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7
레벨이 갑이다
147화
금패로 국경 부근까지는 무난하게 이동했다. 하지만 엘사둔의 국경을 넘는 것이 문제였다.
무턱대고 달려갈 수는 없어 일단 카이젠 제국의 국경 근처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조심스럽게 엘사둔 국경으로 접근했다.
이서우가 은밀히 움직이면 누구도 그를 잡을 수 없었다. 문제는 다른데 있었어.
‘뭐야, 이거 결계잖아?’
이서우는 결계를 보자마자 몰디나에게 통신을 넣었다.
-하루에 쓸 수 있는 통신구 횟수가 제한되어 있는데 왜 벌써 보내고 난리야?
“여기 마법 결계가 있다고 말한 적 없잖아요!”
-너 철책 넘어간 거 맞아?
“네. 넘어가고 한 1킬로미터 쯤 왔는데 마법 결계가 있던데요?”
-아, 그래? 좋은 정보네. 지금까지 거기 결계 없었어. 단지 병사들이 지키고 있을 뿐이었지. 정보 업데이트해 놓을게. 벌써부터 네가 유용하다는 걸 알게 돼서 참 기분이 좋네.
“어련하실까. 그것보다 어떻게 넘을지나 말해 주세요.”
-내가 여기서 어떻게 그걸 깨냐? 너 강하잖아. 잘해 봐. 그럼 끊는다.
몰디나는 매몰차게 통신을 끊어 버렸다.
이서우는 다시 통신을 연결해 따질까도 했지만 그녀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어서 그만두었다.
‘나중에 가서 하늘 위에 하늘이 있다는 걸 확실히 보여 줘야겠네. 이렇게 손봐 줘야 할 사람이 많아서야 원.’
달랑 두명 밖에 없었지만 하도 신경을 긁어 놓으니 몇 명쯤 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서우는 금세 신경을 결계로 돌렸다.
하지만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런 걸로 고민이나 하고 있다니 참. 그냥 뚫고 들어가서 사라지면 되잖아?’
이서우는 단순하게 생각했다. 그러니 쉽게 해결책이 보였다.
대검을 뽑아들고 마나를 끌어올려 단숨에 결계를 베어버렸다. 그리고는 재빨리 그곳에서 사라졌다.
결계가 공격받았다는 걸을 깨달은 경비병들이 신속히 결계로 왔지만 이미 이서우는 사라지고 없었다.
“뭐야? 또 몬스터가 지나가다가 가루가 된 건가?”
“그렇겠지. 너무 결계를 강력하게 만들었다니까. 쳇, 끗발이 오르고 있었는데.”
“하하하. 덕분에 난 한숨 돌렸구먼.”
“그게 네 마지막 행운이야. 따라와. 아주 작살을 내줄 테니.”
두 경비병은 초소로 가서 다시 하던 일을 이어 갔다.
그들은 작은 패를 들고 똑같은 그림을 맞춰 많이 획득하면 승리를 취할 수 있는 놀이를 하고 있었다.
사실 규칙은 조금 더 복잡했지만, 어쨌든 그들은 열심히 돈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한편, 결계에서 멀리 벗어난 이서우는 적당한 지점에서 속도를 늦추었다.
‘역시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면 일이 안 된다니까.’
따라오는 사람이 없자 이서우는 안도하며 잠시 휴식을 취했다.
그렇게 10분 정도 흘렀을 때다. 갑자기 하늘을 찢을 듯한 비명 소리가 들렸다.
“꺄아아악!”
이서우는 송곳처럼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급히 달려갔다.
“주영아!”
“주영아 조금만 참아!”
파파팟!
서걱! 서걱!
“크윽!”
“오빠!”
“이놈들이!”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에 이서우는 청력과 함께 시력에도 집중했다.
한데, 상황이 엉망이었다.
몬스터들과 다섯 명의 유저들이 뒤엉켜서 난리도 아니었다.
유저 둘은 공격을 당했는지 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다른 셋은 어떻게든 두 유저를 구해 보겠다고 안간힘을 썼다.
쓰러진 사람 중에는 힐러도 있는지, 힐을 시전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이서우는 땅을 힘껏 박차며 대검을 뽑아 들었다.
