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돼.”

“하긴, 잘만 활용하면 마나 물약으로도 충분하긴 하지. 부자들이나 시간 아깝다면서 비약을 팍팍 쓰니까.”

드롭되는 골드도 5배가 많기 때문에 사람들의 주머니는 점점 두둑해져 갔다.

그렇다고 해도 개당 50골드나 하는 비약을 함부로 쓸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하루 100개를 쓴다고 했을 때 현금으로 환산하면 2천만 원이다.

최근 골드 가격이 소폭 떨어졌는데도 엄청난 가격이었다.

물론 레이드 몬스터가 아닌 이상 100개씩 쓸 일도 없고, 난이도가 높은 던전이 아니면 물약으로도 충분하니 여론이 악화될 일은 거의 없었다.

“내년 1월이면 골드 값도 어느 정도 회복을 하겠네.”

“대부분 그렇게 예상은 하고 있어. 하이 레벨 지역이 생기면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들도 꽤 많지만, 중국과 인도에서도 각각 10퍼센트의 이용자만 현질을 해도 골드 값은 오를 수밖에 없어.”

“초반 이용자만 몇 억이니 10퍼센트만 돼도 골드 회전이 빠를 테니 거의 오른다고 봐야지. 게다가 중국에는 돈 좀 있다는 사람들이 워낙 많잖아.”

“맞아. 걔들은 시원시원해서 한 번에 엄청나게 지르더라.”

이설아는 이미 방송 생활을 꽤 해서 잘 알고 있지만 이서우는 말만 들었지 실제로 본 적은 없었다.

한데, 최근 이설아와 개인 방송을 시작하면서 중국 사람이 거액을 지르는 것을 여러 번 보았다.

그게 아니더라도 각종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중국 사람들이 돈을 잘 쓰는 것으로 유명했다.

물론 모든 중국 사람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한국 사람들과는 씀씀이의 규모 자체가 달랐다.

“오히려 하이 레벨 지역이 있기 때문에 더 현질을 하려고 할 텐데, 그걸 모르다니.”

“하지만 의외로 가격이 더 떨어질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

“지금 이용자가 2억이 조금 넘나? 여튼, 중국과 인도에서 오픈이 되면 그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할 거야. 그런데도 오른다는 걸 예상 못 한다는 게 솔직히 이해가 잘 안 돼. 투자를 하려면 지금이 적기지.”

“나도 오빠와 같은 생각이야. 하지만 하이 레벨 지역이 생겨서 골드가 더 많아질 테니 가격은 무조건 내려간다고 보는 사람도 많아. 뭐, 난 사실 이미 골드에 투자를 좀 했지만.”

“역시 발이 빠르네. 나도 이참에 투자 좀 해야겠어.”

이서우는 주식 투자는 일절 손에 대지 않지만 골드는 오를 게 너무 눈에 뻔히 보여서 조금 모아 둘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뉴 월드에 대한 이야기를 하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가 이어졌다.

마을 주변에는 몬스터들이 거의 출몰하지 않고, 사람들이 주로 다니지 않는 곳으로 이동하다보니 큰 불편이 없었다.

하지만 60킬로미터 지점을 지났을 때부터는 몬스터가 빈번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예전보다는 확실히 몬스터들이 많아졌네. 유저들이 늘어서 그런 건가?”

“아무래도 그런가 봐. 사람들이 관심을 많이 갖도록 발 빠르게 조치를 취하네.”

“그러게. 아주 뉴 월드의 노예가 되도록 머리를 잘 쓰는데?”

이서우가 처음 발을 들일 때처럼 몬스터가 적었다면 사람들의 관심은 금세 시들해졌을 것이다.

뉴 월드도 그것을 알고 몬스터들을 대거 풀어 놓았다.

“참, 오빠 경험치 비율은 85퍼센트로 해.”

“두 사람이라도 보너스는 있잖아.”

지금까지는 7 대 3으로 비율이 맞춰져 있었다.

