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4
레벨이 갑이다
154화
“오빠, 좋은 아침.”
“설아도 좋은 아침.”
“기분은 좀 어때?”
“상쾌하지.”
“근데 오늘도 운동 안 쉰다면서?”
“꾸준히 해야 효과가 있지.”
“그래도 일주일에 여섯 번은 너무 무리 아냐?”
“아냐, 괜찮아.”
처음에는 일주일에 두 번이나 세 번만 하려 했었다.
하지만 의외로 몸이 잘 받아 줘서 횟수를 늘렸다.
이서우는 운동을 하면서 오히려 더 상쾌한 기분을 느꼈다.
처음에는 아주 기초적인 몸만들기 훈련을 했는데, 한 달이 지나면서부터는 그와 병행해 기술들도 습득했다.
무에타이는 팔꿈치, 킥, 무릎, 주먹 등을 사용한다.
동작 하나하나가 매우 치명적이어서 일반인에게 함부로 사용할 수 없어 기본기만 배워도 충분하지만, 이서우는 마치 프로 선수처럼 임했다.
한 달이 조금 지난 시점이어서 특별히 변한 것이 없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이서우의 몸은 확연히 느껴질 정도로 많이 바뀌었다.
매일 서로 껴안으니 그녀가 가장 변화에 민감했다.
살이 붙어 평균 체중에 도달해 이제 환자처럼 보이지 않았다.
이서우를 가르치는 사범도 그의 변화에 상당히 놀랐다.
아침, 저녁으로 열심히 운동을 했다지만 훈련양은 선수를 준비하는 사람의 절반 수준인데, 그들이 3개월을 해야 할 일정을 한 달 만에 소화해 버렸다.
게임 접속 시간이 16시간으로 늘어 잠잘 시간도 부족했을 텐데 어떻게 이런 변화가 가능한지 의아할 정도였다.
이서우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5시간 이상 잠을 자지 않는데도 아침에 일어나면 상쾌한 기분을 맛볼 수 있었다.
이서우의 생각과 달리 이설아는 그가 너무 몸을 혹사시키는 게 아닌지 걱정이 되었지만, 오히려 갈수록 몸이 건강해지는 것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니 말릴 수가 없었다.
“나도 이참에 오빠랑 같이 운동이나 할까?”
“원하는 거 있으면 배워.”
“난 그런 격한 운동은 별로고, 요가를 해 볼까 하고.”
“괜찮겠는데? 당장 내일부터 알아봐.”
“그럴까?”
이서우가 운동을 하는 시간에 뉴 월드에 대해 정보도 찾고, 다른 일도 하지만, 정보 팀이 생기고부터는 그녀가 할 일이 점점 줄어들었다.
2시간 동안 운동하는 이서우를 기다리는 게 지루해서 그녀도 뭔가 배워 볼까 하는 마음은 가지고 있었다.
과격하게 움직이는 운동은 그녀의 적성에는 맞지 않아 여성들이 주로 선택하는 요가를 떠올렸다.
“일단 난 운동부터 하고 올게.”
“응. 난 방송 준비하고 있을게.”
두 사람은 각자의 주어진 일을 하기 위해 움직였다.
오늘 방송은 11시 반부터 진행한다.
많은 사람들이 전신과 전장의 지배자의 전투를 보고 싶어 해서 사전 만남은 생략했기에 뉴 월드로 접속하면 된다.
이번 대회를 위해 특설 무대를 만들었는데, 벌써부터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온라인을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각종 방송사들도 특설 무대 주변에 진을 쳐서 틈이 없었다.
무대에 오를 수 있는 진행자는 이설아뿐이어서 멀리서만 바라봐야 했다.
게임 진행자들은 이설아가 전장의 지배자와 함께 방송을 하게 된 것이 오늘의 무대에 설 수 있는 이유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진행자들은 전장의 지배자에 대해 조금 더 깊이 파고들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전장의 지배자만 붙잡았으면 오늘 무대에 오를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이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계속 드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의 착각이었다.
그녀의 능력이 없었다면 아무리 전장의 지배자와 함께 방송을 한 경험이 있다 해도 진행자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모든 게 사업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특설무대 주변은 시간이 지날수록 인산인해를 이루면서 발 디딜 틈도 없었다.
운동과 샤워를 끝낸 이서우는 방송 준비실로 갔다.
특별하게 꾸며진 장소는 아니고 방송에 필요한 다양한 정보들을 보기 편하게 만들어진 곳이었다.
“준비는 잘돼 가?”
“응.”
“나중에 올까?”
“아냐. 거의 다 끝났어.”
“순서가 어떻게 돼?”
