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3
레벨이 갑이다
153화
이서우와 이설아, 김소연과 류종명이 보낸 시간은 성공적이었다.
류종명도 김소연을 마음에 들어 했고, 김소연도 마찬가지였다.
성향도 잘 맞아 대화가 막힘없이 이어지니 함께하는 내내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서로 전화번호까지 교환했기에 두 사람의 발전 가능성은 높았다.
뒤늦게 박민수가 알고 이서우에게 따졌지만 어쩌랴. 연상이 싫다고 한 것은 본인인 것을.
하지만 연상도 연상 나름이라며 김소연의 사진을 보고 류종명을 엄청 부러워했다.
결국 박민수는 이서우에게 협박까지 했다.
무조건 젊은 여자로 소개시켜 달라고.
그리고 류종명과 박민수가 충격을 받은 일이 있었다. 바로 이서우와 이설아가 사귄다는 것이었다.
같이 방송을 한다고 했을 때부터 뭔가 있을 것 같더니 진짜로 사귀게 되다니.
류종명이야 소개를 받아 연인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았지만, 박민수는 여전히 솔로여서 며칠 동안 배가 아파서 앓는 소리를 했다.
그렇게 더블데이트가 한차례 더 진행되고 드디어 그날이 왔다.
전쟁이 터진 것이다. 이서우의 예상보다는 닷새가 늦었지만 30일 내외의 오차 범위 안에 들어서 별문제가 되지 않았다.
김소연의 말처럼 명성치에 따라 퀘스트가 전혀 달랐다.
이서우는 전쟁이 끝나면 무려 10레벨이 오른다.
그 안에도 많은 전투가 있기에 경험치와 아이템을 많이 얻을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전쟁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양쪽 다 힘이 팽팽했고, 준비도 많이 한 터라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았다.
유저들의 입장에서는 즐거웠다. 특히 엘사둔은 하이 레벨 지역으로 가지 못하는 상황이었는데, 전쟁으로 많은 사람들이 빠져나갔다.
물론 강제 퀘스트 때문에 제약이 있었지만, 그걸 무시하고 아예 하이 레벨 지역에서 살 각오로 옮기는 사람들도 꽤 많았다.
엘사둔의 입장에서는 그들의 이탈이 충격이었다. 보상도 빵빵하게 신경 썼기에 그 충격은 더 컸다.
결국 이탈을 막기 위해 그들은 더 많은 보상을 제시했고, 그 덕분에 유저들만 신이 났다.
그 사이 이서우와 이설아, 김소연과 류종명까지 전쟁에 참여했다.
배가 아팠는지 박민수도 끼는 바람에 풀파티가 되어 버렸다.
두 번의 더블데이트, 두 번의 개인적인 만남을 가지고 김소연은 류종명과 사귀기로 했다.
두 커플 사이에서 박민수가 홀로 끼어 전쟁을 했는데, 닭살 돋는 상황에서도 박민수는 잘 버텨 냈다.
그렇게 전쟁은 계속되었고, 어느덧 11월 말이 다가왔다.
“내일이네.”
“응. 벌써 시간이 그렇게 흘렀어.”
“방송 준비는 잘돼 가?”
“이번 방송은 딱히 준비할 것도 없어. 단지 걱정되는 건 전신이 돌발 행동을 안했으면 한다는 정도?”
“내가 볼 땐 무조건 돌발 행동할 걸?”
“생방송인데, 설마 심한 행동이야 하겠어?”
“그건 일단 두고 보면 알겠지. 접속하고 어디에서 보기로 했어?”
“위쪽은 전쟁 중이니 아래쪽에서 보기로 했어. 내가 조세프 백작령으로 오라고 했으니 거기가면 귓말을 줄 거야. 오빠는 준비 어때?”
“레벨도 꽤 올렸으니 걱정은 없어.”
이서우는 전쟁 기간 중 사냥으로 280레벨에 도달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전쟁이 끝나는 순간 퀘스트로 10레벨이 올라 곧 300을 바라보게 된다.
레벨이 오를수록 강해지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한 가지 비밀을 알게 되었다.
‘모든 순수 스텟이 500에 도달하면 모든 능력이 상승한다니. 진즉 알았으면 지력에도 신경을 쓰는 건데…….’
레벨업으로 얻은 보너스 스텟을 모두 투자했는데도 19개가 부족했다.
4레벨만 더 올리면 전직을 하지 않고도 또 한 번의 비약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이서우는 자신의 상태를 잘 알기에 자신감을 가지는 반면, 이설아는 살짝 걱정이 앞섰다.
물론 이서우가 얼마나 강한지 누구보다 잘 알기에 절대로지지 않을 것이라고 굳게 믿지만 전신이 워낙 준비가 철저해서 그런 것이었다.
“오빠, 전신 320레벨 찍은 거 알지?”