이서우가 거의 사냥을 하기 때문에 비율을 낮게 잡은 것이다.

“레벨 업이 너무 빨라. 자칫 오빠랑 차이가 많이 나면 같이 사냥을 하는 것도 힘들잖아. 보조를 맞춰야지.”

“몇 레벨인데?”

“나 벌써 235레벨이야.”

“헉! 엄청 빠르네.”

이서우는 가까스로 230을 찍었다.

한데, 자신보다 분명 레벨이 낮았던 것 같은데, 어느새 차이가 벌어졌다.

이서우는 비율을 조정했다.

그녀의 말처럼 레벨이 더 많이 차이 나면 같이 사냥하는 것이 힘들다.

비율을 조정하지 않아도 혼자 사냥할 때와 똑같은 경험치를 얻지만 비율이 조정되어 조금 더 많은 경험치를 얻을 수 있었다.

사냥을 하면서 움직이느라 40킬로미터를 가는 데 반나절이 넘게 소요되었다.

이서우는 백호를 적극 활용했다. 소환을 해도 경험치 손실이 없으니 레벨 업 속도는 더 빨랐다.

“경계가 삼엄한 걸 보니 누군가가 이곳을 먹었나 보네.”

“응. 오빠가 셋을 처리했으니 그걸 알고 누군가가 영역을 확장한 것 같아. 하지만 관리자가 직접 오지는 않았을걸.”

“그렇겠지. 그랬다가 경쟁자들에게 밀릴 테니까. 하지만 종속자 중 꽤 강한 자가 왔거나 둘 이상 왔을지도 몰라. 혼자서는 감당이 안 된다는 것을 알았을 테니까.”

“종속자를 따르는 전투 노예들도 많겠지?”

“그렇겠지. 아마 상급 전투 노예들만 해도 백 단위는 될 걸?”

“그 정도면 아이템도 괜찮은 거 많이 주겠네.”

“그렇지.”

100명이 넘는 전투노예를 처리하는 것은 그리 힘들지 않았다. 하지만 200마리 이상은 이서우라도 부담스러웠다.

“이럴 때 소연 언니가 없는 게 아쉽네.”

“그러게. 적이 많을 땐 정찰이 필순데, 거기다 다양하게 활용도 할 수 있고.”

“나도 소환사로 바꿀까?”

“아냐. 소환사는 부활이 안 되잖아. 게다가 지속적으로 생명력이 차는 버프도 있고, 방어력도 어느 정도는 올려 주고, 힐까지 완벽하니 더할 나위 없지.”

“그런가?”

“그럼. 힐러가 있으니 나도 걱정 없이 사냥할 수 있는 거야. 관리자들에 대해 안 뒤로는 혼자서는 확실히 불안해.”

이서우의 말에 이설아는 밝게 웃었다. 좋아하는 사람이 자신을 인정해 주니 기분이 좋은 것이다.

이서우는 결코 빈말을 하지 않았다.

정말로 이설아의 존재 덕분에 마음 놓고 사냥에 임할 수 있었다.

“백호를 활용해야겠네.”

“몸집도 작으니 우리보다 낫겠지.”

이서우는 다시 백호를 소환했다.

이곳으로 오면서 오랜만에 사냥을 한다며 반나절 내내 물어뜯고, 몬스터 사지를 찢어 놓았음에도 성이 안 차는지 소환 해제될 때가 되자 아쉬움이 컸다.

한데, 이렇게 빨리 다시 소환이 되니 너무 반가워 공중제비를 하며 이서우의 어깨에 올라갔다.

“벌써 제가 해야 할 일이 생긴 거예요?”

“그래. 앞쪽에 뭐가 있는지 자세히 알아봐야 하는데 들키지 않고 가능하겠어?”

“물론이죠. 은신으로 들어가면 돼요.”

“은신?”

“네.”

“그런 능력도 있었어?”

“그럼요. 주인님이 성장하시고 저에게도 능력이 생겼어요.”

