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
레벨이 갑이다
200화
1차 테스트는 약속대로 점심 식사 전에 끝났다.
애초에는 몸 상태를 면밀히 살피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짧은 시간 육체의 상태가 너무 좋아져서 최 박사는 점심도 거르고 분석에 빠져들었다.
오후에는 이서우가 뉴 월드에 접속하면 어떤 변화가 있는지 자세히 살펴보기로 해서 최 박사와 그의 팀이 분주히 움직였다.
이서우는 그들이 뭘 하든 약속된 시간만 지키면 상관이 없어 식사를 하기 위해 테스트 룸을 빠져나왔다.
“점심은 얼큰한 순대곱창전골로 갈까?”
“좋지.”
“나도 콜!”
이설아와 김소연은 지켜보기만 했는데도 에너지를 많이 소모했는지 허기가 졌다.
식당으로 가서 주문을 넣고 기다렸다.
이서우와 이설아만을 위한 주방이 아래층에 마련이 되어 있어 어떤 메뉴도 가능했다.
한식, 양식, 중식, 일식 등 각 분야의 전문가가 대기하고 있어 언제든 원하는 것을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어떤 식당이라도 늘 먹다 보면 질리기 마련이다.
배부른 소리일지도 모르지만 이서우와 이설아 커플은 하루 세끼를 이곳에서 다 먹지는 않았다.
물론 한창 뉴 월드에 매진할 때는 끼니도 거를 때가 많지만 기분 전환 겸 맛집을 찾아다니는 경우도 잦았다.
드론 자동차가 있기에 국내 어디든 갈 수 있어 소문난 맛집은 상당히 많이 가 보았다.
“오늘은 40년 전통의 순대곱창전골 집으로 가 볼까나.”
“어머, 뉴 월드에서 바쁘게 생활하면서 그런 곳은 또 언제 알아 놨대?”
“틈틈이 알아 놨지.”
“40년 전통이라고 하니 기대되는데?”
“오빠, 거기가 어디야?”
“강원도 평창에 있는데, 꽤 소문이 난 곳인가 봐. 가서 든든하게 먹고 오자고.”
“오빠 피도 뽑았으니 몸보신 좀 하고 와야지.”
“야, 헌혈을 한 것도 아니고 그거 조금 뽑은 거 가지고 무슨 몸보신이냐. 누가 들으면 헌혈이라도 한 줄 알겠다.”
“언니, 지금 부러워서 그러는 거지?”
“나도 종명 씨 부른다!”
“그러셔.”
공과 사는 확실히 구분하는 김소연이지만 점심시간에는 연애를 하든, 잠을 자든 전혀 터치를 하지 않는 그녀다.
“난 민수한테 전화해 볼게. 오랜만에 다 같이 모여서 식사하면 되겠네.”
“응. 다들 바빠서 모일 틈이 없는데 잘 됐네. 언니도 어서 전화 해.”
“오케이!”
다들 같은 직장에 있어도 워낙 바쁘다 보니 만날 틈이 없었다.
가끔씩 저녁 식사를 같이 하지만 그마저도 최근에는 이서우가 워낙 바빠 늦게 종료하기 일쑤여서 한동안은 모이지 못했다.
그렇게 세 커플은 직선거리로 120킬로미터가 넘게 떨어진 곳에서 점심을 먹었다.
400킬로미터 이상의 속도로 날아갈 수 있는 드론 자동차여서 오고 가는 데는 큰 불편이 없었다.
점심시간도 2시간으로 넉넉해서 가볍게 산책까지 하고 돌아왔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2시 30분이 되자 이서우는 특수 제작 된 접속 베드가 있는 곳으로 갔다.
이설아가 이틀을 접속 할 수 없어 지켜보는 조건으로 수락한 것이어서 그녀는 접속 베드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 김소연까지 이설아 곁을 지켰다. 업무는 어차피 원격으로 처리가 가능하기 때문에 큰 불편함은 없었다.
“다를 게 하나도 없으니 늘 하시던 대로 게임을 진행하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오빠, 광렙 하고 와.”
“알았어.”
“득템해서 나도 좀 주고.”
