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이 갑이다-208화 (208/341)

# 208

레벨이 갑이다

208화

다시 뉴 월드에서 4일이 지났다.

이서우는 뇌를 두 개로 나눠 놓은 듯 란셀의 물건을 살피며 치열하게 제조 기술 레벨을 올렸다.

보람이 있었는데, 드디어 최고급에 올랐다. 그것도 5레벨에.

하지만 남은 이틀 동안 스페셜까지 마스터할 시간이 부족했다.

스페셜 7레벨까지는 충분히 올릴 수 있을 거라 여겼는데, 나머지가 문제였다.

‘제길, 하루만 절약할 수 있다면 어떻게든 될 텐데.’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는 해답을 찾기 위해 미친 듯이 란셀의 물건을 뒤졌다.

‘없어. 도무지 시간을 절약할 방법을 못 찾겠어.’

접속 종료를 할 시간이 다가오자 이서우의 마음은 더욱 조급해졌다.

어떤 놈이 대체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했던가. 그 말을 시작한 사람이 누군지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 이서우는 그 말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결국 모든 짐을 샅샅이 뒤졌지만 해답을 찾지 못하고 접속을 종료할 수밖에 없었다.

밖으로 나오자 최 박사가 얼른 다가왔다.

“서우 씨, 이번에도 제작만 한 겁니까?”

“네. 사냥은 다음 접속이나, 그 다음 접속 때나 할 수 있겠네요.”

“알겠습니다. 이번 데이터도 설아 씨에게 주면 되겠지요?”

“네. 그렇게 해 주세요. 저는 이만 가봐야겠네요.”

“네. 피곤하실 텐데 푹 쉬세요.”

최박사와 이야기를 끝낸 이서우는 설아에게로 갔다.

“오늘부터 접속 가능한데, 나 기다린 거야?”

“오빠 보고 접속하려고 했지.”

이설아는 며칠 동안 이서우의 패턴에 일정을 맞추었다.

운동도 새벽 5시부터 일어나서 테스트 룸에서 했다.

부담을 느낄 수도 있어 이서우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관심은 오직 그에게로 향해 있었다.

말은 하지 않지만 이서우라고 그것을 모를까. 그녀의 배려에 고마워 더욱 사랑하는 마음이 깊어졌다.

“접속 방으로 가자.”

“응.”

이서우는 운동하기 전 잠깐 동안이라도 그녀와 함께 있기 위해 접속 베드가 있는 방으로 갔다.

“별일은 없었지?”

“똑같지 뭐.”

“길드들 행동은 여전한가 보네.”

“더 심해지고 있어. 방해하는 사람도 없으니 아주 대놓고 갑질 중이지 뭐.”

“자기들도 갑질을 당해 봐야 정신을 차리더라.”

“아마 그래도 정신 못 차릴걸. 부당한 대우라면서 들고 일어나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뭐, 그럴 일은 절대로 없겠지만.”

이설아의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기득권층일수록 자신의 이익이 줄어들면 더 크게 반발하는 법이다.

“대귀족들 반응은 파악이 힘들지?”

“응. 아무래도 그 부분은 오빠가 조세프 백작을 만나서 알아보는 게 더 빠를 것 같아.”

“하긴, 하급 귀족도 아니고 대귀족들의 동향을 파악하는 게 쉽지는 않지.”

이서우는 대귀족들이 유저들을 탐탁지 않게 여긴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도 시작부터 남작과 인연이 아니었다면 절대로 백작과 친해질 수 없었을 것이다.

접속 베드가 있는 방에 들어가 테이블에 앉아 가볍게 차를 마셨다.

“참, 중국과 인도 쪽 반응은 좀 어때?”

“오빠, 거기 벌써 3차 전직 유저가 나왔어.”

“헐. 벌써?”

“응. 여기서는 몇 달 걸려야 됐던 일을 거기는 2주 만에 이뤄냈다니까.”

“하긴 이벤트까지 하면 일반 지역보다 10배나 경험치가 많으니 그럴 수도 있겠네.”

