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이 갑이다-179화 (179/341)

# 179

레벨이 갑이다

179화

“일단 몸부터 추스르세요.”

“네? 하지만…….”

“저희는 다른 곳에 가지 않을 겁니다. 피욘 님과 인연이 있으신 것 같은데, 저 또한 깊은 인연이 있으니 염려 마세요.”

“동료들이 위험해요!”

“동료들이 위험하다고요?”

엘프의 얼굴이 말이 아니어서 쉬게 한 뒤 자초지종을 들을 생각이었는데, 엘프는 필사적이었다.

혼자 앉을 힘이 없어 이서우는 그녀의 목과 등을 받쳐주었다.

“피욘 님은 저희 부족의 최고 전사세요. 저와 동료들이 그분에게 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물의 엘프 부족을 구출하라.

대륙은 인간과 유사인종, 몬스터들이 조화를 이루며 살아왔다.

그런데 어느 날 인간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그 균형이 깨어졌다.

유사인종들은 인간들이 없는 곳으로 이동했다.

땅, 불, 바람, 빛의 엘프는 긴 바다를 건너지 못해 자바 대륙 깊숙한 곳에 숨어들었지만 물의 엘프는 바다를 제집처럼 드나들 수 있어서 하이 레벨 지역까지 가게 되었다.

그러나 하이 레벨 지역은 결코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다른 엘프들의 텃새도 심했지만 그보다 더 지독한 존재들이 살고 있었다.

하이 레벨 지역에 사는 엘프들은 이미 자신들 만의 생존법이 있었지만 자바 대륙을 벗어난 물의 엘프들은 생존조차도 쉽지 않았다.

결국 관리자들에게 포로로 잡혀 남성 엘프들은 신전 노예로 끌려갔고, 여성 엘프는 성노예가 되었다.

그중 몇몇은 탈출에 성공했지만 그들이 갈 만한 곳은 많지 않았다.

고민 끝에 다시 돌아온 그들은 인간들이 접근하지 않는 드래곤 숲에 오게 되었고, 작은 마을을 이루며 삶을 유지했다.

하지만 그 생활도 오래가지 못했다. 몬스터들의 잦은 공격으로 결국은 포로로 잡혀 가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겨우 살아남은 웨디아는 동료들을 구하기 위해 애를 써 봤지만 심한 부상을 입고 도망치는 신세가 된다.

이제는 죽었구나, 싶을 때 당신을 만나 피욘의 이름을 듣게 되면서 다시금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난이도 : B+++

완료 조건 : 웨디아를 포함한 물의 엘프 부족 10명을 구하라. 최소 5명은 구해야 성공.

성공 시 보상 : 5레벨 경험치. 중급 물의 정수 50개. 세계수차 100그램.

실패 시 : 7레벨 다운.

“제가 동료들을 구해 드리겠습니다. 어느 쪽으로 가면 됩니까?”

“저, 저쪽…….”

“알겠습니다. 제가 반드시 구출해 오겠습니다.”

“가, 감사합니다.”

웨디아는 이서우의 확신에 찬 대답에 미소를 지으며 기절했다.

기운이 많이 빠져 버티기 힘든데, 동료들 생각에 눈조차 감지 못한 것이었다.

“혹시 몬스터들이 올지 모르니 두 사람은 이곳에서 최대한 빠져서 웨디아를 지키고 있어.”

“오빠 혼자 가려고?”

“퀘스트를 준 엘프가 죽으면 모든 게 끝이니 두 사람은 웨디아와 같이 몸을 숨기고 있어.”

“하긴, 혹시 강한 몬스터가 오면 나나 언니 혼자서는 무리니까. 알았어. 그럼 조심히 다녀와.”

“그럴게.”

이서우는 이설아에게 미소로 화답하고는 조용히 웨디아가 가리킨 방향으로 이동했다.

‘한 사람은 무조건 확보했고, 나머지 9명을 구해야 하네. 시간을 끌수록 실패 확률이 올라가니 서두르자.’

늦은 밤이었지만 이서우의 시야는 대낮처럼 밝았다. 통찰력이 일정 경지에 오른 덕분이었다.

‘덩치가 엄청난 놈들이네. 숫자는 다섯 정도. 나쁜 놈들, 아주 짐짝처럼 질질 끌고 가다니.’

흔적만으로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훤히 알 수 있었다. 문제는 너무 또렷하게 머릿속에 떠올라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는 것이다.

이서우는 흔적을 따라 빠르게 움직였다.

‘저놈들이네.’

1시간을 쫓은 끝에 다섯 마리의 드레이크를 발견했다.

엘프들은 드레이크 꼬리에 묶여 낚싯줄에 딸려 오는 물고기처럼 축 늘어져 있었다.

‘덩치도 저렇게 큰 놈들이 대체 왜 엘프들을 죽이지 않고 잡아 가는 거지?’

이서우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10미터가 넘는 드레이크가 대체 엘프를 왜 살려서 잡아 가는 것일까.

