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4
레벨이 갑이다
164화
“황제폐하를 뵙습니다.”
“허허, 그리 예의를 갖추지 않아도 되네. 이리 가까이 오게.”
“네, 폐하.”
50대 초반의 평범한 중년인의 모습과 너무 닮아 있었지만 포근한 얼굴과 총기가 있는 눈빛이 범상치 않았다.
황제는 이례적으로 모험가를 가까이 오라 했다.
대귀족이 아니고서는 황제가 가까운 거리에서 대화를 나눌 수가 없었다.
“고개를 들어도 되네.”
이서우와 이설아는 살며시 고개를 들어 황제를 바라보았다.
“역시 영웅의 기개가 느껴지는군. 그대 옆에 있는 여성과 곧 결혼을 할 거라고?”
“…….”
“네, 폐하. 저희는 미래를 약속한 사이가 맞습니다.”
“허허, 기쁜 일이로다. 자고로 사내는 가정을 이루어야 하는 법이지. 결혼식에 짐도 초대해 주게나.”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한 사람만 거쳐도 이야기가 쉽게 와전된다.
어느새 귀족들은 이서우와 이설아가 곧 결혼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나라를 구한 영웅에게 당연히 작위를 내려야겠지만, 그대가 모험가인 것이 너무도 안타까워.”
“저희는 그저 이 나라를 위해 최선을 다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폐하.”
“역시 듣던 대로 겸손하구나. 그러니 더 상을 내려야겠다.”
“폐하의 뜻대로 하소서.”
이서우는 더 이상 거절하지 않았다. 황제 앞에서 두 번의 거절은 모욕이 될 수도 있었다.
“비록 작위는 내릴 수 없지만 이 황금패를 받아라. 누구도 그대를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폐하의 은혜를 가슴 깊이 새기겠습니다.”
“또한 그대들에게 황궁 무기고를 하루 동안 개방하겠다. 원하는 것이 있다면 딱 한 세트만 허용할 테니 무엇이든 선택하라.”
“폐하의 은혜, 가슴 깊숙이 새기겠습니다.”
이서우와 이설아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한 개도 아니고 한 세트다. 이번 기회에 이설아는 무기부터 방어구, 악세서리까지 완벽하게 맞출 수 있었다.
황제는 그것으로도 모자랐는지 많은 양의 골드와 각종 소모품 아이템도 두 사람에게 하사했다.
기사단장이 이서우와 이설아를 황궁 무기고로 안내했다.
“하루가 지나면 문을 닫을 테니 그 안에 골라야 하오.”
“알겠습니다.”
“황금패를 가진 자는 그렇게 예를 갖추지 않아도 되오.”
“저는 이게 편합니다.”
“역시 그대는 매우 겸손한 사람이구려. 그런 엄청난 힘을 지니고서도 예의를 잃지 않는 그대가 존경스럽소.”
“과찬이십니다.”
“아니오. 그럼 들어가서 직접 살펴보시오. 안쪽 경비에게는 황금패를 보여 주면 될 것이오.”
“네.”
기사단장의 말에 두 사람은 거대한 문을 지나 황궁 무기고 안으로 들어갔다.
무기고는 삼중으로 보호되고 있었다.
10미터가 넘는 문을 지나다 5미터 정도 되는 중간 문이 나왔다.
황금패를 보여 주자 서서히 중문이 열렸다.
50미터쯤 더 들어가자 3미터 정도의 마지막 문이 나타났다.
그 앞에는 한 노인이 있었다. ‘ㄴ’자로 된 테이블 앞에 턱을 괸 채 앉아 있다가 이서우가 들어가자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오랜만에 오는 손님인데, 귀족도 아니고 모험가구먼. 그것도 둘씩이나.”
“네, 어르신.”
“통행증은?”
이서우가 다가가자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이리저리 뜯어보더니 시선을 이설아에게로 옮겼다.
한 명도 아니고 두 명이 한꺼번에 들어오는 일은 흔하지 않아 자세히 살펴보는 것이다.
