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1
레벨이 갑이다
171화
“설아야, 괜찮겠어?”
“응. 난 괜찮아. 5년을 고생했어. 사람들 말 한마디에 일희일비하지 않아.”
이설아는 이서우의 손을 꼭 잡고 기사들을 살폈다.
기사의 내용은 대부분 호의적이었다.
누군가가 이설아와 이서우에게 협박을 했고, 전신과 전장의 지배자의 대결에 영향을 미치려고 한다는 내용이 그대로 기사화되었다.
2시간에 걸친 방송에 수천만 명이 시청하면서 커뮤니티도 시끄러웠다. 하지만 대부분 이설아와 이서우의 사랑을 응원하는 글이 많았다.
특히 이서우의 인기는 상당했다.
“오빤 뉴 월드에서도 인기남이고, 이제는 현실에서도 인기남이 되었네?”
“현실에서는 설아 때문에 그런 거지.”
“피, 아닐걸. 아마 곧 오빠 팬클럽 생길걸?”
“에이, 설마. 팬클럽이 기자회견 한 번 했다고 생길까.”
“아니라니까. 오빠 멘트들이 정말 여자들의 가슴을 흔들어 놓을 정도였거든. 그 말을 듣고 어떤 여자가 반하지 않겠어?”
“난 너만 반하면 돼.”
“우리 오빠, 진짜 말은 청산유수라니까.”
이설아는 기분이 좋은지 이서우의 품에 안겨들었다.
소파에서 반응을 살피고 있었는데, 그녀가 안겨들자 묘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어, 이거 우리 동영상 같은데?”
“그러네. 한번 플레이해 봐.”
“응.”
이설아가 벌떡 일어나 영상을 터치했다.
이서우도 그녀의 곁에서 함께 영상을 바라보았다.
10분짜리 짧은 영상이었는데, 이서우와 이설아가 생활하는 공간을 비추고 있었다.
“이거 교묘하게 편집됐네. 분명 전신이겠지?”
“그렇겠지. 하여튼 끝까지 더러운 수작질이네. 댓글에 뭐라고 되어 있어?”
“역시, 보자마자 알아보네. 악의적으로 편집된 영상이라는 의견이 많아. 네티즌 수사대가 누가 올렸는지 찾아낸다면서 난리네.”
“자충수를 두는 것 같은데, 쉽게 발각되지 않을 자신이 있어서 이런 짓을 하는 거겠지.”
“그렇겠지. 그자는 그런 자니까. 이제는 전신이라고 불러주고 싶지도 않아.”
“그럼 그냥 이름을 불러.”
“그러고 보니 걔 본명이 생각나네.”
“전신의 본명?”
“응.”
“뭔데?”
“아마 들으면 빵 터질 걸.”
“그러니까 더 궁금한데?”
“박춘봉이야, 박춘봉.”
“하하하하, 박춘봉?”
“응. 전국에 계신 박춘봉 님에게는 죄송하지만, 재벌이라고 떵떵거리며 설치는 박춘봉은 재수가 없다니까.”
이설아는 괜히 박춘봉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에게 미안한지 합장까지 하며 보이지 않는 그들에게 사과를 했다.
그 모습이 예뻐서 이서우는 그녀의 머리를 만졌다.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것을 좋아해서인지 그녀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그래서 걔가 자기 본명을 밝히길 꺼리는구나.”
“응. 이름도 지 맘대로 바꿨더라고. 박은성이던가. 뭐, 어쨌든 이름에 콤플렉스가 있어.”
“그럴 만도 하네.”
“이름 때문에 재벌 3세 모임에도 안 가더라.”
“나이가 어떻게 돼?”
“30대 초반으로 알고 있는데.”
“나이를 참 헛먹었네, 헛먹었어.”
“그러니까. 사람 망가지는 거 정말 한순간인 것 같아.”
“뭐든 하나에 집착을 하면 이성이 사라지고 마니까. 이성이 빠져 버린 인간은 짐승과 다를 바 없지.”
“맞아. 진짜 춘봉이는 짐승이 된 것 같아.”
우호적인 반응이 많아 이서우와 이설아는 인터넷 접속을 끊었다.
일이 잘 풀려 편안하게 차를 마시고 있으니 김소연이 왔다.
“언니!”
“오늘 두 사람 멋졌어. 내가 3년만 젊었어도 서우에게 고백하고 싶겠더라.”
“언니도 참. 종명 오빠에게 다 일러 준다.”
종종 만나다 보니 이설아는 이서우의 친구들을 오빠라고 불렀다.
박민수나 류종명은 우상과도 같았던 이설아가 오빠라 불러주니 신이 나서 환호성까지 질렀다.
옆에 있던 김소연이 주책이라며 옆구리를 꼬집는 바람에 행복했던 순간이 날아가 버리고 말았지만, 어쨌든 이서우 덕분에 서로 많이 가까워졌다.
“이미 종명 씨도 알아.”
“하여튼 못 말린다니까.”
“종명 씨는 나의 이런 솔직함까지도 사랑해서 괜찮아.”
“으으, 닭살!”