‘일단 엘프들부터 구하자.’

호기심을 해결하는 게 당장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엘프들을 구해 퀘스트를 완료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하지만 바로 그때였다.

끼익! 끼익! 끼익!

‘설마, 와이번?’

공중에서 갑자기 다급하면서도 고음의 울음소리가 들리자 이서우는 크게 당황했다.

고개를 들어보니 높이 솟은 나무 위에 와이번 세 마리가 이서우를 쳐다보고 있었다.

‘젠장. 파수꾼 같은 놈들이군. 그렇다는 것은 와이번과 드레이크가 서로 돕는 관계라는 뜻인데…….’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지만 드래곤 숲은 처음이어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둬야 했다.

이서우는 서둘러 드레이크들부터 처치하기 위해 달렸다.

와이번의 경고성 외침을 들은 드레이크는 이서우를 발견하게 걸음을 멈추었다.

이서우가 달려오고 있었지만 드레이크들은 마치 ‘조그만 놈이 어디서 겁도 없이 덤벼!’라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푸른색으로 빛나는 대검이 이서우의 손에 들리는 순간 드레이크들은 양 날개를 활짝 펴서 몸을 감쌌다.

날개가 있어도 짧아서 날지 못했지만 대신 강력한 방어구 역할을 하기 때문에 전투에 상당히 유용했다.

이서우는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마나 탄을 쏘아 보냈다. 커다란 수박만 한 마나 탄이 날아가 날개에 부딪치자 ‘펑!’하는 소리와 함께 드레이크의 몸이 휘청거렸다.

휙, 휙, 휙, 휙, 휙!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서우는 드레이크의 숫자만큼 다시 마나 탄을 쏘았다.

이번에는 조금 더 효과를 높이기 위해 마나를 2배나 더 실었다.

쿵!

처음 마나 탄 공격을 받았던 드레이크가 뒤집어졌다.

하지만 다른 네 마리의 드레이크는 다리가 살짝 들리기만 했을 뿐 멀쩡했다.

크게 휘청거린 드레이크를 보며 가볍게 상대할 존재가 아니라고 판단한 네 마리는 강한 힘을 실어 방어했지만, 첫 공격을 받은 드레이크는 ‘이 정도면 되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을 하다가 당한 것이었다.

이서우는 혼란한 틈을 타 크게 도약하며 뒤집어진 드레이크의 배에 대검을 깊숙이 찔러 넣었다.

강한 드레이크의 가죽이 마나 블레이드의 힘에 종잇장처럼 찢어졌다.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이서우는 대검을 세로로 그어 배를 길게 갈라 버렸다.

-드레이크를 처치했습니다.

-4억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드레이크 뼈를 획득했습니다.

-드레이크 가죽을 획득했습니다.

-8골드를 획득했습니다.

이벤트였지만 하이 레벨 지역이 아니어서 경험치는 생각만큼 좋지 않았다.

하지만 이서우는 퀘스트가 있어 몬스터 경험치에 그다지 연연해하지 않았다.

동료가 너무 쉽게 죽자 다른 드레이크들은 위기의식을 느끼고 가장 강력한 공격을 꺼내 들었다.

정예 몬스터가 아니어서 필살기는 없지만 그들도 꽤 위협적인 공격 수단이 있었다.

네 다리가 그리 길지 않지만 두껍고 튼튼하다. 꼬리는 길어서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었다.

적을 밟거나 꼬리를 채찍처럼 사용하는 방법도 위협적이지만 진짜는 바로 입에서 뿜어지는 불공격이었다.

드레이크 넷이 재빨리 이서우의 앞뒤좌우에 섰다. 그리고는 큰 입을 벌려 거대한 불을 뿜었다.

날 수 없는 용이라 불리지만 드레이크가 용이라 불리는 이유가 바로 불을 쏘아 보낼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화르르르르륵!

거대한 불덩어리 4개가 이서우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불덩어리가 가까워지자 용광로 앞에 있는 것처럼 얼굴이 화끈거렸다.

마나를 이용해 몸을 보호하자 그제야 한 결 시원해졌다.

그리고 잠시 후, 이서우는 대검에 마나를 싣고는 크게 원을 그리며 힘껏 휘둘렀다.

펑! 펑! 펑! 펑!

마나가 잔뜩 실린 대검과 불덩어리가 마주칠 때마다 고막을 찢어놓을 듯한 폭발음이 들렸다.

폭발음과 함께 온 사방이 화염으로 뒤덮였다.

순식간에 주변이 쑥대밭이 되었다. 특히 이서우가 있던 곳은 폭발의 여파로 먼지구름이 자욱했다.

드레이크 들은 승리를 자신하고 회심의 미소를 짓는데, 와이번이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냈다.

키엑! 키엑! 키엑!

울음소리와 함께 이서우가 화마火魔를 뚫고 나와 드레이크들을 차례차례 처치했다.

와이번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승리를 너무 자신하면서 방어가 전혀 되지 않아 순식간에 죽어 버린 것이었다.

