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이 갑이다-167화 (167/341)

# 167

레벨이 갑이다

167화

“그래서 일단 거절은 했는데…….”

“난감하네. 회사를 생각하면 하루쯤 그냥 때운다 생각하면 되지만, 엄연히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요구라니.”

이설아는 이서우가 하루쯤 대충 때운다는 말에 약간 서운했다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말에서 서운함을 날려 버렸다.

“언니, 다른 해커를 찾아보면 안 돼?”

“찾아봤지. 근데 연락 자체가 안 되거나 되더라도 다들 거절하더라고. 아마, 우리 회사를 해킹한 자를 알고 있어서 그런 거겠지.”

“결국 그 여자만 된다는 거네. 오빠가 괜찮다면 난 찬성이야.”

“난 마음에도 없는 자리는 가고 싶지 않아.”

이설아는 하는 수 없이 타협점을 찾으려 했지만 이서우는 단호하게 말했다.

“자료는 따로 다 백업 중이니 금세 작업이 끝날 거야. 그 해커는 서우가 애인이 있다는 걸 모르고 그랬을 테니 여자랑 단둘이 만나는 건 힘들다고 말하면 돼. 자료는 인터넷망과 차단된 장소에 백업을 해 두면 되고. 그러니 부담 갖지 마.”

“그렇게 하려면 돈도 많이 들고 시간 낭비도 심하잖아.”

“사업을 하다 보면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할 때가 있는 법입니다.”

박 대표가 힘을 주어 말했다.

당사자들이 허락을 했다면 쉽게 일을 진행할 수 있었겠지만, 그렇다고 꼭 쉬운 길만 고집할 수는 없었다.

박 대표는 시간이나 돈보다 사람이 우선이었다.

이서우와 이설아는 그런 마인드 때문에 K사를 선택했고 말이다.

이서우의 확답을 들은 김소연은 즉시 영입하려 했던 해커에서 문자를 보냈다.

“통화는 안 되는 사람이라 연락 넣어 뒀으니 이제 신경 쓰지 마.”

“미안해.”

“미안하긴, 어려운 부탁을 한 우리가 더 미안하지. 신경 쓰지 말고 전신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해 봐. 나랑 대표님도 고민해 볼 테니.”

“응, 알았어.”

대화가 대충 마무리되어 김소연과 박 대표는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그들이 반쯤 일어났을 때 영입하려했던 해커에게서 문자가 왔다.

문자를 확인한 김소연의 표정이 좋지 않아 이설아가 물었다.

“언니, 무슨 일이야?”

“그 해커가 다른 사람도 같이 와도 된대.”

“뭐? 정말?”

“응.”

이설아가 이서우를 바라보았다.

“그 여자 참 끈질기네.”

함께 동행해도 된다고 하니 이서우로서도 고민이 되었다.

단둘만 만나는 것은 꺼려지지만 이설아가 함께한다면 만나도 큰 문제는 없었다.

“오빠, 그냥 수락하는 게 낫지 않아?”

“이미 거의 백업을 마쳤을 테니 굳이 수락하지 않아도 돼. 조금 귀찮고 시간이 걸리겠지만 사이버수사대에 신고를 해 뒀으니 잡힐 거야.”

“다들 바쁜 사람들인데, 그럴 수는 없지. 같이 가도 된다니 수락한다고 해. 시간은 저녁이면 저녁, 낮이면 낮으로 한정하고.”

“정말 괜찮겠어?”

“언니. 내가 가서 오빠를 잘 지키면 돼.”

“그래. 알았어.”

김소연도 말은 괜찮다고 했지만 해커를 영입하면 여러 모로 편했다.

몇 시간 정도 시간을 할애하는 것치고는 남아도 한참이나 남는 장사여서 내심은 두 사람이 허락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물론 이서우 혼자서 나가야했다면 김소연도 억지로 보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시 김소연이 문자를 하자 해커에게서 답변이 왔다.

“저녁시간으로 하자는데. 6시부터 10시까지.”

“날짜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대.”

“어디 사는 사람인데?”

“다행히 한국 사람이야.”

