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
레벨이 갑이다
202화
“무슨 일로 절 찾아오셨는지 말씀해 보세요.”
“아, 다름이 아니라 이번에 서우 님이 대규모 공사를 한다고 하셔서요.”
“아, 그거 말이군요. 한데, 그게 프랑드 님과 무슨 상관이 있나 모르겠네요.”
“상관이 많죠.”
“그래요?”
이서우의 목소리가 약간 딱딱해졌다.
위험한 순간을 함께 보낸 경험이 있지만 사업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니 살짝 경계가 되었다.
“아, 오해는 마십시오. 단지 전 서우 님이 하시는 사업이 더 번창할 수 있게 제안을 하러 온 것이니까요.”
“사업에 대한 부분은 굳이 조언을 들을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말이죠.”
“그렇지 않을 걸요.”
“자신이 있으시네요.”
“그럼요. 이래 봬도 대상인인 걸요.”
“한데, 어쩌죠. 전 이미 어떤 식으로 사업을 진행할지 대충 결정을 내렸는데 말이죠.”
이서우는 단 1퍼센트도 사업이익을 누군가와 나눌 생각이 없었다. 독식을 할 수 있는데 왜 나눈단 말인가.
“서우 님이 짓는 건물들을 랜드마크로 만드실 생각이 없으신 겁니까?”
“물론 그럴 계획이지요. 그러기 위해 대규모 공사를 진행하는 거고요.”
“그렇다면 절 잘만 활용하시면 더 큰 이익을 챙기실 수 있습니다.”
프랑드는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이서우가 이번 계획을 발표하자마자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무려 서른두 곳에 초고층 빌딩을 짓는다. 규모도 상당해서 하이 레벨 지역의 랜드마크가 될 것은 분명했다.
설계도를 직접 본 것은 아니지만 구하는 인원으로 충분히 규모를 짐작할 수 있었다.
“제가 어떤 계획을 세우고 있는지 알고 계시는지요?”
“벌써 나무꾼들이 열심히 나무를 베어 나르더군요. 강철보다 더 단단하다는 타이탄 나무를 말이죠.”
하이 레벨 지역은 몬스터뿐만 아니라 식물과 나무들도 특별하다.
나무의 경우는 워낙 단단해서 3차 전직 목수가 아니라면 가공할 수도 없다.
NPC들은 특수한 도끼만 주어지면 거뜬히 벨 수 있지만 유저들은 3차 전직 이상이 되어야 했다.
상인인 프랑드가 이를 모를 리 없다. 누구보다 많이 알고, 그것을 활용할 줄 알아야 대상인이 될 수 있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씀이 뭔가요?”
“서우 님은 사이먼 자작이나 조세프 백작과 친분이 두텁다고 알고 있어요. 서우 님은 아마 이곳을 관리하는 자작에게 퀘스트를 주는 형식으로 생산직 유저들을 모았을 거예요. 그렇지 않나요?”
“…….”
이서우는 자신의 의도를 꿰뚫어보는 프랑드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보통이 아니네. 별다른 정보도 없었을 텐데 어떻게 안 거지.’
“너무 그렇게 놀라실 필요 없어요. 저라도 그렇게 했을 테니까요.”
“제가 좀 바쁜데 핵심만 말씀하세요.”
“아, 죄송합니다. 전 단지 서우 님이 대부호가 될 수 있도록 돕고 싶었습니다.”
“대부호라고요?”
“네.”
“전 그럴 생각이 없습니다만.”
“서우 님은 아닐지 몰라도 이미 유저들과 NPC들은 서우 님을 존경하고 있습니다. 잘 아실 텐데요.”
이서우도 자신이 얼마나 존재감이 있는지 잘 안다. 그 점을 이용해서 이번 일을 진행하는 것이었으니까.
“여튼, 전 서우 님이 이번 일에서 수익을 극대화시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찾아 온 것입니다.”
이서우의 표정이 살짝 굳어지자 프랑드가 얼른 자신의 의도를 정확하게 이야기 했다.
하지만 이서우는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었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지. 뭘 원하는지 어디 볼까.’
잠시 생각하던 이서우는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
“원하는 게 뭐죠?”
“제가 원하는 건…….”
“절 대부호로 만들어 준다는 이야기 따위는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군요. 그러면 전 더 이상 프랑드 님과 대화를 이어갈 수 없을 것 같거든요.”
“좋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죠.”
프랑드는 더 이상 자신의 의도를 숨기지 않기로 결심하고는 깊은 숨을 들이쉬었다.
“서우 님의 이익을 극대화시키는데 일조하고 그에 대한 대가를 받고 싶습니다.”
“대가라. 골드를 원하나요?”
“아닙니다. 저는 서우님께서 짓게 될 건물에 제 공간을 갖기 원합니다.”
“장사를 하시겠다는 뜻입니까?”
