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6
레벨이 갑이다
156화
쾅!
대검과 대검이 부딪치는데, 쇳소리가 나지않고 폭발 소리가 났다.
무기를 강하게 휘두르기 위해서는 다리를 지면에 견고히 고정시켜야 한다.
그 더욱 강한 힘을 내기 위해서 발굴림을 이용하는데, 둘 다 최강이라고 불리는 사람이어서 단순한 동작임에도 엄청난 굉음을 만들어 냈다.
폭발음에 이어 바닥이 갈라지면서 쩌적 하는 소리가 났다.
“꽤 하는데?”
“너야말로.”
사람들 앞에서는 예의를 갖추었지만 전신은 어려 보이는 이서우에게 존대를 해 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이서우도 오히려 그게 편한지 피식 웃고는 여유를 보였다.
퍼석!
그러나 그런 이서우의 평온한 표정을 보는 것이 불편한지 전신은 곧바로 스킬을 사용했다.
그가 사용한 기술은 그래비티gravity.
태산처럼 무거워진 전신의 육체와 대검이 이서우를 압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서우가 태연히 버티자 전신이 핏대를 세우며 소리쳤다.
“어디 100배의 중력도 버티자 보자! 하앗!”
300레벨이 되면서 100배의 중력 효과까지 누릴 수 있게 되었다.
효과는 탁월했다.
마나의 소모가 크기는 해도 지금까지 최고조에 달한 그래비티를 버텨 내는 존재는 없었다.
이서우의 대검이 밀리기 시작했다.
‘역시!’
전신은 효과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만면에 미소를 머금었다.
“컥!”
하지만 안도하는 바로 그 순간 이서우가 대검에 살짝 힘을 빼더니 전신의 품으로 파고들어 팔꿈치로 명치를 쳤다.
갑작스러운 공격이어서 전신은 대응하지 못하고 그대로 맞고 말았다.
하지만 급작스럽게 당한 공격이어서 통증을 호소한 것뿐이지 실제로 많은 대미지를 입지는 않았다.
이서우도 그것을 알고는 다리에 마나를 실어 빠르게 전신의 등 뒤로 돌아갔다.
마나를 잔뜩 실은 이서우는 대검을 움켜쥐고는 사선으로 휘둘렀다.
그런데, 그 때였다!
“청룡이어, 날아올라 위엄을 보여라. 청룡승천!”
휘리리릭!
팽이처럼 돌더니 날아오르면서 대검을 아래에서 위로 쳐올렸다.
그러자 전신의 몸과 대검이 위로 솟아오르면서 이서우의 대검을 튕겨내며 턱을 노렸다.
사사삭!
공격을 이어갈 수 없다고 판단한 이서우가 하체 근육에 마나를 담았다.
두 다리의 근육이 터질 듯 부풀어 오르더니 폭발적인 힘을 냈다.
순식간에 뒤로 물러나며 공격권에서 벗어났다.
피하는 것만으로도 쉽지 않았는데, 이서우는 오히려 한호흡조차도 쉬지 않고 곧바로 반격을 펼쳤다.
청룡승천은 아주 강력한 공격이지만 공중에 떠 있는 동안은 무방비 상태다. 그 약점을 찰나의 순간에 깨달은 것이다.
상대의 약점을 보는 것과 동시에 공격 방법까지 찰나의 순간 파악하고 행동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선택한 공격은 바로 마나 탄이었다.
“하앗!”
마나가 대검에 모여들자 강렬한 푸른빛이 맺혔다.
전신은 이서우가 무슨 공격을 할지 대검의 색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워낙 이서우의 동영상을 통해 많이 알려진 공격이어서 전신도 분석을 한 것이다.
이서우의 기술에 모두 대응할 수 있게 준비를 해서 마나 탄도 충분히 무력화시킬 수 있었지만 문제는 아직 다리가 땅에 닿지 않았다는 점이다.
하는 수 없이 전신은 준비한 방법으로 마나 탄을 막기로 했다.
“소드 블레이드!”
전신이 생각한 것은 바로 소드 블레이드. 이름만 다를 뿐 마나 블레이드와 같은 기술이었다.
전신의 거대한 대검에 마나가 잔뜩 몰려들었다.
이서우가 쏘아 보낸 마나 탄을 강하게 후려쳤다. 마치 야구를 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드는 동작이었다.
깡!
소리조차도 알루미늄 배트와 야구공 마주쳤을 때 나는 바로 그 소리였다.
하지만 다리가 지면에 닿지 않아 강한 마나 탄을 완전히 무력화시킬 수 없었다.
그 결과는 바로 나타났다.
철퍼벅!
마나 탄은 쳐 냈지만 그 반동으로 뒤로 수십 미터나 날아가 바닥에 쳐박혔다.
경기를 지켜보던 유저들은 모두가 입을 떡 벌린 채 정신줄을 놓은 것 같은 표정으로 경기장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너무 집중한 나머지 호흡까지 멈추며 바라보던 사람들은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뒤늦게 깨닫고서야 숨을 길게 토해냈다.
