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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이 갑이다-196화 (196/341)

# 196

레벨이 갑이다

196화

음침한 기운이 있는 곳으로 방향을 잡은 몰디나와 아리아, 그리고 이설아는 천천히 길을 걷고 있었다.

몰디나가 서둘러 봐야 별로 좋을 게 없다고 해서 이렇게 된 것이었다.

잘 가고 있는데 몰디나가 이설아를 바라보며 살며시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

“두 사람 언제 결혼할 거야?”

“네?”

“서우랑 너랑 말이야.”

“저희는 아직…….”

“누굴 속이려고. 서우는 몰라도 넌 결혼하고 싶어 죽겠다는 표정인데?”

“네? 아, 아니에요.”

이설아는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당황했다.

그녀는 몰디브에 여행을 다녀온 뒤 이서우와의 결혼 생활을 상상할 때가 종종 있었다.

물론 당장 결혼을 하고 싶다는 것은 아니고, 그저 결혼을 해서 서로 아끼면서 살면 어떨까, 하는 마음을 가지기는 했었다.

“아니긴 뭐가 아냐. 그러다 누가 서우 채 가면 어쩌려고.”

“으이고, 애한테 악담을 해라, 악담을. 하여튼 짓궂다니까.”

아리아는 장난기 가득한 몰디나를 열심히 갈구었다.

하지만 몰디나는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이설아에게 계속 장난을 걸었다.

“내가 없는 말했어? 맞잖아. 결혼을 해도 채 가는 세상인데, 결혼도 안 했는데 잘난 놈을 가만히 두겠어?”

“너무 잘나서 여자들이 아마 접근하기 힘들걸?”

“그런가? 하긴, 펠렌도 바람기가 다분했지만 엄청 잘나긴 했지.”

몰디나와 아리아는 이내 과거의 회상으로 빠져들었다.

두 사람이 옛날이야기를 하니 그제야 이설아가 조금 홀가분해졌다.

마음 같아서는 전속력으로 달려 빨리 목적지에 가고 싶었는데, 몰디나와 아리아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몰디나님, 아리아님. 급하게 서둘러야 하는 거 아니었나요?”

“크게 서두를 필요는 없어. 아마 거기가도 리치 킹은 없을 테니까.”

“그럴까요?”

“그럼. 그놈이 미치지 않고서야 황궁과 이렇게 가까이 있지 않을 거야.”

“하지만 영혼을 담은 구슬만 잘 보관하고 있으면 천하무적이잖아요. 굳이 어디에 있을 지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요?”

“보통은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 하지만 리치 킹은 그 외에도 약점이 있어.”

“약점요?”

“그래. 아주 강력한 화염 마법으로 뼈가 가루가 될 정도로 만들면 돼.”

“네? 그게 가능하나요?”

“당연히 가능하지. 내가 왜 불가능한 일로 아까운 시간 낭비하겠어?”

“그렇군요.”

그냥 뼈도 가루로 만들기는 어려운데, 하물며 리치 킹의 뼈야 오죽할까.

하지만 몰디나는 꽤 자신감 있게 말했다.

“물론 나 혼자서는 안 되고, 아리아와 둘이 있어야 가능해. 하지만 꽤 집중도를 요하는 기술이어서 방해를 받으면 성공확률이 떨어지지.”

“리치 킹과 싸우는 데 집중도가 높은 기술을 써야 한다고요?”

“그런 셈이지.”

“그럼 거의 못 쓴다고 봐야 하지 않나요?”

“맞아. 하지만 누군가 도움을 준다면 엄청난 위력을 지녔어.”

“이번 경우에는 그게 제가 되겠고요?”

“잘 아네. 혹시라도 리치 킹이 나타나면 잘 막아 줘.”

“최선을 다해 볼게요.”

“농담이다, 농담. 그걸 또 진지하게 받아들이네. 리치 킹 같은 놈이 절대로 이곳에 나타날 리가 없어. 그러니 안심하라고. 단지, 놈이 뭔가 꼼수를 쓰려는 게 아닌지 그걸 알아보기 위해 가는 거니까. 괜히 처리 안 했다가 나중에 리치 킹이 직접 황궁으로 쳐들어왔을 때, 생각지도 못한 놈들이 튀어나올지도 모르거든.”

“그럴 수도 있겠네요.”

“무슨 짓이든 서슴지 않고 하는 놈이니 그럴 가능성이 농후하지.”

리치 킹의 의도가 무엇인지 알 수 없기에 혹시 모를 위험을 대비해 미리 조사를 하러 가는 것이다.

그 말을 들으니 이설아도 조금은 긴장감이 풀어졌다.

거리가 서서히 좁혀지자 희미하지만 조금씩 짙은 어둠의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 * *

“멍청한 놈들, 내가 설마 이런 곳에 있을 줄 몰랐겠지. 일단 강한 놈들 몇 놈만 와도 되는데. 감시는 어찌 되어 가느냐?”

“네. 감시자들을 모두 배치했습니다.”