“아, 맞다. 내가 성장하면 너도 성장하지.”

“그럼요.”

“그럼 지금까지 새로운 능력이 있었던 거네?”

“네!”

“휴우, 백호야. 내가 말했잖아. 중요한 건 미리미리 말을 해 달라고.”

“네. 알아요. 하지만 제가 쓸 수 있는 능력이 많아진 건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저에겐 오직 주인님뿐이에요!”

“그, 그래.”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저리 말하니, 이서우는 잔소리를 조금 더 하려다 그만두었다.

백호에게 명령을 내린 이서우는 어떤 능력이 새롭게 생겨났는지부터 확인했다.

‘은신, 합체, 변신, 진화라. 진화는 1단계만 되네. 어떤 능력일까.’

단어의 뜻만 보면 대충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었지만 어떤 능력을 발휘하는지는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합체라……. 뭐랑 합체를 한다는 거지? 정찰이 끝나면 물어봐야겠네.’

변신이나 진화는 백호 혼자서도 가능하지만 합체는 대상이 있어야 한다.

이서우는 ‘설마 나?’라고 생각했다가 고개를 저었다.

어떻게 작은 백호랑 자신이 합체를 한단 말인가.

1시간이 지나도 백호는 돌아오지 않았다. 혹시나 방해가 될까 봐 따로 대화를 시도하지 않았는데, 너무 늦어지니 한 번 이야기를 해 봐야 할 것 같았다.

한데, 그때 백호의 기운이 느껴졌다.

“주인님, 저 돌아왔어요.”

“소식이 없어서 무슨 일이라도 있는 줄 알았다.”

“헤헤, 그랬다면 주인님이 바로 알았을 거예요. 근데 지금 제 걱정해 주시는 거죠?”

“그래. 상황은 좀 어때?”

이서우의 대답에 백호는 그의 어깨로 올라와 평소처럼 애교를 부렸다.

그러고는 살펴본 바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곳곳에 감시탑이 있고, 인간과 몬스터들이 같이 있었어요. 근데, 뭔가 예전보다 더 강해진 느낌이던데요?”

“더 강해졌다고?”

“네. 제가 덤벼도 열을 이기기 쉽지 않을 정도로 강한 녀석들도 몇 명씩 있었어요.”

“종속자는 아닐 테고, 설마 최상급 전투노예들을 대거 데려온 건가.”

“그럴지도 모르겠어요.”

“흠, 하급 종속자에 버금가는 전투 노예라는 뜻인가.”

이서우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백호가 10명 이상을 상대하기 벅차다면 이서우는 50명 정도가 한계다.

이설아가 있으니 70명까지는 어떻게 해 볼 수 있지만 100명이 넘어가면 빡빡한 싸움이 될 것이다.

3차 전직을 하면서 백호의 잠재력도 동반 상승해 이서우의 힘에 80퍼센트까지 성장했다.

백호에게는 펠렌의 세트와 같은 강한 장비가 없기 때문에 실제로는 절반 수준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엄청난 능력이었다.

절반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수치상으로 그렇다는 건 아니다.

어른의 절반의 힘을 가진 아이 둘이 건장한 어른 하나를 상대할 수 없듯 백호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서우의 힘이 워낙 강해서 절반의 힘만으로도 하급 종속자 둘 정도는 충분히 상대할 수 있었다. 전투 노예들은 이삼십까지 문제가 없었는데, 더 강력한 자들이라면 섣불리 나설 수가 없다.

전투노예들이 강하다면 종속자도 더 강하다는 뜻이니까 말이다.

“오빠, 어떻게 하지?”

“강력한 종속자가 하나인지, 아니면 그 밑에 하급 종속자까지 달고 왔는지 아직 모르니 일단 치고 빠지면서 상황을 봐야지.”

소수가 다수의 적을 상대하려면 정면 돌파보다는 공격과 후퇴를 병행하면서 적의 숫자를 줄여 나가는 것이 좋다.

