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3
레벨이 갑이다
173화
“어라, 오빠, 일찍 나왔네?”
“생각보다 퀘스트가 빨리 끝났거든.”
“어머, 퀘스트 벌써 끝난 거야?”
“어. 거기가 맞더라고. 마침 제작자가 타이탄을 타고 있지 않아 쉽게 끝냈지.”
“그랬구나. 다행이네.”
“방송 준비는 잘돼 가?”
“이번에는 춘봉이 영상이나 그런 거 보여 주지 않아도 되니 금세 끝났어. 1차전 하이라이트만 살짝 보여 줄 거거든.”
“춘봉이 팬들은 난리가 나겠네.”
“팬도 인제 별로 안 남았을걸?”
“그럼 같이 접속해서 퀘스트 완료부터 받자.”
“응! 어차피 하루 더 있으니 마무리는 내일하면 돼.”
접속한 이서우는 집사에게 장기 출장을 간다고 하고는 2만 골드는 더 맡겼다.
혹시나 또 엘사둔 제국으로 올 일이 있을지 몰라 집은 팔지 않을 생각이었다.
돌아가는 길은 훨씬 빨랐다. 이설아도 장비를 최상급으로 맞춘 터라 이서우의 속도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
“허허허. 이렇게 일을 빨리 처리하다니. 역시 자네야.”
이서우는 제작자가 남긴 자료들을 내밀었다. 어차피 모두 저장이 되어 있어 줘도 상관은 없었다.
그 자료를 본 조세프 백작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이서우는 골렘을 제작할 수 있는 핵심 정보들은 거의 빼 놓았다.
괜히 카이젠 제국에서 골렘을 만든다고 설치면 곤란했다.
“고생했네, 정말 고생했어.”
-‘골렘 제작자를 처치하라.’를 완료하셨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200만 골드를 획득하셨습니다.
-최고급 강화석 100개를 획득하셨습니다.
-명성 30만이 상승합니다.
두 사람의 머릿속으로 아름다운 메시지가 울렸다.
“고생이 많았을 텐데 그만 가서 쉬게나. 난 해야 할 일이 있어서 잠시 자리를 비워야겠네.”
“네, 백작님. 혹시 필요한 일이 있으면 언제든 찾으십시오.”
“당연히 그럴 것이네.”
조세프 백작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힘주어 말했다.
백작 성을 빠져나온 그들은 개척자 도시로 가서 로그아웃을 했다.
대결 전 하루는 온전히 데이트로 보냈다.
이제는 당당히 드러낼 수 있어 선글라스나 마스크 같은 것은 쓰지 않았다.
하지만 가는 곳마다 사인을 해 달라는 통에 애를 먹어야 했다.
“거봐, 오빠 인기도 장난 아니지? 그리고 내 말대로 팬카페도 생겼잖아.”
“이게 어디 나 혼자 된 건가? 너랑 사귀고 있으니 다들 좋게 봐주는 거지.”
이서우의 외모는 그다지 특출나지 않다.
남자답게 생겼다는 정도?
살이 붙지 않았을 때는 환자처럼 보였지만 지금은 탄탄한 근육까지 붙어 남자다운 인상이 강했다.
사인 세례에 시달린 두 사람은 외곽으로 나가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드디어 2차 대결 날이 다가왔다.
2차 대결 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전신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을 거라 여겼는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춘봉이를 응원하는 손 글씨도 많이 보이네. 쓰레기 같은 짓을 했을 거라는 게 뻔히 보이는데도 응원을 하고 싶을까?”
“내 말이. 난 오늘 완전히 오빠의 독무대가 되는 줄 알았거든. 그런데, 생각보다 많이 모였더라고. 정황상 뻔히 춘봉이가 저지른 일이라는 걸 알 텐데 왜 응원하는 거지? 협박범을 응원하고 싶나.”
“춘봉이만 미친 듯이 쫓아다녔으니 그가 사라지면 자신의 존재가치도 무너진다고 생각했겠지. 아니면 돈으로 매수가 되었거나.”
“난 두 번째 이유에 더 마음이 가는데?”
“나도 사실 그럴 것 같아. 돈이 아니면 저렇게 하는 건 힘들겠지. 그게 아니라면 옳고 그름도 판단할 수 없을 정도로 눈이 어두워져 광신도 집단이 되었거나.”