“닭살은 너네 커플이 젤 심하거든! 수천만이 보는 방송에서 그게 뭐니. 아마 수많은 사람들이 닭살을 털어 낸다고 고생 좀 했을 거다.”
“호호호호, 언니도 참.”
전신의 문제와 해커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 있었는데 어느 정도 해결이 되니 마음이 편한지 기분 좋게 웃었다.
물론 아직까지 넘어야 할 산은 있었지만 그것도 해가 바뀌기 전에는 해결될 것 같았다.
“삼일 후면 2차 대결이야. 전신이 독이 바짝 오른 것 같아.”
“언니, 전신이라고 부르지도 말아. 그 이름 인제는 듣기도 싫어.”
“하긴, 나도 그런 인간 망종에게는 전신이라고 불러주고 싶지도 않아. 여튼 춘봉이 그 인간 아주 하이 레벨 지역을 휘젓고 다니더라. 벌써 350레벨에 육박했어.”
“벌써?”
“그렇다니까. 근데 희한하게 아이템을 사들이지 않더라?”
“그래? 이상하네. 독이 바짝 올랐으면 싹싹 긁어모을 텐데.”
“그러니까. 나도 그 점이 이상하게 알려 주려고 왔어. 사고, 되팔기를 반복하면서 실제 춘봉이가 쓴 돈은 얼마 안 되거든. 그러면 돈 때문도 아니고.”
박춘봉이 가장 많은 돈을 투자한 것은 처음 아이템을 살 때뿐이다.
이후로는 되팔기와 사냥으로 획득한 아이템을 팔아서 충당했기에 자신의 돈을 많이 쓰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도 소모품 등을 사기 위해서는 고스란히 주머니에서 골드를 토해 내야 해서 지금까지 꽤 많은 돈을 쓰기는 했다.
하지만 박춘봉의 전 재산의 2퍼센트 미만이어서 그에게는 그다지 부담되지 않았다.
물론 평범한 사람은 평생 만져 볼 수 없는 금액이지만 말이다.
“오빠, 설마 성장하는 아이템을 풀 셋으로 맞춘 건 아니겠지?”
“어쩌면 그럴지도 몰라. 1차 전투에서 느낀 건데, 새로운 기술을 얻은 이유가 300레벨이 돼서 그런 게 아니라 세트 장비의 효과일 거라는 생각이 들어.”
“한두 가지가 아니던데 설마 전부 다?”
“아마 그럴 거야.”
“그럴 수가.”
황궁무고에 들어가서 다양한 세트 아이템을 보았으니 전신의 기술이 아이템의 영향이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두 번의 전투에서 사용한 새로운 기술 모두가 아이템 효과라니.
놀라는 것도 잠시 이설아는 의문이 들어 이서우에게 물었다.
“근데 오빠. 기술은 그렇다 쳐도, 성장하는 아이템은 구하기 힘들지 않아? 그것도 세트로. 황궁무고에서도 보지 못한 것 같은데.”
“나도 그게 궁금해. 대체 어디서 그런 아이템을 얻은 걸까.”
“오빠도 착용하고 있으니 그런 아이템이 더 있을 수는 있겠지만 하필 춘봉이라니.”
“뭐, 그래봐야 내 상대는 안 되니 너무 걱정 마.”
“걱정은 안 해. 그냥 오빠를 귀찮게 하는 게 싫은 거지.”
이서우는 펠렌의 장비 세트가 얼마나 대단한지 안다.
전신보다 레벨이 낮은 상태에서도 압도적인 힘을 발휘했기에 앞으로도 아무 문제없을 거라 여겼다.
하지만 한 가지 신경 쓰이는 점이 있었다.
“귀찮게 하면 썰어 버리면 되니 상관없는데, 문제는 그 자가 4차 전직을 했을 때야.”
“아!”
실제로 전신과 대결을 펼치며 그 차이를 충분히 경험했기에 전신의 레벨이 높다고 해서 문제될 것은 없었다. 하지만 전직은 달랐다. 비약적으로 능력이 발전하고, 새로운 스킬까지 얻을 수 있으니 위협이 될 수도 있었다.
“아마 전신도 그걸 알고 있어서 미친 듯이 레벨 업을 하고 있는지도 몰라.”
“누나, 전신의 행동 앞으로도 잘 파악해 줘. 그렇다고 너무 가까이 가지는 말고.”
“워낙 감각이 좋아서 소환수들도 가까이 접근하는 게 힘들어 지켜보기가 쉽지는 않아. 하지만 사냥하는 몬스터 레벨만 봐도 전신의 성장을 대충 짐작할 수 있으니 변경 사항이 있으면 바로바로 알려 줄게.”
“고마워. 할 일도 많을 텐데 고생이 많네.”
“나야 조용히 정보만 모으면 되지만 앞으로 너희들이 걱정이지.”
두 사람에 대한 반응이 좋지만 여론이라는 것이 언제 변할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좋은 이미지를 끝까지 가지고 가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그걸 알기에 김소연은 두 사람이 걱정되었다.
하지만 계속 어두운 표정을 하고 있다고 일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김소연은 분위기를 환기시키기 위해 화제를 돌렸다.
