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이 갑이다-210화 (210/341)

# 210

레벨이 갑이다

210화

“후작 각하, 폐하께서 거의 한 달 가까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지 않으십니다. 무슨 일이 있는 게 아닐까요?”

“몰디나와 아리아가 함께 있다고 하니 같이 몸을 섞고 있겠지.”

“하지만…….”

“가끔 그년들과 며칠씩 두문불출하지 않느냐. 정력에 좋은 걸 많이 먹고 있을 테니 힘 좀 쓰고 있을 것이다. 나도 그년들처럼 반반한 것들을 데리고 있으면 몇 달은 처박혀 있을 수 있다.”

쿠아노 후작은 강한 적대감을 드러냈다.

그는 오랜 세월을 후작으로 지내며 공작이 되기를 갈망했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그래서 최근에는 황제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다.

그와 의견을 같이 하는 귀족들도 상당히 많았는데, 만나기만 하면 황제를 까 내리기 바빴다.

지금도 그를 따르는 비스만 백작과의 만남에서 황제를 열심히 씹어 대고 있었다.

“그나저나 사병 모집은 어떻게 되어 가나?”

“그게, 착착 잘 진행되다가 요즘은 조금씩 속도가 느려지고 있습니다.”

“유사시에 모험가들을 끌어들이는 일은 어찌 되었지?”

“사실 그것 때문에 오늘 만남을 요청한 것입니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

“최근 운영권 때문에…….”

비스만 백작이 말을 흐렸지만, 쿠아노 후작은 뭐가 문제인지 단번에 알아차렸다.

“그렇지 않아도 나도 그 일로 황제에게 면담을 신청했는데, 자꾸 거절당해서 짜증나던 차네. 한데, 그년들과 나오지를 않고 있단 말이지. 그년들이 그렇게 맛있나.”

쿠아노 후작은 황제 외에는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 몰디나와 아리아가 눈엣가시 같았다.

겉으로야 표시를 하지 않지만 갈수록 불만이 커져서 지금은 증오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시간을 더 끌면 타이밍을 놓칠 수도 있으니 빨리 조치를 취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그래야지. 그년들도 귀찮아 죽겠는데, 웬 놈이 노다지 같은 땅의 마을 운영권까지 가지고 있으니 원. 2황자의 마음도 수시로 확인해야 하네.”

“여부가 있겠습니까. 아주 열심히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이제 거의 넘어 왔으니 좋은 소식이 있을 것입니다.”

“그나마 그거라도 착착 진행되니 기분은 좋구먼. 하지만 엘사둔과 밀약을 맺은 건 철저히 숨겨야 하네. 잘 알고 있겠지?”

“네, 후작 각하. 최대한 은밀히 접촉을 하고 있으니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들이 전쟁 선포를 하는 타이밍에 맞춰 계획을 진행하면 승리는 우리의 것이 될 것입니다.”

“좋아. 아주 좋아!”

쿠아노 후작은 까끌거리는 수염을 어루만지며 강한 욕망을 드러냈다.

그때였다.

-이서우가 카이젠 제국의 수호기사가 되었습니다.

“후, 후작 각하!”

“이런 미친. 황제가 드디어 노망이 난 건가. 어찌 모험가에게 수호기사를 맡긴단 말인가!”

쿠아노 후작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비스만 백작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어찌할까요?”

“당장 어떻게 할 방법이 없지 않나. 일단 자네는 다른 귀족들을 잘 다독이는데 전념하게. 난 다시 황제를 만나러 가 보겠네.”

“네, 후작 각하.”

비스만 백작은 고개를 한껏 숙이고는 조용히 물러났다.

쿠아노 후작은 기사들을 대동하고 텔레포트 마법진이 있는 곳으로 갔다.

마법사들이 고생을 좀 하겠지만 지금은 한가하게 육로로 갈 상황이 아니었다.

* * *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쿠아노 후작은 무릎을 꿇고 황제에게 예를 표하면서도 곁에 있는 이서우를 놓치지 않았다.