이서우가 황금패를 꺼냈다.
노인은 동이나 은패가 아닐까 했는데, 예상을 빗나나고 말았다.
“내가 이곳에 처박혀 있는 사이 세상이 변한 건가. 황제께서 모험가에게 황금패를 하사하시다니.”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운으로 황금패를 받을 수 있었다면 아무나 다 들고 다녔겠지. 어쨌든 자격은 충분하니 들어가거라. 이미 들었겠지만 황금패는 하루 동안 머물 수 있다. 원하는 것도 세트로 가져갈 수 있으니 엄청난 혜택이지. 신중히 선택하거라.”
“네, 어르신.”
노인이 탁자 밑으로 손을 가져가자 문이 스르르 열렸다.
다른 문들과는 달리 소리가 없었다.
마법 장치가 되어 있는지 문이 열리자마자 무기고가 환해졌다.
이서우와 이설아가 안으로 들어가자 문은 다시 소리 없이 닫혔다.
“와, 오빠, 엄청 넓어.”
“그러네. 황궁 무기고니 없는 게 없겠지. 분류도 잘되어 있는 것 같은데?”
“응. 근접 계열과 마법 계열, 그리고 치유 계열로 확실히 구분이 되어 있어. 근데 오빠는 어떻게 할 거야?”
“300레벨 세트로 가져가야지.”
“당장 팔기 힘들잖아.”
“다들 빠른 속도로 레벨 업을 하고 있으니 괜찮아. 그리고 300레벨부터 장비 능력이 엄청나잖아.”
“그건 그래. 나도 300레벨 장비를 착용했으니 오빠랑 보조를 맞췄지, 200레벨 대 장비를 하고 있었으면 아마 따라가지도 못했을걸?”
290레벨과 300레벨 장비 성능의 차이는 엄청났다. 280에서 290레벨 차이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였다.
“분류가 잘되어 있으니 시간은 그리 많이 걸릴 것 같지 않겠네. 네 것부터 보러 갈까?”
“아냐, 오빠 것부터 보러 가자.”
이설아는 이서우의 팔짱을 끼고는 근접 계열 쪽으로 갔다.
안으로 들어가니 다시 세부적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맨 왼쪽에서 두 번째에 대검 방이 있었다.
방 안의 크기는 이서우와 이설아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컸다.
“와, 이게 다 얼마야. 이거 다 팔면 나라도 몇 개 사겠는데?”
“그러게. 최하가 영웅템 이상인 것 같아.”
“맞아. 유일에 전설 아이템까지 아주 쫙 깔렸네, 쫙 깔렸어.”
“다행히 각 단계별로 쓰기 적합한 무기들로 구분되어 있어 고르기는 편하겠는걸?”
“그렇지. 그렇게 안 되어 있었으면 하루만에는 절대 못 골라.”
“응.”
이서우는 전설 등급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꽤 많은 양이었는데, 그중에서 300레벨 이상만 모아 둔 진열대로 이동했다.
“역시, 딱 보기에도 강해 보이네.”
“응. 뭔가 힘이 제대로 느껴져.”
무기를 이리저리 살피던 이서우는 백호를 소환했다.
“주인님, 부르셨어요?”
“그래. 골렘과의 전투에서 큰 활약을 했는데 너를 잠시 잊고 있었구나.”
“헤헤, 이렇게 불러주셨잖아요. 한데, 싸워야 할 상황은 아닌 것 같고, 어라 여긴 황궁무기고네요?”
“보자마자 아는 걸 보니 와 본 적이 있구나.”
“그럼요. 예전 주인님과 몇 번 와봤어요.”
“그럼 고르기가 편하겠네. 넌 이 중에 어떤 무기가 괜찮을 것 같아?”
“음, 어디보자.”
백호는 이서우의 말에 무기고를 누비며 코를 킁킁거렸다.
이제 이설아에게도 늘 백호의 모습이 보였는데 촐랑촐랑 뛰어다니는 게 그렇게 귀여울 수 없었다.
그 때, 백호의 머리 위로 홀로그램이 나타났다.