“아이템이 많이 나와 있어서 가능했던 것 같아. 중국과 인도는 부자들은 엄청 나잖아.”

“하긴, 돈을 투자한 만큼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으니 부자들이라면 그 편을 택하는 게 보통이지.”

“맞아. 그들에게는 시간이 금이니까.”

누구에게나 시간은 금이다.

하지만 평범한 직장인에게 한 달의 가치는 350만 원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것도 최저 시급이 15,000원까지 올랐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최저시급도 못 받고, 주휴수당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아르바이트는 250만 원을 받는 것도 힘들었다.

중견기업에 다니는 사람들이라도 400만 원을 조금 넘고, 대기업은 되어야 초봉이 600만 원 정도로 올라간다.

그래 봐야 1시간의 가치는 3만 원을 넘지 못했다. 수백, 수천억 자산가들에게는 푼돈이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부자라고 해서 흥청망청 돈을 쓰는 것은 아니지만 써야 할 곳에는 과감하게 쓰는 게 부자들이었다.

그래서 중국과 인도의 부자들은 더 빨리 좋은 것을 선점하기 위해 과감히 투자를 하는 것이었다.

뉴 월드의 가치가 얼마나 높은지 잘 알기에 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거기도 금세 커서 기존 유저들을 위협하겠네.”

“아휴, 말도 마. 아주 돈질을 얼마나 하는지 장난 아니야. 뭐, 그 덕분에 우리 수익도 수직 상승 중이지만, 장기화되면 빈부격차가 극심해져서 그다지 좋을 것 같지는 않아.”

“글로벌사는 조용하고?”

“응. 아직은 특별히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인식은 없는 것 같아. 벌써 2억 명이 더 늘어서 이용자만 4억에 가까우니 다른 게 보이겠어?”

“그놈의 돈이 웬수지. 장기적으로 보면 뭔가 대책을 세워야 할 텐데.”

이서우는 뉴 월드가 오랫동안 지속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초월 레벨에 대해 알게 되면서 이 게임이 단 지 몇 년 동안 지속하기 위해 만든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런데 중국과 인도가 너무 돈을 많이 푸는 바람에 게임 시간이 조금씩 단축 되고 있었다.

실제로 그럴지는 아직 의견이 분분하지만 이런 식으로 빠르게 레벨을 올리고, 콘텐츠를 소비해 나가면 게임 생명력이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아직까지는 긍정적인 반응이 더 많은 것 같아. 시장이 커지니 그만큼 선기능이 많아진다는 데 상당수가 동의하고 있으니까.”

“지금은 그렇겠지. 하지만 이게 지속되면 분명 피해를 보는 사람이 생길 거야. 알다시피 피해 보는 쪽은 언제나 가진 게 없는 사람들이고.”

“나도 그게 걱정이야. 그래서 방송을 하면서 그 문제를 살짝 언급하기는 했는데, 기우일 뿐이라며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더 많았어.”

“지금 당장이야 중저렙도 골드 값이 오르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 벌어들이는 골드는 2배로 많아졌는데, 몇 달 전과 거의 비슷한 수준까지 올라갔으니 그럴 만도 하지. 하지만 돈을 펑펑 쓰는 자들이 기득권을 잡으면 아이템 값이 오르고, 각종 편의 시설을 이용하는 데 드는 비용이 높아진다는 건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

“그러니까. 당장 벌어지지 않은 일이라고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 이번에 대형 길드가 갑질을 그렇게 하는 데도 경각심을 안 가지는 거 보면 참 답답해.”

대형 길드들이 성장하면 많은 사람들이 대형 길드로 몰릴 거고, 그런 길드가 많아지면 결국 중저렙들도 혜택을 본다는 생각을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었다. 실제로 대형 길드들도 그런 주장을 하며 유저들의 호응을 얻고 있었고 말이다.

하지만 최근 대형 길드의 갑질이 심해지면서 기대했던 효과는 허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표시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쉬운 점이라면 그런 생각을 하는 유저들의 숫자가 많지 않다는 것이지만 말이다.

