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1
레벨이 갑이다
181화
“마스터 님. 1위부터 4위까지의 길드가 관리하는 곳 외에 나머지 스물여섯 곳에 길드원들을 다 보냈습니다.”
“잘했다. 꼬장을 잘 부리면 아이템과 골드 보상이 있다는 것도 확실히 전했겠지?”
“물론입니다. 그 말을 듣고 다들 의욕이 넘치는 표정이었습니다.”
“잘했다. 우리보다 약한 놈들이 마을을 운영하는 꼴은 볼 수 없지. NPC들과 최대한 부딪치지 않게 신경 써야 한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마을에서는 조용히 지내고, 사냥터에서만 스틸에 전념하라고 지시를 내려놓았습니다.”
“좋아. 감히 이 안영훈 님을 건드리다니. 아주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해 주마!”
길드 순위 5위의 안개 길드 마스터 안영훈.
전장의 지배자와의 전쟁을 선포한 그는 이서우가 혼자라는 점을 이용해 다양한 방법으로 압박하는 것을 선택했다.
아무리 길드 순위 5위라고 해도 전장의 지배자가 싸우는 것을 이미 봤기 때문에, 수십만에 달하는 길드원 전체를 데려가지 않으면 소용이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엄청난 피해가 있을 텐데, 과연 길드원들이 48시간 접속 제한 페널티를 계속 감수하면서 전장의 지배자와 싸우려 할까? 특히 이벤트 기간에?
이익을 좇아 모인 집단이기에 안영훈은 절대로 그럴 가능성은 없다고 여겼고, 그 때문에 이 같은 방법을 동원한 것이다.
‘혼자 감당할 수 있나 보자.’
스물여섯 곳에 골고루 인원을 보냈다. 몸을 쪼개지 않는 이상 동시에 모든 곳을 감당할 수는 없다.
안영훈도 그것을 노리고 이번 일을 계획했다.
‘네놈에 대한 원성이 천둥소리보다 더 커지겠지. 네놈의 명성도 이제 곧 끝이다.’
안영훈의 입가에 승리의 미소가 맺혔다.
* * *
이른 새벽, 이서우는 엘프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이동할 준비를 했다.
하지만 그 전에 웨디아랑 대화를 나누었다.
“피욘 님과 물의 엘프 부족 상당수는 이미 안전한 곳에 있습니다.”
“형제, 자매들도 당신께서 구해 주신 건가요?”
“그렇습니다. 우연히 마주쳤고, 그들을 구해 낼 수 있었습니다.”
“정말 뭐라 감사드려야 좋을지 모르겠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인연이 닿은 것이죠.”
이서우는 겸손하게 말했고, 웨디아는 그런 그가 더욱 믿음직스러웠다.
“웨디아 님, 혹시 이곳에서 얼마나 지내셨는지 여쭤 봐도 될까요?”
“저희는 대략 2년 전쯤부터 이곳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바다를 건너온 뒤 여러 곳을 다녀 봤지만 사람들이 워낙 많아 달리 갈 곳이 없었거든요.”
“그랬군요. 그러면 이곳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계시겠네요?”
“안전한 곳을 찾아야 했으니 어느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혹시 궁금한 것이 있으신가요?”
“네. 다름이 아니라 과거 전설적인 인물이었던 펠렌 님의 흔적을 찾고 있습니다.”
“아!”
웨디아는 펠렌이라는 이름에 탄성을 터트렸다.
겉으로 보기에는 20대 초중반으로 보이지만 그녀의 나이는 250살이 넘었다.
엘프는 보통 1천 살까지 살기 때문에 젊은 축에 속했지만 대륙의 역사에 대해서는 충분히 알 만한 나이였다.
“혹시 들어 보셨습니까?”
이서우는 웨디아가 뭔가 알고 있는 것 같자 기대를 가지고 물었다.
그녀가 이서우의 눈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에 대해 저에게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물론이죠. 저희 형제, 자매들을 구해 주셨는걸요.”
하이 레벨 지역에서 들려온 안 좋은 소식에도 불구하고 이서우는 활짝 웃었다.
어차피 유저들과의 문제는 조금 짜증은 나겠지만 그다지 해결하기 어렵지 않을 거라 여겼다.
하지만 펠렌의 흔적은 찾는 것은 자칫 수개월이 걸릴 수 있어 걱정을 많이 했었다.
“혹시 지도에 표시를 해 줄 수 있을까요?”