이설아도 레벨이 오르면서 달리는 속도가 많이 빨라져서 작전을 무리 없이 실행할 수 있었다.

물론 그게 안 되더라도 백호가 있으니 문제없었다.

“백호야, 네가 먼저 목표를 정하고 기습을 해.”

“네, 주인님.”

은신을 하고 다가가면 되니 백호에게 선공을 맡겼다.

이서우는 적이 발견할 수 없는 거리까지 같이 다가가다가 적당한 지점에 몸을 숨긴 채 지켜보았다.

앞은 숲이 끝나는 지점이어서 이서우가 섣불리 나갈 수가 없었다.

‘이것들이 아주 유저들의 접근을 막기 위해 나무를 싹 잘라 버렸구나.’

영역을 확장하는 것은 유저들만이 아니었다. 몬스터들도 그동안 버려 두었던 숲 지대를 바꾸고 있었다.

관리자들은 금이 나오는 곳만 신경을 썼지 그 외의 지역은 일절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종속자가 셋이나 죽자 철저한 경계를 명령했고, 이곳을 차지한 종속자도 그 명령을 충실히 이행하기 위해 몸을 숨길 수 있을 만한 것은 싹 치워 버렸다.

“저, 적이다!”

“간다!”

“응!”

비명 소리가 들리자 이서우는 마나를 잔뜩 실어 앞으로 치고 나갔다.

탱커의 질주 스킬 보다 몇 배나 빠른 움직임이었다.

감시탑에서 이서우의 존재를 발견하고는 뿔피리를 불었다.

그러자 수십 개의 감시탑 안에서 인간과 몬스터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서우는 뭔가 일이 잘 못 되었다는 것을 직감했다.

“함정이구나. 하지만 그냥 후퇴할 수는 없지.”

상대가 미리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이서우는 두려움이 없었다.

그의 거침없는 공격을 보며 백호도 주인의 의지를 읽고 감시탑에서 나오는 몬스터들을 사정없이 물어뜯었다.

‘감시탑 안에 기운이 느껴지지 않도록 장치를 했구나. 어떻게 안 거지? 그냥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고 있었을 가능성도 있겠네.’

막혀 있는 감시탑 안에서 100여 명이 넘는 몬스터들이 나왔으니 순식간에 2천의 숫자가 이서우를 덮쳤다.

백호가 느꼈던 강력한 존재들도 섞여 있어 압도적인 실력 차로 격파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서우가 밀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단지 약간 귀찮을 뿐.

충분히 혼자서도 이길 수 있는 싸움이었지만 이서우는 계속해서 한 장소에서 싸우고 있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상대가 미리 기다리고 있었다면 분명 다른 함정을 또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상대의 의도를 뻔히 알면서도 힘에 취해 사냥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한다면 그거야 말로 하수였다.

그때였다.

“주인님!”

“알아. 나도 느꼈어. 일단 빠져!”

“네, 주인님!”

깊숙이 있던 백호가 뒤로 빠지자 이서우도 그와 보조를 맞추어 후퇴했다.

하지만 모습을 드러낸 강력한 존재들은 이서우가 멀어지고 있는데도 전혀 당황한 기색이 아니었다.

‘설마 저놈들도 결계 같은 걸 쓰나.’

일정 공간에 결계를 쳐서 적을 가두는 기술은 관리자 이상이나 가능한 것이었다.

그래서 이서우도 기운이 느껴지자마자 후퇴를 한 것인데, 상대의 표정을 보니 느낌이 좋지 않았다.

그때, 땅속에서 뭔가가 튀어 올라왔다.

숫자가 꽤 많았는데 사람 정도의 크기를 가지고 있었다.

멀리 모습을 드러낸 존재 중 하나가 소리쳤다.

“슬라임 존을 펼쳐라!”

굵직한 목소리에 물체들이 펑 하는 소리를 내며 폭발했다.

폭발음과 함께 물체 안에서 하늘색의 물체가 쏟아져 나왔다.