빠르게 접근한 이서우는 다섯 마리의 몬스터들을 차례로 베어나갔다.
그 틈에 몬스터와 싸우던 유저들이 얼른 동료들에게로 갔다.
물약으로 빠르게 조치를 취했을 때쯤 이서우가 모든 몬스터를 처치했다.
동료들의 목숨이 안전하다는 것을 안 유저들은 이서우를 도우려 했는데, 상황이 모두 정리되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쳐다보았다.
이서우가 태연하게 몸을 돌리자 그제야 유저들은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헉, 헉. 가, 감사합니다.”
“가, 감사해요.”
“아닙니다. 같은 유저들끼리 서로 도와야죠.”
이서우는 허리를 깊숙이 숙이며 고마움을 표하는 유저들에게 미소로 화답했다.
사실, 이서우는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지만 동료들을 구하려는 마음이 보기 좋아 끼어든 것이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별말씀을요. 어차피 다 같이 뉴 월드를 즐기는 입장인데, 서로 도와야죠. 한데, 왜 이곳에서 이런 일을 당하신 겁니까?”
“사실, 우리는 하이 레벨 지역으로 가기 위해 국경을 넘으려다가 실패해서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몬스터에게 둘러싸여서 낭패를 본 것이죠. 한데, 은인께서는 어떻게…….”
“저도 마찬가집니다. 돈 좀 벌어 보려고 가려 했는데 못 가게 하더군요.”
“맞습니다! 나쁜 놈들, 대귀족의 허락이 없이는 지나갈 수도 없게 만들다니. 한데, 고레벨이신 것 같은데 대귀족에게 부탁하면 쉽게 통과할 수 있을 텐데요.”
“NPC라고 해도 다른 사람에게 고개를 숙이는 건 성격에 안 맞아서요.”
“아, 그러셨구나. 하긴 그 정도 능력이시라면 대귀족에게 아부를 할 필요는 없죠. 그래서 말인데, 죄송한 말씀이지만…….”
파티의 리더로 보이는 사내가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이서우를 바라보았다.
“편하게 말씀해 보세요.”
“국경까지는 어찌 운이 좋아 왔는데, 아무래도 가는 길이 험할 것 같아서……. 혹시 괜찮으시면 동행할 수 있을까요?”
“어차피 가는 길이니 상관없겠죠.”
이서우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곳에서 생활하는 사람과 친분을 만들면 이동이 편리하고, 정보도 쉽게 얻을 수 있었다.
이서우는 파티의 리더의 소개로 파티원들에 대해 알 수 있었다.
그와 대화를 나눈 리더는 유진철이라는 사람으로, 탱커였다. 척 보기에도 신중한 타입 같았다.
위기에 처했던 여자는 백주영이고 직업은 힐러였다. 사람들이 그녀를 대하는 걸로 봐서는 여린 성격의 소유자 같았다.
또 한 명의 여성은 소소라는 아이디를 썼는데, 본명은 아니었다.
그녀는 버퍼였고, 짧은 대화에서 느낀 것인데 직설적으로 말하는 타입이었다.
나머지 두 사람은 딜러였고, 표우진은 창을 쓰며 무뚝뚝한 성격인 반면, 김규만은 특이하게도 채찍을 사용하고 말이 많은 타입이었다.
한데,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었다. 바로 그들의 나이였다.
“사냥하기 좋은 구성이네요. 한데, 다들 나이가 비슷하신 것 같은데…….”
“아, 네. 우리는 고등학교 동창들입니다. 제가 1년을 더 다니는 바람에 나이가 한 살 많아서 탱커를 선택했죠.”
“그렇군요. 그러면 서로 호흡도 잘 맞으시겠네요.”
“네. 호흡 하나는 잘 맞는다고 자부합니다.”
유진철은 동창이라고 하면 항상 나이가 더 많아 보인다는 질문을 추가로 받았기에 아예 왜 그런지 상세히 말해 주었다.
“칫, 그러면 뭐해? 장비발이 안 돼서 맨날 고생인데.”
소소는 평소처럼 별생각 없이 던진 말이었는데, 이서우가 있다는 사실에 아차 싶었다.