이서우는 대기실에 앉아 전신을 응원하는 각종 도구들을 보며 씁쓸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오빠, 그럼 쉬고 있어. 난 나가 볼게.”
“파이팅!”
“응. 오빠도 파이팅!”
서로를 응원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는 사랑이 가득 담겨 있었다.
이서우는 대기실에서 이설아가 무대를 이끌어 가는 것을 포근한 시선으로 지켜보았다.
사람들은 이설아의 한마디에 환호했고, 때론 웃기도 했다.
1차 대결의 하이라이트가 5분 정도 이어졌다.
그리고 드디어 선수 입장이 선언되었고, 이서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차분히 무대로 나갔다.
이설아가 전신에게 다가가 2차전을 맞게된 소감을 한 마디 해 달라고 하자 전신이 히죽거리며 말했다.
“죽여주지!”
“네에, 아주 적극적인 태도네요. 그럼 이번에는 전장의 지배자를 만나 보겠습니다. 2차 전 소감 한마디 해 주세요.”
“절 죽인다고 하셨는데, 최대한 살살해 주세요.”
“호호호호. 센스 넘치시네요.”
관중들도 웃음을 터트렸다.
일부는 뭘 살살해 달라는 것이냐며 이서우의 말을 받아치기도 했다.
“자, 그럼 두 선수는 각자의 자리로 가 주십시오.”
이설아의 멘트에 이서우는 자신의 위치로 갔다.
“대결을 시작하겠습니다!”
이설아의 대결 선언과 함께 이서우는 곧바로 필살기를 사용했다.
온몸에 있던 힘이 폭발하자 그의 스피드가 비약적으로 빨라졌다.
이서우가 초반부터 강력한 힘을 사용할 줄 알았던 전신은 대결 멘트가 끝나자마자 청룡의 힘을 사용했다.
파지지지직! 파지지직!
수많은 번개가 쏟아졌다.
하지만 이서우는 유유히 피해 전신에게 접근했다.
전신은 첫 공격이 완전히 끝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바로 적룡의 힘을 사용했다.
이서우에게 적룡의 힘은 아무런 제약이 되지 못했지만 잠깐 동안 움찔하는 효과가 있었다.
그때, 전신은 황룡의 힘을 썼다.
동시에 3가지의 힘을 다 사용한 것이다.
이서우는 찰나지간 움찔했을 뿐인데 번개 공격을 허용하고 말았고, 황룡의 힘도 온몸으로 받아내야 했다.
하지만 초반에 마나가 풀로 찬 상태여서 이서우는 평소 필살기를 쓸 때보다 더 많은 마나를 소모해 위기에서 벗어났다.
그 대가는 컸다. 순식간에 60만에 가까운 마나가 소모되어 30만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그나마 300레벨을 찍고 전체 능력치가 소폭 상승했기에 예전보다 마나가 조금 더 여유가 있었다.
이서우는 더 이상 시간을 끌고 싶지 않아 남은 30만의 마나를 모두 쏟아부어 전신에게 접근한 뒤 심장으로 대검을 찔러 넣었다.
푹!
무서운 스피드와 태산 같은 힘이 합쳐지니 순식간에 심장이 뚫려 버렸다.
전신이 준비한 회심의 방어구도 소용이 없었다.
“컥.”
털썩!
전신은 힘없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의 눈빛은 불신의 빛이 역력했다.
그것은 관람을 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방송을 보면서 설마설마했는데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니 얼마나 두 사람의 차이가 큰지 알 수 있었다.
물론 사람들은 이서우가 90만에 가까운 마나를 단 1분 동안 사용했다는 걸 알지 못했다.
어쨌든 그들의 눈에는 압도적인 힘의 차이로 이서우가 승리한 것만 보였다.
정적이 한참이나 이어지고 뒤늦게 사람들이 환호했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전장의 지배자! 전장의 지배자! 전장의 지배자!”
“전장의 지배자야 말로 진정한 전신이다!”
“맞아! 이제 전신은 전장의 지배자다!”
사람들은 진정한 전신이 누군지 알게 되었다.
전신의 팬들은 쓸쓸히 퇴장했고, 전신도 그대로 로그아웃을 해 버렸다.
2차전도 생방송으로 진행이 되었는데 이설아가 나와서 동영상을 틀고 대결이 종료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이 20분을 넘지 않았다.
