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이 갑이다-191화 (191/341)

# 191

레벨이 갑이다

191화

“갈수록 어둠의 기운이 강해지네.”

“자꾸 신경을 찔러 대니 기분이 나빠.”

이설아도 시종일관 어둠의 기운이 짜증이 아는지 표정이 그다지 편해 보이지는 않았다.

“참, 근데 오빠, 블랙드래곤이 어떻게 이런 곳을 만들었을까?”

“아, 설아는 그놈을 못 봤지?”

“오빠는 봤어?”

“의식을 잠시 건드렸더라고. 그래서 놈과 잠깐 대화를 해봤지. 놈의 크기가 100미터는 되어 보였어.”

“헐. 그렇게나 커? 그럼 엄청 나이든 고룡이겠네.”

“그렇겠지.”

“본드래곤이 말한 자가 설마 블랙드래곤이야?”

“나도 처음엔 그런 줄 알았는데, 아냐. 본드래곤이 말한 자는 다른 놈이야.”

“어머, 진짜?”

“블랙드래곤이 본드래곤을 쓰레기 취급한 걸 보면 확실히 전에 본 녀석과는 상관없는 것 같아.”

“그럼 강력한 존재가 둘이라는 거네?”

“그런 것 같아. 그래서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 해.”

“아!”

강력한 존재가 또 있다면 이곳에 갇혀 있는 동안 나타날 수 있으니 서둘러 벗어나야 한다.

자칫 타이밍을 놓치면 대륙이 쑥대밭이 될 수 있었다.

“그나마 둘 다 당장 나타날 것 같지는 않으니 여기서 열심히 레벨을 올려야지. 4차 전직만 하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테니까.”

“고룡인데 괜찮겠어?”

“그자는 오랫동안 웅크리고 있었어. 그 정도 자존심 세고, 강한 존재가 몸을 숨긴다? 분명 자의로 그렇지는 않았겠지. 그렇다는 건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다는 뜻이야.”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 예를 들면?”

“부상이지. 펠렌 님에게 부상을 당하고 숨은 거야. 그래서 복수심도 장난 아닌 거고.”

“아!”

충분히 가능성이 높은 추측이었다. 복수심은 그만큼 집착을 만들어 내니까 말이다.

“하지만 바꿔 말하면 블랙드래곤이 지금 모습을 드러낸 건 펠렌 님의 후예 정도는 이길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일 거야.”

“그렇겠네. 그런 자신감이 없었으면 나오지 않고 숨어 있었을 테니까.”

이설아의 목소리에 우려가 진하게 담겨 있었다.

전쟁이 끝난 지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대륙이 또 전란에 휩싸일 상황이었다.

“오빠, 차라리 블랙드래곤에게 다른 존재에 대해 말하는 게 낫지 않을까?”

“나도 그 생각은 해봤는데 둘 중 누가 더 강한지 몰라서 보류했어.”

“누가 더 강한지는 크게 상관없지 않아?”

“어느 한쪽의 힘이 강하면 다른 한쪽의 힘을 흡수하기 좋잖아. 그러면 더 골치 아파져.”

“아, 그럴 수도 있겠네.”

유저들은 다른 유저나 몬스터의 능력을 흡수할 수 없지만 몬스터끼리는 이야기가 다르다.

얼마든지 서로의 힘을 흡수할 수 있기 때문에 섣불리 언급하는 것은 좋지 않았다.

“아아아악, 살려 줘!”

“크아악, 차라리 죽여!”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해 서로 의견을 나누는데 멀리서 비명소리가 들렸다.

거리가 상당히 멀었지만 이서우의 청력을 피할 수 없었다.

“가 보자!”

“응.”

이서가 땅을 힘껏 박차고 달려갔고, 설아와 백호가 그의 뒤를 바짝 쫓았다.

“저런 미친놈들!”

가까이 다가가자 참혹한 주변 상황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절벽에서 계속해서 떨어져 죽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불구덩이에 산채로 던져지는 사람도 있었다.

돌로 쉼 없이 맞아서 죽는 사람, 사지가 찢어지는 사람 등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하게 죽는 사람들이 많았다.

