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이 갑이다-203화 (203/341)

# 203

레벨이 갑이다

203화

“이놈이, 자꾸 개기지?”

퍽!

“꾸에엑!”

“그러게 째라면 쨀 것이지 왜 자꾸 거부해? 내가 확 배때기까지 째 줘?”

서슬퍼런 칼을 들고 쇠사들에 묶여 있는 트롤에게 으름장을 놓는 사람은 바로 란셀이었다.

란셀은 트롤의 피로 새로운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는데, 이제 1마리밖에 남지 않아 죽이지도 못한 채 피를 뽑고, 회복시키고를 반복하고 있었다.

“에잉, 이럴 때 그 녀석이 있어야 부려먹는데, 요즘은 왜 이렇게 코빼기도 안 보이는지. 오기만 해 봐라 내가 그냥…….”

“어르신, 누가 오기로 했어요?”

“아이고, 깜짝이야! 이놈아, 꼬추 떨어질 뻔했잖느냐. 오면 온다고 말을 할 것이지.”

“…….”

갑자기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란셀은 화들짝 놀라 단검까지 떨어뜨리고 말았다.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바로 이서우였다.

‘애 떨어진다는 말은 들어봤어도 거기가 떨어진다는 말은 처음 듣네. 하여튼 특이하신 분이라니까.’

이서우는 ‘역시 재미있는 분이야.’라는 미소를 띠며 란셀이 떨어뜨린 단검을 건네주었다.

“잘 지내셨어요?”

“나야 늘 잘 지내고 있지.”

“근데, 뭐 하고 계셨던 거예요?”

“이놈 피 좀 뽑으려고.”

“원하시는 건 이루셨다면서요?”

“안 죽고 살아 있으니 심심해서 새로운 것들이나 좀 만들어 보려고 그러지.”

“더 만들 게 있으세요?”

최고급 신선초의 효과를 아는 이서우는 더 효과가 뛰어난 약이 있나 싶었다.

“죽었던 사람도 살릴 수 있는 걸 한번 만들어 볼까 싶어서.”

“죽었던 사람을 살린다고요?”

“인간은 죽고 나서도 5분 정도는 뇌가 살아 있다. 그때 생기를 불어넣으면 다시 회생하는 게 가능해.”

“성공하신 적은 있고요?”

“아니.”

“근데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세요?”

“이론적으로는 충분히 가능하니까.”

“그러니까 이론적으로 가능하니 만들어 보겠다는 겁니까?”

“그래.”

이서우는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이론은 이론일 뿐이다.

물론 이론을 바탕으로 실험을 하고, 그것을 증명하는 과정에서 충분히 그 이론이 현실화되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죽은 사람을 다시 살려 내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았다.

“왜? 불가능할 것 같으냐?”

“네.”

“5분 안에 살리는 거라서 가능할 것이다.”

“확신하시네요.”

“확신하지. 그분이 직접 살리는 것을 봤으니까.”

“그분이라면, 펠렌 님?”

“그래. 바로 그분이지.”

란셀은 자부심을 가지고 대답했다.

하지만 이서우는 납득이 되지 않았다.

어떻게 그런 강한 힘을 내면서 죽은 사람까지 살릴 수 있단 말인가.

“그분이기에 가능하다 생각하고 난 그 일에 도전하지 않았다.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다가는 다리가 찢어지기 마련이니 내가 할 수 있는 것에만 집중했지. 한데, 모든 걸 이루고 나니 그분의 경지가 욕심이 나더구나.”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죽은 사람을 살린 거죠?”

“쯧쯧쯧. 이 녀석아, 너도 그분의 후예다. 네가 누군지 잊었느냐?”

“아!”

사냥에 전념하다보니 자신의 직업을 잊고 있었다.

전설의 약초꾼.

란셀이 바라마지 않는 직업을 가졌지만 정작 본인은 힘을 키우는 데만 집중해 본분을 망각했다.

“너도 노력하면 분명히 그분처럼 죽은 자를 살려 낼 수 있겠지. 하지만 넌 약초에 대한 것보다 싸우는 것을 더 좋아하더구나.”

“남자는 사냥이죠.”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것도 좋지만 약초에 대한 지식과 경험은 소홀히 하지 말거라. 너에게 분명 필요할 때가 있을 테니.”

“네.”

평소와 달리 진중한 모습으로 말하는 란셀을 보니 이서우도 장난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란셀이 무슨 말을 해도 이서우는 약초에 대한 것보다 사냥이 훨씬 좋았다.

“아, 이럴 게 아니라 온 김에 트롤들 좀 잡아오너라.”

“트롤들을요?”

“그래. 실험을 하려면 트롤이 많이 필요한데, 한 마리 밖에 남지 않았구나.”

-트롤을 포획하라.

란셀은 인간의 영역을 뛰어넘기 위해 죽기 전에 마지막 도전을 하려 한다.

죽은 인간을 살리는 것.

펠렌이 단 한 번 보여 준 신비하고도 놀라운 경험.