“누나는 이미 장비 짱짱하잖아. 내가 모를 줄 알고?”
“어머, 너 나 스토킹하니?”
“그런 거 안 해도 다 알게 되거든?”
“아하, 네가 길마였지. 깜빡했네.”
이서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접속 베드에 누웠다.
“뭔가 오랜만에 접속한 것 같은 느낌이네.”
이서우는 접속하자마자 황제의 상태를 살폈다.
괜찮은 것을 확인한 그는 몰디나에게로 갔다.
“어서 와.”
“황제 폐하께서는 괜찮으시겠죠?”
“리치 킹이 딴 짓을 할까봐 걱정되는 거야?”
“솔직히 너무 쉽게 일이 마무리돼서 조금 걱정은 되네요.”
“그래서 놈은 당분간 조용할 거야. 그러니 이곳은 신경 쓰지 말고 네 볼 일 봐. 나와 아리아만으로도 충분하니까.”
“그래도 될까요?”
이서우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황궁에만 처박혀 있는 것이 싫었지만 퀘스트 완료까지는 아직도 꽤 긴 시간이 남아 있어 염려가 되었다.
“설마 나랑 아리아를 못 믿는 건 아니겠지?”
“지난번 일도 그랬다가 당한 거 아시죠?”
“그, 그건 실수였어! 황궁에서는 절대 안 당하니 걱정 안 해도 돼!”
“뭐,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야…….”
이서우도 황궁에서는 특별한 일이 없을 거라 믿고는 몰디나의 말대로 개척자 도시로 갔다.
황제를 한 달 동안 무사히 지키는 게 퀘스트 완료 조건이지 곁에서 지키라는 말은 없었다.
리치 킹이 8서클 마법을 겨우 쓴다고 들었기에 이서우는 그들에게 맡기고 레벨 업에 전념해야겠다고 판단했다.
‘A급 퀘스트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쉽네. 그동안 힘든 걸 하도 해서 이런 꿀 퀘스트도 주는 건가?’
이서우는 시간이 지나면서 저절로 완료가 되는 퀘스트를 가진 동시에 사냥으로 레벨 업도 할 수 있어 기분이 좋았다.
이서우는 개척자 도시에 있는 자신의 저택으로 갔다.
안으로 들어가자 집사가 그를 맞았다.
“주인님, 다녀오셨습니까.”
“네. 제가 없는 동안 별일 없었지요?”
“주인님이 계시지 않아 썰렁한 것 외에는 별다른 일은 없었습니다. 아 참, 사이먼 자작님께서 연락을 해 오셨습니다. 선물과 함께 주인님이 오면 이걸 전해 드리라고 하셨고요.”
“선물요?”
“네. 주인님에게 땅을 더 주셨습니다.”
“땅을요?”
“네. 지금 소유하신 것보다 훨씬 넓은데, 이걸 어떻게 할까요?”
이서우는 뜬금없이 땅을 줬다고 하니 의아했다.
그동안 활약을 많이 해서 거절할 생각은 없지만 땅이 늘어나면 거기에 들어갈 골드도 자연스럽게 많아진다.
하지만 이서우로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뉴 월드에서도 부동산 거래가 가능하다. 화려하고, 멋진 집은 수십, 수백만 골드에 팔려 나가기도 한다.
대귀족들은 유저에게 땅을 팔지 않고, 지어진 건물만 팔았다.
별다른 차이가 없는 것 같지만 땅을 팔지 않는 것은 건물을 임의로 짓지 못하게 하고, 다른 용도로 변경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서우는 땅을 얻으면서 자신이 원하는 건물을 마음껏 지을 수도 있었고, 변경할 수도 있었다.
“정확히 얼마나 되죠?”
“대략 3만평 가까이 됩니다.”
“엄청나네요.”
“이 일대는 한적하고, 거의 대부분이 빈 땅이니까요.”
이서우가 북적거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사이먼 자작이 배려해서 저택을 마련해 주었다.
앞으로 이서우에게 많은 도움을 받게 될 것을 알고 사이먼 자작은 미리부터 저택 주변에는 아무것도 지을 수 없게 했다.