‘수호기사가 되더니 이제는 아주 황제 옆에 딱 붙어 있구나. 모험가 주제에 감히 내 앞에서 고개를 뻣뻣하게 쳐들고 있다니. 곧 그 자리에서 내려오도록 해 주마.’

쿠아노 후작은 설마 이서우가 수호기사에 임명되자마자 황제와 함께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당황한 기색을 보이지 않으려고 최대한 태연한 척 행동했다.

“고개를 드시오.”

“네, 폐하.”

“한데, 무슨 일로 날 찾은 것인지 모르겠군.”

“엘사둔의 위협에 걱정하실 황제 폐하의 고민을 덜어 드리기 위해 왔사옵니다.”

“엘사둔은 어차피 우리의 걱정거리가 아니오. 그러니 그대가 그다지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말이오.”

황제는 골렘 몇 기를 가지고 엘사둔이 다시 전쟁을 벌이지는 않을 것으로 여겼다.

골렘 제작자도 확실히 처리했고, 전력도 많이 약해진 터라 전쟁을 하면 무조건 엘사둔이 손해였다.

대귀족이라면 이를 모르지 않을 텐데 쿠아노 후작은 전쟁을 언급했다.

황제는 그가 왜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꺼내는지 의아했다.

“그들은 아직 타이탄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골렘 제작자가 더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엘사둔은 항상 호시탐탐 카이젠을 노리고 있고, 최근 하이 레벨 지역이 고공성장과 확장을 하면서 더 욕심을 부리고 있습니다.”

“그건 잘 알고 있소. 하지만 이제 우리 카이젠에 수호기사가 탄생했으니 엘사둔은 걱정할 필요가 없소.”

“어찌 제국의 전쟁이 한 인간에 의해 좌지우지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우리 제국이 심히 염려되옵니다.”

“그래서 뭘 어쩌자는 거요?”

황제의 목소리에 짜증이 묻어났다.

대귀족의 의견을 함부로 무시할 수는 없지만 괜찮다고 하는데도 반발을 하고 있으니 황제의 마음에 들 리가 없었다.

“제 생각은 하이 레벨 지역을 통해 성장하는 모험가들을 적극 활용하는 것이 어떨까 하옵니다.”

“모험가들을 이용하자?”

“네, 폐하.”

“구체적으로 말해 보시오.”

황제가 관심을 보이는 것 같자, 쿠아노 후작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지만 겉으로는 전혀 내색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침착한 음성으로 말을 이어 갔다.

“그들은 돈에 노예나 다름이 없습니다. 조금만 손에 쥐어줘도 우리 말을 아주 잘 듣는 자들이죠.”

“카이젠의 수호기사가 모험가임을 잊지 말게!”

“죄, 죄송합니다, 폐하. 제가 실언을 했습니다.”

쿠아노 후작은 바로 꼬리를 내렸다.

황제를 비롯해 대부분의 귀족들이 모험가에 대해 좋지 않은 평가를 했었는데, 이서우로 인해 상황이 바뀌었다는 것을 깜빡한 것이다.

“계속 해 보시오.”

“네, 폐하.”

쿠아노 후작은 다시금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현재 모험가들이 하이 레벨 지역의 마을을 운영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아실 겁니다.”

“내가 내린 지시니 모를 리가 있겠소.”

“네, 폐하. 폐하의 지혜로 손쉽게 하이 레벨 지역이 발전하고 확장되고 있지요. 하지만 그들의 이익이 너무 작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내 이미 그에 대해서는 전해 들었소. 한데, 그 많은 사람이 모이는 곳에서 1퍼센트면 수수료가 적지 않은 것 같은데, 내 생각이 틀렸소?”

황제가 자신의 생각이 틀렸냐며 되물었다.

쿠아노 후작은 마른 침을 삼켰다.

만약 여기서 대답을 잘못하면 황제의 말이 틀렸다고 말하는 것이 되어 버린다.

아무리 대귀족이라도 황제에게 잘못을 지적할 수는 없었다.

“아무래도 발전과 확장에 많은 비용이 들어가니 수수료가 적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수수료 중 상당 부분을 가져갈 텐데도 적다는 것이오? 그래서 우리의 수익을 줄이기라도 하자는 거요?”