-드레이크를 처치했습니다.

-4억의 경험치를 획득하셨습니다.

-드레이크 심장을 획득하셨습니다.

-드레이크 피를 획득하셨습니다.

-8골드를 획득하셨습니다.

-드레이크를 처치했습니다.

-4억의 경험치를 획득하셨습니다.

-드레이크 피를 획득하셨습니다.

-드레이크 가죽을 획득하셨습니다.

……후략……

드레이크를 처치했다는 메시지가 네 번이나 울리고서야 소리는 멈췄다.

하지만 이서우의 표정이 보기 흉하게 일그러졌다.

“저것들이!”

와이번 3마리가 각각 발 하나에 1명씩 총 6명의 엘프들을 잡아 멀리 날아가고 있는 게 보였다.

이서우가 드레이크를 처치하는 틈을 타서 엘프를 데려간 것이었다.

3명씩 데려가려고 끙끙 대다가는 이서우에게 당한다는 것을 알았는지, 아니면 발이 2개밖에 없어서 3명을 데려갈 수 없었는지는 모르지만 이서우가 두려워 빨리 움직인 것만은 틀림이 없었다.

“어떡한다.”

이서우는 잠시 고민했다.

5명만 구해도 퀘스트는 완료할 수 있지만 1명이 부족했다.

‘피욘과의 인연을 생각해서라도 웬만하면 다 구해야 해.’

퀘스트를 완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연이 있는 피욘과의 관계도 중요하게 여겼다.

이서우는 백호를 소환했다.

추적에도 일가견이 있는 백호지만 분초를 다투는 일이어서 소환하지 않았는데, 부상을 입은 엘프들을 데리고 갈 수 없어 부른 것이었다.

“주인님, 부르셨어요?”

“그래. 백호야 저기 멀리 날아가는 와이번 보여?”

“네. 희미하지만 보이네요.”

“저놈들을 쫓아가. 난 잠시 다녀올 테니.”

“네. 주인님이 찾기 편하시도록 놈들을 쫓아갈게요.”

“부탁해.”

“네, 주인님!”

백호는 이서우의 의도를 단번에 알아차리고는 크게 도약해 나무 꼭대기로 사뿐히 올라섰다.

어둠속으로 빠르게 사라지는 백호를 보며 이서우는 엘프들이 쓰러진 곳으로 갔다.

“이보세요, 정신 차리세요!”

흔들어도 대답이 없자 이서우는 회복 약을 먹였다.

남자 하나와 여자 둘이었는데, 웨디아처럼 심한 공격을 받지 않아서인지 잠시 후 셋 모두 깨어났다.

“다, 당신은 인간…….”

“웨디아 님이 보내셨습니다. 안심하세요.”

“웨디아가요?”

“네. 그러니 안심하세요.”

“다, 다른 형제, 자매들은 어떻게 됐죠?”

“와이번이 데려갔습니다.”

“그럴 수가…….”

“일단은 제 친구가 그들을 쫓고 있으니 안심하십시오. 여러분들을 웨디아 님에게 데려다 주고 바로 구출해 올 테니까요.”

“가, 감사합니다.”

한 여성 엘프가 걱정과 염려가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살며시 떨구었다.

이서우가 구해 준다고 하니 예의상 고맙다는 말은 했지만 살아 돌아올 확률이 낮다는 것을 알기에 근심이 되는 것이다.

“일단 여기서 빨리 벗어나야하니 한 분은 제게 업히시고 다른 분은 제가 안겠습니다.”

“네? 하지만…….”

“지금은 시간이 없습니다. 여러분들을 최대한 빨리 데려다 놓아야만 제가 동료들을 구할 수 있습니다.”

“네. 알겠어요.”

남자 엘프가 조금 더 무겁기에 등에 업혔고, 여성 엘프 둘을 오른손과 왼손으로 안았다.

“그럼 갑니다. 꽉 잡으세요!”

“네.”

대답소리가 들리자마자 이서우는 속도를 높였다. 추적을 하며 움직일 때는 주변을 살펴야 해서 속도를 낼 수 없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이서우는 파티 채팅 창으로 위치를 물었고, 20분을 쉬지 않고 달려 도착했다.

“웨디아!”

“샤는느!”

두 사람은 서로를 부둥켜안고 등을 토닥여 주었다.

“다른 형제, 자매들은.”

“그렇지 않아도 제 친구를 붙여 놨습니다. 위치는 알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다른 엘프들을 구하러 간다고 했지만 웨디아마저도 모두를 구해 올 가능성이 낮다고 여겼다.

하지만 진심이 묻어나는 이서우 앞에서는 그런 모습을 보일 수 없었다.

그렇다고 희망을 전혀 놓을 수도 없었기에 물의 엘프들은 서로를 다독였다.

“시간이 없으니 일단 동료들부터 구하러 가겠습니다.”

“네. 부탁드릴게요!”

“다녀올 테니 저들을 잘 지키고 있어.”

“응, 오빠. 걱정 마.”

이서우는 다시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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