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이 갑이다-198화 (198/341)

# 198

레벨이 갑이다

198화

“오빠!”

“기다렸어?”

“응. 괜찮아?”

“다행히 부상 없이 구했어.”

“다행이야. 뭔 일이 있는 줄 알고 엄청 걱정했다니까.”

“접속 페널티 괜찮겠어?”

“괜찮아. 이틀 정도 접속 안 한다고 뭔 일이 생기는 것도 아닌데 뭘. 게다가 방송에 지장이 있는 것도 아니니 문제없어.”

“역시 프로. 이런 상황에서도 방송 생각을 하는구나.”

“호호호. 직업병이지, 뭐.”

이설아는 태연하게 미소를 지었다. 이서우를 안심시키기 위해서 과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행동이었다.

비록 직업으로 게임을 선택했지만 이서우를 만나면서 뉴 월드 자체를 즐길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게임을 하다 보면 죽을 때도 있고, 곤란한 상황을 겪을 때도 있기에 이설아는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때 이설아에게 전화가 왔다.

“언니가 급히 온다는데?”

“그래?”

“응. 목소리가 심각한 걸로 봐서 무슨 일이 있나 봐.”

“곧 도착할 테니 들어 보면 알겠지.”

“응.”

둘은 휴게실로 갔다.

잠시 후 김소연이 급히 문을 열고 들어왔다.

“언니, 무슨 일인데 그리 표정이 심각해?”

“휴우, 말도 마라. 지금 아주 난리가 났다.”

“난리? 무슨 난리?”

NPC들과 함께 있었기 때문에 이서우와 이설아는 뉴 월드가 돌아가는 상황을 잘 알지 못했다.

이설아는 그나마 방송 때문에 다양한 소식들을 접했지만 이서우는 게임을 종료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아 최신 정보를 업데이트 하지 못했다.

“지난번에 서우가 랭킹 5위 길드를 박살냈잖아.”

“그랬지. 그때 아주 난리였잖아.”

“그 이후로 1위부터 10위, 아니 100위 안에 있는 길드들이 은밀하게 움직인 것 같아.”

“은밀하게 움직이다니?”

“자기들도 자칫 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간부들끼리 의기투합해서 밀대를 했더라고. 길드원들에게 경험치를 사기도 하고.”

“경험치를 밀어줬다는 말이야?”

“그래! 랭킹도 비공개로 돌려서 지금 엄청난 속도로 레벨 업 중이야.”

“헐. 정말이야?”

“그렇다니까. 어쩐지 기존의 랭커들이 공식 순위에서 사라진다고 했는데, 그런 앙큼한 짓을 하고 있을 줄 누가 알았겠어.”

김소연의 정보팀은 랭커들의 동향을 항상 파악하고 있었다. 한데, 어느 순간 한두 명이 공식 랭킹에서 빠지더니 상당수가 물갈이 되었다.

처음에는 비밀 유지 때문에 그런 것이라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레벨이 높아지면서 그런 랭커들이 있으니까.

하지만 그에 대해 조사를 하면서 일이 생각보다 가볍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숨어서 레벨 업에 집중한다라……. 이유가 뭐지?”

“그게 아직 미스터리야. 널 대항해서 그러는 것 같기는 한데, 뚜렷한 목적은 찾지 못했어. 하지만 비밀리에 길드마스터와 부마스터, 간부들까지 레벨 업에 매달리는 건 그리 좋은 사인은 아닌 것 같아.”

“언니, 마을 운영권을 노리고 있는 거 아닐까?”

“서우가 떡하니 지키고 있는데, 힘으로 운영권을 차지하려고 하지는 않을 거야.”

“대놓고 그러지는 않겠지만, 물밑 작업을 할지도 모르잖아. 운영권이 천년만년 가는 것도 아니니 운영권을 가진 중소 길드들은 은근한 협박이 들어오면 겁이 날 수밖에 없을 테고.”

“흠. 가능성이 아주 없지는 않은데…….”

“일단 누나는 비밀리에 레벨 업에 매진하고 있는 길드들의 동향을 잘 살펴봐 줘.”

“응. 그건 염려 마. 이미 조치를 취해 놓았으니.”

이서우는 이번 일을 결코 좌시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만약 잘 못 된 방법으로 운영권을 가지려한다면 어떤 식으로든 반드시 응징할 것이다.