“이를 테면 그런 것이죠.”
“흠.”
이서우는 뜻밖의 말에 턱을 어루만졌다. 수익의 일정 부분이나 골드를 원할 줄 알았는데, 예상이 빗나가고 말았다.
“장사라고 하셨는데, 정확히 뭘 말하는 거죠?”
“대규모 매장을 하나 내고 싶습니다.”
“대규모 매장요?”
“네.”
“조금 더 자세히 말씀해 주세요.”
“경마장과 비슷한 곳을 만들고 싶습니다.”
“뭐라고요?”
이서우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아이템 매장이나, 소모품 매장을 원할 줄 알았는데 경마장이라니.
“이런, 오해를 하셨네요. 경마장과 비슷한 곳이라고 했지, 경마장이라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게 그거인 것 같습니다만?”
“그렇지 않습니다. 전 던전의 클리어나 아이템 드롭 등과 관련된 것으로 배팅을 하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은 겁니다.”
“…….”
이서우는 프랑드가 하는 말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턱을 어루만졌다.
경마장과 비슷한 곳이라고 해서 도박성이 짙을 줄 알았는데, 그가 하는 말이 사실이라면 유저들에게 크게 나쁠 건 없을 것 같았다.
“던전을 경험한 사람들이라면 얼마나 빠른 속도로 클리어 하는지, 혹은 각 보스들을 얼마나 빨리 처치할 수 있는지, 힐러 없이 가능은 한지 등, 다양한 데이터를 가지고 있을 겁니다. 그것을 바탕으로 베팅을 하는 방식이라면 전혀 문제가 없을 것 같은데요. 그렇지 않나요?”
“자신의 경험으로 베팅을 하는 거니 큰 문제는 없을 것 같군요. 하지만 조작에 관한 문제가 제기될 겁니다.”
“그건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겁니다. 만약 문제가 제기 된다면 모든 책임은 제가 지겠습니다.”
“책임은 책임이고, 제 명성에 흠이 생기는 걸 그다지 원하지는 않습니다만.”
“베팅의 대상이 되는 유저들도 베팅을 하게 될 테니 신뢰도 문제는 없을 겁니다.”
“흠.”
많은 유저들이 여러 팀을 분석하고 저울질하며 베팅을 할 것이다. 한데, 프랑드는 베팅을 당하는 팀조차도 베팅을 하게 만들 생각이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예 참여 자체를 못 하게 한다면 신뢰도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될 것이라 여겼다.
물론 그런 방법이 통하지 않더라도 프랑드는 여러 가지 해결 방안을 가지고 있었다.
이서우는 자신감이 넘치는 프랑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프랑드를 잘 활용하면 충분히 더 많은 사람들을 끌어모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대규모 매장인만큼 그 안에 다양한 아이템들을 함께 판다면 수익은 배가 될 겁니다. 서우 님은 그 수익 중 일부를 가져가시면 되니 아무 손해도 없을 거고요.”
나름 회심의 한 수를 던졌는데 이서우가 반응이 없자 프랑드는 정확한 수치까지 말해 주었다.
“10퍼센트를 드리겠습니다.”
“수익의 10퍼센트를 주신다는 말씀이신가요?”
“물론입니다.”
“제가 운영하면 어쩌시려고 그러시죠?”
“서우 님이 그 정도로 뻔뻔한 분은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 게다가 바쁘신 분이신데 서른두 곳을 어떻게 다 운영하실 수 있겠습니까. 건물 관리도 힘드실 텐데 말이죠.”
“하긴, 그 큰 건물을 지어 놓고 저 혼자서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겠죠. 그래서도 안 되겠고.”
NPC들과 상생하기 위해 이서우는 건물 안에 있는 매장 중 상당수를 그들에게 맡길 생각이었다.
물론 공짜는 아니다. 그에 합당한 대가로 임대료를 매길 계획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걸리는 게 있었다.
“참고로 하이 레벨 지역은 언제 전쟁으로 휩싸일지 알 수 없습니다. 그에 대한 피해보상은 없다는 걸 명심하셔야 합니다.”
“아, 그렇지 않아도 그 문제 때문에 말씀 드리려 했습니다. 자작에게 부탁해서 퀘스트 조건을 조금 바꾸시면 해결될 겁니다.”
“퀘스트 조건을 바꾼다고요?”
“네. 이를테면 건물을 만들 타이탄 나무를 강화하라고 하는 식으로 말이죠.”
“타이탄 나무를 강화한다고요?”
“네. 충분히 가능합니다. 랭킹 1위부터 10위까지의 길드들은 이미 길드 건물을 그런 식으로 지었죠.”
“그렇군요.”
“대장장이들도 고용을 하셨으니 그들의 고유 능력으로 전쟁에서 부서지지 않을 정도는 강화를 시킬 수 있을 겁니다.”
