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9
레벨이 갑이다
139화
-설아야, 이 막 안에서 공격하는 건 상관없지?
-응. 뭐든 다 가능해. 나갔다 들어오는 것도 자유고. 공격을 막아 주는 역할을 하는 게 아니라 안 좋은 기운으로부터 보호하는 역할 정도만 할 수 있어.
-공격은 못 막아 낸다는 거네.
-응.
-그럼 방어 잘 하고 있어. 난 놈들과 좀 놀아 볼 테니.
-조심해, 오빠.
-난, 걱정 마.
이서우가 투명 막 밖으로 나가자 서른 명의 인간형 몬스터들이 인어라도 된 듯 자유롭게 움직이며 다가왔다.
그에 반해 이서우는 허우적거리기 바빴다.
‘이런 데서는 마나도 소용이 없구나. 결국은 놈들이 먼저 공격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반격하는 수밖에 없네.’
이서우는 먼저 공격을 할 생각을 아예 접어 버렸다.
그때 적 셋이 이서우에게 빠르게 다가왔다.
‘적들의 기분이 이랬겠군.’
항상 상황이 반대였다. 적이 놀랄 정도로 이서우가 빨리 움직였는데, 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저놈들이 백호가 말한 그놈들이겠군. 능력 자체는 종속자보다 약간 아래인 것 같은데, 이런 능력을 숨기고 있을 줄이야.’
날카로운 눈빛으로 적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있던 이서우가 대검을 움켜쥐며 언제라도 반격할 준비를 했다.
‘온다!’
이제 몇 미터만 다가오면 사정권에 접어든다.
어디로 오는지는 확실히 보이니 반격하는 것은 문제가 없었다.
‘지금!’
이서우는 거리를 재고 있다가 상대가 공격을 해오는 순간 카운터를 날리기 위해 대검을 휘둘렀다.
한데, 갑자기 주변의 밀도가 극도로 높아지면서 휘두르는 속도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큭.”
갑자기 대검이 느려지자 적 셋은 마음놓고 이서우를 공격했다.
긴 창이 이서우의 몸을 여러 차례 찔렀지만 생명력이 워낙 높아 5퍼센트 정도만 줄어들었다.
하지만 두 차례씩 공격을 펼치고는 뒤로 빠졌다. 이서우가 마나를 잔뜩 끌어올리는 것을 느낀 것이다.
그와 동시에 이설아의 힐이 시전되었고, 이서우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모든 생명력을 회복했다.
‘이것들이 이 액체까지도 자유자재로 조종하네. 싸움이 길어지겠는데? 그렇다고 계속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지.’
수동적인 자세로는 승리를 쟁취할 수 없다.
마나가 조금 많이 소모되더라도 강력한 공격을 하는 게 이서우에게는 더 유리했다.
결국 이서우는 후퇴하는 적들을 향해 최근에 익힌 기술인 마나 탄을 쏘아 보냈다. 하지만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없는 공간이고, 적들이 액체의 밀도를 마음대로 조종을 해서 속도가 너무 느렸다.
‘젠장. 불안 불안 하다 했는데, 역시나네. 설마 마나 탄까지 방해할 줄이야.’
이렇게 되면 마나 탄은 쓸모가 없게 된다. 가장 큰 기술 중 하나가 무력화되었다.
‘저놈들처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으면 좋은데……. 맞다!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자유롭게 움직이면서 다시 다가오는 적들을 보고 있으니 불현듯 저들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그때 머릿속을 스치는 것이 있었다.
-백호야!
-네, 주인님!
-저놈들 오면 능력 흡수해서 나에게 전달 좀 시켜 줄 수 있겠어?
-물론이죠. 식은 죽 먹기예요.
호랑이도 죽을 먹냐는 말이 떠올랐지만 지금은 농담을 할 만큼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다.
백호는 센스 있게 은신한 상태로 모습을 드러냈다. 아무래도 이서우가 은밀히 의사를 전달했기 때문이리라.
곧 적 셋이 다시 다가왔다.
이서우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첫 공격으로 알았기 때문인지 아주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고작 한 번 유리한 공격을 펼쳤다고 저렇게 방심하는 꼴이라니. 내가 네놈들에게 지면 게임을 접고 말지.’
이서우의 입가에 살기가 맺혔다.
움켜잡은 대검에 자연스럽게 힘이 들어갔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사정거리 안에 왔을 때 이서우가 대검을 움직였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액체가 이서우의 움직임을 방해했다.
적 셋은 회심의 미소를 짓고는 이서우의 급소를 노렸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이었다.
은신하고 있던 백호가 적의 등 뒤에서 모습을 드러내며 긴 이빨로 목덜미를 물어 버렸다.
비명을 질러 보지만 백호의 힘을 당해 낼 수가 없었다.
나머지 두 적들이 깜짝 놀라 얼른 백호에게 달려갔다.