“잘했어. 소식이 들어오는 대로 바로바로 보고해.”

“네.”

리치 킹의 명령을 들은 언데드가 허리를 굽히고는 밖으로 나갔다.

한데, 1분도 채 되지 않아 다시 리치 킹이 기거하는 곳으로 헐레벌떡 들어갔다.

“주, 주인님, 드디어 나왔습니다.”

“나왔다고?"

“네.”

“누구지?”

“몰디나와 아리아, 그리고 웬 여자 하나랍니다.”

“좋아! 그년들이라면 이렇게 작전을 짠 보람이 있지. 딱 좋아. 하하하하하!”

“감축드립니다, 주인님.”

“함정은 잘 준비되어 있겠지?”

“네. 아주 깜빡 속아 넘어갈 겁니다.”

언데드는 신이 났는지 목소리에 힘이 있었다.

뼈밖에 없어 입으로는 목소리를 낼 수 없었지만 마법의 힘으로 자유자재로 말을 할 수 있었다.

“놈들의 속도는 어느 정도야?”

“그게 이상하게 천천히 여행하듯 오고 있답니다.”

“역시, 놈들은 내가 이곳에 있다는 생각을 추호도 못 하는군. 그 두 년의 힘만 흡수하면 상당한 에너지를 회복하게 돼. 절대로 실패해서는 안 된다.”

“네!”

“그럼 넌 가서 함정을 조금 더 손보도록 해라. 한 치의 오차가 없도록 하고.”

“네, 주인님.”

언데드가 사라지자 리치 킹은 화려한 의자에 걸터앉아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그래, 와라. 나의 먹이들아. 크하하하하하하!”

* * *

“이번에 자네가 얻은 성과를 들었네.”

“성과라고 할 것도 못 됩니다.”

“아닐세. 블랙드래곤과 리치 킹은 정말 악랄한 놈들이네. 그들의 흔적을 찾았다는 것만 해도 엄청난 성과야.”

“아직 정확한 위치를 찾지 못해 고민이 많습니다.”

“리치 킹의 흔적은 몰디나와 아리아가 발견한 장소에 있을지도 모르네. 물론 그곳에 진짜로 리치 킹이 있는 것은 아닐 테지. 이렇게 코앞까지 놈이 온다는 건 경계만 삼엄하게 할 뿐이니까 말일세.”

“원래는 어디서 주로 활동하던 잔가요?”

“적어도 황궁에서 수천 킬로미터 이상은 떨어진 곳에 있었지. 멀리서 일을 도모하면서 기회를 엿보던 녀석이라네.”

이서우도 황제의 의견에 어느 정도 동의했다. 바보가 아니고서는 황궁 근처에 올 리가 없다.

물론 근처라고 해도 평범한 사람은 몇 날 며칠을 단 한시도 쉬지 않고 가야 할 거리겠지만, 이서우는 전속력을 다하면 1시간 만에도 갈 수 있는 거리였다.

“황제폐하께서는 리치 킹에 대해 잘 아시는 것 같은데, 제게도 가르침을 주십시오.”

“자네도 어느 정도 알고 있을 테지만 굳이 듣고 싶다면 몇 가지 말해 주겠네. 알다시피 리치 킹은 영혼을 담은 구슬을 파괴하지 않으면 불사라네. 하지만 그 구슬을 파괴하지 않더라도 무력화시키는 방법이 있네. 물론 죽일 수는 없겠지만 한동안 아무것도 못하게 막을 수는 있지.”

“어떤 방법인가요?”

“가루로 만드는 것일세.”

“네? 가루로요?”

“그렇다네. 과거 펠렌 님이 그런 방법을 써서 놈을 봉인했다고 하더군.”

“아, 그런 방법을 썼군요.”

이서우는 다시 펠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새삼 놀랐다.

‘펠렌이라는 이름은 안 들어가는 데가 없네.’

뿌듯하면서도 대체 진정한 정체가 뭐기에 이렇게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지 궁금했다.

“자네도 펠렌이라는 이름을 들어 봤을 테지?”

“네. 그분의 명성은 익히 들었습니다.”

이서우는 펠렌의 후예라는 걸 말하지 않았다. 몰디나와 아리아도 침묵을 하니 굳이 말할 필요가 없었다.

“자네도 정진하면 그 분의 뒤를 따를 수 있을 것이네. 제 2의 펠렌, 아니지 영웅 이서우. 그게 좋겠구먼, 하하하하.”

황제는 뭐가 그리 좋은지 혼자 싱글벙글이었다.

“이거 너무 좋아서 내가 주책을 부렸구먼. 꼭 우리 카이젠 제국의 영웅으로 오래오래 남기를 바라네. 결국 인간이 남기는 건 이름뿐이지 않겠나.”

“네, 폐하. 최선을 다해 정진하겠습니다.”

“좋은 자세야.”

황제는 이서우를 추켜세우는 데 여념이 없었다.

