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5
레벨이 갑이다
145화
“그게, 제국과 관련된 일이야.”
“제국?”
“응. 혹시 카이젠 제국에 대해 좀 알아?”
“넓은 제국이고, 열심히 세력 확장에 힘을 쏟는다는 것 정도?”
“나도 별로 아는 게 없어.”
이서우도, 이설아도 카이젠 제국에 대해 많이 알지는 못했다.
이서우가 아는 귀족이라고는 변방에 있는 몇몇이 전부였고, 그중 가장 지위가 높은 사람이 조세프 백작이었다.
백작이면 대귀족이지만 워낙 변방에 있기 때문에 중앙과는 거리가 멀어 소식을 전해 들을 수가 없었다. 조세프 백작도 특별히 그에 대해 이야기를 잘 꺼내지도 않고 말이다.
한데, 김소연의 표정을 보니 좋지 않은 일이 생긴 것 같았다.
“정보 팀을 만들면서 우리는 모든 유료 사이트에 가입을 했어. 꽤 높은 등급을 유지하도록 했고.”
“헐. 모든 유료 사이트를?”
“응.”
“수백 곳은 될 텐데?”
“박 대표님이 워낙 꼼꼼하신 분이라 하려면 확실히 하자는 주의거든. 제대로 된 정보는 다 유료 사이트에 있으니 어쩔 수 없지.”
“높은 등급을 유지하려면 전체 비용이 수십억은 들 텐데.”
“맞아. 3개월 단위로 등급이 갱신되기 때문에 1년에 거의 100억 가까이 소모된다고 봐야지.”
“헐. 진짜 엄청나게 투자하시네.”
이서우는 박 대표의 통 큰 투자에 혀를 내둘렀다.
두 사람을 위해 쓰는 인건비만 해도 연간 수십억이었다. 각종 비용을 포함하면 거의 100억 가까이 들었다. 그런데, 이제는 정보비까지 나가니 1년에 200억은 쓴다는 계산이 나왔다.
물론 1년에 수백억의 연봉을 받는 오너들도 꽤 많다. 배당금까지 포함하면 수천억을 벌어들이는 사람도 생각보다 많았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재산이 많은 사람은 20조가 넘는다.
박 대표만 해도 재산이 2조를 넘어 대한민국 재산 순위 10위를 기록하고 있었다.
그러니 그런 그들에게는 1년에 200억을 투자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단, 박 대표는 절대로 손해 볼 짓은 하지 않는다.
이서우와 이설아의 가치가 그만큼 높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막대한 자금을 들이붓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연간 50억에서 많게는 100억 수준으로 생각하셨어. 하지만 뉴 월드에서 정보가 얼마나 중요한지 아시고 파격적으로 지원하시는 거지. 그래도 다행인 건 한 달이면 200억은 들어온다는 거야.”
“엄청나네.”
“유료 결제 수익만 이 정도야. 광고 수익은 너네가 거의 다 가져가 장난 아냐.”
“하하하, 그런가.”
유료 결제 수익 배분으로는 이서우가 박 대표보다 10퍼센트가 많았다.
유료 결제만으로도 그런데, 광고 수익은 이서우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한마디로 이서우는 이제 한 달에 수백억을 벌어들이는 엄청난 존재가 되었다는 뜻이다.
“어쨌든 유료 사이트에서 얻은 정보를 종합해 보면서 한 가지 특이한 걸 발견했어.”
“특이한 거?”
“응.”
“뭔데?”
“하이 레벨 지역에 대한 거야. 하지만 그게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
“대체 무슨 일이기에?”
이서우와 이설아는 강한 호기심을 드러냈다.
하이 레벨 지역에 대해서는 가장 많이 안다고 자부했는데, 새로운 정보가 있다니 궁금한 것이다.
“뉴 월드에 두 제국이 있는 거 알지?”
“응. 카이젠 제국과 엘사둔 제국이잖아.”