그러나 이미 백호의 모습은 사라져 버렸다.
-주인님!
백호가 입을 쩍 벌리며 이서우의 목을 물었다.
‘큭, 이 짓을 몇 번이나 했는데도 영 적응이 안 되네.’
하지만 이번만큼은 이서우도 기분 좋게 물리려고 목을 쭉 뺐다.
그래야 최대한 빠르고 쉽게 능력을 전이할 수 있을 게 아닌가.
“좋았어!”
새로운 능력이 생긴다는 것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이서우가 능력 전이를 받는 그 찰나, 목표를 잃은 적들은 다시 이서우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한데, 어이없게도 아군의 목덜미를 물고 있는 게 아닌가.
잠시 멈칫했지만 확실히 끝장을 내기 위해 적들이 이서우에게 다가가 긴 창을 찔렀다.
이서우는 가소로운 미소를 짓고는 창을 가볍게 피해 버렸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적들은 당황했다.
하지만 이서우의 움직임은 빨랐다.
어느새 다가왔는지 대검이 그들의 몸을 반으로 잘라 버렸다.
멀리서 재미있다는 듯 쳐다보고 있던 적들은 이서우가 자신들과 똑같이 자유롭게 움직이자 크게 놀랐다.
대장으로 보이는 자가 급히 총공격 명령을 내렸다.
스물여덟의 적들이 일제히 이서우를 향해 공격을 펼쳤다.
하지만 자유롭게 된 이서우를 막을 만큼 강한 자들은 없었다.
그렇다고 이서우가 쉽게 적들을 처치한 것은 아니었다.
백호의 평가처럼 하급 종속자의 힘에 근접한 적들이어서 마나의 소모가 컸다.
이서우는 절반 이상의 마나를 써서 모두를 정리했고, 마지막 남은 대장을 처치하기 위해 다가갔다.
그러나 그가 다가가기 무섭게 대장은 도주해 버렸다.
대장보다 약한 자의 능력을 흡수한 것이기에 이서우는 그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
끈적한 액체 안이 아니었다면 절대로 놓치지 않았을 텐데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서우는 결국 따라가는 것을 멈추었다.
대장이 자취를 감추자, 끈적이는 액체도 함께 사라졌다.
“오빠, 괜찮아?”
“어, 난 괜찮아.”
“백호가 오빠 목을 물 때는 깜짝 놀랐어.”
“그것도 백호의 기술이야. 놈이 도주했으니 이 일대를 정리하고 가자.”
“응.”
대장이 사라지니 감시탑을 부수는 것은 쉬었다.
반나절도 되지 않아 주변 일대가 초토화되었다.
이서우는 근처에 은밀히 기다려 봤지만 더 이상 적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오빠, 아이템이 쏠쏠해. 지금 것만으로도 사람들을 어느 정도 모을 수는 있겠는데?”
“이 정도로는 조금 약해. 확실한 한 방이 있어야 더 효과가 크니 종속자까지 처리하고 방송으로 내보내자.”
“응!”
이서우는 유일 장비에 만족하지 못하고 전설 최상급 아이템을 노렸다.
이서우는 백호를 시켜 사이먼 자작에게 연락을 넣었다.
이곳을 지키게 한 뒤 더 깊숙이 들어가 적들을 일망타진할 계획이었다.
* * *
“놈이 너와 같은 힘을 썼다는 말이더냐?”
“네. 조그맣게 생긴 고양이 녀석에게 물리더니 그런 힘을 발휘했습니다.”
“그 고양이 놈이 부하 중 하나를 문 뒤에 그랬다고 했지?”
“네, 주인님.”
“확실히 놈은 능력을 흡수하고, 전이할 수 있는 종을 둔 것 같구나.”
“어떻게 할까요?”
“마나탄에 마나 블레이드, 능력을 흡수하고 전이해 줄 수 있는 존재를 종으로 부리는 능력. 생각보다 꽤 강한 녀석이구나.”
“하지만 주인님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는 녀석입니다.”
아부를 하는 사내는 바로 이서우를 피해 달아나던 자였다.
“상대가 안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난 매사에 확실히해야 직성이 풀려.”
“네, 주인님. 그러면 놈의 약점과 능력을 조금 더 파 볼까요?”
“그럴 필요는 없다. 신경 쓰이던 정찰자가 없다면 이번 일은 훨씬 수월하게 마무리할 수 있다.”
“이미 데이터가 나왔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다.”
“역시 주인님이십니다!”
존경어린 눈빛을 하며 무릎을 꿇었다. 금장식이 된 화려한 의자에 앉아 있는 사내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놈이 지금 어디쯤에 있느냐?”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사내는 눈을 감은 채 정신을 집중했다.
“놈들에게 흡수된 슬라임액이 대략 30킬로미터 지점에서 느껴집니다.”