“참, 은밀히 레벨을 올리고 있다는데, 지금 어느 정도 수준인지는 알아냈어?”

“아마 길드 순위 100위 안에 있는 유저들은 대부분 400레벨에 근접했을 거야.”

“그렇게나 빨리?”

“알다시피 하이 레벨 지역은 경험치가 5배잖아. 풀파티 보너스까지 하면 무려 10배야. 300이후부터는 레벨 업이 극악이라고 해도 10배나 많은 경험치를 받으니 순식간이지.”

“흠.”

경험치가 거래된다는 것을 알았지만 상황이 이렇게 흘러갈 것은 예상하지 못했다.

다들 레벨 업이 목적이니 팔아 봐야 그리 많은 양이 아닐 거라고 여겼었다.

“일단 조용히 레벨 업에만 매진하고 있어서 목적은 정확히 모르지만 현재로서는 길드 보호가 먼저인 것 같아. 뭐, 레벨이 더 높아지면 길드전이라도 펼치려는지는 모르지만.”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어. 절대로 방어에만 전념하지 않을 거야.”

“그건 나도 알지만 400레벨 이후로는 레벨 업 속도가 현저히 떨어질 거야. 아무리 경험치를 많이 사도 500레벨의 길은 멀고도 험해. 네 힘을 봤으니 500레벨 이전까지는 경거망동하지 않을 테니 걱정 마.”

“하긴 경험치를 파는 사람들도 자기 레벨을 신경 써야 할 테니 경험치를 사는 게 더 힘들어지긴 하겠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안심하지는 마. 일이라는 게 예상을 벗어나기도 하니까.”

“당연하지. 매의 눈으로 지켜볼 테니 걱정 마.”

이서우는 리치 킹의 일을 겪으며 작은 변수라도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힘을 믿고 안일하게만 생각하다가 큰 낭패를 볼 수 있었다.

“그거야 당연히 누나가 알아서 잘하겠지. 근데, 아이템 동향은 좀 어때? 400레벨 이상이라면 아이템이 고플 것 같은데 말야.”

“그렇지 않아도 그 부분도 다 알아봤지. 근데, 생각보다 많이 풀리고 있어. 중국과 인도 오픈 이벤트 때문에 드롭률도 올라갔잖아. 100~200레벨은 정말 많아졌고, 200레벨 이상부터 300레벨까지도 꽤 많이 풀렸어. 그나마 350레벨은 몇 십개 안 풀린 것 같은데, 그것도 아마 이벤트가 끝날 때쯤이면 백 단위가 될 거야.”

“그러면 400레벨 유일 이상도 풀릴 수 있다는 뜻이네.”

“그렇겠지. 그리 많이는 아니겠지만 열 개 이상은 풀린다고 봐야지.”

“세트로지?”

“응.”

세트로 백 단위가 풀린다면 상당한 양이었다.

수많은 보스 몬스터가 잡히는 것과 비교하면 드롭률이 형편없지만 랭커들에게는 희소식이었다.

“이벤트가 며칠 안 남았으니 다들 미친 듯이 사냥을 하겠군.”

“그렇지 않아도 16시간 풀로 이용하더라.”

“독하다, 독해.”

“당분간 이벤트를 안 할 테니 악착같이 하는 거지.”

“한 길드가 세트 아이템을 독식하지는 않을 테니 그리 걱정할 수준은 아니겠네.”

“응. 힘의 균형이 크게 무너질 정도는 아닐 것 같아.”

“그러면 다행이고. 어쨌든 수고스럽지만 누나는 길드 동향을 철저히 파악해 줘.”

“이미 철저히 알아보라고 지시를 내려뒀어.”

“역시, 믿음직스럽다니까.”

“믿음직스럽다니 나쁘지는 않은데, 이번 일 지시하면서 팀원들을 다다다 쏘아 댔더니 요조숙녀에 청순한 이미지는 다 날아갔다.”

“아직도 팀원들이 그런 이미지를 가지고 있단 말이야? 난 첫 만남 빼고는 그런 이미지 전혀 못 느꼈는데. 갈수록 왈가닥 기질이 강해져서.”

“야, 이서우, 내가 누나거든! 이래봬도 청순 미인이라고 얼마나 칭찬이 자자한데!”

“종명이한테나 그렇겠지.”

“아, 아니거든!”

“아, 네.”

“흥! 앞으로 정보 안 줄 테니 알아서 자급자족하셔!”