한데, 더 잔인한 것은 죽은 줄 알았던 사람을 다시 살려 내 또다시 똑같은 죽음을 겪게 한다는 것이었다.

“에이, 이젠 재미없네. 키메라나 만들어 버릴까.”

“조금씩 힘을 늘려 주고 얼마나 버티는지 봐야지. 나중에 주인님이 인간을 지배할 때 그들에게 고통을 줄 방법을 찾으려면 여러 실험을 해야 한다고.”

“그건 그래. 그럼 이놈들에게 마나를 주입하면서 다시 실험해 보…….”

푹!

서걱!

잔인한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던 사내 둘이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한 명은 심장이 뚫렸고, 다른 한 명은 목이 깔끔하게 잘려 나갔다.

“적이다!”

블랙드래곤의 상징인 시커먼 옷을 입은 100여 명의 사내가 일제히 이서우에게 덤벼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이서우를 감당할 만큼 강하지 않았다.

이서우는 분노에 찬 얼굴로 대검을 미친 듯이 휘둘렀다.

“개자식들,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대검이 허공을 누비자 머리와 몸이 분리된 사람들이 하나둘씩 빠르게 쌓여 갔다.

그렇게 10분쯤 흘렀을까, 시커먼 옷을 입은 사람 중 서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서우는 죽음이 무한 반복되는 사람들을 모았다.

“저는 그리움 마을에 있는 분들에게 의뢰를 받았습니다. 여러분들을 구해 달라고.”

“아아, 여보!”

“세라야!”

“도나야!”

여기저기서 그리움에 사무친 목소리가 막 쏟아졌다.

하지만 그들은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것도 잠시, 얼굴빛이 좌절로 물들었다.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는데, 왜 그리 어두운 표정을 하고 계신 겁니까?”

“우리는 돌아갈 수 없습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가족들을 보고 싶으시잖아요.”

“물론 죽도록 보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대로는 안 됩니다.”

“이유를 말씀해 주세요.”

“우리의 저주가 풀려야만 가족의 품으로 갈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가족들도 똑같이 저주에 시달리게 될 겁니다.”

“저주라고 하면…….”

“저주를 풀지 않고 돌아가면 어쩌면 가족들도 우리와 같이 죽음을 반복하게 될 것입니다.”

“그럴 수가!”

이서우는 블랙드래곤에 대한 분노가 불일 듯 일어났다.

어떻게 하면 이렇게 잔인한 짓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화가 머리끝까지 난 이서우는 어떻게든 블랙드래곤을 자신의 손으로 죽이겠다고 다짐했다.

“혹시 저주를 풀 방법은 없는 겁니까?”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결코 쉽지는 않을 겁니다.”

“무엇인지 말씀해 주십시오.”

“희망 마을로 가셔서 그들의 보물을 구해 오셔야 합니다.”

“희망 마을에 있는 보물이라고요?”

“네. 그들의 눈물로 만들어진 구슬이죠. 그 구슬이 담긴 물에 몸을 담그면 저주가 풀립니다.”

-희망 마을에 있는 보물을 구하라.

블랙드래곤이 강력한 힘을 퍼부은 고통의 지역은 아주 강력한 저주가 있다.

그 저주는 블랙드래곤의 부하들이 인간의 몸에 심어 두는데, 타인에게도 전염이 되기 때문에 반드시 풀어야 한다.

블랙드래곤의 부하들은 그리움 마을 남자들을 노예처럼 부리기 위해 한 달에 단 이틀만 이 저주를 일시적으로 풀어 주었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 저주 상태로 돌아오기 때문에 그리움 마을 남자들은 어쩔 수 없이 가족을 떠나서 지내야 했다.

하지만 당신을 만난 그리움 마을 남자들은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난이도 : B+++

완료 조건 : 희망 마을의 보물을 구하라.

성공 시 보상 : 3레벨 경험치.

실패 시 : 5레벨 다운.

‘이번 건 아예 다른 보상도 없네.’

퀘스트가 연결이 되니 나쁘지는 않았지만 레벨 보상밖에 없는 것이 아쉬웠다.

하지만 어차피 하나의 퀘스트에서 파생이 되었기에 이서우는 큰 불만이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그들의 보물을 구해 오도록 하겠습니다.”