“당장은 자신의 주머니가 두둑해지고 있으니 모르겠지만 조만간 위기의식을 가질 만한 사건들이 터질 거야. 일이 닥쳤을 때 반응하면 이미 늦은 거지만 어쩌겠어. 직접 겪어 봐야 아는 게 사람인걸.”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많아지길 바라야겠네.”

“지금으로서는 그 방법밖에 없지. 괜히 떠들어 봐야 나쁜 놈만 될 테니까.”

“맞아. 대형 길드들이 여론전을 펼치고 있어서 반대되는 의견을 내면 너 때문에 대형 길드들이 혜택을 줄인다면서 난리도 아니니까.”

“그런 거 보면 사람들의 마음을 참 잘 이용하는 것 같아.”

“원래 가진 자들이 그런 쪽으로는 밝잖아. 오죽했으면 과거 그 누구지? 서민들을 개돼지로 표현했었는데. 여튼, 그런 일까지 생기겠어.”

이설아는 분통이 터지는지 목소리가 살짝 올라갔다.

“짜증나는 이야기 더 해 봐야 뭐하겠어. 우린 그저 열심히 준비만 하면 돼.”

“응. 그렇지 않아도 골드를 조금 더 모아 뒀어. 중국과 인도에서 3차 전직 유저가 어느 정도 나오면 팔아 버리려고.”

“나도 그럴 생각이야. 수요가 많을 때 조금씩 팔아야 가격에 영향을 안 미칠 테니 적당한 시기에 파는 게 낫지.”

고렙들이 많아져도 골드 수요는 크게 줄어들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중국과 인도는 거의 사자 분위기가 강하다.

이런 추세는 절대로 계속되지 않는다.

평균 레벨이 올라가면 무조건 사기만 했던 유저들도 어느 정도 여유가 생겨 팔게 된다.

본전 생각도 나고, 사냥으로 어느 정도 골드를 마련할 수 있으니 투자한 돈을 회수하는 것이다.

그때부터는 선두주자들도 레벨 업 속도가 느려지고, 아이템을 교체하는 주기도 길어지기 때문에 골드가 쌓일 수밖에 없다.

이서우는 그전에 골드를 처분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과거 빚쟁이 신세로 지낼 때는 당장 빚을 갚고, 먹고 사는 문제만 고민하다가 최근 들어 돈이 계속 쌓이고 정보도 얻다보니 보이지 않던 것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오빤 제작 기술 올린다고 남은 이벤트를 날려 버렸네.”

“꼭 그렇지도 않아. 오히려 기회가 온 거지.”

“레벨도 많이 못 올렸잖아.”

“그렇긴 한데, 그보다 더 중요한 걸 얻어서 괜찮아.”

“하긴, 퀘스트 완료만 하면 황제의 신임을 얻을 테니 훨씬 이득이긴 하겠네.”

“바로 그거지. 황제의 철벽같은 신임은 아무나 못 얻는 거니까.”

이서우는 이벤트 기간 400레벨을 넘기자고 다짐했지만 황제가 위기에 처하는 바람에 그럴 수가 없었다.

하지만 후회는 하지 않았다. 레벨은 언제든지 올릴 수 있지만 황제와의 친밀도를 대폭 상승시킬 수 있는 기회는 원한다고 오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말하는 거 보니 퀘스트 진행이 순조로운가 봐?”

“아니. 꼭 그렇지도 않아.”

“그래? 완료 못 할 정도로 안 좋은 거야?”

“아슬아슬할 것 같아. 최선을 다 하면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

“제조도 사냥 기술처럼 필살기가 있으면 얼마나 좋아. 대성공은 진짜 너무 확률이 희박해서 쉽게 뜨지도 않잖아. 사냥 기술처럼 조건만 맞으면 그냥 쓸 수 있으면 참 좋을 텐데.”

“그래! 그거야! 설아야, 고마워!”

쪽쪽쪽!

“어머, 오, 오빠?”

이서우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이설아의 볼에 뽀뽀 세례를 퍼부었다.

기분은 좋지만 대체 왜 이서우가 그러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 막혔던 게 방금 전 네 말로 어느 정도 해결이 될 것 같아서.”