“어머, 오빠 마법인가 봐.”
“그러게. 백호가 무기를 만지니 그와 관련된 세트 아이템이 홀로그램으로 친절히 나타나네.”
“응. 능력치도 보이고, 설명까지 잘 되어 있어.”
이서우는 백호가 선택한 무기가 있는 곳으로 갔다. 거의 맨 끝에 있었는데, 느껴지는 기운이 심상치 않았다.
“레벨 제한이 500이네.”
“헐. 500은 좀 심했다.”
“괜찮은 걸 고르라고 해서 그런가 보네.”
“주인님, 별로 마음에 안 드세요?”
“마음에는 드는데, 현재 이걸 사용할 만한 사람이 없어.”
“아하, 다른 모험가들 수준에 맞는 걸 고르시는구나.”
“그렇지. 난 어차피 펠렌 님의 세트가 있으니 필요없거든.”
“그러면 아까 봐 둔 게 있긴 해요.”
백호가 다시 역행을 하자 이서우도 빠른 걸음으로 뒤를 쫓았다.
“이거예요. 꽤 쓸 만한 녀석이에요.”
이서우는 벽에 걸려 있는 대검을 꺼내 들었다. 확실히 백호의 말처럼 능력치가 뛰어났다.
“300레벨 제한이니 적당하네.”
“세트 아이템 능력치도 좋고.”
“그래도 시간이 있으니 일단 다른 것도 보자.”
“응.”
들어온 지 이제 겨우 10분이 지났다. 아직 시간은 많으니 이서우는 천천히 둘러보기로 했다.
결국 이서우는 꼼꼼히 따져서 8시간 만에 결정을 내렸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치유 계열 아이템이 있는 곳으로 들어갔다.
치유 계열은 아이템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이서우가 본 아이템의 3분의 1 정도 수준이었다.
이설아는 320레벨 아이템을 선택했다.
퀘스트를 완료하면서 308레벨이 되어 300레벨 아이템은 제외했다.
어차피 이설아는 본인이 직접 사용할 것이기에 낮은 레벨은 필요가 없었다.
15시간 만에 두 사람은 황궁 무기고를 나왔다.
“무기 고르는데 이렇게 시간이 걸리다니.”
“너무 좋은 것들이 많아서 그래.”
이서우는 한 세트만 가져 나올 수 있다는 게 아쉬운 표정이었다.
“그래도 최상급 옵션을 선택했으니까. 세트 옵션도 가장 좋은 걸로 했고.”
“응. 오빠의 도움이 컸지.”
이서우는 백호가 고른 것 말고 혹시나 더 좋은 게 있나 싶어 마나를 써서 움직였다.
어찌나 빨리 움직였는지 잔상이 남아 이서우가 여려 명인 것 같은 착각까지 들 정도였다.
그렇게 선택한 옵션은 그야말로 최상급 중에서도 최상급이었다.
특히 세트 옵션은 다른 것과 달랐다.
보통 세트 추가 옵션은 무기와 방어구에 하나가 붙고, 액세서리는 2, 3, 5세트일 때 붙어서 5개를 넘지 않았다.
하지만 이서우가 선택한 것은 무기와 방어구 조합에서 3개, 거기에 액세서리가 하나씩 더해질 때마다 추가 옵션이 붙어서 무려 8개나 되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모든 세트를 다 모으면 추가로 또 엄청난 옵션이 부여되었다.
총 9개나 되는 추가 옵션을 보며 이서우는 망설이지 않고 선택했다.
이설아의 아이템도 마찬가지였다. 추가 옵션도 빵빵하고, 아이템 각각의 능력도 단연 최고였다.
두 사람 모두 강화와 초월이 되는 아이템을 선택했기에 황제을 알현한 뒤 황궁을 나왔다.
그들이 나가자 조세프 백작이 기다리고 있었다.
“볼일은 다 마쳤나 보군.”
“네. 한데, 저희들 때문에 기다리고 계셨던 겁니까?”
