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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이 갑이다-152화 (152/341)

# 152

레벨이 갑이다

152화

“오빠, 좀 멀리 가도 되지?”

“멀리? 당일치기 아녔어?”

“맞아. 우리 드론 자동차 있잖아.”

“아, 맞다. 그랬지. 어디로 가고 싶은데?”

“더 추워지기 전에 바닷가 가 보고 싶어.”

“바닷가? 어디?”

“부산 해운대!”

“나도 한 번쯤 가 보고 싶었는데, 잘됐네.”

“한 번도 안 가 봤어?”

“사실, 여행이라고는 가 본 적이 없어서.”

“그랬구나. 나도 그래. 우리 앞으로 여기저기 다 가 보자.”

“그래.”

이설아는 잠시 쓸쓸한 얼굴을 했지만 이내 활짝 웃어 보였다.

이서우도 대학 생활을 고작 1년도 채 즐기지 못하고 식물인간이 되어 버려서 여행을 가 본 적이 거의 없었다.

드론 자동차에 올라 목적지를 말하자 빠르게 출발했다.

하지만 워낙 흔들림이 없어 탑승자들은 거의 진동을 느끼지 못했다.

“40분이면 가네.”

“응. 워낙 편해서 요즘 그냥 드론 택시를 이용하더라.”

“부자들이나 가능한 거겠지.”

“그렇긴 하지. 왕복에 몇백만 원은 하니까. 2시간 절약하자고 그런 돈을 쓸 사람은 많지 않지.”

“부자들에게는 1시간이 수억에서 수십억 원의 가치가 있을 테니 그런 거겠지.”

“맞아. 오빠만 해도 1시간도 안 걸리는 대전 한 번에 100억을 받잖아. 승리하면 200억이고.”

누군가에는 1시간이 1만 5천 원의 가치가 있을 것이고, 또 누군가에는 1억 5천만 원의 가치가 있을 것이다.

이서우만 해도 1시간에 수백억을 벌 수 있었다.

그러니 그들에게는 드론 자동차 여행이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물론 지금 타고 있는 드론 자동차도, 들어가는 유지비도 모두 공짜였지만 말이다.

목적지가 가까워지자 이설아는 속도를 늦추었다. 창문을 여니 바다 냄새가 물씬 풍겼다.

“와! 저기 봐. 드론 자동차야. 재벌인가 봐.”

“그러게. 나는 언제 저런 거 타 보냐.”

“드론 택시 타. 10만 원이면 저 앞까지는 탈 수 있잖아.”

“코앞에 가는데 10만 원을 쓰라고? 10만 원이 뉘 집 개 이름이냐? 때려죽여도 그런 돈은 안 나온다.”

“자랑이다, 인마.”

“가서 한 번 태워 달라고 해 볼까?”

“아서라. 저런 부자가 왜 이런 곳으로 오겠냐.”

창문으로 사람들의 대화 소리가 다 들렸다.

그리 높지 않은 곳이고, 소음의 거의 없기에 가능했다.

이설아는 곧 창문을 닫았다.

“오빠, 아무래도 길에는 내리기 힘들겠는데?”

“그러네. 주차장이나 건물 같은 데 세워야 하나?”

“주차장에서 여기까지 오는 데 거리가 머니까 그냥 호텔 이용하면 될 것 같은데.”

“호텔?”

“어차피 놀다가 쉬기도 해야 하니까.”

“그래. 이왕이면 그게 낫겠네.”

“그럼 내가 예약할게.”

아무리 비수기지만, 주말이라 예약이 힘들 줄 알았는데 역시 이설아는 수완이 좋았다.

최고급 스위트룸을 잡은 두 사람은 편안하게 드론 자동차를 주차하고 방으로 갔다.

바다가 바로 보이는 곳이어서 호텔 안에서 지내기에도 괜찮은 곳이었다.

짐을 풀고 가벼운 복장으로 호텔을 나왔다.