황제의 목소리가 다시 살짝 올라갔다.

전쟁 준비로 인해 막대한 돈이 들어가고 있는 데다가 리치 킹과 블랙드래곤의 소식까지 겹치면서 엄청난 자금을 쏟아붓고 있었다.

그러니 가장 큰 수익원 중 하나인 하이 레벨 지역에서 나오는 이익을 줄일 수는 없었다.

“당연히 지금처럼 유지를 해야지요. 단지 수수료를 1퍼센트 정도만 더 얻을 수 있게 조치를 취해 주시는 게 어떨까, 하는 게 저와 여러 귀족들의 생각이옵니다.”

“여러 귀족들이라. 누구를 말하는 것이오?”

“서부 지역에 있는 대부분의 귀족들이 동의를 한 일이옵니다.”

“그래서 나도 동의를 하라?”

“아, 아닙니다, 폐하. 단지 저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라는 걸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쿠아노 후작은 얼른 고개를 숙이며 황제의 분노를 잠재웠다.

여기서 고개를 뻣뻣이 들고 있으면 자칫 황제의 눈밖에 크게 날 수도 있었다.

황제는 잠시 쿠아노 후작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이서우에게로 옮겼다.

“자네 생각은 어떤가?”

“폐하의 뜻에 따를 뿐입니다.”

“아닐세. 그곳에 대한 일은 누구보다 자네가 잘 알 테지. 그러니 자네의 의견을 허심탄회하게 말해 보게.”

“그러면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이서우는 고개를 살짝 숙였다가 쿠아노 후작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후작은 거기서 들어오는 수익이 얼마나 되는지 아시오?”

“그건…….”

수익이 얼마나 되는지 몰라서 말을 잇지 못한 것이 아니었다.

이서우가 눈을 똑바로 뜨고 자신을 바라보면서 꾸짖듯 말하는 것 때문에 놀랐다.

“카이젠의 수호기사가 어떤 위치인지는 쿠아노 후작도 알고 있을 것이오. 그러니 수호기사를 잘 따라 주길 바라오.”

“……네, 폐하.”

못마땅한 목소리라는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지만 황제는 더 이상 그에 대해 언급을 하지 않았다.

자존심 강한 대귀족이 모험가와 동등한 위치에 있어야 한다는 것은 누구라도 받아들이기 힘들기에 못 본 척 넘어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미 선포를 했기에 앞으로도 똑같은 모습을 보이면 황제는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쿠아노 후작도 그것을 알기에 화가 나지만 참아야 했다.

‘두고 보자. 언젠가는 이 수모를 꼭 갚아 줄 것이다.’

이서우는 쿠아노 후작의 반응을 살피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얼마인지 알고 계시오?”

“알고 있소.”

“그러면 모험가들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겠군.”

“그건 과거의 일이오. 마을을 계속 확장하고 있고, 관리해야 할 인원도 늘고 있으니 1퍼센트로는 부족하다는 게 많은 귀족들의 생각이오.”

쿠아노 후작의 목소리에 너 따위 모험가가 귀족의 뜻을 어찌 알겠느냐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하지만 이서우라고 그것을 모를까.

이서우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확장이 되면 이용하는 인원도 늘 텐데 수수료를 올리자고 하다니. 아니, 오히려 마을을 확장할수록 수익이 증가한다는 것을 충분히 확인했소. 그런데도 올려야 한다는 것이오?”

“마을 운영이 그리 쉬운 게 아니라는 건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하오. 현재만 본다면 그대의 말이 맞소만, 10년, 20년을 본다면 넉넉하게 자금을 쌓아 둬야 하오.”

“운영권이 짧다고 걱정하는 것 같은데, 모험가들의 능력은 갈수록 성장하고 있으니 그에 대해서는 전혀 염려하지 않아도 되오. 오히려 편법으로 이득을 취하려는 행위가 보여서 운영권을 2년보다 더 줄여야 할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고 있으니 말이오.”

“편법으로 이득을 취하다니 그게 무슨 소린가?”