“에이, 누나, 삐쳤어?”

“삐치긴 누가!”

“누구긴 누나지.”

“됐고. 난 바빠서 이만.”

휴게실 문을 나서던 김소연은 보며 이서우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김소연이 쉽게 토라지는 성격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그가 잘 알고 있었다.

“언니가 많이 밝아졌네.”

“그러게. 처음에는 커리어우먼 같더니 친해질수록 인간미가 넘치는 것 같아.”

“그나저나 언니 말대로라면 조금 신경을 써야 되지 않을까? 만약 대규모 길드들이 연합이라도 한다면 일이 많이 귀찮아질 수도 있잖아.”

“그럴 수도 있지. 기득권을 잡으려고 서로 영역을 보장해주며 힘을 합치려 할 수도 있고.”

“이러다가 1위부터 10위까지의 길드가 하이 레벨 지역을 상당수 차지하는 거 아닌가 몰라.”

“독점이 심해지면 운영권 갱신을 더 단축시키면 돼.”

“반발이 심하지 않을까?”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면 있던 것도 빼앗기는 게 세상의 이치야. 자업자득인 거지.”

반발이 심하더라도 상식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하면 직접 개입할 것이다.

“참, 이참에 내일 테스트를 하는 게 낫겠네.”

“벌써 하려고?”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했으니 정 회장도 불만은 없겠지. 잠시만.”

이서우는 정 회장에게 연락을 넣었다.

내일 테스트를 하자는 제안에 정 회장은 흔쾌히 승낙했다.

아직 장비는 들여오지 않았지만 새벽같이 장비를 싸들고 가겠다고 큰소리쳤다.

소식은 곧장 박 대표에게 전해졌고, 새벽 6시부터 장비를 옮기기로 했다.

운송용 드론을 이용하면 신속히 운반이 가능해서 큰 문제는 없었다.

“근데, 이틀 동안 뭐 할 거야?”

“방송 준비 해야지. 오빤 좋은 영상 좀 찍어다 줘.”

“방송이 쉬운 게 아니네. 매주 색다르고, 눈이 갈만 한 영상을 찍어야 하니 빡셀걸?”

“사람들의 기대감이 높으니 더 그럴지도 몰라. 색다른 게 아니면 호응을 하지 않으니까.”

“개인 방송 하는 사람들 진짜 대단하다.”

“그렇긴 해. 하지만 사람들이 새롭고, 자극적인 걸 원해서 안 좋은 일이 가끔 벌어지기도 해서 조심해야 돼.”

“안 좋은 일?”

“응. 시청자들이 자극적인 걸 원하니 몰카까지 찍고, 길 가던 사람들과 시비까지 붙기도 하니까.”

“그런 걸 본다고?”

“응. 의외로 그런 거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많던데? 나도 놀랐다니까.”

이설아는 오랜 방송 생활을 하면서 인기 때문에 다양한 사건, 사고가 발생하는 것을 두 눈으로 보았다. 개인 방송이든 TV 방송이든 상관없이 말이다.

“하긴, 걸그룹들도 살아남으려고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는 사람도 꽤 있다고 하니까.”

“맞아. 소속사 오너가 나서서 더러운 제안을 하기도 하니 말 다했지.”

이설아도 인기가 없을 때 모기업으로부터 스폰서 제안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녀는 일언지하에 거절했지만 오랜 연습생 시절을 보내다 보면 유혹에 빠질 수가 있었다.

“오늘 저녁은 나가서 먹자.”

“응. 오빠.”

이서우는 이설아의 표정이 좋지 않자 얼른 화제를 돌렸다.

둘은 나갈 준비를 하고, 손을 잡고 나란히 건물을 나섰다.

* * *

2028년, 어나더 월드가 실패했던 그 당시, 대한민국을 주름 잡던 조직의 보스가 자취를 감추었다.

2인자 체제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암적인 존재가 되어 대한민국을 좀먹으며 활동을 이어 가고 있었다.

보스가 사라졌는데도 그들의 행동반경은 줄어들지 않았고, 보안을 더욱 철저해졌다.

경찰들은 평범한 기업처럼 둔갑한 조직을 잡아들일 단서가 없어 발만 동동 굴렀는데, 보스까지 사라지자 진행중인 수사에 난항을 겪게 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조직폭력배들도 진화했다.

마치 평범한 기업처럼 사옥도 있었고, 직원들도 정장차림으로 아침에 출근해 저녁에 퇴근했다.

