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1
레벨이 갑이다
211화
이서우는 이동관리사를 찾았다.
‘다행히 얼굴만 보고서는 내가 누군지 모르네.’
귀족들 사이에서는 이서우가 꽤 유명했지만, 일반 NPC들에게는 얼굴이 알려져 있지 않았다.
그러니 이름을 들어도 누가 누군지 알 수가 없었다.
패를 꺼내면 당장 알아보겠지만 이서우는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
얼굴이 알려져서 시끄러워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이다.
“손님, 이번에 와이번이 들어왔는데, 이용해 보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속도가 아주 빠릅니다요.”
“와이번이 들어왔다고요?”
“네. 잘 조련된 녀석이어서 아주 흡족하실 겁니다.”
“그렇군요. 근데, 어떻게 와이번이 들어오게 되었죠?”
“최근 모험가들이 와이번을 포획해서 훈련을 시킨다고 하더군요. 값이 너무 비싸 처음에는 각 마을 이동관리사가 구입을 하지 않았는데, 입소문이 나면서 찾는 사람이 많아져서 지금은 거의 모든 곳에 다 보급이 되었지요.”
“최근의 일인가 보네요.”
“네. 최근 몇 주간 이뤄진 일입죠.”
“그럼 와이번을 이용할게요.”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목적지를 말씀해 주십시오.”
“다빙턴 마을까지 부탁합니다.”
“거기까지는 비용이 꽤 드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시간은 얼마나 걸리나요?”
“1시간 10분 정도 걸립니다.”
“엄청 빠르네요.”
직선거리로 1천 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리를 단 1시간 10분 만에 이동하다니.
이서우는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 궁금했다.
이동관리사도 이서우의 호기심을 알았는지 그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조련사들이 능력까지 부여해서 판매를 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입지요.”
“그렇군요. 하긴, 워낙 모험가들이 강해지고 있으니 그 정도 능력 부여는 가능하겠네요.”
“네. 갈수록 더 빠른 놈이 나오고 있어, 1시간이면 제국 어디든 갈 수 있게 될 날이 머지않았습니다요.”
이서우는 마음만 먹으면 텔레포트로 순식간에 갈 수 있지만 그건 다급할 때나 그런 것이다.
평상시에는 그도 남들처럼 이동관리사를 이용한다.
그에게는 돈보다는 시간이 중요하기에 이번 소식이 반가웠다.
“다빙턴까지는 200골듭니다.”
시간을 많이 단축할 수 있는 것에 비하면 그리 부담되는 금액은 아니었다.
하지만 일반 유저는 단지 이동에만 200골드를 쓰기에는 솔직히 쉽지 않았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이놈이 최소 10만 골드 이상이나 해서 어쩔 수 없이 비용이 비싸질 수밖에 없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가격도 조금씩 내려가겠지요. 물론 속도가 빠른 녀석은 여전히 비싸겠지만 시간이 꽤 단축되니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찾게 될 겁니다.”
“감사합니다, 손님. 그럼 타시죠.”
이서우는 뉴 월드가 하나씩 변해 가는 것이 기뻤다.
와이번에 올라탄 이서우는 시원한 바람을 느끼며 다빙턴으로 향했다.
현실이었다면 공기저항 때문에 아무 장치 없이 올라타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뉴 월드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전부 능력자였다.
속도가 얼마가 되든 충분히 커버할 수 있는 것이다.
이동하는 동안 운영권과 관련된 일을 어떻게 정리할지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다빙턴에 도착한 이서우는 먼저 조세프 백작을 찾았다.
“허허, 이게 누구신가. 카이젠 제국의 수호기사가 아니신가!”
“지금 저 놀리시는 거죠?”
“아닐세. 기분이 좋아서 그런 것이네. 자네가 수호기사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정말 기분이 좋았다네.”
“감사합니다. 이게 다 백작님 덕분입니다.”
“이게 어디 나 때문인가. 자네의 능력이 뛰어나서 그런 것이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이서우의 배려가 고마운지 얼굴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한데, 무슨 일로 이렇게 온 건가?”
“아, 참. 말씀드릴 게 있어서 왔습니다.”