란셀은 그 경험을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여기고 도전조차 하지 않았지만, 이제 모든 것을 이루었기에 불가능하다 여긴 펠렌의 경지를 거머쥐고 싶다.

인간의 욕심은 끊임이 없는 법.

란셀은 소생의 비밀을 찾기 위해 트롤 연구를 시작하려 한다.

난이도 : C

완료 조건 : 10마리의 트롤을 생포하면 된다.

성공 시 보상 : 1레벨 경험치. 1천 골드.

실패 시 : 3레벨 다운.

이서우에게 트롤 생포는 이제 눈을 감고도 할 수 있는 일이다.

‘쉬운 일에 비해 보상은 좋네. 온 김에 해 드리고 가자.’

란셀이 소생의 비밀을 풀 수 있는지 자신할 수는 없지만 새로운 것에 도전한다는 것만으로도 응원을 해 주고 싶었다.

이서우는 오랜만에 다론 마을을 휘저었다.

저렙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 비교적 멀리 떨어진 곳에서 트롤을 생포했다.

순식간에 20마리를 굴비 엮듯 엮어서 란셀에게 가져갔다.

완료 조건은 10마리지만 넉넉히 실험하라고 더 많은 트롤을 포획했다.

“이렇게 빨리 처리하다니 그 동안 확실히 실력이 늘었구나.”

“조금 노력을 했죠.”

“녀석, 직업 기술은 어느 정도 올렸느냐?”

“직업 기술이라면…….”

“하이 레벨만이 할 수 있는 기술이지 뭐긴 뭐겠느냐.”

“근력과 민첩력, 체력을 올려 주는 영약을 만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단계는?”

“최근에 초급 2레벨까지 올렸습니다.”

“쯧쯧쯧, 이제 겨우 그거냐?”

“나름 쉬지 않고 올린 결과입니다.”

“퍽이나. 전투 보조 아이템은?”

“약초액은 상급이고, 물약 제조는 고급이네요.”

“아직 많이 부족해. 전투 보조 아이템 제작은 스페셜까지 올렸어야지. 영약은 5레벨까지 올리고.”

란셀은 이서우의 경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재능은 뛰어난데, 노력을 하지 않는다고 여긴 것이다.

하지만 이서우는 자동 제조가 가능해지면서 쉬지 않고 제조를 걸어 두었다.

문제는 사냥을 너무 많이 해서 자동 제조가 자꾸 끊긴다는 데 있었다.

이서우도 발전이 늦는 이유를 잘 알지만 제조에 시간을 많이 할애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것보다 어르신, 성능 좋은 물약 좀 없나요?”

“왜? 사게?”

“만일을 대비해야죠.”

“네가 직접 만들면 되지 않느냐.”

“제가 만들면 시간이 좀 걸리잖아요.”

“자급자족해야지. 너 그렇게 네 직업에 소홀히 하다가는 큰 코 다쳐. 이번 기회에 제대로 익혀.”

“……네.”

이서우는 그럴 생각이 없어 힘없이 대답을 했다.

“난 이제 트롤과 씨름을 좀 해야겠으니 여기서 시간 죽이지 말고 볼일 봐.”

“네.”

이서우는 더 이상 있다가는 잔소리만 들을 것 같아 얼른 란셀과 헤어졌다.

다론 마을의 이동관리사에게로 향할 때였다.

-서우 님, 저 프랑드입니다.

-아, 네, 프랑드 님. 무슨 일이세요?

-사이먼 자작님께서 서우 님을 급히 찾는데요? 백작님께로 곧장 오라고 하십니다.

-그래요? 알겠습니다.

이서우는 뭔가 일이 생겼다는 것을 직감하고 란셀과 헤어졌다.

이동 수단이 있어 다빙턴 마을까지 금세 갈 수 있었다.

전투를 하듯 빠르게 달려 백작성에 도착했다.

백작의 거처로 안내되었는데, 그가 들어오자마자 조세프 백작과 사이먼 자작이 다가왔다.

“서우 군, 큰일 났네!”

“네?”

“황제폐하께서 위독하시네!”

“네? 그게 무슨…….”

이서우는 갑자기 황제가 위독하다는 말에 크게 놀랐다.

하루 전까지만 해도 멀쩡했는데, 갑자기 위독하다니!

“원인을 알 수 없어 몰디나 님과 아리아 님도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네.”

“일단 제가 가 보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몰디나 님과 아리아 님이 자네를 찾고 있네. 서둘러 주게!”

“네.”

이서우는 텔레포트 마법진이 있는 곳으로 갔다.

급한 상황인 것 같아 곧장 몰디나가 사는 곳으로 텔레포트했다.

마나가 빠져나가며 시야가 흐려졌다.

다시 시야가 돌아왔을 때, 그의 앞에는 몰디나가 있었다.

“몰디나 님, 대체 무슨 일입니까?”

“일단 황제폐하께 가 보자. 잡아.”

“네.”

이서우는 몰디나가 내민 손을 잡았다. 그러자 다시 시야가 흐려지더니 황제의 거처로 이동했다.