그 물체가 곧 주변을 삽시간에 덮어버렸다.

“오, 오로로록. 고로록?”

갑자기 이서우가 물을 머금은 채 말하는 듯한 소리를 냈다.

이설아도 마찬가지였다.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얼른 파티 채팅으로 전환했다.

-오빠, 숨을 쉬기 힘들어.

-나도 마찬가지야. 뉴 월드에서는 마나만 있으면 꽤 오래 참아지니 일단 버텨 봐. 내가 어떻게든 해 볼 테니.

-아, 잠시만. 나 새로 익힌 스킬이 있어. 어디다 쓰나 했는데, 이럴 때 좋네. 일단 근처로 와 봐. 백호도.

-백호는 소환 해제했어.

전투 상태가 아니어서 소환 해제가 가능해 백호는 얼른 돌려보냈다.

이서우가 이설아에게 다가가자 그녀의 지팡이에서 빛이 새어 나왔다.

그러자 그들 사이에 투명한 막이 생겼다.

“휴우, 이제 말이 되네.”

“말은 되는데, 움직임이 불편해.”

“30미터 정도까지는 넓힐 수 있는데, 그 이상은 무리야. 한데, 이게 뭘까?”

“일단 움직여 보자.”

“응.”

투명한 막은 이설아를 중심으로 반경 30미터까지 형성되는 것이어서 아주 유용했다.

하지만 이동이 문제였다.

“오빠, 이 안에만 끈적이는 물체가 없는 거지 움직이기는 너무 힘들어.”

“그러네. 10미터 가는 데 몇 초가 걸리는 건지…….”

“적이 오지 않는 건 다행인데, 우리도 나갈 수 없으니 답답해. 어, 오빠!”

“젠장. 저놈들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잖아.”

“오빠, 어쩌지?”

이서우는 적들이 다가오는 것을 보며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 * *

“오빠, 안 지겨워?”

“지겹긴. 레벨이 쭉쭉 오르니 기분만 좋은데.”

“진짜 전장의 지배자랑 한판 뜨게?”

“당연하지. 이번 기회에 녀석의 콧대를 확 꺾어 놔야 해. 그래야 내 입지가 확실히 굳어지지. 곧 유저들도 많이 늘어날 텐데 압도적인 힘으로 놈을 발라 놔야 하지 않겠어?”

“참, 오빠도 대단하다. 돈을 그렇게까지 들여 가면서 그럴 필요가 있어?”

“최고가 되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난 그런 길 별로 안 가고 싶어.”

“어쨌든 약속한 대로 12월 말까지만 고생해라.”

“휴우, 내가 왜 그런 내기를 해서는…….”

박효주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괜히 내기를 해서 석 달 가까이를 전신의 경험치 노예가 되어 레벨 업도 못한 채 버퍼만 주고 있었다.

“근데 오빠, 뉴 월드에서 오빠 요구 안 들어주면 아무 소용이 없잖아.”

“안 들어줄 수가 없어.”

“대체 뭘 믿고 그리 자신하는 거야?”

“중국과 인도를 끌어들이는 거잖아. 뭔가 화끈한 이슈가 있어야 사람들이 보지. 나와 그놈의 대결을 이설아가 방송한다고 생각해 봐.”

“설아까지 끼면 확실히 이슈몰이는 할 수 있겠네.”

“그렇지. 아마 조만간 글로벌사가 움직일 거다. 그럼 난 보조를 맞춰서 3판 2승제를 하자고 할 거고.”

“오빠 머릿속엔 오직 1등밖에 없네. 왜 그렇게 1등에 집착하는지 몰라.”

“1등의 자리는 원래 그런 거다. 이해하려고 애쓰지 마라. 그래 봐야 이해도 안 될 테니까.”

“줘도 안 합니다요!”

“안 하긴. 못 하는 거지.”

“하여튼 혼자 잘났다니까.”

“시끄럽고, 접속이나 하자.”

결국 박효주는 끌려가다시피 접속 베드로 향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