이야기를 듣고 있던 황제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더 많은 이득을 취하기 위해 부당한 수익을 올리는 것으로 파악이 되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폐하를 만나 그 문제를 말씀드리고, 운영권을 1년으로 단축해야 한다는 건의를 드리려했었습니다.”

“허허, 그렇게 큰 이득을 취하면서도 부당한 방법을 쓴단 말이오?”

“네, 폐하!”

“폐, 폐하,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쿠아노 후작, 지금 그 말에 책임질 수 있소?”

“네? 그것은…….”

“작위를 걸 수 있다면 내 그대의 요청대로 수수료를 올려 주겠소.”

“…….”

쿠아노 후작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모험가들이 무리해서 많은 골드를 바친다고 편법을 사용한다는 것을 그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관행으로 용납되는 수준이어서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 여겼는데, 황제의 태도를 보니 조심스러웠다.

괜히 수수료 1퍼센트 더 올리려다가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었다.

“말이 없는 걸 보니 자신이 없는가 보오. 그렇다면 난 수호기사의 의견을 받아들일 수밖에는 없겠구료.”

“폐, 폐하…….”

“모든 운영권은 수호기사가 가지고 있으니 그대가 알아서 처리하게.”

“폐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사극에서처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와 같은 말을 하지 않아도 되어서 좋았다.

‘이제 명분도 얻었겠다. 편법과 불법을 저지르는 놈들은 아예 추방을 시켜 버려야겠네.’

운영권을 줬지만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한을 얻었기에 이서우는 당장 부당한 이득을 취한 길드들을 쫓아낼 생각이었다.

“더 할 말이 있소이까?”

“하이 레벨 지역에 저를 비롯해 다른 귀족들도 진출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그곳은 특별히 조세프 백작에게 맡긴 곳이오. 몇 대째를 그곳만 지켰는데, 지금에 와서 뺏자는 것이오?”

“그것이 아니오라, 워낙 영토가 넓기에 조세프 백작 혼자서는 감당하지 못할까 봐 그런 것이옵니다.”

“지금까지 잘해 오고 있지 않소. 수십 년 동안 힘들게 그곳을 지키며 제국의 안전을 위해 애쓸 때는 조용히 있다가 이제 와서 그 말을 하는 저의가 도대체 뭐요?”

“저는 단지 더 빠른 확장으로 이득을 많이 얻어 강한 제국을 만드는 게 낫다고 판단했기에…….”

“그걸 후작이 판단한단 말이오?”

“죄, 죄송합니다, 폐하.”

쿠아노 후작은 아차 싶어 얼른 고개를 숙였다.

자칫 이야기가 더 진행되면 영토에 욕심이 있는 것으로 비춰질지 몰랐다.

영토에 대한 욕심은 항상 반역을 몰고 오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 언행을 각별히 신경 써야 했다.

“하이 레벨 지역은 수호기사가 알아서 잘 처리할 것이니 그대는 신경 쓰지 말고 병사들의 훈련에만 집중하시오.”

“네, 폐하.”

황제가 이렇게까지 나오면 더 이상 대화를 이어 갈 수가 없었다.

쿠아노 후작은 결국 원하는 것을 하나도 얻지 못한 채 물러갔다.

“쯧쯧쯧, 저렇게 욕심이 많아서야. 저러니 평생 후작으로 남는 게지.”

“원래 욕심이 많은 자입니까?”

“공작이 되고 싶어 안달이 났다네.”

“그렇군요.”

“뭐, 크게 신경 쓸 것 없네. 자크 후작이 잘 견제를 하고 있으니 경거망동하지는 못할 것이야.”

“저도 잘 지켜 보겠습니다 폐하.”

“허허허. 자네까지 나서 준다면야 더더욱 안심이지. 그나저나 바쁠 텐데 이제 그만 가 보게.”

“네, 폐하. 몰디나 님이 오시면 물러가겠습니다.”

쿠아노 후작과의 대화에서 하루 빨리 운영권 문제를 정리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몰디나가 오자 이서우는 개척자 도시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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