“말해 보게. 자네의 부탁이라면 발 벗고 나서서 도와주겠네.”
이서우는 과장된 조세프 백작의 행동에 절로 어깨가 으쓱했다.
수호기사가 되기 전에도 관계가 돈독했지만, 지금은 마치 가족처럼 대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운영권에 대한 제재가 필요할 것 같아서 미리 말씀드리러 온 것입니다. 아무래도 모험가들이 반발을 하면 백작님께 피해가 갈 수도 있으니까요.”
“아닐세. 그렇지 않아도 부하들에게 들었네. 편법으로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모험가들이 갈수록 늘어난다더군. 자네가 찾아오지 않았으면 내가 자네를 불렀을 것이네.”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모험가들을 정리하라.
조세프 백작은 각 마을에 있는 병사들을 통해 최근 각종 편법으로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모험가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이에 조세프 백작은 제재를 가할 필요가 있다고 여기던 찰나에 당신이 찾아온 것이다.
난이도 : C+
완료 조건 :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모험가들을 마을에서 쫓아내라.
성공 시 보상 : 2레벨 경험치.
실패 시 : 3레벨 다운.
이서우는 난이도가 비교적 낮은 것을 보며 아쉬워했지만 별다른 노력 없이 2레벨을 올릴 수 있다는 것에 만족했다.
“제가 반드시 잘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바쁠 텐데 고생이 많구먼. 참, 그건 그렇고 자네가 짓는 빌딩 말일세.”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가요?”
“아닐세. 자네가 하는 일이니 나야 환영이지. 한데, 거기에 몇 가지 꼭 추가했으면 좋겠다 싶은 게 있어서 말일세.”
“아, 그런 거라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시면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서우는 혹시나 조세프 백작이 빌딩을 짓는 것 자체를 반대할까 봐 살짝 걱정을 했지만, 괜한 기우였다.
“최근 에이네 신전의 대신관이 실종되는 사건이 있었네. 이에 신관들은 자신들이 그동안 평화를 너무 등한시한 게 아닌가 염려되어 각 도시마다 신전을 지어 줄 것을 당부했다네.”
“신전이오?”
“그렇다네.”
이서우는 신전이라는 말이 나오자 살짝 표정이 일그러졌다.
신을 모신다는 이유로 은총을 베푸는 것에 엄청난 돈을 부과해 사람들의 빈축을 사고 있었다.
조세프 백작도 그런 좋지 않은 여론이 있다는 것을 알았는지 얼른 말을 이었다.
“자네가 무슨 걱정을 하는지는 알고 있네. 하지만 이번에 대신관 실종 사건 때문에 그들은 아무 대가 없이 사람들을 치료해 주겠다고 했네. 물론 신전도 유지가 되어야 하니 기부는 받겠지만 절대로 강요하지 않겠다고 신 앞에 다짐했다네. 만약 그 약속을 어긴다면, 자네가 알아서 처리해도 나는 가만히 있겠네.”
“그런 조건이라면 저도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NPC들은 신전이나 신관에 대해 관대하다.
그들이 하는 일을 신성시 여겨 웬만하면 묵인해 준다.
하지만 모험가인 이서우는 아니었다.
다행히 조세프 백작은 이서우의 편이어서 신관이 잘못을 하면 쫓아내도 묵인하겠다는 약속을 해 주었다.
조세프 백작이 한 발 물러났는데도 거절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었기에 이서우도 흔쾌히 수락했다.
‘신관의 은총을 공짜로 받을 수 있으면 모험가들도 많이 몰릴 테니 손해 볼 건 없겠어. 그러면 빌딩 근처에 작게 만들어 줘야겠네.’
이서우는 어느 정도 규모를 하면 좋을지 잠시 떠올려 보았다.
한데, 결정이 쉽지 않았다.
“백작님, 신전의 크기는 어느 정도면 되겠습니까.”
“그리 크지 않아도 되네. 한 20~30명 정도 생활할 수 있는 공간이면 될 것일세.”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재원은 내가 조달하겠네. 우리 영지를 위한 것이니 응당 내가 해야지.”
“그러시지 않아도 되는데…….”