“그래? 멍청한 놈, 우리가 위치를 알고 있다는 걸 까맣게 모르고 있겠지. 크흐흐흐.”
“주인님의 지략은 가히 하늘에 닿아 있어서 놈들은 절대로 모를 겁니다. 슬라임 존이 슬라임액을 몸속에 흡수시키기 위한 미끼라는 걸 절대로 모를 겁니다.”
“그 사실을 알면 놈이 어떤 얼굴을 할지 궁금하구나, 하하하하하!”
“주인님께서 계획하신 일인데, 제가 놈의 힘을 더 많이 빼놓지 못해 송구스럽습니다.”
“아니다. 그 정도면 잘했다. 어차피 놈은 내 손바닥에 있으니 놈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사내는 기분이 좋은지 시종일관 미소를 지으며 밝은 모습이었다.
한참 웃던 사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제 놈을 응징해야 할 때구나. 준비는 완벽하겠지?”
“물론입니다. 세세한 부분까지 모두 주인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준비를 했습니다.”
“그래야지. 방심하지 말고 놈을 잘 살피면서 진행해라. 중요한 건 타이밍이다. 알겠느냐.”
“네, 주인님!”
한쪽 무릎을 꿇고 있던 사내는 복종의 의미로 몸을 납작 엎드렸다.
의자에 몸을 기댄 채 만족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던 사내는 쿵 하는 소리가 날 정도로 이마를 땅에 박는 노예를 보며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완벽한 타이밍이 되면 찾아오너라. 그때 내가 직접 움직일 테니.”
“네, 주인님.”
바닥에 몸을 댄 채 대답을 하고는 그 상태 그대로 뒤로 물러나 방을 빠져나갔다.
* * *
한창 사냥을 하다가 다시 휴식을 취하기 위해 나온 전신은 기다리고 있던 연락을 받았다.
“언제쯤 연락이 오나 했는데, 이제야 주셨군요.”
-잠시 리얼 통화 가능할까요?
“좋습니다.”
음성으로 통화하던 둘은 실제로 같은 장소에 있는 것처럼 느낄 수 있는 리얼 통화로 전환했다.
그러자 전신의 앞에 진짜 사람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로 선명한 홀로그램에 떴다.
그에 반해 전신은 현실의 모습이 아니라 게임 캐릭터처럼 화려한 장비를 장착한 모습이었다. 자신의 진짜 모습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것이리라.
“다시 한 번 제 소개를 하죠. 뉴 월드의 글로벌 홍보 책임자를 맡고 있는 김승조입니다.”
“아시다시피 전신입니다.”
“이렇게 만남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통화를 하기 전에 김승조로부터 영상 메시지가 왔었다. 긴히 할 이야기가 있으니 연락을 해도 되겠냐고.
전신은 흔쾌히 수락했다.
괜찮다는 답 메시지를 보내자마자 바로 김승조한테서 연락이 왔기 때문에, 뉴 월드도 급하긴 급하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바쁘실 텐데 필요한 말만 하겠습니다.”
“제가 바라던 바군요.”
“전신 님도 우리가 1월 중국과 인도 오픈에 맞춰 이벤트를 하려고 한다는 걸 아실 겁니다.”
“네. 저도 귀는 있으니까요.”
“그때 토너먼트 대회를 열 생각이었는데, 그 전에 흥을 고취시키기 위해 전신 님께서 선전포고를 하신 대로 전장의 지배자와 1대1 대결을 가졌으면 하는데, 어떠신지요.”
“저는 찬성입니다. 하지만 전장의 지배자가 하려고 할까요?”
전신이 찬성하리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의 자존심을 세워 주기 위해 다시 한 번 물은 것이다.
전신은 예상대로의 답을 했지만, 그의 말처럼 전장의 지배자가 문제였다.
“그 문제는 제가 어떻게든 해결해 보겠습니다. 방식은 어떻게 하시기를 원하시는지요.”
“단 판으로는 너무 싱겁지 않겠습니까.”
“흥행을 위해서는 3판 2승제가 나을 것 같은데, 괜찮으신가요?”
“그 정도면 좋겠네요. 그리고 대결 전에 둘이 같이 인사라도 할 시간을 가지면 좋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그거 좋은 생각이군요. 그러면 11월 말에 만남을 갖고, 12월부터 10일 간격으로 대결을 펼치면 될까요?”
“오픈이 1월 초인가 보군요.”
“그건 말씀드리기가 곤란하네요.”
“뭐, 좋습니다. 저는 그 정도면 괜찮을 것 같네요.”
“네. 그러면 그렇게 알고 일을 진행하겠습니다. 정확한 날짜는 조만간 말씀드리겠습니다.”
“네. 그럼 이만.”
전신과 김승조의 대화가 끝이 났다.
김승조의 홀로그램이 사라지자 전신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