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6
레벨이 갑이다
146화
이른 새벽부터 무에타이를 훈련한 이서우는 샤워 후 접속 베드에 누웠다.
처음 계획은 8시부터 배우는 것이었지만 시간을 1시간 더 당겼다.
훈련 초반이어서 그다지 힘들게 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이서우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땀을 흘리고 나니 기분이 더욱 상쾌했다.
접속하자마자 이서우는 사이먼 자작에게 갔다.
“사이먼 자작님, 많이 바쁘신 것 같습니다?”
“이르다 뿐인가. 몸을 쪼개서 쓰고 싶을 정도네.”
“표정을 보니 거뜬하신 것 같은데요?”
“하하하, 즐거운 일을 해서 그런지 피곤하지가 않구먼. 한데, 여기까지 어쩐 일인가?”
“아무래도 전 조세프 백작님을 잠깐 만나 봬야 할 것 같아서요. 혹시 제가 필요한 일이 있더라도 조금 참아 주십사 하고 찾아온 것입니다.”
“잘됐구먼. 같이 가세.”
“자작님도요?”
“나도 백작님께 보고해야 될 게 있네.”
“네.”
이서우는 사이먼 자작과 함께 결계를 넘어 백작의 성으로 갔다.
자작과 함께 동행하니 통과가 일사천리였다.
백작의 집무실로 가자 그가 기다리고 있었다.
“허허, 이게 누군가. 정말 오랜만에 보는구먼. 이러다가 얼굴 까먹겠네. 자주 좀 들르게.”
“건강한 모습을 뵈니 더 좋네요. 자주 들르도록 하겠습니다.”
“자작도 고생이 많지?”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저보다는 서우 군이 훨씬 고생이 많지요.”
“일단 자리에들 앉게.”
백작의 안내로 화려한 의자에 앉았다.
“그래 영역 확장은 잘되고 있는가?”
“네. 차질 없이 진행 중입니다. 이번 기회에 서우 군이 정리한 적의 마을까지 완전히 삼켰습니다.”
“거기까지라면 영역을 꽤 많이 넓히신 거네요?”
“기회라 생각하고 과감하게 넓혔네. 자네에게도 말해 주려 했는데, 백작님께 간다고 하니 지금에서야 말하게 되는구먼.”
“괜찮습니다. 어차피 관리는 두 분이 하시는 건데요. 한데, 그러면 거의 200킬로미터까지 확장을 하신 건데, 괜찮을까요?”
“자네가 워낙 강력한 힘을 발휘해서인지 그 근처에는 개미 한 마리도 없네. 이런 기회를 놓친다면 두고두고 후회하지 않겠나.”
“그것도 그러네요.”
이서우는 과감히 행동하는 사이먼 자작과 조세프 백작을 보며 야망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권력에 대한 욕심이 조금은 있는 것 같으니 제국의 상황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는 게 어렵지는 않겠어.’
이서우는 기회다 싶어 넌지시 이야기를 꺼냈다.
“혹시 빠른 영역 확장이 엘사둔 제국과 연관이 있는 겁니까?”
“흠.”
이서우의 질문에 두 사람은 미소를 지우고 진중한 얼굴을 했다.
아마 이서우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면 기분 나빠하며 쫓아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들도 이서우에게 받은 도움이 크고, 앞으로도 받아야 할 도움이 많기에 기분 나쁜 표정은 짓지 않았다.
조세프 백작이 차분히 입을 열었다.
“자네니까 내 솔직히 이야기를 해 주겠네. 자네 말처럼 엘사둔 제국 때문에 이번 일을 무리하게 진행하는 면도 분명히 있네.”
“그랬군요. 그런 소문이 있었습니다. 물론 아직은 소수의 모험가들만 알고 있지만 아마 빠른 속도로 퍼지겠지요.”
“나도 알고 있네. 그래서 더 영역 확장에 매달린 것이지. 우리 쪽 모험가들을 최대한 많이 하이 레벨 지역에서 활동하도록 해야 전쟁이 터져도 우리에게 유리할 테니까.”
