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5
레벨이 갑이다
155화
“안녕하세요, 여러분, 뉴월드에서 이렇게 직접 여러분을 만날 수 있어서 설아는 정말 기쁘답니다. 다들 많이 기다리셨죠?”
“네에에에!”
“와아아아아. 설아 짱! 설아 짱!”
휘유휘!
“설아 최고다!”
특설무대는 총 5층으로 구성이 되어 있었는데, 각 층당 최소 10만 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었다.
임시로 지은 것이지만, 게임 내에서 만드는 것이기에 하루 만에도 뚝딱 완성되었다.
원형의 무대는 구조가 특이했다.
전체가 투명한 특수 플라스틱으로 제작이 되었는데, 수용인원보다 몇 배나 많은 인원이 앉아도 부러지지 않았다.
모든 것이 투명하니 밖에서도 안을 훤히 볼 수 있었다.
소리 전달도 완벽해서 어디에 있든 생생한 대결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관람석이 투명한 덕분에 실제로는 50만 명을 수용할 수 있지만 외부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구경을 할 수 있었다.
게임 시간으로 거의 이틀 전부터 좋은 자리에 앉겠다고 몰려들었으니 얼마나 인기가 높은지 알 수 있었다.
“자, 오늘은 여러분들이 아시다시피 뉴 월드를 주름잡고 계신 전장의 지배자 님과 전신 님의 대결이 있는 날이에요. 어서 빨리 보고 싶다고요? 흑, 설아와 빨리 이별하고 싶다니 다들 너무해요!”
이설아는 우는 시늉을 하다가 삐친 티를 내며 고개를 살짝 돌렸다.
그러자 사람들이 다시 설아의 이름을 불렀다.
마치 관중들이 그럴 걸 알았다는 듯 설아는 밝게 웃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여러분 제가 많이 많이 사랑하시는 거 아시죠?”
이설아가 윙크와 함께 손가락 하트를 만들자 남자들이 열광했다.
팬서비스까지 한 이설아는 본격적인 행사 진행에 들어갔다.
“여기 참석하신 분들은 전장의 지배자 님과 전신 님의 활약을 많이들 아실 거예요. 하지만 간단하게 제가 꾸며 본 영상이 있으니 잠시 감상하시고, 오늘의 주인공을 만나 보도록 해요!”
다시 사람들의 함성이 들렸다.
수십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함성을 지르자 온 도시가 떠날 것 같았다.
NPC가 생활하는 공간으로는 소리가 전달되지 않도록 했기에 큰 불편함이 없었지만, NPC들도 모험가들이 특별한 행사를 한다는 것을 알기에 근처로는 접근하지 않았다.
그런 조치가 아니었다면 NPC들은 전쟁이라도 난 줄 착각했을 것이다.
이설아의 멘트가 끝나고 전신의 영상이 흘러나왔다.
화려하게 싸움터를 누비고, 레이드 몬스터를 홀로 잡는 영상이 주를 이루었다.
현재 진행되는 엘사둔과 카이젠 제국의 전쟁에서의 활약은 별로 없었다.
각 제국에서 모험가들을 내세우기보다 자신들의 힘으로 승리를 쟁취하려는 움직임이 더 강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모험가를 대거 참여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지만, 승리를 스스로의 힘으로 가져와야 한다는 지도자들의 말에 모험가들은 후방에서 주로 행동하게 되었다.
전쟁이 벌어진지 뉴월드 시간으로 6개월 정도가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국경선 부근에서 대치 중이었다.
밀고 밀리는 전쟁을 통해 후방으로는 기습 부대만 가끔 쳐들어오니 모험가들이 활약을 할 수가 없었다.
전쟁에 대해 큰 관심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저들의 행동이 적극적이지 못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물론 그 덕분에 이번 대결에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렸지만 말이다.
전신의 영상이 진행되면서 사람들은 환호했다.
최근 전신의 승리를 점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는 것을 함성소리로 알 수 있었다.
10분 정도의 영상이 끝나자 우레와 같은 소리가 온 무대를 뒤덮었다.
잠잠해지자 곧 바로 전장의 지배자의 영상이 흘러나왔다.
기적과도 같은 48시간의 전투를 시작으로 하이레벨 첫 던전에서 보였던 활약까지 담겼다.
그리고 최초로 공개되는 영상도 있었는데, 바로 엘사둔과 카이젠 제국의 치열한 전투 장면이었다.
“와, 제국에서 최전방에는 모험가들을 배제시켰다는데, 전장의 지배자가 활약하잖아!”
“와, 개쩐다. 저게 사람이야? 이거 전신에게 배팅 다 했는데, 좆된 거 아냐!”
두 제국 모두 유저들의 도움을 받지 않고 승리를 쟁취하기로 했지만 이서우는 대귀족과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어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카이젠 제국의 귀족들이 유저의 도움이 아니라 자신의 힘으로 이겨 보자며 의견을 모으면서 이서우는 직접적인 참여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영상으로 담아 둔 내용은 그리 길지 않았다.