“그래? 난 별로 한 게 없는데?”

“아냐. 충분히 큰 도움이 됐어.”

“대성공을 잘 띄울 방법이라도 찾은 거야?”

“네 말대로 대성공은 갈수록 잘 안 나와서 거의 기대하기 힘들어. 물론 난 조금 더 높은 확률로 대성공이 뜨지만 그래도 시간이 부족했거든. 한데, 네 덕분에 아주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

이서우는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몇 날 며칠을 고민하고, 걱정했었는데 단번에 모든 게 해결이 되었다.

물론 게임에 접속해 정말 생각하는 바 대로 될지 검증하는 과정이 남아 있었지만, 이서우는 될 것으로 믿었다.

그동안 이서우가 빠른 속도로 제조 기술 레벨을 올릴 수 있었던 것은 대성공이 남들보다 2배 이상 잘 뜨기 때문이었다.

대성공을 하면 1개를 제작할 재료로도 2~5개까지 만들 수 있고, 아이템 성능도 더 좋아진다.

게다가 경험치까지 큰 폭으로 오르기 때문에 상당히 큰 이점이었다.

시간을 쪼개서 써야 할 정도여서 대성공에 거는 기대가 컸다.

하지만 대성공도 최근에는 거의 뜨지 않아 고민이 많았는데, 이설아와의 대화에서 모든 고민을 날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었다.

“어찌됐던 오빠에게 도움이 됐다니 다행이네. 피곤할 텐데 운동하고 얼른 푹 쉬어. 나도 오랜 만에 접속해서 바뀐 게 없나 좀 봐야겠어.”

“그래. 남은 이벤트 기간 동안 바짝 레벨 올려.”

“그래야지. 이제 정말 얼마 안 남았으니 풀로 사냥을 해 보려고. 게다가 다음 방송 준비도 해야 하고.”

“다음 방송 아이템은 벌써 정한 거야?”

“응.”

“뭔데?”

이설아의 입꼬리가 기분 좋게 말려 올라가자 이서우는 궁금해서 물었다.

보통은 자신과 함께 아이템을 결정하는데, 이번에는 아닌 것 같아 호기심이 동하는 것이다.

“나 혼자 던전을 깨 보려고.”

“헐. 힐러 혼자 던전을 깬다고?”

“응. 파티만 걸어 놓고 혼자 들어가서 싹쓸이 해 보려고.”

“전투 힐러가 등장하는 건가요?”

“호호호, 어쩌면?”

“아이템도 짱짱하고, 레벨도 꽤 올렸으니 충분히 될 거야. 근데, 몇 렙 던전에 가게?”

“300레벨 던전 가 보고 괜찮으면 350레벨도 도전해 봐야지.”

“와, 진짜 대박이네. 지금까지 힐러 혼자서 던전을 클리어한 적은 없잖아.”

“응. 힐러랑 딜러 둘이서 클리어한 적은 있지만 혼자 그런 적은 없었지.”

“성공하면 정말 초대박이겠다. 이번 방송에 대한 지분은 다 양보해야겠네.”

“에이, 그건 아니지. 오빠 혼자서 활약할 때도 나눴는데, 당연히 이번에도 그래야지.”

서로 사랑하는 사이지만 돈 문제에 있어서는 서로 깔끔해서 이서우의 말에 이설아가 반대했다.

“알았어. 그럼 이번에는 덕 좀 봐야겠네.”

“덕은 내가 더 많이 봤지. 여튼, 오빠 쉬어. 피곤하겠다.”

“그래. 그럼 수고해.”

“응!”

이서우는 이설아가 접속 베드에 들어가는 것까지 보고 훈련실로 갔다.

2시간을 열심히 운동에 매진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칼같이 시간 맞춰 나온 이서우는 김소연과 박 대표의 비호를 받으며 특수 접속 베드에 누웠다.

‘자, 그럼 퀘스트를 완료하러 가 보실까나.’

이서우의 표정이 밝아졌다.

시야가 흐려지더니 익숙한 모습이 곧 눈앞에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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