“앗! 죄송해요. 습관이 되다 보니…….”
“아닙니다. 그냥 편하게 행동하세요. 어차피 저랑은 금세 헤어지실 테니 신경 쓰지 마세요.”
“그렇긴 한데, 마을까지 워낙 거리가 멀다 보니 아마도 함께 며칠은 있어야 할 텐데…….”
“그럼 시간을 조금 단축하도록 하죠. 어차피 서로 시간은 소중하니까요.”
“네. 그럼 속도를 조금 높이겠습니다.”
이서우의 말에 유진철은 파티원을 훑어보고는 달릴 준비를 했다.
“앞장서시지요.”
“아닙니다. 제가 앞장서면 속도 조절이 안 돼서 말이죠. 진철 씨가 앞장서시죠.”
“네. 그러면 우리가 먼저 달리겠습니다.”
“네.”
이서우에게 지도가 있지만 사람들 앞에서 지도를 펼치면서 달릴 수는 없어 그들에게 선두를 양보했다.
‘국경 근처여서 마을까지는 꽤 거리가 있으니 접속 종료까지는 달리다가 시간 다 보내겠네.’
이서우는 빨리 가야 된다는 마음이 드는 한편, 정보를 얻어야겠다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너무 빠르게 가지 않으셔도 됩니다.”
“네.”
대화를 하기 위해 밑밥을 던지고는 유진철을 따라 달렸다. 속도가 느려서 굳이 마나를 쓸 필요도 없었다.
‘대체 몇 렙이지? 이 정도면 속도가 너무 느린데. 2차 전직을 막 끝낸 유저들인가?’
궁금하다고 막 물어볼 수는 없어 잠시 그들의 실력을 파악해 보았다.
한데, 달리는 것만으로는 레벨을 짐작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진철 씨, 하이 레벨 지역에 대한 관심이 많으신가 봐요?”
“지금 가장 핫한 곳이니까요. 레벨 업 속도도 빠르고 고급 아이템도 나온다고 하니 한 번쯤 도전해 보려는 것이죠. 지금 많은 유저들이 카이젠 제국에서 플레이 못 한 걸 땅을 치고 후회하고 있을 정도니, 우리들도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죠.”
“하긴, 저부터가 거기에 관심을 갖고 있으니.”
“네. 다 같은 마음인 거죠.”
유진철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절호의 기회라고 여겼는데, 그 길이 막혀 버렸으니 당연한 반응일지도 몰랐다.
이서우가 넌지시 말을 던졌다.
“좋은 기회인데 왜 이렇게 철저히 막는지, 원.”
“모험가들을 카이젠 제국에 빼앗기지 않으려는 속셈이죠 뭐. 조만간 더 강력하게 제재를 한다는데,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 기회였을지도 모르겠네요.”
“더 강력한 제재요?”
“네. 그런 소문이 돌더라고요.”
“아, 그렇군요. 전 혼자서 틀어박혀서 사냥만 하느라 소문에 밝지 못해서…….”
“뉴 월드를 하는 분들 중에 서우 씨처럼 조용히 사냥만 하시는 분들이 꽤 많아요. 어쨌든 결계까지 만들고, 더 강력한 제재를 가하면 우리처럼 레벨이 낮은 사람들은 영영 하이 레벨 지역에 갈 수 없을지도 모르겠네요.”
“형, 전쟁을 하면 갈 수 있잖아. 그때 지원해서 몰래 넘어가면 되지.”
“전쟁을 하더라도 퀘스트로 묶어 버릴걸?”
“하긴, 그럴 수도 있겠네.”
채찍을 쓰는 김규만의 희망이 유진철의 한마디에 여지없이 무너졌다.
하지만 머릿속에 스치는 생각이 있는지 다시 웃으며 말했다.
“퀘스트를 받지 않으면 되잖아!”
“강제 퀘스트면 어쩌려고.”
“아, 강제 퀘스트. 맞다. 그게 있었지.”
김규만은 다시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
“그런걸 보면 고렙들이 부러워.”