조직원들도 대학을 나온 사람들이 다수였고, 보스가 워낙 꼼꼼하고 철두철미해 어떤 불법의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경찰들은 사라진 보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그의 흔적을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한데, 보스 고장수가 한 별장에서 근심 어린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에메랄드 빛 바다가 훤히 보였는데, 주변에는 오직 그의 별장만이 있는 조용한 곳이었다.

그때, 두 사내가 조심스럽게 들어왔다. 한 명은 경호원처럼 정장을 입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의사처럼 하얀 가운 차림이었다.

“회장님.”

“목소리에 힘이 없는 걸 보니 별다른 변화가 없나 보구먼.”

“죄송합니다, 회장님.”

창밖을 바라보던 시선을 거둔 고장수는 고개를 떨구고 있는 하얀 가운의 사내를 바라보았다.

차분히 그를 주시하더니 이내 시선을 정장 사내에게로 옮겼다.

“개발자와 실험을 주도했던 자는 아직 찾지 못했나?”

“미국에 있다는 것까지만 확인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지 벌써 석 달이 넘게 지났다.”

“캘리포니아주와 라스베이거스로 범위를 좁히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확률이 높은 거지 확실한 건 아니다?”

“죄송합니다.”

정상사내도 고개를 떨구었다.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고장수의 표정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어나더 월드에 참여했던 자들 중 핵심 멤버들은 더 찾아봤느냐?”

“네. 하지만 그들은 아무것도 알지 못했습니다.”

“결국 개발자나 뇌 실험에 참여했던 놈을 잡아야 한다는 건데…….”

고장수의 눈빛에 살기가 어렸다.

그때, 정장 입은 사내의 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죄, 죄송합니다.”

“아니다. 받아 보아라.”

“네, 회장님.”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 고장수가 무조건 연락을 받으라는 명령을 한 터라 중간에 말이 끊겨도 무사히 넘어갈 수 있었다.

고개를 돌려 전화 통화를 하던 검은 정장 사내가 다급히 전화를 끊었다.

“무슨 일이냐?”

“국내 소식입니다.”

“국내 소식? 이미 태식이에게 모두 맡기지 않았느냐. 무슨 일이 생기든 알아서 처리하라고 했을 텐데?”

“네. 한데, 식물인간에서 깨어난 청년이 있다고 합니다!”

“뭣이! 그게 정말이더냐!”

“네. 회장님. 제가 어느 안전이라고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정 회장의 손자더냐?”

“아, 아닙니다.”

고장수는 자신의 예상이 빗나가자 강한 호기심을 드러냈다. 분명 다들 가난해서 생명을 유지하는 게 힘들다고 알고 있었다.

유일하게 희망이 있는 사람이 정 회장의 손자였는데, 그마저도 회생이 불가능해서 아예 국내 소식은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괜히 관심을 가지면 안 좋은 기억만 떠오를 것 같아 아들을 고치는 데에만 전념한 것이다.

한데, 절대 깨어나지 않을 줄 알았던 자들 중 가장 가능성이 희박한 사람들 중에서 하나가 깨어났다니.

고장수는 다급히 물었다.

“그게 누구냐?”

“이서우라는 청년입니다. 한데, 정 회장이 그와 접촉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회장님이 안 좋아하셔서 저도 다른 사람들은 신경을 전혀 쓰지 않았습니다. 혹시나 싶어 정 회장에게 사람을 붙인 것인데, 최근 한 청년과 접촉을 했다고 해서 자세히 알아보라고 한 것인데…….”

“그 청년에 대해 모든 걸 알아 와라. 어서!”

“네, 회장님!”

정장 사내는 큰 소리로 대답하고는 얼른 물러났다.

기본적인 정보는 알고 있지만 고장수는 철두철미한 사람이다. 최대한 많은 정보를 알아 와야 했다.

“그 청년을 미끼로 개발자 놈과 뇌 실험을 주도했던 놈을 잡아들여야겠어. 그게 안 되면, 안타깝지만 그 청년을 실험용으로 쓰는 수밖에. 안 박사, 가능하겠지?”

“물론입니다. 몇몇 기계장치만 지원해 주시면 충분히 해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청년을 실험하는 것보다 개발자나 실험을 주도했던 자를 찾는 게 더 빠를 겁니다.”

“참고하지.”

고장수는 희망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은지 얼굴에 진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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