누구도 황제의 거처 주변으로는 텔레포트를 할 수 없지만, 오직 몰디나만은 예외였다.

황제는 커다란 황금색 침대에 조용히 누워 있었다.

아리아가 곁에서 신성한 힘을 황제에게 주입하는 것이 보였다.

이서우는 급히 다가가 황제의 안색을 살폈다.

“이건…….”

“알아보겠어?”

“언데드화가 진행되는 거 아닌가요?”

“맞아! 역시 펠렌의 후예라서 바로 알아보네. 치료 방법 알고 있지?”

“그건…….”

이서우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이렇게 빨리 란셀의 충고가 현실로 드러나다니.

“너 설마 펠렌의 기술을 아직도 제대로 안 익힌 거야?”

“…….”

이서우는 차마 대답할 수 없었다.

‘젠장. 황제가 언데드가 되어 버리면 앞으로 퀘스트는 다 날아가는데, 이거 어떡한다. 어쩐지 너무 쉽다 했다.’

A급 난이도를 가진 황제 보호 퀘스트가 너무 쉬워서 의아했었는데, 이런 반전이 있을 줄이야.

“시간이 얼마나 있는 겁니까?”

“아리아가 더 이상 진행이 되지 않도록 유지는 하고 있지만 며칠이나 버틸지 알 수 없어. 신전에서 도와줘도 길어야 한 달이야.”

“신전에는 이야기를 한 겁니까?”

“그래. 지금 대신관이 오고 있을 거야.”

이서우는 일단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당장 황제가 죽지 않는다고 하니 안심을 한 것이다.

하지만 마냥 마음을 놓을 수만은 없었다.

“아! 제가 아주 뛰어난 약초꾼을 알고 있습니다. 그분이라면 아마 치료할 수 있을 겁니다.”

“설마, 란셀을 말하는 거야?”

“어라, 알고 계셨네요?”

“알지. 모를 리가 있나. 하지만 그는 직접적으로 치료할 수는 없을 거야. 약간의 시간을 연장할 수는 있겠지만.”

“아리아 님과 대신관님이 신성력으로 한 달, 그리고 란셀 님이 조금 더 연장시켜 주신다면 충분히 치료제를 만들 수 있을 겁니다.”

“그래? 그럼 가자.”

“네?”

“네가 이동하면 늦잖아. 텔레포트로 다녀오는 게 빨라.”

“네.”

이서우는 다시 몰디나의 손을 잡았다.

급했는지 손에 감촉이 느껴지자마자 몰디나는 텔레포트를 시전했다.

“이, 이게 대체…….”

다론 마을에 도착한 이서우는 급히 란셀이 있는 곳으로 갔다.

한데, 란셀 의원이 쑥대밭이 되어 있었다.

이서우는 안쪽부터 주변 일대를 다 살폈지만 아무런 흔적이 없었다.

“놈이야.”

“설마, 리치 킹이 란셀 님을 납치했다는 겁니까?”

“그래. 그놈밖에 없어. 황제폐하를 고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수를 쓴 거야.”

“그러면 대신관님도 위험하다는 뜻이잖습니까!”

“젠장. 손 잡아!”

“네.”

얼굴이 사색이 된 두 사람은 원래 그곳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 * *

“크크크크. 일이 착착 진행되는군. 그 두 년만 갇혀 있었어도 더 쉬웠을 텐데 아쉬워.”

“주인님, 대신관뿐 아니라 신관들도 잡아들이는 게 낫지 않을까요?”

“신관들의 신성력으로는 소용없다. 그나저나 대신관은 잡아 온 것이냐?”

“조금 있으면 주인님께서 원하시는 그림을 볼 수 있을 겁니다.”

“좋아. 아주 좋아!”

리치 킹은 손뼉까지 치며 즐거워했다.

“참, 주인님, 그자는 어떻게 할까요?”

“우리에게 협조하도록 만들어야지.”

“하지만 보통내기가 아닌데요?”

“그래 봐야 늙은이일 뿐이다. 일단 굶겨라. 물 한 모금도 먹지 못하면 알아서 고개를 숙일 것이다.”

“네, 주인님!”

리치 킹의 군단을 이끄는 총사령관은 경외의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더니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황제가 힘을 잃으면 몰디나와 아리아도 우리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

“네, 주인님.”

“그리고 그놈, 우리를 방해한 그=놈도 꼭 잡아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라.”

“하지만 주인님, 그자를 생포하려면 엄청난 희생을 감수해야 합니다.”

“멍청한 놈. 몰디나와 아리아를 수족으로 만들고 그들을 미끼로 이용하면 되지 않느냐!”

“그런 방법이. 역시 주인님은 위대하십니다!”

“멍청한 녀석. 대신관이나 데려오너라.”

“네, 주인님!”

리치 킹의 명령에 총사령관은 쏜살같이 그곳을 빠져나갔다.

부하들이 알아서 대신관을 잡아오겠지만 명령을 받은 이상 그도 직접 움직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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