“그러게. 고렙들은 대귀족이 전폭적으로 밀어주니 언제든 하이 레벨 지역으로 갈 수 있지. 물론 무조건 돌아와야 대귀족과의 관계를 유지할 수 있어 족쇄나 다름없지만.”
“난 지금 상황에서는 그 족쇄라도 차고 싶다.”
“너 또 변태적인 생각했지?”
두 사람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소소가 툭 끼어들었다.
김규만의 정신세계를 가장 잘 아는 것이 바로 그녀여서 반사적으로 툭 내뱉은 말이었다.
“야, 손님도 계신데 진짜 그러기야?”
“채찍 쓰면서 느끼는 변태 주제에.”
“야!”
김규만은 목소리를 높였지만 이내 실수를 깨닫고 얼른 소리를 죽였다.
“속도를 높인다!”
두 사람의 다툼이 길어질 기미를 보이자 유진철은 대화를 하지 못하도록 속도를 높였다.
그러자 달리는 데 정신이 팔려 조용해졌다.
‘유저들이 빠져나가는 속도가 빨라진다면 확실히 엘사둔 제국에서도 가만히 있지 않겠지. 강력한 제재를 한다는 걸로 봐서 그다음 단계가 전쟁일 수도 있겠어.’
이서우는 의외로 전쟁과 관련된 정보는 쉽게 얻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생겼다.
한참을 달리던 이서우는 방송 시간이 1시간 밖에 남지 않아 접속을 종료하기 위해 멈췄다.
“저는 아무래도 오늘은 여기까지네요.”
“저기, 죄송한데 혹시 언제쯤 접속을 하시나요?”
“내일 오전에 접속하게 될 것 같네요. 9시쯤? 하지만 확실하게 말씀을 못 드리겠네요.”
“아, 그러시구나. 네, 그럼 인연이 되면 또 뵐게요.”
“네.”
이서우는 유진철 일행들과 헤어져 접속을 종료했다. 한데, 그들도 불안하다며 이서우와 함께 종료했다.
뉴 월드를 종료한 이서우는 작업 중인 이설아에게로 갔다.
“오빠, 왔어?”
“밥은?”
“점심은 챙겨 먹었어.”
“저녁 먹어야지. 가자.”
“나 시간 없는데.”
“30분이면 돼.”
“알았어.”
간단하게 되는 메뉴를 시켜 식탁 앞에 앉았다.
“조세프 백작이 뭐래?”
“퀘스트 주더라.”
“퀘스트? 무슨 퀘스튼데?”
“엘사둔 제국 정찰.”
“와, 정말? 이번 기회에 가서 정확한 정보를 얻어 오면 되겠네.”
“안 그래도 그러려고. 강자들이 얼마나 있는지도 알아보고, 분위기도 좀 살펴보게.”
“전쟁 정보만 확실히 알아내고 국경 넘어오는 과정을 찍으면 재밌는 방송이 나올 텐데.”
“재밌는 방송?”
“응. 국경지대를 넘어오면서 엘사둔 제국 병사들을 물리치는 거지!”
“제국 병사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고 하는 소리 맞지?”
“당연히 알지. 하지만 오빠 혼자라면 치고 빠지는 게 되잖아. 그 많은 인원들 앞에서 주눅 들지 않고 강력한 공격을 퍼붓고 돌아오면 완전 난리가 날걸.”
이설아는 그때의 일을 상상하는지 숟가락도 놓은 채 손을 맞잡고는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바쁘다면서 얼른 밥 먹어야지.”
“아차, 그렇지.”
식사를 마친 이설아는 방송 준비를 위해 다시 분주했고, 이서우는 대형 화면이 있는 방으로 갔다.
시청자의 입장에서만 아니라 방송을 진행하는 이설아의 입장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모니터여서 실시간으로 시청자들의 반응까지 볼 수 있었다.
화면이 들어왔다.
방송 10분 전부터 광고가 흘러나왔다.
사람들은 이설아가 쉰다고 했다가 다시 방송을 한다는 공지를 보고 기대감을 가졌다.
휴식까지 반납하고 나와야 할 만큼 대단한 이슈거리가 있을 거라 예상 하는 것이다.
광고가 지나고 이설아의 모습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