“알고 있어. 16시간 이상 접속이 되는 날부터 풀로 사냥만 했으니 그 정도 찍는 건 당연한 거지. 경험치까지 계속 샀으니 그 렙 못 찍으면 오히려 이상한 거고.”
“그럼 전부 전설 풀셋인 것도 알겠네?”
“초월이라는 것까지 알아. 어찌나 방송으로 자랑을 해 대는지.”
“아마 오빠를 의식해서 그렇게 과장해서 떠들고 있을 거야. 최근에는 320레벨 전설 장비도 몇 개 구했나 보더라고.”
“어디서 그런 걸 구하는지 몰라.”
“경매장을 따로 뒤지는 사람이 있나 봐. 최근 몇백억 짜리 아이템들도 순식간에 사라지더라고. 그런데, 어느 날 보니 전신이 입고 있지 뭐야.”
“그를 도와주는 사람이 또 있다?”
“소연 언니 말로는 그의 여동생인 박효주를 비롯해 몇몇 사람이 도와준다고 해.”
“그렇군. 뭐, 어쨌든 난 절대 지지 않으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나야 당연히 오빠를 믿지. 내가 안 믿으면 누가 우리 오빠를 믿겠어.”
이설아는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처음에는 많이 어색해했지만 하루 종일 붙어 있다 보니 애정 표현을 자연스럽게 했다.
비록 현실 시간으로는 연애를 한지 약 40일이 되었지만 뉴 월드에서 체감하는 시간은 훨씬 더디게 가기 때문에 6개월 이상은 사귄 것 같았다.
“걔들은 잘 적응하고 있나 몰라.”
“오빠 친구들?”
“뜬금없이 회사를 그만둔다기에 놀랐거든.”
“정보 팀에서 잘 적응하고 있나 보던데? 언니 말로는 두 사람이 제일 의욕적이라고 하더라.”
“종명이야 예쁜 애인을 둬서 그렇다지만 민수 그놈은 왜 그리 열심히 한대?”
“열심히 하면 오빠가 여자 소개시켜 준다고 했다던데?”
“내가? 내가 그랬나?”
“그랬다고 하더라고.”
“술 한 잔 마시다가 나온 소리인가 보네. 아오, 그놈이 내 약점을 알고 술을 먹여서는.”
“그래도 말을 꺼낸 거니 들어는 줘야 되지 않겠어? 난 민수 오빠 괜찮던데. 겉으로는 가벼워 보이지만 속마음은 전혀 그렇지 않더라고. 진국이랄까.”
“그래? 그럼 우리 설아가 좋은 여자 찾아 주는 걸로. 오케이?”
“뭐, 소개 정도는 괜찮을 것 같아. 내가 한번 알아볼게.”
“역시 우리 설아!”
“피. 이럴 때만?”
“노노노. 평소에도 우리 설아가 짱이지.”
이서우도 닭살스러운 표현을 서슴없이 했다.
말 한마디로 기분이 좋을 수 있는데, 굳이 그걸 마다하고 싶지는 않았다.
“근데, 그 여자분들 있잖아.”
“민수랑 종명이 친구?”
“응.”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거야?”
“호흡을 오래 맞춰 왔다고 뽑기는 했던데, 갈수록 욕심이 많아지는 것 같다고 하더라고.”
“그래?”
“응.”
“구체적으로 말하면?”
“페이를 조금씩 높게 부른다고 하더라고.”
“흠, 지금도 충분히 넉넉히 대우 해 주는 걸로 아는데.”
“그러니까. 그래서 지금 소연 언니가 벼르고 있더라고. 아마 선을 넘으면 언니가 칼을 빼들 걸?”
“자기 복을 자기 발로 차는 거지 뭐.”
이서우는 직접 나서서 도와줄 생각이 없었다. 다들 성인이니 자기의 일은 스스로 해결하는 게 맞았다.
“오늘은 컨디션 조절 좀 할 거지?”
“그러려고. 조금 휴식을 취해야지. 너무 사냥만 했더니 눈을 감으면 몬스터들이 덤벼들어서 골치가 아파.”
“직업병이네.”
“산재 처리 해 달라고 해야 되나?”
“호호호. 바가지 제대로 씌워 버려.”
“그럴까?”
“응.”
두 사람은 농담을 하면서 한가한 한때를 보내고 있었다.
그때, 김소연이 들어왔다.
“수다 떨 정신이 있는 거 보니 준비는 잘되고 있나 봐?”
“준비는 이미 끝냈지. 지금 당장 싸워도 될 정돈데?”
“내일 만남의 시간을 갖고 바로 전투에 돌입하는데 괜찮겠어?”
“오히려 잘됐지. 여유 시간도 더 많이 생기고.”
전쟁이 조금 주춤거렸지만 또 언제 피 터지는 싸움이 될지 몰라 이서우와 전신은 만남의 시간을 갖는 당일 대결을 시작하기로 했다. 시간을 아끼자는 의미다.