카이젠을 위해 그가 한 일을 생각하면 하루 종일 세워 줘도 괜찮았다.

“참, 폐하.”

“말해 보게.”

“블랙드래곤에 대해서는 혹시 알고 계시다면 저에게 가르침을 주십시오.”

“알지. 암. 잘 알다마다. 황궁서고에는 모든 자료들이 있다네. 그중 블랙드래곤도 있지. 하지만 다른 드래곤에 비해 모습을 거의 드러내지 않아 그 존재가 많이 알려져 있지는 않네.”

“그렇군요. 무슨 책인지 몰라도 제가 직접 보고 싶을 정도네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황궁서고에도 가볼 수 있을 것이네.”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황제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황궁서고를 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여튼 블랙드래곤은 다른 드래곤보다 덩치도 크고, 공격력도 세네. 심지어는 최장수 드래곤의 기록을 보유 중인 게 바로 블랙드래곤이야. 1만 년 이상은 거뜬히 살 수 있지.”

“엄청나네요. 한 생명체가 1만 년을 넘게 살아가다니.”

“오래 사는 게 대단한 게 아니라 그 엄청난 세월 동안 막강한 마법의 힘을 얻는다는 더 대단한 일이겠지. 공격력이 강하기로 이름이 자자한 레드 드래곤조차도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라네.”

“세월의 힘이군요.”

“그렇다네. 드래곤은 나이에 따라 마법적 힘이 다르거든. 그래서 아주 괴짜 드래곤 중 하나는 검술을 익히기도 했지. 그 오랜 세월 검술과 병행하면 둘 중 하나는 확실히 톱클래스에 오를 거라 여긴 것이지. 하지만 결국은 뻘짓으로 드러났네.”

“하하하하, 생각만 해도 웃기네요. 드래곤이 검술이라니.”

“그래도 폴리모프로 인간의 형상이 되면 꽤 검을 잘 쓴다네.”

“그 오랜 세월을 살아가는 데 검술 정도도 못하면 쓸모없는 종족이죠.”

“허허허허허, 드래곤에게 쓸모없는 종족이라는 말을 하다니. 역시 자네는 강심장이야.”

황제는 정말 화통하게 웃었다. 어찌나 기분이 좋은 책상 팔걸이를 연신 치기도 했다.

“여튼, 블랙드래곤은 아주 강력한 놈임에는 틀림없어. 그리고 드래곤들은 종족별로 고유한 힘이 있네. 그 힘마저도 블랙드래곤이 강하기 때문에 다른 종족들이 쉽게 블랙드래곤을 건드리지 못하네. 하지만 과거 그런 블랙드래곤이 마음에 들지 않아 다른 종족들 전체가 배신을 하고 블랙드래곤을 엿먹인 적이 있었네.”

이서우는 호기심이 동하는 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웠다.

한데, 바로 그 순간이었다!

-오빠, 큰일 났어. 우리, 함정에 빠졌어.

-뭐? 설아야, 설아야!

-…….

그 말을 끝으로 이설아는 대답이 없었다.

이서우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어지자 황제가 물었다.

“무슨 일인가?”

“지금 제 일행과 몰디나, 아리아 님이 함정에 빠졌다고 합니다.”

“그게 정말인가?”

“네. 제 모든 걸 걸 수 있습니다.”

“몰디나와 아리아, 그리고 자네 피앙세까지 있는데도 위험하다는 건 리치 킹이 있을 때뿐이라네. 설마…….”

“아마 그런 것 같습니다. 놈이 두 분을 처치하기 위해 이런 함정을 파고 기다린 것일지도 모릅니다.”

“만약 그렇다면 놈은 과거와 달리 대담하게 행동하고 있구먼. 이런 식으로 허를 찌르다니.”

몰디나와 아리아를 곤란하게 만들 언데드는 오직 리치 킹 뿐이다.

하지만 황제의 표정은 이내 밝아졌다.

“리치 킹이라도 몰디나와 아리아가 힘을 합치면 잘 버틸 수 있을 것이네. 자네가 가게. 자네가 도와준다면 손쉽게 리치 킹을 처치할 수 있을 것이네.”

“하지만 그렇게 되면 황제폐하께서…….”

“난 걱정 말게. 황궁에는 수많은 기사와 마법사가 있지 않나. 리치 킹이 아니라면 충분히 막아 낼 수 있네.”

“알겠습니다. 그러면 급한 일이 있으면 통신구로 말씀해주세요.”

“그러겠네. 부디 조심하게.”

“네, 폐하.”

이서우도 몰디나와 아리아를 기다린 것이 리치 킹이라 판단하고 황제의 말대로 서둘러 황궁을 빠져나갔다.

‘몰디나 님과 아리아 님이 사라지면 카이젠 제국을 지배하는 게 더 쉽다고 판단을 한 것이군. 두 분이 나가 있을 동안 황궁으로 직접 쳐들어올 줄 알았는데,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맞다니. 기다려라. 내가 가서 흔적도 없이 가루로 만들어 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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