“가,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아악!”

“사, 살려 줘!”

갑자기 사람들이 고통에 찬 비명 소리를 냈다.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악마들이 죽어 잠시 저주가 멈췄다가 다시 시작되는 겁니다. 제발 서둘러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방향을 알려 주십시오.”

“저쪽으로 쭉 가시면 됩니다. 아악! 어, 어서, 아아아악!”

절벽을 뛰어들고, 불구덩이로 들어가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고 가만히 있던 사람들도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

저주를 받았다는 말을 듣지 않았다면 거짓 행동이라고 여겼을지도 몰랐다.

이서우는 한시라도 빨리 그들의 저주를 풀어 주기 위해 사내가 가리킨 방향으로 있는 힘껏 달렸다.

한참을 달려가자 마을 하나가 나왔다.

“뭐지? 지금까지보다 더 음습한 기운이 느껴지는데.”

“그러게. 왜 이런 곳을 희망 마을이라고 지은 걸까?”

이설아도 몸이 살짝 떨릴 정도로 좋지 않은 기운을 느꼈다.

이런 곳에 어쩌다가 ‘희망’이라는 이름이 붙게 된 것일까.

마을 안으로 들어가자 사람들이 모두 광장에 나와 있었다.

그리움 마을보다 숫자는 훨씬 많았는데, 대략 500명쯤 되어 보였다.

한데, 모두가 해골처럼 비쩍 말라 산송장같이 보였는데도 모두 웃으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저주구나.”

“나도 그 생각했어. 어떻게 이런 저주를…….”

이설아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고개를 돌려 버렸다.

평생 죽음을 경험하는 사람도 불쌍했지만 희망이 없는데도 모여서 웃고만 있는 사람들도 불쌍해 보였다.

“아마 웃으면서 지낸다고 먹고 마시는 것도 제대로 못한 것 같아.”

“그러니까. 너무 잔인해.”

“미친 용새끼, 어떻게 이런 저주를 아무렇지도 않게 걸어둔 거지? 진짜 무조건 죽여야 될 놈이야.”

“응. 그놈이 대륙에 나타나면 정말 끔찍한 일이 생길 거야. 반드시 죽여야 해.”

이설아도 독한 얼굴로 대답했다.

이서우는 더 이상 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끔찍한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 그들 중 한 사람과 접촉을 시도했다.

“잠시만요. 잠시만 시간을 내주세요.”

“하하하하. 정말 즐겁지 않아요? 곧, 곧 그분이 우리를 구원해 주실 거예요. 그래서 너무 즐거워요. 당신도 그렇죠?”

“저기요. 잠시만 시간을 내주세요.”

“역시 당신도 즐겁군요. 그럼 같이 웃어요. 왜 얼굴이 그 모양이에요. 거기 아리따운 아가씨도 저희와 함께 웃어요. 웃으면 복도 오고, 구원도 와요. 우리 같이 웃어요.”

도저히 말로서는 설득이 되지 않자 이서우와 이설아는 다시 무리들 틈에서 빠져나왔다.

“오빠, 어떡하지?”

“흠.”

“어라.”

“왜?”

“오빠, 저기 봐.”

“어, 저건.”

어떻게 희망 마을 사람들의 눈물을 구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이설아가 가리킨 곳에 한 여성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오빠, 주변에 다른 사람들도 눈물을 흘리고 있어.”

“너무 많이 웃어도 눈물이 나온다는 걸 깜빡했네. 서둘러 채취하자.”

“응, 오빠!”

그때부터 이서우와 이설아는 열심히 눈물을 병에 채취했다.

신기한 것은 병에 담긴 눈물이 저절로 뭉쳐 구슬 형태가 된다는 것이었다.

5시간에 걸친 노력 끝에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모든 눈물을 모으고 잠시 광장에서 소리 내어 웃는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도움을 받았는데 그냥 가기 좀 그러네.”

“응. 근데 마땅히 도울 방법이 없어. 아무래 대화를 시도해도 같은 말뿐이고.”