“일단 오빠랑 전신을 소개하고, 영상을 10분 정도씩 틀 생각이야.
“10분? 그렇게 길지는 않네.”
“응. 그 이상 넘어가면 금세 지루해지니까. 물론 오빠의 활약이야 몇 시간을 봐도 질리지 않지만, 직접 대결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짧은 게 좋아.”
“하긴, 반응이 장난이 아니긴 하더라.”
“거의 광적인 수준이야.”
한동안 사람들의 관심이 전쟁으로 쏠려 있었는데, 결론 없이 장기전이 되니 자연스럽게 이번 대결로 많은 관심이 몰렸다.
특히 관심을 가진 것은 바로 누가 이길 것이냐, 하는 문제였다.
대결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당연히 전장의 지배자가 승리할 것으로 내다봤다.
10만 대 1의 전투가 워낙 강렬했기 때문이다.
8 대 2로 전장의 지배자가 압도적인 승리를 거둘 거라는 예측 때문에 싱겁게 끝날지도 모른다며 아쉬워했다.
너무 뻔히 보이는 승패여서 각종 사이트들은 사람들을 끌어 모으기 위해 조금 더 세부적으로 베팅할 수 있게 했다.
승자의 순서와 각 판당 승리 시간에 대한 부분도 베팅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엄청난 인원과 돈이 몰렸다.
과거 수천억의 파이트머니를 받았던 대결이 있었다.
페이퍼뷰(미국 케이블TV 시청 방식의 하나로, 가입자들이 시청한 프로그램에 대해서만 요금을 지불하는 것을 말한다.)수익, 관중 입장 수익 등을 포함해 패자도 1천억이 넘는 돈을 가져간 게임이었다.
한데, 이번 대결은 그것과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 관심을 받았다.
대결 참여자들이 더 많은 수익을 받게 된 것은 입장료가 책정되면서다.
처음에는 입장료를 받을 생각이 없었지만 반응이 워낙 뜨거워 자리에 따라 최고 10골드를 받기로 했다.
그 수익 중 상당 부분을 승자가 갖고, 나머지에서 일부를 패자가 갖는다.
주최 측인 글로벌사는 10퍼센트를 가져갔는데, 회사의 이미지를 위해 받은 골드를 기부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파이트머니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자존심이었다.
전신이든 전장의 지배자든 이미 돈은 가질 만큼 가졌다.
돈 욕심이 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이번 대결에서만큼은 돈보다 승리가 더 중요했다.
그렇게 대결 날짜가 다가올 때였다.
전신이 하나의 영상을 올리자 사람들은 환호했다.
그가 올린 영상은 바로 280레벨의 레이드 몬스터를 홀로 잡는 영상이었다.
레벨 차가 20이상 되면 아이템은 거의 드롭되지 않지만 홀로 잡았다는 것이 중요했다.
그 영상이 공개되자마자 다시 무게추가 전신에게로 쏠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최근까지는 6대4로 이서우가 우승할거라는 예상이 많았다.
한데, 바로 대결 전날 그게 뒤집히고 말았다.
“베팅은 어떻게 했어?”
“난 한계까지 걸었어. 오빠는?”
“당연히 팍팍 밀어 넣었지.”
“어제 갑자기 승률이 역전돼서 전신 쪽으로 많이 몰렸잖아.”
“전신이 320레벨 전설 장비 옵션을 보여 주면서 역전되기는 했지.”
“그러니까. 마지막까지 오빠랑 전신 사이에서 저울질을 하던 사람이 그것 때문에 전신 쪽으로 많이 갔잖아. 물론 오빠가 지는 일은 없겠지만.”
“당연하지. 이번 기회에 제대로 된 실력 차를 보여 줘야지.”
이서우는 전신이 다시는 기어오르지 못하도록 확실하게 눌러 줄 계획이었다.
“오빠가 당연히 이기겠지만 요즘 전신의 행동으로 보면 괜히 해코지나 하지 않을까 걱정돼.”
“소문 한번 잘못 나면 완전히 매장당하는 세상인데, 설마 지탄 받을 짓까지 하겠어?”
“그건 그렇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대결에서 패했다고 뒤에서 이서우를 비방하는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설아는 방송 일을 하면서 더러운 꼴을 워낙 많이 봐서 완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걱정 마. 그런 짓을 하면 내가 가만 있지 않을 테니까.”
“응!”
확신에 찬 이서우의 말에 이설아는 염려를 털어 버렸다.
“그나저나 골드는 계속 사들이고 있지?”
“응. 열심히 사고 있지.”
“아마 곧 오르기 시작할 거야. 중국과 인도가 뛰어들면 더 오를 거고.”