이서우는 인벤토리에서 지도를 꺼내 그녀에게 보여 주었다.
힐끗 지도를 보더니 손가락을 한 지점에 가리켰다.
“사실 지도가 없어도 쉽게 가르쳐 드릴 수 있어요. 그곳은 드래곤 숲 정중앙에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분의 흔적은 중앙 여러 곳에 분포되어 있어 은인께서 찾는 곳이 어딘지 정확하게 알려 드릴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아닙니다. 큰 도움이 됐습니다.”
“설마, 그곳으로 가시려는 건가요?”
“네.”
“우연히 그곳을 스쳐 지나간 적이 있었는데, 너무 기분이 안 좋았어요. 불길한 기운이 가득하달까요. 웬만하면 가지 않으시는 게 좋을 텐데…….”
“꼭 가야 하는 일입니다.”
“그렇군요. 꼭 가야 하는 곳이라면 부디 무사하기를 물의 세계수께 기원 드릴게요.”
“고맙습니다.”
이서우는 그녀의 순수하고 따뜻한 마음에 고마움을 전했다.
사실, 이서우는 변두리부터 조금씩 들어가면서 찾아보려 했었다.
그게 방향을 잡는 데에도 좋았고, 순서대로 살펴보기도 좋았다.
‘계획대로 했다가 시간 엄청 낭비할 뻔했네. 피욘과의 인연이 이렇게 이어지다니. 운이 좋았어.’
웨디아의 걱정과 달리 이서우는 오히려 운이 좋았다며 안도했다.
“참, 저희가 아무래도 급한 일이 생겨 움직여야 할 것 같습니다. 움직일 수 있으신가요?”
“네. 주신 약이 효과가 좋은지 많이 좋아졌습니다.”
“그럼 근처 마을까지 가서 마차를 타고 가도록 하겠습니다.”
“네.”
이서우는 백호를 소환했고, 김소연도 탈것을 소환했다.
다섯 명씩 나눠서 태우고는 근처 마을까지 열심히 달렸다.
드래곤 숲으로 오면서 마을을 등록해둬서 몇백 킬로미터만 가면 된다.
엘프들이 아직 완벽하게 낫지 않아 조심스럽게 달린다고 반나절이나 소요되었다.
마을에 도착해 이동수단을 타고 조세프 백작이 다스리는 다빙턴까지 논스톱으로 갔다.
다시 반나절 만에 목적지에 도착한 일행은 빠른 통과 과정을 거치고 개척자 도시로 진입했다.
엘프들 지역으로 가자 마침 피욘이 있었다.
“피, 피욘 님!”
“웨, 웨디아, 정말 웨디아구나! 죽지 않고 살아 있었어!”
피욘은 웨디아를 끌어안았다. 너무 기쁘고 놀라 그의 음성은 심하게 떨렸다.
피욘은 헤어진 지 2년도 더 지났으니 웨디아가 살아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고작 30명 정도가 도망갔고, 워낙 험난한 곳이어서 찾을 생각도 하지 못한 것이다.
그는 이제 물의 엘프 부족을 이끌어야 하는 장로의 위치에 있어서 다른 엘프들을 희생해서까지 무리하게 일을 추진할 수 없었다.
형제, 자매들이 살아있다는 단서라도 있다면 대륙을 샅샅이 뒤져서라도 찾았을 텐데, 엘프를 봤다는 사람을 찾지 못했다.
그랬는데 이렇게 살아 돌아오다니.
“다들 고생했다. 정말 고생했어. 설마, 이들을 데려온 것이 서우 님이십니까?”
“네. 맞아요. 피욘 님. 저희들을 구해 주신 분이 바로 이분이세요.”
웨디아가 적극적으로 나섰고, 피욘은 고마움이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어느새 인간들의 문화를 익혀 자연스럽게 몸이 반응했다.
“정말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어찌 이 은혜를 다 갚을지…….”
“부담 갖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닙니다. 저희의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 찾아 주십시오. 서우 님이 말씀하시는 거라면 무엇이든 돕겠습니다.”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엘프들은 결코 빈말을 하지 않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도움이 필요할 때 꼭 찾아뵙겠습니다.”
“부탁할 일이 아니라도 언제든 찾아오십시오. 서우 님의 위해 세계수 차를 언제든 준비해 두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전 급한 일이 있어 이만 물러나 보겠습니다.”