“일단은 그리움 마을 사람들부터 구하고 보자. 그 사람들이라면 이곳을 바로 잡을 방법을 알고 있을 거야.”

“응!”

이서우는 얼른 돌아가 그리움 마을 남자들을 정상 상태로 만들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 업 소식을 듣고 이서우는 남자들을 마을로 데려갔다.

재회가 끝나고 이서우는 코코의 부모님과 테이블에 같이 자리했다.

“정말 고맙습니다.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할지…….”

“아닙니다. 저희는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저희는 여러분들을 경계했지만 두 분은 저희와 대화를 해 주셨어요. 별것 아니지만 이걸 받아 주세요.”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그리움 마을의 보물을 얻었습니다.

-이곳을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세 마을의 보물이 필요합니다.

-오빠!

-나도 들었어. 한데, 세 마을이면 아직 한 곳이 더 있다는 건데…….

-희망 마을 사람들을 구해야 또 알 수 있는 걸까?

-일단 희망 마을 저주부터 풀어야 해.

-응.

이서우와 이설아는 의외로 일이 쉽게 풀리는 것 같아 좋아했다.

이서우가 물었다.

“희망 마을 사람들의 저주를 풀라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들의 저주까지 풀어 주시려는 건가요?”

“네. 이왕이면 모두의 저주를 풀어 주는 게 더 나을 테니까요.”

“하지만 그들의 저주는 정말 풀기 힘들답니다.”

“편하게 말씀해 주세요.”

코코의 부모는 서로를 잠시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절망의 마을로 가셔야 해요.”

“절망의 마을이라고요?”

놀란 얼굴을 했지만 이서우는 세 번째 마을을 알게 되어 기분이 좋았다.

“네. 그들을 자유롭게 하려면 절망의 마을로 가셔야만 합니다. 하지만 저희들에게 했던 방법으로는 그들의 저주를 풀 수 없을 겁니다.”

“그럼 방법이 없는 건가요?”

“아닙니다. 방법은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되나요?”

“예전에 한 악마 놈이 두 마을 사람을 한데 섞어 놓는 걸 봤습니다. 그러고 가만히 있으니 해결이 되더군요.”

“희망과 절망이 만나 평범함을 이루는군요.”

“네. 문제는 두 마을 사람들은 절대로 섞이지 못한다는 거죠.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말이죠.”

“그렇겠네요. 정말 악독한 방법이네요.”

이서우는 정말 악랄한 방법이라는 생각에 절로 화가 났다.

“그들만 치료해 주시면 그들도 두 분에게 큰 사례를 할 겁니다.”

“사례를 바라고 하는 일은 아닙니다. 어쨌든 절망의 마을로 가야 한다는 거니 위치를 가르쳐 주세요.”

절망의 마을이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되었지만 이서우는 바로 그곳으로 가지 않고 수레부터 만들었다.

절망 마을 사람들의 숫자가 조금 더 적어서 그곳에 있는 사람들을 희망 마을로 옮겨 오기로 했다.

50명은 족히 탈 수 있는 수레를 끌고 절망 마을로 갔다.

그곳은 희망 마을과 정확히 반대였다.

절대로 살아나갈 수 없을 거라며, 평생 절망과 고통 속에서 살아갈 거라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이서우는 그들을 강제로 실어 희망의 마을로 데려갔다.

몇 차례 실어 나른 끝에 모두 희망 마을 광장으로 옮길 수 있었다.

“오빠, 고생 많았어.”

“고생은. 빨리 빠져나가야지.”

“근데, 그건 다음 접속 때나 가능하겠는데?”

“그러게. 벌써 시간이 다 됐네. 근데 저 사람들…….”

섞여 있는 마을 사람들을 보며 저주가 풀리기를 기다리는데, 극과 극의 사람들이 만나니 가관이었다.

서로의 주장만 하면서 끊임없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것이다.

“오빠, 어쩌지?”

“일단 지금은 접속을 종료할 수밖에 없으니 다시 들어와서 생각하자.”

“응.”

당장 끼어들기에는 시간이 부족해 두 사람은 그들을 뒤로하고 종료했다.

한데, 김소연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 두 사람을 찾았다.

표정이 자못 심각한 것이 중요한 일이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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