덕분에 이서우는 큰 활약을 할 때마다 땅이 조금씩 늘어났다.
이번에 많은 땅을 준 것은 그 동안 워낙 큰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넓은 땅을 받게 된 이서우는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해 고민했다.
‘그냥 놀리면 아깝고, 그렇다고 오래 머무는 곳도 아닌데 건물만 잔뜩 지어 놓으면 건축비와 유지비만 많이 들고. 어떻게 한다.’
지금도 저택이 워낙 넓어 인원이 계속 추가되어 거의 100명 가까운 하인들이 일을 하고 있었다.
골드의 가치가 현실과 달라 허드렛일을 하는 하인들은 월 10골드면 충분히 고용할 수 있고, 집사도 30골드면 충성을 다 한다.
하지만 3만 평을 관리하려면 수백 명의 사람이 필요한데, 그렇게 되면 한 달에 수천 골드가 그냥 날아가 버린다.
이서우는 월 1~2천만 원 정도가 공중 분해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한참 고민하던 이서우는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개척자 도시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 몇 층이죠?”
“현재는 20층까지 있습니다.”
“그래요? 그러면 50층짜리 초호화 호텔을 짓는 것으로 하죠.”
“초호화 호텔 말씀이십니까?”
“네. 땅이 계속 늘어나면 들어갈 돈도 많아질 테니 어느 정도는 회수를 해야죠.”
“주인님의 명성이시라면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겠군요. 하지만 그렇게 되면 많이 시끄러워질 겁니다.”
“어차피 이곳에 머물 시간이 그리 많지는 않을 테니 괜찮아요. 아니면 다른 한적한 곳에 다시 저택을 짓죠 뭐.”
“그러면 되겠군요. 한데, 몬스터가 침입하거나 전쟁이 나면 주인님의 건물이 가장 잘 보여서 위험하지 않을까요?”
“다른 마을은 몰라도 여긴 안전해요.”
“아! 그렇군요. 모험가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이주민들도 많아지고 있으니 안전에는 문제가 없겠네요.”
“바로 그거죠.”
현재 개척자 도시는 하루에도 수백만 명이 오고 가는 엄청난 도시로 탈바꿈했다.
NPC들도 이곳에 인구가 몰린다는 것을 알고 장사를 하러 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중에 특이한 직업이 있었는데, 바로 잡템을 대신 팔아 주는 사람이었다.
이들을 대리 상인이라 불렀는데, 벌이가 쏠쏠해 NPC들에게 인기 직종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하이 레벨 지역은 워낙 경험치 획득이 많아 마을로 오는 시간마저도 아깝게 여기는 유저들이 많았다.
남들은 열심히 경험치를 올리는 데 뒤처질 수 없어 경쟁이 과열되면서 그 아쉬움은 더욱 커졌다.
이때, 한 상인이 유저들의 고민을 시원하게 해결해 주었고, 그때부터 대리 상인이 활성화되었다.
이 일을 시작한 상인은 유저였는데, NPC들을 고용해 신속하고, 정직하게 잡템을 대신 팔아 주면서 사업을 키워 갔다.
돈이 되는 곳에는 사람이 몰리는 법.
대리상인이 등장한 뒤 우후죽순처럼 상인 유저들이 뛰어들었지만, 처음 시작한 상인 유저가 대상인이었기에 확장성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었다.
사업은 빠른 속도로 번졌고, 지금은 30개가 넘는 크고 작은 마을에 대리 상인들이 상당수 자리를 잡고 있었다.
대리 상인이 많이 늘었다는 것은 그만큼 사람들이 많이 몰린다는 뜻이고, 많은 사람들이 몰리면 전쟁에 참여할 사람이 많아지니 안전했다.
“사이먼 자작님께 허락을 받고 바로 시공에 들어가시는 겁니까?”
“그래야죠.”
“시공사는 어떻게 하실 건가요?”
“어차피 공사는 모험가들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이 주축이 될 테니 사이먼 자작님께 도움을 구해야죠.”
“그러면 전 소식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네. 어차피 자작님이 찾으신다니 바로 답변을 받아 오겠습니다.”