그리고 이어지는 함성 소리.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전장의 지배자! 전장의 지배자! 전장의 지배자!”
이서우는 온 경기장을 떠나갈 듯 소리치며 환호하면 사람들의 함성 소리를 듣고는 거기에 화답해 주었다.
승부도 중요하지만 이 대결이 더 많은 인기를 끌고, 성황리에 끝나기를 바랐다. 그러기 위해서는 쇼맨십도 보여 줄 필요가 있었다.
어차피 앞으로도 계속 뉴 월드에서 활동할 것이다.
그렇다면 인기를 쌓아 둬서 나쁠 것은 없었다.
퍼석!
환호 소리가 시끄러웠는지 돌무더기에 깔려 있던 전신이 거칠게 허공으로 날아오르며 바닥에 내려앉았다.
옷에 묻은 먼지를 탈탈 털면서 이서우에게 다가갔다.
“좋은 공격이야. 실제로 마나 탄을 겪어보니 꽤 쓸 만한데?”
“살짝 맛만 보여 준 건데 그렇게 놀란 표정을 보이면 내가 너무 미안하잖아. 앞으로 실컷 맛보게 될 텐데 말이야.”
“기고만장하군. 뭐, 그 정도로 자신감을 가질 만큼 대단한 기술인 건 인정하지. 하지만 그게 전부라면 넌 나에게 절대 이길 수 없을 거야.”
“그래? 뭐, 그건 두고 보면 알겠지.”
“바닥에 널브러진 모습을 네 팬들이 본다면 참 좋은 그림이 나올 것 같은데, 안 그래?”
“빈 수레가 요란한 법이지.”
“누구의 수레가 텅텅 비었는지 확인해 볼 수 있겠군.”
이서우와 거리를 10미터까지 좁힌 전신은 대검을 높이 쳐들며 소리쳤다.
“청룡이여, 너의 광기를 보여다오! 광룡파천!”
마치 무협지에 나오는 등장 인물이 초식명을 외치는 것처럼 기술 이름을 외쳤다.
그러자 멀쩡하던 하늘이 먹구름으로 뒤덮였다.
시커멓게 물든 하늘에서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소리가 들렸다.
우르르르르르.
심장을 쫄깃하게 만드는 소리에 이어 하늘이 순간 밝아졌다.
번쩍! 번쩍! 번쩍!
사람들은 설마 하는 마음에 하늘을 두리번거리며 쳐다보았다.
빛의 향연은 계속되었다.
사람들은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해 두려워하면서도 기대에 찬 모습이었다.
과연 전신이 어떤 기술을 보여 줄까.
동영상으로는 한 번도 보지 못한 장면이기에 기대가 컸다.
이서우도 그가 과연 무슨 공격을 할지 지켜보았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엄청난 굉음이 들렸다.
쾅! 콰쾅! 콰쾅! 콰콰콰쾅! 콰콰콰콰콰콰쾅!
엄청난 번개가 이서우를 덮쳤다.
이서우가 서 있던 자리에 마치 용접할 때 나타나는 것처럼 강렬한 빛이 발생했다.
이서우를 삼킬 정도로 빛이 강렬해서 지켜보는 모든 사람들이 이서우가 즉사했을 것이라 여겼다.
빛이 사라지지 않고 한동안 유지되며 태양처럼 밝게 빛났다.
그 빛을 바라보며 사람들은 앞으로의 대결도 전신이 가볍게 이기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바로 그때였다.
파직. 파지지지직!
강렬하던 빛이 점점 작아지더니 이서우의 모습이 나타났다.
한데, 전신이 쏘아 보낸 번개가 그의 대검에 갇혀 있었다.
“마, 말도 안 돼…….”
쏘아 보낸 당사자도, 지켜보는 사람들도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고마워. 덕분에 조금 더 센 놈으로 보낼 수 있게 되어서.”
이서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대검에서 강렬한 빛이 쏘아져 나갔다.
번개의 힘을 대검으로 받아 마나와 잘 버무리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이서우는 백호와 합체 중이어서 무리 없이 전신의 번개와 마나를 융화시킬 수 있었다.
아마 백호와 펠렌의 세트가 합체하지 않았다면 꽤 애를 먹었을 것이다.
두 힘을 합치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위력은 기존의 마나 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강했다.
속도도 워낙 빨라 눈으로 보고도 전신은 피하지 못하고 결국 허용하고 말았다.
이서우의 공격이 빠르고 강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승리를 했다고 믿었고, 절대로 이서우가 일어날 수 없을 거라 판단했기에 아무런 대처를 하지 못한 것이었다.
콰콰콰콰쾅!
반경 수십 미터가 폭발로 인해 순식간에 날아가 버렸다.
그리고 마치 미사일이 터진 것처럼 가운데가 움푹 파였다.
사람들은 이서우의 승리를 예감했다.
이서우도 마찬가지였다.
이 정도 폭발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 여기지 않았다. 만약 최후의 방어수단이 있어 버텼다고 해도 심각한 대미지를 입어 전투가 힘들 거라 내다봤다.
이서우는 차분히 다가갔다.