“한국 사람?”

“응. 한국이 최근 15년간은 거의 해커 대회를 휩쓸고 있어. 숨은 고수도 많고.”

“일단 해커부터 막고 나서 약속 이행을 한다고 해. 장소는 알아서 정하라고 하고.”

“아마 오늘도 공격을 시도할 거야. 그럼 막아달라고 할게. 데이트는 내일 하는 걸로 하고.”

“우리도 해야 할 퀘스트가 있어서 빠를수록 좋아.”

“알았어. 잠시만.”

메시지를 보내자 바로 답변이 왔다.

“괜찮대. 내일 저녁 6시 골든 타워 G레스토랑에서 보재.”

“아주 최고급으로 골랐네.”

골든 타워는 말 그대로 금빛 찬란한 초고층 빌딩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고, 전 세계에서도 높이로는 10위 안에 드는 엄청난 빌딩이었다.

외벽의 일부는 금가루를 이용해 마무리를 해서 골든 타워라 이름이 붙었는데, 외부도, 내부도 화려함의 극치를 자랑하고 있었다.

“그럼 오늘 상황을 보고 말해줘. 실패하면 굳이 나갈 필요는 없을 테니.”

“알았어. 둘 다 고마워.”

“이렇게 회사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 줘서 고마워요.”

“그런 말씀 마세요. 어차피 한 식구잖아요. 어려울 때 도와야지.”

이서우는 박 대표가 얼마나 자신들에게 공을 들이는지 알기에 이번 일도 흔쾌히 나설 수 있었다.

“참, 누나, 정보 팀은 좀 어때?”

“네 덕분에 엄청난 양의 정보들을 모으고 있어. 15명으로는 너무 버거워서 인원을 좀 더 뽑아야 할 것 같아.”

“신뢰할 만한 사람을 뽑기 쉽지 않을 텐데?”

“비밀 엄수 조항이 있으니 배경이 괜찮은 사람들 위주로 좀 뽑아 보려고.”

“고생이 많네.”

“바빠서 같이 사냥을 못해서 아쉬운 것 빼고는 괜찮아.”

김소연도 틈틈이 사냥을 해서 레벨을 올리고 있지만 벌써 차이가 많이 났다. 게다가 시간도 부족해서 하루 6시간을 하는 것도 빡빡했다.

“우리도 언니가 없어서 많이 불편해.”

“다양한 각도에서 영상을 잡기 힘들어서 그런 건 아니고?”

“헤헤, 들켰네.”

“팀원들이 뽑히고, 정착이 되면 시간이 될 테니 조금만 기다려 줘.”

“얼른 정상화되기를 바라야겠는 걸?”

“말만 들어도 고맙다. 전신 문제는 같이 고민해 보자. 참, 그리고 이번 주 수익은 계좌로 보냈어.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르니 확인해 봐.”

“응.”

대화를 마친 김소연과 박 대표는 바쁜 일이 있는지 서둘러 빠져나갔다.

“K사가 많이 성장하긴 했나 보네.”

“오빤 별로 관심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지금 우리 주가가 엄청나게 올랐어. 참, 계약할 때 주식 1퍼센트씩 우리한테 준 거 알지?”

“그랬나?”

“응.”

이서우는 주식에 대해 별다른 관심이 없어 까맣게 잊고 있었다.

부모님에게 주식은 패가망신의 지름길이라는 말을 워낙 많이 들어서 그런지 주식에 대해서는 무덤덤했다.

“오빠, 그게 지금 수백 억 가치로 뛰었어.”

“헉. 그래?”

“그렇다니까. 내년쯤이면 또 2배로 뛴다는 전망이 있을 정도로 잘나가는 중이야.”

“대박이네.”

“대박이지. 박 대표님은 지분이 70퍼센트 이상이어서 돈방석에 앉았고.”

“엄청나네.”

“그럼. 아주 밑바닥부터 박 대표님이 다 일궈 냈거든. 중간에 투자가 필요해서 지분이 조금 줄어들기는 했지만 절대로 과한 투자는 받지 않는다는 게 철칙이셔서 지금의 자리까지 오실 수 있었어.”