“엘사둔 제국에서 하이 레벨 지역에 대해 알아 버렸어.”
“엘사둔 제국에서?”
“응.”
이서우와 이설아의 표정이 굳어졌다.
하이 레벨 지역에 대해 어떻게 소문이 났는지는 모르지만 그 소문에 따라 피바람이 불어올 수도 있었다.
“어떻게 거기까지 소문이 났지? 변방의 일인데.”
“변방의 일이지. 문제는 거기도 유저가 있다는 거고.”
“아!”
엘사둔 제국에도 분명 유저들은 있었다. 그들은 방송으로만 하이 레벨 지역을 볼 수 있어 처음에는 그다지 그 지역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유저들도 귀족들과 활발한 교류가 없어 하이 레벨 지역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다.
NPC들에게는 수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지역보다 제국의 발전이 더 중요했으니 말이다.
제국이 움직이지 않으니 유저들이 결국 엘사둔 제국을 벗어나 하이 레벨 지역으로 직접 사냥을 오게 되었다.
그리고 하이 레벨 지역의 보상이 얼마나 좋은지 소문을 퍼트리기 시작했다.
강력한 아이템들이 쏟아진다는 말이 대귀족의 귀로 하나둘씩 전달이 되자 그들도 첩자를 풀어 알아보게 되었다.
하이 레벨 지역이 돈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자 엘사둔 제국은 카이젠 제국에게 따지기 시작했다.
이권을 나누자며 강력히 주장했지만 카이젠 제국은 그들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문제는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
거의 대부분의 전쟁이 그렇듯 발발 이유는 이권과 관련이 있었다. 서로 더 많은 이득을 취하려고 하다 보니 전쟁이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엘사둔 제국에서 전쟁을 하려 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어.”
“전쟁을? 하지만 제국 간의 전쟁이 그리 쉽게 일어나지 않잖아.”
“그렇지도 않아. 지금까지 두 제국이 서로 덩치만 불리고 있어서 한 번쯤은 터지겠구나, 다들 예상은 하고 있었으니까.”
“어느 정도 심각한 거야?”
“몇 달 사이로 전쟁이 터질지도 모를 정도라고 예측하고 있어.”
“그 정도면 꽤 심각한 거네. 차라리 이참에 이권을 나누는 것도 괜찮지 않나?”
“절대로 안 나누려 하겠지. 거기서 나오는 돈이 얼만데. 아마 몇 달만 지나면 지금보다 몇 배는 많아질걸. 황제가 그걸 절대 포기하려 하지 않을 거야.”
“그러면 결국은 전쟁은 필연이라는 뜻이네?”
“그렇지.”
확신에 찬 대답에 이서우와 이설아도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둘 다 별로 걱정하는 것 같지는 않네?”
“어차피 게임이잖아.”
“어차피 게임이잖아.”
이서우와 이설아가 동시에 똑같은 대답을 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웃었다.
“아이고, 눈꼴 시려라. 나도 빨리 연애를 해야지, 원.”
김소연은 괜히 맥주잔을 들이키며 안주만 집어 먹었다.
하지만 이내 미소를 짓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여튼, 상황이 그래. 그러니 미리 준비를 해 놓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야.”
“NPC들은 그렇다 쳐도, 유저들까지 전쟁을 할까? 어차피 그들은 카이젠 제국으로 넘어와서 하이 레벨 지역으로 오면 되잖아.”
“아마 황제가 대규모 퀘스트를 주겠지. 전폭적인 지원도 아끼지 않을 테고. 카이젠 제국으로 아예 못 가게 하면 그들도 전쟁에 참여할 수밖에 없을 거야. 물론 그걸 무시하고 하이 레벨 지역으로 오려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엘사둔을 버려야 하니 그들의 입장에서는 엄청 고민될걸.”
“하지만 지리적인 위치가 너무 안 좋은데, 엘사둔 제국에서 왜 그런 위험을 감수하려는 건지 모르겠네.”