“오히려 모험가가 없어지면 전쟁에 불리하지 않을까요?”
“아닐세. 모험가들은 이곳과 하이 레벨 지역을 오가며 생활하고 있네. 그들이 성장하면 전쟁이 터졌을 때, 분명히 도움이 될 것이네.”
백작의 설명에 이서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쟁이 터진다고 하루아침에 승자가 나오는 게 아니다. 힘이 비슷하니 최소 몇 달, 길게는 몇 년이 걸릴 수도 있었다.
팽팽한 힘의 균형을 흔들 수 있는 것은 유저밖에 없다. 그러니 황제는 조세프 백작에게 하이 레벨 지역을 더 확장하라 명령을 내린 것이었다.
“얼마나 심각한가요?”
“조만간 일이 터질 수도 있다더군. 시간을 늦출 수 있으면 훨씬 유리할 텐데, 엘사둔도 바보가 아니니 우리가 시간을 끌려고 하면 바로 알아차릴 것이네.”
“첩자들이 꽤 많이 투입되었을 테니 그럴 수도 있겠군요.”
“불순분자들뿐 아니라 모험가들도 변수네. 그들도 하이 레벨 지역에 대한 소문을 분명 들었을 테지. 한번 맛을 봤으니 가만히 있을 수가 있겠나.”
“맞습니다. 그 점은 제가 가장 잘 알고 있죠.”
이서우도 최근에는 아예 하이 레벨 지역에서 살다시피 했다.
상당수의 유저들은 일반 지역에 있는 던전을 버리지 못해 활발히 오가며 사냥에 임했지만, 고레벨들은 주로 하이 레벨 지역에 머물렀다.
돈이 있으니 레벨에 치중하고 아이템은 사는 것이다.
이서우도 펠렌의 장비가 있어 던전은 제쳐 두고 오직 레벨 업에만 치중했다.
하이 레벨 지역만큼 경험치를 많이 주는 곳은 없었다.
“차라리 잘됐구먼. 자네에게 이 문제를 말하고 도움을 구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먼저 말을 꺼내 주다니.”
“저의 도움이라고요?”
“그렇다네. 계속 이런 일에 휘말리게 해서 미안한 마음이지만 자네가 엘사둔 제국으로 가서 동향을 좀 살펴주게.”
“정보를 얻는 건 카이젠 제국에서도 첩자를 보냈을 텐데요?”
“물론 보냈지. 하지만 최근 들어서 연락이 두절되고 있다네. 마음 같아서는 몰디나 님과 아리아 님이 갔으면 좋겠지만, 그분들이 사라졌을 때 엘사둔에서 공격을 해 오면 제국이 위험해질 것이네.”
“그들이 이곳에 첩자를 보냈다면 확실히 두 분에 대한 감시도 하고 있겠지요.”
“그분들을 직접 감시는 못하겠지만 그분들이 사라졌다는 걸 알기는 어렵지 않네. 물론 하루 이틀 만에 발견되지는 않겠지만, 위험 부담이 너무 커서 그분들이 움직이는 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라네.”
“저들이 저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지 않나요?”
“알고는 있을 것이네. 하지만 모험가가 넘어올 거라는 생각은 전혀 못 할 거네.”
“이유는요?”
“그들에게 모험가는 단순히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존재지. 나야 자네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그들은 철석같이 믿고 있네. 엘사둔에서 많은 모험가들이 하이 레벨 지역으로 간 것도 이익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 말일세.”
“그럴 수도 있겠군요.”
이서우는 속으로 자신도 이익에 따라 열심히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을 했지만, 뭐 착각은 자유니까.
잠시 고민을 하던 이서우는 백작에게 질문을 했다.
“단순히 그곳의 동향만 알아봐 주기를 원하시는 겁니까?”
“자세하면 자세할수록 좋겠지.”
“전쟁을 언제쯤 하려는 건지, 전쟁을 하기 위해 과연 행동을 하고 있는 건지, 뭐 그런 게 알고 싶으신 거지요?”