“네, 주인님.”
이서우는 곧장 사이먼 자작에게로 갔다.
경비병들도, 기사들도 그를 제지하지 않았다.
쉽게 사이먼 자작의 거처까지 갔다.
“허허허, 어서 오게. 그렇지 않아도 자네를 기다렸네. 이거 아리따운 아가씨보다 자네가 더 좋아지니 큰일이구먼.”
“제가 참한 모험가라도 소개를 시켜 드려야겠네요.”
“예끼, 이 사람아, 그런 소리 말게. 난 이대로가 좋다네. 결혼은 무덤이야, 무덤!”
손사래까지 치는 사이먼 자작의 반응에 이서우는 소리 내어 웃었다.
“참, 한데 절 보자고 하셨다고요?”
“내 정신 좀 보게. 자네에게 긴히 할 말이 있었는데 깜빡했구먼. 좋은 일로 자네를 불러야 하는데, 매번 안 좋은 소식을 전하려니 마음이 좋지 않아.”
이서우는 짐작 가는 바가 있었지만 사이먼 자작이 직접 이야기 하도록 잠시 기다렸다.
“자네 덕분에 블랙드래곤과 리치 킹의 존재를 알 수 있어서 한창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네. 2년 정도의 시간 동안 뭘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제대로 무장을 한다면 어느 정도는 막아 낼 거라 보고 있다네. 하지만 자네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해. 자네도 그건 알고 있을 테지.”
“네. 저도 황제폐하께 적극 돕겠다고 이미 말을 했습니다.”
“알고 있네. 그래서 참으로 든든하다네. 한데, 최근 들어 제국 곳곳에서 언데드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네. 아직 규모가 그리 크지는 않지만 힘없는 마을들을 노리고 있어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라네.”
“그 정도입니까?”
리치 킹이 나타난 지 며칠 지나지 않았다.
한데, 사이먼 자작의 표정을 보니 상황이 안 좋은 것 같았다.
“우리가 충분히 감당할 수준은 되네.”
“그런데 왜 절…….”
이서우는 퀘스트가 이어지겠거니 기대를 하고 있는데 사이먼 자작의 반응이 예상과 달라 의아했다.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데 왜 부른 것일까.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라는 말이 있네. 자네도 알겠지?”
“네.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싸워왔으니까요.”
“황제폐하께서도 같은 생각이네. 그래서 수동적으로 대비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도 뭔가 행동을 취해야겠다고 결론을 내렸지. 우린 자네가 제국을 돌면서 리치 킹의 추종자들을 처리해 줬으면 하네. 말단 하수인급이 아니라 관리자급들만 말일세.”
-리치 킹의 전력을 약화시켜라.
리치 킹은 대륙을 장악하기 위해 자신의 군단을 일으키려하고 있다.
카이젠 제국은 그를 막기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부을 각오로 준비를 하고 있지만 수비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고 공격과 병행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리치 킹의 전력을 약화시키기 위해서는 많은 병력이 필요해 섣불리 행동할 수 없었다.
이에 황제는 당신을 떠올렸고, 조세프 백작에게 명령을 내렸다.
난이도 : A
완료 조건 : 리치 킹의 전력 약화. 관리자급을 최소 5명 이상 처치해야 한다.
*보상에 대한 것은 사이먼 자작에게 추가 설명을 들으면 된다.
‘난이도가 A급?’
이서우는 또다시 높은 난이도를 받아 눈빛이 반짝였다.
한데, 한 가지 특이한 것이 있었다.
“자작님, 임무에 대한 보상이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아도 그 부분에 대해 설명을 하려 했네. 황제폐하와 조세프 백작님 이하 대귀족 분들이 이 문제를 놓고 많은 의논을 했네. 그래서 황제폐하께서는 자네에게 꽤 파격적인 보상을 주기로 했다네.”
사이먼 자작이 진중한 음성으로 말하자 이서우는 대체 어떤 보상이기에 이렇게 뜸을 들이나 싶어 한껏 기대에 찬 얼굴로 다음 말을 기다렸다.
사이먼 자작의 입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