영상은 짧았지만 이서우의 활약은 확실히 압도적이었다.
그 결과는 여기저기서 탄식의 소리로 나타났다.
이 영상을 미리 봤더라면 전장의 지배자에게 베팅을 했을 텐데 하며 아쉬워했다.
하지만 배팅이 모두 완료 되었기에 이제는 돌이킬 수가 없었다.
반면, 전신의 지지자들은 오히려 야유를 했다. 영상을 교묘하게 조작해서 더 화려하게 보이려고 한다며 핏대를 세웠다.
심한 욕설이 난무하자, 욕설을 퍼붓는 사람을 강제 추방시켜 버렸다.
이미 참여자들에게 원활한 진행을 위해 매너를 지켜 줄 것을 당부했고, 지키지 않으면 어떤 조치가 취해지는지 모두 공지를 했기에 사람들은 그것을 상기하고 입을 닫았다.
강제성이 너무 강하다고 반발할지도 모르지만 수십만 명이 참여하는 행사여서 강제성을 띨 수밖에 없었다.
모든 영상이 끝나고 이설아가 나타났다.
“여러분, 잘 보셨나요? 보시면서 다들 많이 놀라셨을 것 같네요. 하지만 전장의 지배자 님의 경우에는 대귀족과 워낙 친밀도가 높아서 최전선에 딱 한 번 참여하신 거니 그에 대한 의혹은 갖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제게 사냥 영상을 안 보내 주실 수도 있으니까요. 아셨죠?”
삐딱하게 들으면 협박성 멘트일 수 있지만 이설아의 애교가 섞이자 사람들은 그다지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
오히려 전장의 지배자의 멋진 모습을 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열렬히 “네!”라고 크게 대답했다.
“자, 그럼 이제 주인공을 모셔야겠네요. 뉴 월드 오픈부터 지금까지 부동의 공식 랭킹 1위, 전신 님을 모실게요!”
“와아아아아아아. 전신! 전신! 전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전신을 연호했다. 그에게 배팅한 유저들은 더더욱 열렬하게 환호했는데, 거의 광적인 분위기였다.
반대로 야유를 보내는 사람도 있었다.
추방당할 것을 염려해 욕설은 퍼붓지 않았지만 전장의 지배자에게 배팅을 한 사람들은 스스로 위축되지 않기 위해 야유를 아끼지 않았다.
전신이 나오자 그 넓은 무대가 꽉 찬 느낌이었다.
일부러 그런 것인지 그는 화려한 방어구를 그대로 드러낸 채였다.
전설 아이템을 초월 강화까지 풀로 진행하면 은색으로 빛난다.
한 부위가 그런 것은 그다지 멋지지 않지만 방어구 전체가 은색으로 빛이 나니 신비한 느낌마저 들었다.
“안녕하십니까. 전신입니다!”
“와아아아아아! 전신! 전신! 전신!”
“전신 님, 사랑해요! 쪽!”
“전신 님, 결혼해 주세요!”
“전신 님, 절 데려가세요!”
전신이 인사말만 했을 뿐인데, 아주 난리가 났다.
방송에서만 보다가 비록 뉴 월드 내에서지만 실제로 그를 보니 느낌이 다른 것이다.
TV에서만 연예인을 보다가 콘서트장에 오면 완전히 다른 기분을 느낀다.
비록 가상현실이지만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감각을 느낄 수 있는 곳이어서 사람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이렇게 뜨겁게 전신 님을 환영하는데, 소감이 어떠신가요?”
“절 항상 응원해 주시고, 사랑해 주시는 여러분들이 있어 무척이나 행복합니다.”
“전신 님, 저도 전신 님 덕분에 너무 행복해요!”
“전신 님은 우리의 우상이에요!”
한마디 할 때마다 전신을 향한 온갖 애정표현들이 쏟아져 나왔다.
전신은 진한 미소를 지으며 양손을 번쩍 들어 흔들어 주었다.
“꺄아아아아, 전신 님!”
까무러칠 듯한 비명 소리가 온 무대를 가득 메웠다.
“전신 님의 인기가 얼마나 큰지 실감이 되네요. 오늘 대결에 임하는 소감이 어떤지도 궁금한데, 한 말씀 부탁드려요.”
“저를 사랑해 주시는 분들에게 실망시키지 않을 거라 약속드립니다.”
“역시 전신 님은 언제나 자신감 넘치시네요.”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 절 이 자리에 있게 한 것이니까요.
당당한 멘트에 사람들은 또다시 환호했고, 파도타기 응원까지도 마다하지 않았다.
“자, 그럼 이제 전장의 지배자 님도 소개를 해야겠죠?”
“네에에에!”