“설아 덕분에 편하네.”

“당일치기라서 준비 못 할 줄 알았거든.”

가볍게 바다에 발을 담글 수 있을 정도의 복장을 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10월의 마지막 주인데도 바다에 사람들이 꽤 있었다.

“쌀쌀한 날씨인데도 사람들이 좀 있네.”

“응. 근데 다 연인들인가 봐.”

“그러네. 근데, 그 모자에 선글라스만으로 되겠어?”

“괜찮아. 이 정도면 대부분 못 알아보더라고.”

방송에서 나오는 모습과 실제 이설아의 모습은 차이가 났다.

방송에서는 메이크업도 꽤 진하게 했고, 액세서리도 활용을 많이 한다.

옷도 깜찍, 발랄 콘셉트일 때가 있었고 섹시 콘셉트로 진행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평상시에는 무난한 옷을 입기에 그녀를 잘 알아보지 못했다.

봐도 얼굴은 가리고 있어 몸매가 좋은 여자구나 하는 정도였다.

대부분 모자에 선글라스를 끼고 있으니 그녀가 예쁘다는 것을 사람들은 잘 알 수 없었다.

물론 어느 정도 가려도 하얀 피부 때문에 꽤 미인이라고 사람들이 추측했지만, 개인 방송을 하고 있는 설아라는 사실을 알지는 못했다.

모자를 벗으면 알아보는 사람도 있었지만 지금은 완전 무장(?)을 해서 안심이 되었다.

“오빠, 우리 바다에 발 담그자.”

물에 젖어도 괜찮은 신발로 신었기에 두 사람은 바다로 들어갔다.

“헤헤. 시원하고 좋다.”

차가운 바닷물이 발목을 덮었다.

파도가 다시 밀려와 물은 어느새 무릎까지 찼다.

“탁 트인 곳에 있으니 마음까지 시원해지네.”

“응. 진짜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야.”

이설아는 이서우의 손을 꼭 붙잡고 먼 바다를 바라보았다.

시원하게 발을 휘감는 바다를 걸으며 두 사람은 즐거운 대화를 나누었다.

열심히 수다를 떨면서 1시간쯤 걸으니 출출했다.

“오빠, 나 배고파.”

“그렇잖아도 나도 출출했는데.”

“뭐 먹을까?”

“부산에 왔으니 회를 먹어야지.”

“그치? 나도 회 좋아. 박 대표님에게 물어보니 여기 괜찮은 곳이 있다고 하더라고.”

“그래?”

“응.”

“그 말 들으니 더 출출해지네. 얼른 가자.”

이서우의 재촉이 이설아는 미리 알아봐 둔 곳으로 갔다. 회 센터로 가는가 싶었는데, 조금 더 들어가 허름한 가게 앞에 멈췄다.

“여기야?”

“응. 보기에는 이래도 엄청 오래 이곳에서 장사를 하셨대.”

“그렇구나. 은근히 기대되는데?”

“얼른 들어가자.”

비록 가게는 허름했지만 이서우와 이설아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설아가 가게 안으로 들어서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두 명이에요.”

“아무데나 앉으소.”

“네. 박원식 대표님 소개로 온 거니 잘 부탁드려요.”

“아, 박 대표 소개로 왔는교? 그라믄 진작 야그를 하지. 일로 오소.”

“네.”

나이가 60을 조금 넘긴 듯 했는데, 목소리가 쩌렁쩌렁한 것이 정정해 보였다.

요즘은 75세가 넘어야 노인 축에 끼어서 60이면 한창이었다.

그녀는 가장 안쪽, 사람들에게 방해받지 않을 수 있는 자리로 두 사람을 안내했다.

“원식이 그노마는 요즘 와 이리 코빼기도 안 보이는지 모르것네.”

“요즘 사업이 많이 바쁘세요.”

“정 없는 놈. 바쁘면 바쁠수록 더 내리와야지. 내가 그노마를 어릴 때 업어 키았는데.”