“이왕이면 같이 돌아가려고 그런 것일세.”
“며칠 머물러야 한다고 하셨는데, 상황이 괜찮아졌나 봅니다?”
“그렇다네. 골렘이 거의 전멸하다시피해서 엘사둔이 병력을 급히 뒤로 물렸다네.”
“잘됐네요.”
“잘되었지. 하지만 아직 전쟁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라네. 놈들은 분명 다시 골렘을 제작할 거야.”
“대체 어떤 자가 골렘을 만드는 걸까요?”
“그래서 내 자네를 기다린 거라네.”
“네?”
이서우는 이게 갑자기 또 무슨 소린가 싶었다. 설마 아무런 정보도 없는데 골렘을 제작하는 자를 찾아서 처리하라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 아니겠지.’
하지만 안 좋은 예감은 높은 확률로 잘 맞는다. 왜 로또에 걸릴 것 같은 예감은 늘 안 맞으면서 안 좋은 건 다 맞아떨어지는지.
“자네가 엘사둔으로 잠입해서 그 자를 찾아 처치해 주게.”
“…….”
“무기고를 나와서 황제폐하에게 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네. 참으로 환하게 웃고 있더군.”
‘윽, 너무 오래 같이 일을 했어. 표정만 보고 날 꿰뚫어보다니!’
이서우는 세트 아이템을 팔 생각에 기분이 좋아 무기고를 나오면서도 싱글벙글이었는데, 그걸 조세프 백작이 본 것이다.
“부탁을 들어드리는 것이야 어렵지 않지만, 그런 비밀스러운 자를 찾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백작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알고 있네. 그자를 꼭 처치하지 않아도 되네. 하지만 타이탄은 어떻게든 정리를 좀 해 주게.”
“적진 한복판에 가서 타이탄을 처치하라고요?”
“누가 타고 있는지 알고 있으니 찾아가서 기습을 하면 될 것이네.”
“첫 기습이야 성공할 수 있지만 나머지는 힘듭니다.”
“알고 있네. 한 기만 처리해도 황제폐하께서는 만족할 것이네.”
“일을 잘 마무리하면 또 무기고에 들여보내 주신다는 뜻입니까?”
“그건 아닐세. 무기고는 함부로 들어갈 수 없으니까. 물론 골렘 제작자를 처치하면 가능성이 높겠지만 타이탄을 처치하는 것만으로는 힘들 것이네. 하지만 보상은 자네가 상상하는 이상일 테니 염려 말게.”
-골렘 제작자를 처치하라.
카이젠 제국의 황제는 혹시 모를 추가 기습에 걱정이 크다.
타이탄까지 잘 막아 낸 카이젠의 영웅인 당신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 했지만 다른 방법이 없어 결국 황제는 조세프 백작에게 부탁을 한다.
황제가 부탁을 한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 그만큼 당신에 대한 고마움이 크다는 방증일 것이다.
조세프 백작은 흔쾌히 그것을 받아들였다.
난이도 : A
완료 조건 : 골렘 제작자를 찾아 처치하라.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타이탄 골렘 2기 이상을 파괴하라.
성공 시 보상 : 골렘 제작자 처치 시, 7레벨 경험치, 200만 골드, 최고급 강화석 100개, 명성 30만, 특별히 큰 공을 연속해서 세운 공로를 인정해 황궁무고 중에서도 황제나 황가의 자손들만 들어갈 수 있는 무기고를 개방한다.
타이탄 골렘 2기 처치 시, 7레벨 경험치, 100만 골드, 고급 강화석 100개. 명성 10만.
입에 떡 벌어질 만큼 엄청난 보상에 이서우는 잠깐이지만 돌처럼 몸이 굳어졌다.
“허허허, 자네의 표정을 보니 할 마음이 있나 보구먼. 황제께서 하신 약속이니 염려 말고 다녀오게.”
“어떻게든 그 자를 찾아내서 처치하고 오겠습니다!”
“든든하구먼, 든든해.”
조세프 백작은 이서우의 어깨를 툭툭 치며 활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