“그렇다네. 언제 터질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겠지만, 지금은 몇 달 안에 엘사둔이 행동을 할 거다 하는 정도의 수준이거든. 부담스럽다는 건 알지만 꼭 좀 부탁하네. 그나마 자네가 가장 믿을 수 있는 모험가라네.”
-엘사둔 제국을 정찰하라.
카이젠 제국의 황제는 엘사둔 제국이 전쟁을 벌일 것이라는 첩보를 듣고 많은 고민에 빠진다. 병력에서도 비슷하고, 서로의 힘의 균형이 팽팽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전쟁이 벌어지지 않았지만 하이 레벨 지역의 가치를 알게 되면서 엘사둔 제국의 행동이 더욱 노골적으로 변하고 있다.
이에 황제는 조세프 백작에게 하이 레벨 지역을 최대한 빨리 발전시키라는 명령을 내린다. 서로의 힘이 비슷하다면 모험가를 더 많이 끌어들이는 쪽, 모험가의 능력이 더 강한 쪽이 승리할 테니까 말이다.
조세프 백작도 이에 동의하고 하이 레벨 지역의 영역을 확장하라 지시한다.
처음에는 난색을 표했지만 당신 덕분에 의외로 일이 쉽게 풀려 사이먼 자작과 조세프 백작, 심지어는 황제에게까지 당신에 대한 이야기가 전달이 되었다.
하지만 엘사둔 제국이 언제 행동에 옮길지 알 수 없는 상황이기에 여전히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다.
조세프 백작은 당신에 대한 믿음이 확고해 엘사둔 제국을 정찰해 달라는 요청을 하기에 이르렀다.
난이도 : B+++
완료 조건 : 엘사둔 제국이 언제쯤 공격해 올지 대략적으로라도 알아오라. 공격 날짜에 대한 오차는 30일 이내여야 한다.
성공 시 보상 : 5레벨 경험치. 10만 골드. 명성 1만. 최상급 강화석 50개. 카이젠 제국의 황제파 귀족들과의 친밀도 상승.
실패 시 : 7레벨 다운. 카이젠 제국의 황제파 귀족들과의 친밀도 하락.
‘헉. 보상이 엄청나네.’
경험치 보상은 이제 5레벨 이상은 없는 것 같아 그러려니 했지만 그 외의 보상은 엄청났다.
“의미 있는 성과를 가져오도록 하겠습니다.”
“역시 자네라면 들어줄 거라 여겼네. 그러면 이왕 간 김에 한 가지 더 부탁을 좀 들어주게.”
“부탁이라고 하시면…….”
-엘사둔 제국의 강자들에 대해 조사하라.
강한 능력자 한 사람이 전쟁의 판세를 뒤엎을 수 있다.
이는 엘사둔 제국과 카이젠 제국이 모두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바다.
대귀족인 조세프 백작도 이를 잘 알고 있기에 엘사둔 제국의 강자가 얼마나 되는지 알고 싶어 한다.
난이도 : B+++
완료 조건 : 소드 마스터급 이상이 몇 명이나 되는지 조사하라. 정확한 숫자가 아니라 대략적인 인원을 파악하면 된다. 오차 범위는 3명 내외.
성공 시 보상 : 5레벨 경험치. 10만 골드. 최상급 강화석 100개.
실패 시 : 7레벨 다운.
‘소드 마스터급 이상의 존재를 알아오라고? 그것도 오차 범위가 3명 내외고? 이건 쉽지 않겠는데.’
난이도는 똑같았지만 이서우는 이번 일이야 말로 더 힘들다고 여겼다.
하지만 보상이 워낙 좋아서 거절할 수가 없었다.
“좋습니다. 최선을 다해 강자들이 몇 명이나 되는지 반드시 알아오겠습니다.”
“시간이 6개월도 채 남지 않았을 것이네. 하지만 자네라면 잘 해낼 수 있을 거라 믿네.”
“제국에서는 6개월 이내에 공격을 할 거라 보는군요.”