“와, 정말이세요?”

“그라모. 코찔찔일 때 내가 많이 돌바줬제.”

“호호호. 코찔찔이요?”

“그노마 그거 어릴 때는 울보였지. 울보. 쪼맨한기 누나, 누나, 카믄스 으찌나 쫓아 댕깄는지.”

“호호호호. 새로운 사실을 알았네요.”

“그래도 그노마 자슥, 서울로 가드니만 잘돼 갖고 고향사람들 마이 도와주찌. 칸데, 뭐 잡술란교?”

“아주머니 잘하는 걸로 해 주세요.”

“그라믄 모듬 회로 드이소. 이것저것 맛도 보고 그기 무난한께.”

“오빠는 괜찮아?”

“없어서 못 먹지.”

“그 총각 말 잘하네. 맞지. 읍어서 못 먹는기라. 내 잘생긴 총각 봐서 푸짐하게 내와야긋네.”

아주머니는 몇 마디를 나누고는 쌩하니 주방으로 갔다.

혼자서 하시는지 주방에는 사람이 없었다.

“혼자서 하시나 보네.”

“요즘은 다들 화려한 곳을 찾으니까.”

“이런 곳도 나름 운치가 있는데 말야.”

이서우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옛것을 좋아했다. 이곳에 들어오면서 기분이 좋아진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나저나 박 대표님이 부산 사람이라는 건 또 몰랐네.”

“그러게. 말투에서는 잘 안 느껴지던데.”

“아주머니 말씀 들어 보니 25년 넘게 서울에서 사셨나 본데, 그래서 그런가.”

“그래도 보통은 약간 사투리 억양이 남아 있는데, 연습 많이 하셨나 보네.”

“예전에는 지방사람들이 사투리 쓰는 거 서울 사람들이 조금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었잖아. 박 대표님 성격이면 독하게 그거 없애려고 노력하셨을지도.”

“그럴 수도 있겠네.”

지금은 거의 지역 색깔이라는 게 많이 옅어졌지만, 20년 전만 해도 심했다.

특히 서울로 일을 하러 온 지방 사람들이 서러움을 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거 보면 박 대표님은 진짜 대단하셔. 자수성가로 그만큼 이루셨으니까.”

“부가 대물림되는 시대에 홀로 그 정도 회사를 키우셨으니 정말 대단해.”

“K사를 선택하기를 잘한 것 같아.”

“응.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어.”

이서우도 갈수록 박원식 대표가 마음에 들었다.

일 처리를 할 때는 깔끔하고 확실하지만 평소에는 털털한 모습으로, 대하기가 그리 까다롭지 않았다.

성격도 좋아서 대화도 즐거웠고, 무엇보다 이서우의 입장에서 모든 걸 배려해 주었다.

모듬 회가 나왔고, 이설아와 이서우는 이야기 꽃을 피우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아주머니는 두 사람의 시간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인지 더 이상 대화에 끼어들지는 않았다.

무뚝뚝한 듯한 말투지만 정이 있었고, 배려심이 있었다.

바다가 훤히 보이는 카페에서 시원한 음료를 마신 두 사람은 다시 바닷가로 갔다.

“여름이었으면 뛰어들었을 텐데, 아쉬워.”

“내년 여름에 다시 오면 되지.”

“그땐 너무 복잡하지 않을까?”

“미리부터 호텔 예약해 놓고 편안하게 즐기다 가면 돼.”

“호호호. 약속한 거다!”

“그래.”

이설아가 새끼손가락을 내밀자 이서우도 마주 내밀어 손가락을 걸었다.

설마설마했는데 유치하게 도장도 찍고, 카피도 했다.

별로 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시간은 어느새 오후 5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호텔에 돌아온 두 사람은 1시간 정도 편안하게 쉬다가 호텔에서 저녁을 먹고 서울로 다시 돌아갔다.