중요한 이권이 걸려 있기 때문에 전쟁을 할 수도 있다고 여겼지만, 지리적인 위치가 너무 좋지 않았다.
엘사둔 제국에서 하이 레벨 지역까지 오려면 수천 킬로미터를 내려와야 한다.
“나도 그래서 더 정보를 모으는 중이야. 하지만 마법이 난무하는 세계여서 방심할 수는 없어.”
“어떤 식으로 상황이 흘러갈지 진짜 궁금하네.”
“나도 마찬가지야. 그래서 요 근래 정보를 수집한다고 많이 바빴던 거야. 자료를 취합해서 추측해 가는 재미도 있고.”
“짧은 시간에 정보를 얻는다고 고생 많았겠네.”
“팀원들이 고생했지.”
평소 김소연은 털털하고 쿨한 성격이지만 일만 손에 잡으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매우 꼼꼼하고 완벽주의자에 가까워 팀원들이 어려워했다.
그런 성격 덕분에 성과는 잘 내지만 스스로 만족할 때까지 계속해서 일을 하기 때문에 여간 피곤한 것이 아니었다.
물론 팀원들은 삼교대로 돌아가지만 그래도 쉴 틈 없이 일을 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8시간도 결코 적지 않았다.
“아 참, 서우, 너 요즘 전신 때문에 골치 아프겠더라?”
“골치는. 그냥 가볍게 밟아 주면 되지.”
“네가 참여 안 하면 겁쟁이라느니, 비겁하다느니, 온갖 말로 디스를 하던데?”
“알아. 치졸한 수법이지. 그래서 아주 시원하게 밟아 주려고.”
“하지만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닐 것 같던데.”
“전신이 또 무슨 수를 쓰는 거야?”
이서우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이설아가 걱정이 되어 물었다.
“경험치를 고가에 사고 있잖아. 너랑 대결하려는 기간은 한 달 정도 남았고. 지금 패턴으로 보면 300레벨은 넘을 것 같단 말이지. 아마 300레벨 전설 장비로 도배하려는 것 같아. 그것도 전부 초월시켜서.”
“진짜 그 인간은 현질을 엄청나게 하네. 게임에 대체 얼마를 쓰려는 건지.”
“전설 장비를 초월 강화까지 풀로 해서 도배하려면 2천억은 넘어야 될걸?”
“돈이 썩어 나네, 썩어 나.”
그렇다고 이서우가 현질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게임을 즐기기 위해서라면 어느 정도 돈을 투자하는 게 좋다고 여겼다.
하지만 항상 무슨 일에든 정도가 있는 것이다. 몇 백만 원 수준이라면 몰라도 2천억이라니.
“서우 네 장비가 진화를 한다는 건 알지만 300레벨 전설 초월 장비는 정말 엄청나. 이번에 네가 얻은 걸 바탕으로 계산해보니 대검 능력이 진짜 넘사벽이더라. 악세서리에 방어구까지 하면…….”
이서우도 지팡이 옵션을 보며 살짝 걱정을 하기는 했다.
그가 300레벨을 찍는다면 그나마 능력치들이 올라가니 해볼만 하다고 여겼지만, 펠렌의 장비는 초월이라는 개념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얼마나 차이가 날지 알 수가 없었다.
게다가 무기만이 아니라 액세서리까지 전설로 맞추게 되면 김소연의 말처럼 완전히 안심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서우도 믿는 구석이 있었다.
“그건 알지만 문제는 전신이 그걸 다 어떻게 구하냐는 거지. 300레벨 전설 최상급 옵션 하나도 구하기 힘들어.”
“나도 그 점이 의문이긴 해. 하지만 전신은 의외로 자신감이 있는 것 같더라고. 전신도 방송에 참여하는 거 알지?”
“전신도 방송을 해?”
“응. 아, 최근 일이어서 몰랐을 수도 있겠구나. 워낙 두 사람이 바빴으니까.”