웅웅웅웅웅!
이서우가 몇 발짝 다가가자 갑자기 전신이 있던 자리에 붉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아주 새빨간 빛이었는데 누군가 그런 조명을 일부러 쏘는 것 같았다.
“아슬아슬했어. 좀 더 나중에 보여 주려 했는데, 1차전부터 밑천을 드러내게 하다니. 그건 칭찬해 주지.”
“특수한 장비를 입었군.”
“눈썰미는 있는데? 맞아. 인사해. 적룡이야. 적룡, 가서 적을 포박하라!”
“……?”
인사를 하라고 하더니 갑자기 장비에게 가서 포박을 하라고?
이서우는 뜬금없는 전신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곧 그의 방어구에서 붉은 빛이 흘러나오더니 몸을 휘감는 것이 느껴졌다.
숨을 죽인 채 구경하던 사람들은 탄성을 터트렸다.
전신을 지지하는 유저들은 패배를 직감하고 거의 포기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반격을 하면서 전장의 지배자를 압박하자 기뻐서 환호를 질렀다.
하지만 전신에게 방해가 될까 봐 염려가 되어 얼른 입을 닫았다.
전투에 한창인 그들에게 관중들의 소리가 전달될 리가 없지만 작은 변수도 만들고 싶지 않아 조심하는 것이다.
이서우는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되자 힘으로 끊어내려 했다. 한데, 어찌 된 일인지 마나를 써도 벗어날 수가 없었다.
‘이렇게 되면 나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지. 어디 이 힘도 막을 수 있는지 볼까?’
이서우는 최근 펠렌의 장비가 그저 단순한 아이템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했다.
마나 활용도가 비약적으로 상승했고, 백호와 합체를 경험하면서 펠렌의 장비는 또 한 번의 작은 진화를 거듭했다.
지금 이서우는 그 힘을 보여 주려는 것이다.
물론 그 힘을 굳이 쓰지 않아도 전신을 충분히 이길 수는 있었지만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 줄 수 없다고 판단해서 꺼내 든 것이었다.
마나를 집중하자 펠렌의 장비가 금빛으로 물들었다.
“저, 저런…….”
그동안 펠렌의 장비는 변화가 진행될 때 강렬한 푸른색을 띠었다.
한데, 지금까지와 다른 진한 황금색으로 물들고 있었다.
두둑, 툭!
적룡의 포박이 가볍게 풀렸다.
“이 힘까지 쓰게 한 건 칭찬해 주지. 하지만 딱 거기까지야.”
“고작 적룡의 포박을 푼 것 가지고 기세가 등등하군. 내 앞에 무릎을 꿇고도 그런 표정을 지을 수 있나 보겠다.”
“입으로 싸울 건 아니지?”
적룡의 힘이 끝이 아니라는 것은 이서우도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청룡과 적룡의 힘을 경험해 본 터라 이후 어떤 능력을 보일지 짐작은 할 수 있었다.
이서우가 내린 결론은 전신이 어떤 힘을 발휘하더라도 승리할 자신이 있다는 것이다.
승리를 확신해서일까. 그의 얼굴에 승리자의 미소가 맺혔다.
그 미소가 거슬렸는지 전신은 날카로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황룡의 힘이여, 그대를 농락하는 자를 분쇄시켜라!”
청룡, 적룡에 이어 이번에는 황룡이었다.
전신은 세 가지 용의 힘을 사용했다.
대검은 청룡의 힘을, 방어구는 적룡의 힘을, 마지막으로 액세서리는 황룡의 힘이었다.
보통 스킬은 갈수록 강한 것을 쓰니 황룡의 힘이 더 강할 거라는 기대는 하고 있지만, 과연 어떤 능력인지 사람들은 궁금했다.
전신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황룡의 힘이 꼭 전장의 지배자를 이겼으면 하는 바람이었고, 전장의 지배자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앞서 보인 두 힘과 큰 차이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들의 궁금증은 곧 풀렸다.
바닥이 늪처럼 변하더니 이서우를 삼켰다. 그리고는 축축한 모래알이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맹렬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마치 믹서기에 재료를 넣고 갈아 버리는 듯한 모양새였다.
드르르륵! 드륵! 드르르르르륵!
가가강! 가가가가가강!
고막을 찢을 듯한 소리가 한참이나 들렸다.
전장의 지배자를 따르는 유저들에게는 지옥불에서 살려 달라고 비명을 지르는 소리처럼 들렸고, 전신을 따르는 자들에게는 마치 경쾌한 댄스 음악을 듣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전신은 승자의 여유로운 미소로 팬들에게 화답했고, 시선을 돌려 이설아를 바라보았다.
어서 빨리 승자를 가려달라는 뜻이었다. 시간을 더 끌면 그가 배팅한 10분을 넘기기 때문에 배당금을 높게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설아가 반응이 없자, 양손을 들어 ‘뭐해? 어서 승자를 말하라고.’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답답해하며 인상을 찌푸리던 전신은 갑자기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며 열렬히 환호를 보내던 관중석이 갑자기 침묵에 휩싸였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