실제 전투 시간은 얼마 되지 않겠지만 하루를 잡아두는 것과 빼는 것은 차이가 컸다.
“내일 10시에 접속해야 하니 늦지 말고.”
“10시면 넉넉하지.”
“내일은 대표님도 대결을 본다고 하시더라.”
“바쁘신 거 아냐?”
“바쁘더라도 간판스타의 대결인데, 당연히 봐야지. 모두가 기대를 하고 있으니 실망시키지는 않겠지?”
“날 믿어 봐. 멋진 모습 보여 줄 테니.”
“한 판이라도 지면 10년 치 밥 쏘는 거다.”
“그러고 보니 언니 나랑 3년 치 밥 쏘는 거 아직 유효해.”
“그런 건 좀 잊어라.”
김소연은 이설아와 이서우의 사이가 워낙 좋아서 괜히 내기를 했나 싶었다.
“어쨌든 오늘은 푹 쉬어 나도 좀 쉬어야겠다.”
“오늘은 데이트 안 해?”
“종명이도 피곤하지. 오늘은 서로 쉬기로 했어.”
“응. 언니도 푹 쉬어.”
“너도.”
김소연이 확인차 왔다가 쉬라는 말을 남기고는 사라졌다.
“아무래도 오늘은 오빠를 좀 편하게 둬야겠네. 다른 생각 말고 푹 쉬어.”
“알았어. 너도 내일 방송하려면 피곤할 테니 쉬어.”
“응.”
이설아가 나가자 이서우는 전신을 떠올렸다.
‘내일이 기대되네. 과연 어떤 모습을 보여 주려고 지금까지 그렇게 날 도발하셨을까?’
호기심 어린 이서우의 눈빛은 이내 날카롭게 빛났다. 마치 먹이를 노려보는 맹수처럼.
* * *
“오빠, 준비는 끝났어?”
“끝났지. 이제는 하루 푹 쉬고 내일을 준비해야지?”
“웬일이셔. 그렇게 악착같이 경험치에 매달리더니.”
“장비가 10레벨마다 착용 가능하잖아. 하루 만에 10레벨을 어떻게 올리냐?”
“왜? 첫 번째 싸움 뒤에 보름이라는 여유가 있잖아.”
“보름이면 충분히 10레벨은 찍으니 하루 푹 쉬는 거야. 또 열심히 달려야 하는데, 지금 안 쉬면 쉴 틈도 없어.”
“진짜 징하다. 그렇게까지 해야 돼?”
박효주는 친오빠지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이번에 아이템을 구입할 때 들어간 비용만 해도 그렇다. 아니, 어떤 뇌구조를 가지고 있으면 장비 마련에 3천억 이상을 쓴단 말인가.
물론 전신이 실제 쓴 비용은 500억 정도였다. 나머지는 그가 얻은 아이템을 팔거나 해서 충당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500억은 엄청난 금액이었다.
“내가 말했지. 넌 이 세계를 모른다고.”
“그런 세계 별로 알고 싶지도 않아. 한데, 그러고 지면 어째?”
“지긴 누가 진다고! 300레벨 전설 초월 장비에, 320레벨 전설 초월 장비도 있어. 거기다 다 상급이나 최상급 옵션이고.”
“난 전장의 지배자가 10만 대 1의 싸움을 하는 게 아직도 눈에 선한데.”
“그 거 조작이야, 조작.”
“조작 아니라는 게 이미 밝혀졌잖아. 오빠 방송에서 아직도 그 영상 조작이라고 말하지?”
“조작이 맞다니까. 어떻게 48시간을 사냥하냐. 몇 시간씩 하던 사냥을 나눠서 정교하게 붙인 거지.”
“48시간 동안 풀 영상을 공개했는데도 그 소리가 나와?”
“그것도 분명 뭔가 수작을 부린 거야. 그렇지 않고는 그런 영상이 나올 수가 없어.”
“오빠는 오빠가 이해 안 되는 건 꼭 조작이라고 하더라. 아니면 음모라고 하고. 다양한 시각으로 사물을 봐야 보는 눈도 넓어지는 거라고.”
“쪼그만 게 못하는 말이 없어. 이 오빠가 살아도 너보다 몇 년을 더 살았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물이나 한 잔 가져와.”
“치. 하여튼 말로 안 되면 꼭 딴소리야.”
“요게!”
박효주는 전신이 꿀밤을 때리려 하자 얼른 거실로 가서 물을 한 잔 받아 왔다.
‘네놈의 수는 10만 대 1의 싸움으로 다 드러났어. 공략법을 잘 보여 줬으니 무조건 이길 수밖에. 내일이 기대되는걸.’
전신의 입꼬리가 기분 좋게 말려 올라갔다. 승리의 미소였다.
그의 진한 미소는 한동안 사라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