“범위가 너무 넓지? 알고 있네. 하지만 그게 지금 현재로서는 우리가 알 수 있는 최선이라네. 그래서 자네에게 부탁하는 것이지.”
“그럼 저는 바로 일어나겠습니다.”
“참, 이걸 가져가게. 우리가 얻은 엘사둔 제국의 지도라네. 오류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비교적 정확할 것이네.”
“유용하게 쓰겠습니다.”
“그리고 이것도 가져가네. 국경을 넘을 수 있도록 해 줄 것이네.”
“이것은…….”
“국경과 가까워질수록 경계가 더 삼엄하네. 이 패를 가지고 있으면 쉽게 통과할 것이네.”
“감사합니다.”
이서우는 금색의 패를 인벤토리에 넣었다.
“아차, 내가 깜빡했구먼. 몰디나 님이 설치한 이동 마법진이 있네. 거기를 이용하면 절반 정도의 거리는 단번에 줄일 수 있을 것이네.”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요.”
“그럼 가세.”
“네.”
조세프 백작의 안내를 따라 성 깊숙이 들어갔다.
그곳은 오직 조세프 백작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다.
“저곳으로 들어가서 마나를 끌어올리게. 그러면 반대쪽에서 알아서 자네를 이동시켜 줄 것이네. 그리고 이 서신을 가져가게.”
언제 쓴 것인지 조세프 백작은 서신 하나를 이서우에게 건넸다.
“그분들에게 가져가면 되네. 그럼 올라서게.”
“네.”
서신을 받은 이서우는 바닥에 새겨진 기이한 문양에 섰다.
“그럼 행운을 비네.”
“네.”
조세프 백작의 말대로 마나를 끌어올렸다. 그러자 무언가가 잡아끄는 느낌이 들었고, 시야가 갑자기 하얗게 변했다.
그리고 잠시 후, 이서우는 낯선 곳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한데, 수십 명의 기사들이 이서우에게 검을 겨누었다.
‘패를 받아 오길 잘했네.’
이서우가 조심스럽게 금패를 꺼내보이자 그제야 기사들은 검을 거두었다.
기사들은 이서우를 몰디나에게 데려갔다.
“오랜만이야. 그새 많이 강해졌는데? 이제는 함부로 대할 수 없겠어?”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몰디나 님도 안 본 사이에 더 강해지셨는데요?”
“어쭈, 이것 봐라. 진짜 많이 발전했네. 대련 한 판 해?”
“대련은 다음에 하고 이것부터 받으시지요.”
“뭔데?”
“조세프 백작님이 주셨습니다.”
“그래? 어디 볼까?”
몰디다는 블링크로 소리 없이 다가와 이서우의 서신을 받아 들었다.
그녀의 움직임을 느꼈지만 이서우는 그녀가 공격할 의사를 가지고 펼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일부러 살기를 살짝 넣었는데도 반응이 없네. 내 의도를 알았다는 건가?”
“뻔히 보이게 하셔 놓고 그렇게 물으시면 대답할 말이 없는데요?”
“능구렁이가 다 됐네. 조세프 백작이 보낸 걸 보면 엘사둔 제국 정찰 문제 때문이겠지. 거기 볼 일 다 끝나면 꼭 나한테 와. 한 판 진하게 하고 가게.”
“그때 스케줄 봐서요.”
“누가 그놈 후예 아니랄까 봐 싸가지 없는 것도 참 닮았네.”
몰디나는 투덜거리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서신을 꺼내 내용을 훑어 본 몰디나는 다시 이서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자, 이거 받아.”
“이건 뭔가요?”
“통신구야. 혹시 네가 죽을 일이 생기면 그때까지 얻은 정보는 넘기고 죽어야지.”
“끔찍한 소리를 하시네요.”
“그게 내 매력이야. 그럼 고생해.”
“네.”
이서우는 몰디나와 헤어져 그곳을 벗어났다. 산속에 몰디나의 은신처가 있어 사람들과 부딪치지는 않았다.
지도를 펼쳐 든 이서우는 방향을 잡고는 엘사둔 제국을 향해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