“좋습니다. 그런 거라면 저도 반대할 이유는 없겠네요. 자작님이나 백작님도 크게 반대하지 않을 실 것 같고요.”
“잘 생각하셨습니다. 분명 엄청난 반응을 불러일으킬 겁니다. 베팅을 던전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다양한 방식을 도입하면 엄청난 대박을 칠 겁니다.”
프랑드는 두 주먹에 힘을 주었다. 즉흥적으로 떠올린 것이지만 그의 머릿속은 언제나 사업에 대한 구상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런 습관이 있었기에 기회를 붙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규모는 어느 정도로 생각하십니까?”
“500평 정도면 될 것 같습니다.”
“꽤 크군요.”
“수익의 10퍼센트와 별도로 임대료도 지불하겠습니다.”
“뭐, 그렇게까지 한다면 저도 거절할 수는 없군요. 한데, 프랑드 님의 말씀대로라면 굳이 서른두 곳까지 필요하지 않을 것 같은데요.”
“색깔을 입혀야죠. 한 곳이 던전이면 다른 곳은 레이드 몬스터가 될 수도 있고, 또 다른 곳은 미개척 지역이 될 수도 있고요.”
“좋습니다. 하지만 서른두 곳의 임대료는 만만치 않을 겁니다.”
“NPC와 유저의 차별을 두시겠다는 뜻이군요.”
“임금도 다르니 당연히 그렇게 해야겠죠.”
“알겠습니다. 책정이 되면 말씀해주십시오.”
“그러죠. 두 달 정도면 32곳이 다 완성 될 테니 그 때 다시 이야기 하도록 하죠.”
“네!”
드디어 프랑드와의 대화가 끝났다.
이서우로서는 손해 볼 게 없는 시간이었다.
프랑드는 임대료를 마련하기 위해 대리 상인 외에도 단기 사업을 추진했다.
이서우는 그와 헤어지고 다시 사이먼 자작을 찾아 임무를 조금 변경해줄 것을 당부했다.
사업이 커지자 이서우는 프랑드를 활용하기로 했다. 머리도 비상하고, 수완도 좋으니 이서우에게도 이득이었다.
공사를 진행하면서 문제가 발생하면 언제든지 귓말로 의견을 나눌 수 있기에 프랑드도 흔쾌히 수락했다.
이로써 이서우는 전쟁 중에도 견고히 버틸 수 있는 엄청난 규모의 빌딩을 32개나 얻게 되었다.
아직은 공사 시작에 불과하지만 하루에 한 층씩 쌓아올리니 진행 상황이 눈에 보일 정도여서 사람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게 되었다.
“빌딩 문제는 잘 처리가 됐고. 이제 리치 킹의 흔적들을 찾으러 가 볼까나.”
이서우가 방향을 잡은 곳은 바로 다론 마을이었다.
규모가 작은 마을에서 언데드가 많이 발생한다고 하니 다론이 떠올랐다.
게다가 이서우는 이미 다론에서 언데드와 전투를 벌인 적이 있었다.
“어르신은 여전히 정정하시겠지? 너무 오랜만에 왔다고 호통이나 치지 않으려나 몰라.”
말은 그렇게 해도 이서우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다.
* * *
“백작님, 부르셨습니까.”
“서우 군에게는 잘 말했나?”
“네. 흔쾌히 받아들였습니다.”
“다행이구만. 억지를 부린 보람이 있어.”
“한데, 서우 군이 괜히 후작가나 공작가의 견제를 받게 되는 건 아닐까 걱정입니다.”
“나도 사실 그 부분이 조금 걱정이 되기는 했네. 모험가들로 이뤄진 대형 길드들이 대귀족과 손을 잡고 있으니 말일세. 하지만 리치 킹이 모습을 드러낸 상황이니 1년 정도는 허튼 생각을 하지 못할 것이야.”
이서우가 활약을 하면 할수록 대형 길드들은 대귀족에게 전방위적인 로비를 펼치고 있었다.
모험가 한 개인에게 너무 많은 혜택을 주면 안 된다며 후작과 공작을 설득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워낙 공이 커서 그들도 당장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리치 킹과 블랙드래곤까지 나타난 마당이라 그에 대한 대비로 정신이 없었다.
“그렇긴 한데, 서우 군이 계속 활약을 하고 모험가들의 로비가 계속되면 어찌 될지…….”
“서우 군이라면 잘 할 것이네. 지금은 우리부터 걱정할 때야.”
“이크, 그것도 그러네요. 이대로라면 리치 킹을 상대하기 전에 놈의 부하 녀석들에게도 당할 테니.”
“기사들의 훈련에 만전을 기하게. 이번에 베손 남작도 참여한다고 했으니 하이레벨 지역에서 실전훈련을 많이 하도록 하게.”
“네, 백작님.”
사이먼 자작은 백작과 조금 더 대화를 나누고는 개척자 도시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