“참, 너희들도 골드 더 많이 모아 놔. 다시 가격이 오를 테니까.”
“5천 원까지 올랐는데?”
“아마 7천 원까지도 오를걸? 두세 달 지나면 다시 내려가겠지만 5천 원 이하로는 절대 안 떨어질 거야. 그리고 K사 주식과 글로벌사 주식도 좀 사 두고. 이번에 너희들 기자회견 끝나고 주가가 좀 떨어졌더라고. 대표님이야 어차피 주식을 처분하실 분도 아니니 상관없지만 이왕이면 너희들이 가지고 있는 게 나으니까. 나도 좀 질렀어.”
“우리가 헤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가격이 빠진 건가?”
“아무래도 그렇지. 스타들의 연애는 불안한 게 사실이니까. 하지만 사람들이 너희를 잘 몰라서 그래. 아마 시간이 지나면 다시 가격이 치고 올라갈 테니 투자하는 게 좋지. 뭐, 헤어질 생각이 있으면 안 사도 되고.”
“무조건 사야지. 그치, 오빠?”
“오를 게 보이는 데 당연히 사야지!”
확신에 찬 이서우의 목소리에 이설아는 절로 웃음이 나왔다.
“참, 너희들 자산 관리는 누가 해?”
“주선용 변호사님이 하고 계셔.”
“아, 그분?”
“언니도 아나 봐?”
“알지. 유능하신 분이시잖아. 그분이라면 믿고 맡겨도 되지.”
“당장 전화부터 넣어 놔야겠는데?”
“이왕이면 생각났을 때 해. 당분간 또 바쁠 테니.”
“알았어.”
“그럼 난 이만 간다. 춘봉이랑 대결 잘하고.”
“누나도 수고해.”
“언니, 고생해.”
김소연이 가자마자 이설아는 주선용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어 K사와 글로벌사의 주식을 사들이라고 요구했다.
주식을 좋아하지 않지만 이서우도 참여했다.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김소연까지 주선용이라면 믿을 수 있다고 했지만 두 사람은 그에게 모든 자산을 맡기지 않았다.
일부를 떼서 어떻게 운영하는지 상황을 지켜보며 수익률에 따라 추가로 투자여부를 결정했다.
몇 달 되지 않았지만 지금까지는 괜찮았다.
투자라는 것이 장기적으로 보고 여유를 가져야 하지만 단기간에 내는 수익도 중요하다.
무조건 장기적으로 가야하니 그것만 믿고 돈을 묵혀 둘 수는 없었다.
중, 단기 그리고 장기로 구분해 분산 투자하는 것이 요령이었다.
“언니도 갔는데, 인제 뭐할까?”
“그러게. 시간이 좀 늦어서 접속하기도 애매하고.”
“일단 오늘은 좀 쉬자.”
“그럴까?”
두 사람은 진한 키스를 하고는 각자의 방으로 갔다.
잠시 휴식을 취한 그들은 저녁 9시가 다 되어서야 식당에서 만났다.
이번 일로 많이 가까워져서 서로를 바라보는 눈에 사랑이 가득했다.
이런 저런 대화를 하다가 여행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참, 박 대표님이 전용기를 빌려주셔서 24일에 출발하면 된대.”
“날짜는 잘 잡혔네.”
“응. 23일 날 경기 끝나고 바로 출발하면 돼. 몰디브에서도 최고급 별장에 묵도록 배려해 주셔서 보름 동안 편안하게 있다가 올 수 있어.”
이서우는 생애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간다.
첫 여행인데, 에메랄드빛 바다가 있고, 쭉쭉 뻗은 야자수와 형형색색의 산호초로 가득한 몰디브로 가게 되어 기대감이 컸다.
한껏 꿈에 부푼 두 사람은 내일을 준비하기 위해 잠자리에 들었다.
* * *
이서우는 평소처럼 운동을 하고는 아침부터 뉴 월드에 접속했다.
이설아는 방송이 이틀밖에 남지 않아 접속을 하지 못했다.
‘바깥일은 바깥일이고, 퀘스트부터 얼른 마무리하자.’
이서우는 전신이 4차 전직을 하든 말든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전신이 아무리 비약적인 발전을 하더라도 그는 자신의 힘을 믿었다.
하지만 자신감을 뒷받침하려면 레벨 업이 반드시 필요했다.
‘NPC가 머무는 곳이 아니라 유저들이 생활하는 곳에 있다라……. 뭐, 일단 가서 찾아보면 단서가 나오겠지.’
이서우는 정보 길드 마스터가 가르쳐 준 지점을 향해 이동했다.
유저들 속에 지내지만 유저들이 많이 몰리는 곳이 아니라 외지에 있어서 위치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설마 NPC가 유저들이 사는 지역에 있을까 싶어서 이곳으로 숨은 거겠지. 하지만 그게 너의 가장 큰 실수였어.’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곳을 이 잡듯이 뒤지며 의심스러운 장소를 찾았다.
한참을 찾아다닌 이서우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기운이 느껴지는 곳을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