“와아아아아아! 전장의 지배자 님, 어서 나와 주세요! 절 탑에서 구출해 주세요!”
“전장의 지배자님, 사랑해요!”
“전장의 지배자! 전장의 지배자!”
전신과 비교해서 결코 뒤지지 않는 응원 소리가 쏟아졌다.
“뉴 월드의 다크호스! 전장의 지배자 님이십니다!”
“와아아아아아!”
다시 함성 소리가 들리고 이서우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퍼포먼스를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번에는 예외였다.
이서우가 나타나자 주변이 환하게 밝아지는 기분이었다.
무대 뒤에서 백호와 합체를 해서 방어구에서 강렬한 빛이 뿜어져 나왔기 때문이다.
마나를 살짝 빼자 은은한 금색의 빛이 이서우를 감쌌다.
이서우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그의 모습에 몽롱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안녕하십니다. 전장의 지배잡니다. 오늘 이렇게 저와 전신 님의 대결을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전장의 지배자 님이 나와 주셔서 저희가 오히려 더 감사해요!”
“꺄아아악! 우리 지배자 님 너무 멋져! 절 지배해 주세효!”
이서우에 대한 반응도 결코 전신에게 뒤지지 않았다.
“전장의 지배자 님도 상당한 인기를 가지고 계시네요. 짧은 시간이 이렇게 인기를 얻은 비결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제 입으로 말씀드리기 쑥스럽지만 압도적인 힘으로 호쾌한 사냥을 해서 그런 게 아닐까요?”
“맞아요! 전장을 지배하는 그 모습이 너무 멋져요!”
“참여하신 분들도 동의하시는 것 같네요.”
많은 수의 유저들이 이서우의 말에 동의하자 이설아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게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전신의 지지자들이 야유를 보냈다.
“우우우우우우우우! 전신! 전신! 전신!”
“우리 전신 님이 더 압도적인 힘을 가지고 있어! 우우우우우!”
“두 분을 보러 오신 분들의 반응이 워낙 뜨거워 오늘 경기가 어떻게 진행될지 정말 궁금하네요. 두 분 악수 한번 해 주세요.”
사람들의 야유와 환호가 뒤섞이자 이설아가 얼른 끼어들어 진화에 나섰다.
이설아의 요청에 이서우는 전신을 쳐다보았다.
두 사람의 눈빛이 허공에 부딪쳤다.
파팍!
눈빛이 마주치자 두 사람 사이에 불꽃이 튀었다.
그냥 강렬한 눈빛 교환을 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진짜 불꽃이 튀었다.
“어머! 두 분의 힘이 너무 강해서 저는 곁에 다가가기도 힘드네요. 이러다가 대결 진행되기도 전에 저부터 로그아웃 되지 않을까 모르겠어요.”
이설아는 여린 표정을 하고는 농담을 던졌다.
불꽃 튀는 분위기를 조금이라도 잡아 보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두 사람은 여전히 팽팽히 기운을 유지한 채 가까이 붙었다.
“좋은 승부합시다.”
“그러죠.”
꾸욱.
전신이 먼저 힘을 주며 손을 내밀자 이서우도 짧게 대답하고는 손을 마주 내밀었다.
손에 마나를 담았는지 두 사람의 손에서 은은한 푸른빛이 새어 나왔다.
시작 전부터 두 사람의 기싸움이 보통이 아니었다.
그럴수록 관전하는 사람들은 열렬한 환호를 보냈다.
시시한 싸움을 보고자 지금까지 기다린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최고의 전투를 원했다.
지금은 그 시작이 되는 순간이다.
사람들은 특설 무대가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다.
거의 발악에 가까운 수준이어서 귀청이 따가울 정도였다.
하지만 이서우도, 전신도 지금은 사람들의 고함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서로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상대의 힘을 가늠하고 있었다.
잠시 후, 이설아의 멘트가 이어졌다.
“두 분 바로 대결을 시작할 텐데 다른 이의 사항 없으시죠?”
“네.”
“네.”
따로 휴식 시간을 줘야 하나 했지만, 둘 다 동의를 하고 나섰기 때문에 그럴 필요가 없었다.
“참여자 두 분이 모두 동의하였기에 이 자리에서 1차 대결을 시작할게요. 두 선수는 바닥에 표시된 자리로 가 주세요.”
바닥에 친절히 전장의 지배자와 전신이라는 글씨가 써져 있었다.
그들이 그 자리에 서자 글자는 사라졌다.
그리고 특설 무대는 대결을 펼치기 좋은 장소로 바뀌었다.
“자, 이제 곧 세기의 대결이 시작되니 한 장면도 놓치지 말고 잘 지켜봐 주세요! 어떤 공격도 허용이 되며 시간은 무제한이에요. 그럼 경기를 시작해 주세요!”
그녀의 외침과 함께 이서우와 전신이 동시에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