“이거 제가 바쁜 분을 잡고 있었네요. 그럼 멀리 나가지 않겠습니다.”
“네. 재회의 순간을 만끽하셔야죠. 그럼 이만…….”
이서우는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는 엘프의 영역을 벗어났다.
“오빠, 어디부터 갈 거야?”
“누나, 지금 안개 길드 마스터는 어디에 있어?”
“던전 사냥 중이야. 부마스터도 그렇고.”
“아이디가 뭐야?”
“안영훈.”
“귓말 한번 해 볼게.”
귓말을 보냈지만 안영훈은 응답이 없었다.
“부길마도 알려 줘.”
“조동찬이야.”
부마스터도 마찬가지였다.
귓말도 소용이 없자 이서우는 메시지까지 보내 놓았다.
“일단 마을을 쫙 훑자.”
“마을을 싹 다? 그것도 혼자서?”
“짜증나지만 일단 손을 써 놔야지.”
“그럼 난 걔들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볼게. 기본적인 자료는 있는데, 조금 더 알아봐야겠어.”
“혹시 전쟁의 규모가 커질 수도 있으니 길드원들에게는 잠시 탈퇴를 하라고 그래. 어차피 NPC들과는 이제 관계 형성도 잘해 뒀을 테니 괜찮을 거야.”
“길드에 가입돼 있을 때보다야 못하겠지만 친밀도를 많이 쌓아 뒀으니 괜찮긴 할 거야. 그럼 그렇게 말해 둘게.”
“나도 언니 도울게.”
“그게 낫겠네. 그럼 수고 좀 해 줘.”
“응.”
싸움을 위해 만든 길드가 아니기에 괜히 자신 때문에 피해를 보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조치를 취한 이서우는 개척자 도시를 나서자마자 가장 가까운 마을로 갔다.
안개 길드가 어디서 말썽을 피우는지 굳이 외울 필요도 없었다.
길드 서열 1위에서 4위까지 관리하는 곳 외에는 전부 그랬으니까.
‘운영권을 못 받은 것 때문에 꼬장을 부리시겠다? 평소 행실이나 신경 쓸 것이지. 더러운 수를 쓴다면 그에 맞게 응징해 줘야지.’
이서우는 이번 일을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혹시 다른 길드들도 안개 길드처럼 행동할 수도 있어 본보기로 철저하게 응징할 생각이었다.
개척자 도시와 가까운 마을은 주로 규모가 작고, 출몰하는 몬스터 레벨도 100~150정도였다.
초보자들이 사냥하기 좋은 곳이어서 많이 찾고 있었다.
그런 곳에서 대형 길드가 꼬장을 부리면 아무래도 사냥하기가 힘들었다.
마을과 50킬로미터가 남은 지점에 마침 파티 하나가 몬스터를 스틸하는 모습이 보였다.
곧장 실랑이가 벌어졌다.
분위기가 갈수록 험악해지더니 스틸하던 자들이 PK를 걸었다.
모든 것을 지켜본 이서우는 화가 나 필살기를 써서 거리를 좁혔다.
“이게 무슨 짓이지?”
“넌 뭔데 우리 일이 끼어들어? 너도 죽고 싶어?”
한창 말싸움을 하다가 화가 나서 칼을 휘두르려던 찰나라, 이서우가 얼마나 빠른 속도로 다가온 것인지 그들은 알지 못했다.
근처에서 사냥을 하다가 끼어든 것이라 여겼다.
“죽여 봐.”
“잘됐네. 안 그래도 심심했는데, 어디 죽어 봐라.”
대충 봐도 레벨은 170~190정도였다.
장비를 보면 3차 전직 유저는 아니었고, 150이상은 되어 보여 어렵지 않게 추측이 가능했다.
-논스탑 님이 PK를 선언했습니다.
메시지와 동시에 한 파티가 스킬을 쓰며 이서우에게 달려왔다.
한데, 너무 느려서 하품이 나올 정도였다.
공격을 하는 쪽은 이서우가 몸이 얼어 반응조차 하지 못한다고 여겼다.
검을 휘두르면서 낄낄거리며 웃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이서우의 대검이 움직였다.
슥슥슥슥슥!
정확히 다섯 번이었다.
공격이 성공할 것으로 철석 같이 믿고 있던 자들은 허무하게 목숨을 잃고 말았다.
“가,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안개 길드들이 꼬장을 부리는 것 같으니 조심하십시오.”
“네.”