정작 대결 자체는 1분밖에 걸리지 않아 사람들의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3차전은 볼 필요도 없이 전장의 지배자가 승리하리라는 것을 모두가 짐작할 수 있었다.
“오빠, 고생했어.”
“뭔가 또 준비한 게 있나 싶었는데, 기존에 있던 힘을 한 번에 다 사용하는 수준에 지나지 않아서 금방 끝났어.”
“로그아웃할 때 그 억울한 표정을 오빠가 봤어야 했는데.”
“억울한 표정을 지어? 춘봉이가?”
“응. 엄청 억울한 표정을 짓더라고.”
“허, 참.”
이서우는 어이가 없어서 말을 잇지 못했다. 아니, 나쁜 짓이라고는 본인이 직접 다 해놓고 억울해하다니.
“오빠, 춘봉이 생각은 그만하자. 그것보다 오늘 가게 가기로 했잖아. 얼른 나가자.”
“그래.”
일주일에 한 번씩은 이서우의 부모님이 운영하는 접속 방에 간다.
잠깐 머물다 올 때도 있고, 바쁘면 건너뛸 때도 있지만 이서우의 부모님은 이설아를 아주 살갑게 대한다.
방송에서 공개적으로 연애를 한다는 것을 발표한 뒤로는 더욱 좋아했다.
“어머님, 아버님, 저희 왔어요!”
“아이구, 바쁜데 뭘 또 이렇게 찾아왔어?”
“바빠도 어머님, 아버님은 찾아봬야죠.”
이설아는 마치 며느리라도 된 것처럼 굴었지만 한정옥 여사나 이갑수는 그 모습이 더 좋은지 얼굴에서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어머니, 아버지는 아들보다 설아가 더 좋으신가 봅니다?”
“이 녀석아, 당연하지. 이렇게 예쁘고 참한 아가씨가 널 구제해 줬는데 당연히 좋지!”
“설아가 먼저 고백했거든요!”
“칠칠맞은 녀석. 사내 자식이 확 리드를 했어야지. 쯧쯧쯧, 이 아빠는 젊을 때 안 그랬다.”
“어머, 이이 좀 봐. 그렇게 나 쫓아다니면서 매달려 놓고는.”
“하하하하, 아버지, 언제나 진실만을 말해야 한다면서요. 이러시기예요?”
“험, 험. 난 손님이 많아 내려가 보마.”
“하여튼 주책이라니까. 같이 갑시다.”
“어머님, 아버님, 조금 더 쉬시다 가시죠.”
“아니다. 얼굴 봤으니 됐다. 일이 바빠서 직원들이 고생하고 있으니 내려가 보마. 우리 서우 잘 부탁한다.”
“네, 어머님. 염려 마세요.”
한정옥 여사는 이설아의 손을 꼭 잡고는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이 접속 방의 주인이 전장의 지배자라는 게 소문이 나자 평일이고 주말이고 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많았다.
두 사람도 잠깐 대화를 나누고는 아래층으로 내려와 1일 아르바이트생으로 일했다.
그렇게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그들은 다시 K사로 돌아가 일에 매달렸다.
* * *
“젠장! 젠장! 젠장!”
접속을 종료한 전신의 눈빛은 분노로 이글거렸다.
그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져서 온 집안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온 벽을 미친 듯이 때려 주먹에 피가 날 정도였다.
“이대로 놈에게 수모를 당한 채로 있을 수는 없어. 방법은 하나야.”
전신은 그동안 망설였던 것을 실행에 옮기기로 결정을 내렸다.
시간이 지난 뒤 전신은 다시 뉴 월드에 접속했다.
무대는 이미 사라지고 없어 조용히 그곳을 빠져나갔다.
그가 간 곳은 하이 레벨 지역이었다.
“이럴 때 효주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전신은 동생을 떠올리며 아쉬워했다.
전신이 범죄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유 때문에 박효주는 집을 나가 버렸다.
지금까지는 가장 좋아하는 오빠고, 가족들에게 버림받은 것이 안타까워 지겨워도 도와줬지만 범죄에 연류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그럴 수는 없었다.
전신은 모든 미련을 버리고 길을 떠났다.
지금 그의 머릿속에는 오직 강해지는 것밖에 없었다.
그가 유유히 사라졌다.
그가 간 곳은 바로 관리자가 있는 방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