“글로벌 사도 참 머리를 잘 쓴 것 같아. 서로 다른 지역에서 시작을 하지만 골드는 서로 거래를 할 수 있게 한 걸 보면.”
“경쟁을 아주 제대로 붙이겠다는 거지. 근데 그걸 알면서도 파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야. 아마 뉴 월드를 직업으로 삼은 사람들이 대부분이겠지.”
이서우는 안도의 표정을 지었다.
만약 지금처럼 성공하지 못했다면 자신도 분명 그들 무리에 끼어 있었을 것이다.
잘 나가는 회사의 주식이 오를 거라는 것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다.
단지 너무 비싸고, 여윳돈이 없기 때문에 사지 못할 뿐이다.
지금 골드를 파는 사람들의 상황이 딱 그랬다.
“파는 사람도 많은 데 사는 사람은 더 많은 것 같더라. 아마 전문 꾼들이 대거 몰려서 그렇겠지?”
“그렇지. 몇 달만 버티면 되니 계속 사들이는 거겠지. 아마 이번 대결도 풀베팅했을걸?”
“전신이 승률이 더 높으니 그쪽으로 많이 몰렸겠지?”
“아마 그럴 거야. 게임수가 워낙 많아서 풀베팅하려면 수십억은 기본으로 들어갈 테니까. 사돈에 팔촌까지 싹 끌어들이면 아마 수백억을 투입해야 하니 안전하게 승률이 높은 쪽을 택하겠지.”
“그러게. 근데, 무슨 생각으로 베팅 액수를 그렇게 크게 한 걸까? 게임 숫자도 많은데.”
“정부는 세금이 왕창 걷히니 나쁠 게 없지. 정기적으로 벌어지는 대회가 아니라 1회성이니 베팅 한계액도 높인 걸 거고.”
이번 대회는 1회성이어서 베팅 한계액이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
현금으로는 불가능하고, 골드로만 가능하도록 했는데 배당액에 상관없이 세금은 22퍼센트였다.
정부로서는 가만히 앉아서 코를 푸는 겪이니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그나마 골드에서 현금으로 환전할 때는 수수료가 높지 않아서 다행이야. 안 그랬으면 오빤 세금으로 엄청 떼였을 걸?”
“앞으로를 생각해 보면 환전소에 수수료만 지불하는 게 낫기는 하지.”
개인에게 일일이 세금을 걷는 것이 어려워, 중개 업체인 글로벌사에 직접 세금을 매기는 방법을 썼다.
유저들도 적은 수수료만 지불하면 모두 자신의 소득으로 인정받으니 그 편이 오히려 좋았다.
“머리 아픈 세금 문제는 전문가한테 맡겨 두고, 우린 잠시 차나 한 잔 할까?”
“응, 이제 곧 끝나니 잠시만 기다려 줘.”
방송 준비를 마무리하고 두 사람은 휴게실로 갔다.
이서우는 페퍼민트를, 이설아는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가지고 자리에 앉았다.
커피향이 은은하게 퍼지자 기분 좋은 미소가 절로 나왔다.
이서우는 카페인에 민감해서 커피를 즐기지 않지만 향은 무척이나 좋아했다.
“역시 커피 향은 끝내준다니까.”
“나도! 그리고 빵 굽는 냄새도 좋아.”
“아, 그래서 가끔 여기서 빵 굽는 냄새가 났구나.”
“응. 나 별명이 빵순이었거든. 요즘은 몸매 관리한다고 자주 먹지는 않지만.”
사람들에게 보이는 직업을 갖고 있어 체중 관리는 필수였다.
“다이어트에 탁월한 기능성 식품들도 많잖아. 편하게 먹어도 될 텐데.”
“부작용에 대한 말이 너무 많아서 그냥 음식으로 조절하려고. 어차피 원래 소식을 하니 상관은 없어.”
항상 음식점에 가면 이설아는 많은 양을 먹지 않았다.
그렇다고 걱정될 정도로 심하게 적게 먹는 스타일도 아니었다.
“그나저나 오늘 대결 이후 전신의 표정이 너무 궁금해.”
“이거 진행자가 너무 편파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거 아냐?”
“뭐, 지금은 진행자가 아니라 오빠 애인으로 있는 거니까 상관없어.”
그녀는 수줍은 미소를 짓고는 커피를 마셨다.
그 모습이 귀여운지 이서우도 덩달아 웃음을 지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두 사람은 기분 좋은 대화를 나누었다.
“시간이 다 돼 가네. 접속하자.”
“응.”
11시 20분이 다 되어 가니, 이제는 접속을 해야 한다.
이서우는 이설아와 나란히 손을 잡고 뉴 월드에 접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