주가가 오르기 전에도 2조가 넘었던 박 대표의 재산은 현재 3조 이상의 가치가 있었다.

덕분에 10위였던 재산 순위도 8위까지 올라갔다.

젊은 나이에 이룬 부로서는 엄청난 것이었다. 게다가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해서 수년 내에 10조 이상의 가치가 될 거라는 전망이 많았다.

동영상과 관련된 사업만 이어 가고 있어서 그렇지 다양한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한다면 폭발적인 성장이 가능하다는 이야기가 지배적이었다.

전 세계적으로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는 가파르게 성장해 벌써 50조 이상의 가치를 지닌 기업도 있었다.

거대 공룡 기업이 인수하면서 가치가 급상승한 것도 있지만,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으니 해마다 뚜렷한 성장세를 보일 수밖에 없었다.

국내에서도 K사가 선전을 하고 있었지만 아직은 5조가 조금 넘는 정도로 평가되고 있어 세계적인 기업과 비교하면 많이 부족했다.

하지만 박 대표가 이서우와 이설아를 영입하면서 다양성을 꾀하고 있어 앞으로의 변화가 훨씬 주목 되는 기업이었다.

“그나저나 시간이 훌쩍 지나 버렸네.”

“그러네. 벌써 점심시간이 다 돼 가네. 오늘 퀘스트 진행할 거야?”

“상황이 복잡하게 흘러가고 있어도 할 건 해야지. 일단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밥 먹고 와서 엘사둔에 집부터 구하자.”

“우, 우리가 살 집?”

“당연하지. 부부로 설정하고 가는 거니 지낼 곳이 필요하잖아.”

“응!”

이설아는 흥분된 목소리를 감출 수가 없었다.

비록 게임이지만 이서우와 함께 지낼 집을 마련한다는 것이 즐거웠다.

오후 1시쯤이 되어서야 두 사람은 뉴 월드에 접속했다.

엘사둔에서 집을 구하는 것은 사실 쉽지 않은 문제였다. 유저들이 카이젠 제국에 붙어 첩자 노릇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더욱 까다로워졌다.

한데, 이서우는 의외로 쉽게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조금 늦었네요.”

“아닙니다. 서우 님이 도와주신 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덕분에 빠르게 3차 전직을 할 수 있었습니다.”

“별말씀을 다하십니다. 저희가 오히려 고맙지요.”

“이왕 게임을 즐기는 거 부부가 여기저기 다니시면서 지내면 좋지요. 그런 면에서 서우 씨가 참 부럽습니다. 별장도 가지시고.”

“이번에 다들 득템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제가 부러워해야지요.”

“하하하, 그럼 언제쯤 출발하실 계획이신지요?”

“저희는 지금 당장 가도 괜찮습니다.”

“그럼 가시죠.”

“네.”

이서우와 대화를 한 사람은 바로 유진철이었다.

엘사둔에 잠입했을 때 위기에 처한 그들 파티를 구해 준 것이 인연이 되어 이번에 도움을 받게 된 것이었다.

유진철과 그의 파티는 당시 하이 레벨 지역에 가고 싶어 했다.

전쟁이 본격화되면서 기회가 닿아 하이 레벨 지역으로 와서 3차 전직까지 부지런히 사냥을 할 수 있었다.

이서우는 운이 좋게 하이 레벨 지역에 있는 그들을 만나게 되었고, 사정을 이야기해서 엘사둔에 집을 살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그나저나 젊으신데, 벌써 결혼을 하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서로 마음이 맞는데 나이가 뭐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그건 그렇지요.”

이서우는 철저히 부부처럼 행동했다. 이설아도 그와 보조를 맞췄는데 진짜 부부라고 믿을 정도로 죽이 척척 맞았다.

과거와는 달리 엘사둔과 카이젠의 전쟁이 약간 소강상태에 들어 오고 가는 것은 훨씬 자유로웠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통행증 확인은 필수다.

다행스러운 것은 엘사둔에서 시작한 유저가 파티에 한 명이라도 있으면 무사통과가 된다는 것이었다.