하루 종일 붙어 있었는데도 지겹지 않은지 서울로 돌아가서도 찰거머리처럼 딱 달라붙어 있었다.

마침 김소연이 그들을 찾았는데, 눈꼴 시리다며 입술을 삐죽거렸다.

“누군 열심히 일했는데, 바닷가 놀러가고. 팔자 좋다. 팔자 좋아.”

“그러니까 언니도 연애하라니까 그러네.”

“몰라. 나 지금 바빠.”

“바쁜데 웬일이야?”

“전쟁이 40일 남았다면서?”

“어. 근데 그게 왜?”

전쟁에 대한 정보를 받자마자 김소연은 나름대로 조사를 했다.

뉴 월드에서는 아주 중요한 사건이 될 수 있어 미리 대비를 하려는 것이었다.

“현실시간으로 일주일 뒤라는 소리잖아. 이번 주부터 16시간으로 늘어난 거 알지?”

“알지.”

“한마디로 다음 주 전쟁에 박이 터질 거라는 뜻이야.”

“우린 딱히 상관없지 않아?”

“상관이 없지는 않지. 이번 기회에 황제가 꽤 굵직한 퀘스트를 줄지도 모르고.”

“어차피 다 받는 거잖아.”

“아냐. 다 똑같이 받으면 그게 무슨 재미가 있다고.”

“그럼?”

“명성치 있지?”

“있지.”

“명성수치에 따라 퀘스트도 달라질 거야.”

“그게 정말이야?”

“그럼. 명성이 괜히 있겠어.”

“어. 난 괜히 있는 줄 알았거든.”

그동안 명성을 쌓기만 했지 그걸로 다른 걸 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자연스럽게 자작이나 백작으로부터 퀘스트를 받으니 명성에 대해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한데, 김소연에게 듣고 보니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이서우는 3만이 넘는 명성을 떠올리며 진한 미소를 지었다.

“너 명성 좀 쌓았나 보다?”

“뭐, 그냥 적당히.”

“표정을 보니 적당히가 아닌데?”

“여튼, 명성치에 따라 퀘스트가 달라진다는 건 확실하지.”

“그렇다니까. 그동안의 데이터를 보면 확실해.”

다시 한 번 확인한 이서우는 그녀의 확답을 듣고서야 더 이상 질문하지 않았다.

“오빠, 내일은 가게 찾아가는 거 알지?”

“알지. 내일은 거기서 설아랑 같이 접속할 생각이었는데?”

“아, 그래?”

“어. 바쁘면 어쩔 수 없고.”

“아냐. 내일은 시간 돼.”

“누나는?”

“나도 오랜만에 접속해 볼까?”

“그래. 일요일인데 좀 쉬면서 해. 아, 잘됐네. 내일 내 친구 부를게.”

“친구?”

“소개시켜 달라면서? 왜? 싫어?”

“아니, 뭐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그럼 연락해 둘게.”

“그래. 그럼 내일 봐.”

“9시에 갈 거니까 맞춰서 와.”

“응.”

친구를 소개시켜 준다고 하니 김소연의 입가에 살짝 미소가 맺히는 것을 두 사람은 똑똑히 보았다.

그녀가 나가고 이설아가 말했다.

“언니도 좋은가 보네.”

“그동안 많이 외로웠겠지. 괜찮은 친구니 누나도 마음에 들어 할 거야.”

“오빠 절친이면 다 괜찮겠지.”

“진국이지. 한 명은 연상은 죽어도 여자가 아니라고 하는 놈이라서 안 되고, 내일은 연상 좋아하는 친구에게 오라고 하려고.”

“딱 좋네.”

“아마 서로 성향도 비슷해서 잘 맞을 거야. 여튼 오늘은 피곤할 테니 들어가서 푹 자.”

“응. 오빠도 고생했어. 잘 자.”

그렇게 두 사람은 데이트를 즐기고 각자 편안한 밤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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