그들은 이서우의 등만 봐서 그가 전장의 지배자인지 알지 못했다.
마지막 말도 얼굴을 보고 한 것이 아니어서 그저 고레벨 유저가 지나가던 길에 도와준 것이라 여겼다.
이서우는 스물여섯 곳의 마을을 돌아다니며 스틸을 하는 안개 길드원들을 죽였다.
상대가 먼저 PK를 선언했기에 거리낌 없이 처리할 수 있었다.
그러자 안개 길드 마스터로부터 귓말이 왔다.
-우리 길드원들을 마구잡이로 죽인다고 하더군. 전쟁이라도 하자는 뜻인가?
-전쟁은 그쪽이 먼저 걸어 온 것 같은데?
-이제는 모함까지. 전장의 지배자라는 이름이 아깝군.
길드원들에게는 전장의 지배자와 전쟁을 선포한다고 했지만 공식적으로 말을 한 것이 아니기에 안영훈은 오히려 이서우에게 책임을 덮어씌웠다.
상대의 반응이 이서우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운영권을 얻지 못해 꼬장을 부리는 건 아니고?
-하하하하. 전장의 지배자의 머릿속에 나온 생각이 고작 그건가? 그러면 실망인데?
-길드 서열 5위가 저레벨 존에서 스틸이나 하면서 일부러 시비붙이는 것보다 더 할까.
-수십만이나 되는 길드원들을 다 관리하지 못해서 벌어진 일일 뿐이야.
-그럼 길드 공지를 하면 되겠네. 앞으로는 저레벨 존에서 꼬장 부리지 말라고.
-난 독재자가 아니거든. 길드원들 자율에 맡겨야지 안 그래?
안영훈은 이서우가 뭐라고 하든 구렁이 담 넘어가듯 확실한 대답을 회피했다.
-길드원이 스틸을 일삼고, PK로 이벤트 기간에 사람들이 사냥을 못 하도록 방해하는데도 공지를 안 하시겠다?
-할 필요를 못 느낀다니까 그러네. 정 꼬우면 네가 다 처리하든가.
-지금 그 말, 전쟁을 하자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되겠지?
-혼자서 수십만이나 되는 우리 길드를 상대하겠다고? 인기 좀 끌었다고 아주 눈에 봬는 게 없나 봐?
-쪽수만 믿고 떠드는 너보다는 나아 보인다만.
-우리 길드 자금이 얼마나 되는지 알고나 덤비는 거야? 너 혼자 아무리 잘 벌어 봐야 물량으로는 딸린다는 걸 알 텐데.
-왜 쫄려?
-쫄리는 건 너지. 전쟁할 배짱이 있었으면 지금처럼 주둥이나 놀리고 있지는 않을 테니까.
-네놈의 주둥이는 확실히 내가 부숴 주지.
이서우는 더 이상 대화를 해서는 해결이 되지 않을 거라 판단하고 안개 길드에게 공식적으로 전쟁을 선포했다.
그러자 뉴 월드 전체 유저들에게 메시지가 떴다.
-더킹 길드가 안개 길드에게 전쟁을 선포하셨습니다.
* * *
“놈이 전쟁을 선포했다. 이번 전쟁에서 이기면 막대한 보상금을 받을 수 있으니 모두 혼신의 힘을 다해 주기 바란다!”
“네, 마스터님!”
안개 길드원들은 우렁차게 대답했다.
안영훈이 먼저 전쟁을 선포하지 않은 것은 바로 명분 때문이었다.
그가 먼저 전쟁을 선포하면 길드원들이 금세 지쳐 나가떨어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길드를 지키기 위한 명분이라면 몇 번 죽어서 페널티를 얻는다고 해도 큰 불만이 없다.
“되도록 던전 사냥을 하고, 필드 사냥을 하더라도 여러 파티가 뭉쳐 다니도록!”
“네, 마스터님!”
“해산!”
안영훈의 외침에 수많은 길드원들이 대답하고는 뿔뿔이 흩어졌다.
이서우가 전쟁을 선포했다는 말에 급히 길드원을 소집했고, 사기를 북돋워 전쟁에 이기자는 메시지를 확실히 전달했다.
모든 길드원들이 나가고 나자 안영훈이 조동찬에게 물었다.
“준비는 다 됐겠지?”
“물론입니다.”
“그럼 다음 단계를 실행해.”
“네!”
힘주어 대답한 조동찬은 명령을 받고 곧장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