처음부터 엘사둔을 위해 노력한 모험가를 배려하는 차원이었다.

최근 하이 레벨 지역이 생기면서 모험가의 이탈이 많아지면서 혜택을 준 것이다.

“한데, 어느 지역에 별장을 가지고 싶으신지…….”

“휴식을 취할 목적이니 간섭이 덜하고 변두리 지역이 좋겠지요.”

“마침 좋은 장소가 있습니다.”

“진철 님만 믿겠습니다.”

유진철은 이서우가 딱 좋아할 만한 장소를 찾아 주었다.

주변에 인가라고는 없는 외딴 별장이었는데, 경치도 무척이나 좋았고 규모도 상당히 컸다.

“저희도 길드 건물을 알아보면서 찾았던 곳인데, 여기라면 좋은 시간을 보내실 수 있을 겁니다.”

“좋군요. 도시에서 그렇게 멀지 않은 것 같은데도 이렇게 아늑한 곳이 있다니.”

“가까운 곳에 호수도 있고, 산책로도 잘 형성이 되어 있으니까요.”

“보는 눈이 있으십니다. 최근 수리까지 깔끔하게 싹 해서 정말 휴식 공간으로 안성맞춤일 겁니다.”

그들과 함께 온 건물 관리인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방을 구경하면서도 끊임없이 좋은 점을 말했다. 말이 많은 사람이었지만 믿을 수 있었던 것은 장점과 더불어 단점도 함께 말을 했기 때문이었다.

‘단점이라고는 주변에 사람이 없는 거랑 두 사람이 지내기에는 조금 크다는 게 전부군. 국경지대랑 가까운 건 오히려 장점이겠고. 여기가 괜찮겠는데.’

-오빠, 마음에 들어?

-응. 난 마음에 들어. 넌?

-나도. 조금 넓지만 여긴 원래 집들이 크니 괜찮아. 정원도 있고, 너무 좋아.

-그럼 여기로 하자.

-응!

모든 방과 집 내외부를 둘러본 이서우가 관리인에게 가격을 물었다.

“50만 골드만 주십시오. 이 정도 규모의 집이면 그 이상은 하는 곳입니다.”

“와, 정말 저렴한 가격이네요. 외곽이고, 국경과 가깝다는 게 흠이긴 해도 100킬로미터 이상 떨어져 있으니 그리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좋습니다. 이곳으로 하지요.”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이서우는 양도 절차를 모두 마무리하고, 관리인에게 믿을 만한 사람을 스무 명만 구해 달라고 했다.

집은 3층으로 된 대저택이었는데, 방이 80개 이상이고, 정원도 상당히 커서 사람이 많이 필요했다.

이서우가 산 집을 현실에서 구입하려면 수백억을 줘야 가능한 것이어서 저렴하게 구입한 것은 확실했다.

원래 땅값이 싼 지역이지만 전쟁이 벌어지고 있어 더 저렴하게 나온 것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최소 100만 골드 이상은 줘야 했을 것이다.

사람을 쓰지 않으면 의심을 받을 수 있기에 이서우는 규모에 맞게 사람을 구했고, 같은 침실을 사용하기로 했다.

“좋아?”

“응. 앞으로 뉴 월드에 오면 여기서 자면 되네.”

“당분간은 그렇지.”

킹오브킹 사이즈의 화려한 침대가 마음에 드는지 이설아는 앉아 보기도 하고, 누워 보기도 했다.

“오늘은 이만 종료하자.”

“응.”

이서우는 집사에게 집을 잘 관리해 줄 것을 당부하고는 침실로 들어가 접속을 종료했다.

늦은 저녁을 먹고 샤워를 끝낸 뒤 이설아와 함께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는데, 김소연에게서 연락이 왔다.

“다행이네. 알았어. 내일 저녁 6시까지 그리로 갈게.”

“벌써 해결한 거야?”

“그렇다나 봐. 젊은데 능력이 아주 뛰어난 해커라고 하네.”

“그렇구나.”

김소연과 간단히 대화를 나눈 뒤 전화를 끊은 이서우는 자정이 되어서야 이설아와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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