“어디랑 방송하는데?”
“거기도 개인 방송이야. 광고 수익을 모두 자기가 얻겠다는 거지. 하지만 현실에서는 방송을 안 하더라고. 오직 뉴 월드에서만 모습을 드러내고 있어.”
“돈도 많은데, 광고 수익까지 얻으면서 경험치도 사고, 장비도 다 현질하고?”
“말하자면 그렇지.”
“대단한 수완이네.”
“돈을 팍팍 쓰는 것 같지만 아마 실제 자기 돈은 많이 안 들었을 거야. 전신이 초반부터 아이템을 쓸어 담아서 꽤 돈을 벌었거든. 레이드 몬스터도 꽤 많이 독점했고. 길드들이 갈수록 커지고, 랭커들 레벨도 빠르게 오르니 지금은 독점을 못 하지만 이미 단물 다 빼먹었으니 전신도 아쉬울 건 없을 거야.”
이서우는 그것도 능력이라고 못마땅한 듯 하면서도 인정할 건 인정했다. 돈 버는 기회를 기가 막히게 잡아 내는 것도 능력인 것은 틀림이 없으니까. 하지만 지금의 전신을 보면 너무 막무가내여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설아는 전신에 대해 많은 걸 알고 있었다.
그가 쭉 랭킹 1위에 오르면서 방송에 참여시키고 싶어 다양한 방법으로 조사를 했었다. 하지만 너무 돈을 밝혀서 결국은 포기했다.
물론 돈을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정도라는 게 있다.
전신은 다른 사람들의 이익까지 착취하면서 자신이 가지기를 원해서 이설아가 생각을 바꾼 것이었다.
“하여튼 있는 것들이 더 한다니까. 그 말 들으니 이번에 진짜 완전히 눌러 놔야겠다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드네.”
“서우가 진짜 바쁘겠다. 제국 전쟁이 나면 분명 조세프 백작이 도움을 요청할 거고. 거기다가 전신과 대결도 있고. 중국과 인도가 합류할 테니 방송도 열심히 해야 하고.”
“그러네. 나야 따라다니면서 힐 주고 영상을 찍는 게 다지만, 오빠는 직접 전투를 해야 하니 더 힘들겠어.”
“힐 주는 것도 쉽지는 않잖아. 몬스터들 눈치 보면서 하는 게 얼마나 신경 쓰이는데.”
“그래도 힐러는 ‘안정’이라는 스킬이 있어서 적대치가 제로가 되니 그마나 편해.”
“얼씨구, 지금 누구 염장 질러? 서로 애틋한 목소리로 주고받는 거 하고는.”
“질투는. 누나도 연애하면 되지. 얼굴이 못났어, 스펙이 부족해? 나이도 그 정도면 괜찮고.”
“괜찮은 남자가 없다. 다 제 잘난 맛에 살아서 관심 가는 인간도 없고. 왜? 네가 소개시켜 주게?”
“연하도 괜찮아?”
“오, 괜찮은 사람이 있나 봐?”
“꽤 오래된 친구 둘이 있지. 생각 있으면 말해.”
“나중에 사진이나 보여 줘. 일이 좀 한가해지면 생각해 보지 뭐.”
진지하게 한 말은 아니지만 남자를 만나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에 여지를 남겨 두었다.
“일단 난 내일 아침 일찍 접속해서 오랜만에 조세프 백작을 한번 만나 볼게. 엘사둔 제국에서 어떤 행동을 취하고 있는지 조금 더 자세히 알아봐야겠어.”
“난 내일 방송 준비 때문에 아무래도 접속 못 할 것 같아. 영상이 워낙 괜찮아서 조금 더 신경을 써야할 것 같거든.”
“그래. 내일은 온전히 방송에만 매진해. 누나는?”
“나도 이것저것 알아볼 게 있어서 내일은 접속 못 해.”
그렇게 세 사람은 조금 더 대화를 나누고는 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