“아닐세. 이번에 짓고 있는 빌딩의 규모가 워낙 커서 꽤 많은 돈이 쓰일 것이네. 자네에게만 부담을 지울 수 없으니 내가 나서는 게 당연하네.”
“그렇게 말씀하시니 더 이상 거절하기가 힘드네요.”
이서우는 못 이기는 척 조세프 백작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그럼 이제 개척자 도시로 가는 건가?”
“네. 칼을 빼 들러 가야죠.”
“칼을 빼 든다고 하니 젊을 때가 생각나는구먼. 그땐 나도 불의를 보면 가차 없이 칼을 휘둘렀지.”
조세프 백작은 이서우의 모습에게 과거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다.
젊은 날의 추억을 더듬던 조세프 백작은 허공에 둔 시선을 거두고 이서우를 바라보았다.
“자네가 잘 할 것을 믿네만, 항상 조심하게. 칼을 빼 들면 거기에 저항하는 세력이 반드시 나타나기 마련이라네.”
“네. 명심하겠습니다.”
이서우는 조세프 백작의 말을 허투루 여기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점점 반대 세력들이 늘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대형 길드들도 그렇고, 쿠아노 후작도 그렇고, 앙금의 씨앗이 점점 커지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이서우는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무리들이 알아서 잠잠해지길 바랐지만, 그럴 가능성이 거의 희박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득을 위해서는 나라도 팔아먹을 수 있는 자들.
이서우는 그들이 최악의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두고 이번 일을 처리할 생각이었다.
물론 당장 단칼에 대형 길드들을 다 처리하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랬다가 괜히 반발을 사면 명분까지 약해져 폭군으로 몰릴 수가 있었다.
명분도 살리면서 이득도 챙기고, 잘못을 바로 잡아 나가는 것이 그가 원하는 바였다.
이서우는 조세프 백작과 헤어져 개척자 도시로 향했다.
개척자 도시에 있는 NPC들은 대부분 이서우를 봤기 때문에 그가 카이젠 제국의 수호기사가 되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서우는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수호기사가 되었다는 것을 드러내지 말 것을 부탁했다.
저택으로 향한 이서우는 20층 이상 높이 솟은 건물을 보며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빚에 허덕이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누구나 부러워할 정도로 성공을 한 것도 모자라 아무도 해내지 못한 일을 이루었다.
카이젠 제국의 황제는 어떤 곳도 황궁보다 화려하게 짓도록 허락하지 않았는데, 유일하게 이서우에게만큼은 그 어떤 것도 허용을 했다.
특히 이번 언데드화 사건으로 이서우에게 목숨을 구함 받자 황제의 마음이 완전히 이서우에게로 돌아섰다.
이제 더 화려하고 웅장한 건물을 짓더라도 용납이 될 것이다.
‘이제 시작이야. 이걸 시작으로 적당한 때에 이곳에 영지를 얻어 내 영역을 넓히겠어!’
황제는 당연히 이서우가 본토에 영지를 얻으려 한다고 생각했다.
하이 레벨 지역은 워낙 전투가 빈번하게 벌어지는 곳이어서 빌딩만 짓고 땅은 안전한 곳을 차지하려 한다고 여겼다.
보통의 귀족이라면 그리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서우는 그들과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주인님, 오셨습니까.”
“공사 진행은 잘되고 있죠?”
“네. 인부들이 밤낮없이 열심히 하고 있어서 하루에 한 층씩 차곡차곡 쌓이고 있습니다.”
“다른 곳도 마찬가진가요?”
“네. 차질 없이 다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한데, 빌딩 내부에 들어갈 점포 때문에 많은 문의가 오고 있습니다.”
“잘 정리만 해 두세요. 날 잡아서 보고 제가 거를 테니.”
“네, 주인님.”
이서우는 이미 빌딩을 어떻게 활용할지 생각해 둔 바가 있었다.
26층부터는 호텔로 사용할 생각이었고, 그 이하 층은 각종 볼거리들을 선사할 계획이었다.
그리고 옥상을 활용해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 거리를 만들 계획까지 모두 구상을 해 뒀기에 건물만 지어지면 착착 일이 진행될 것이다.
“참, 프랑드 씨는 어디에 있나요?”
“현장을 진두지휘하고 계십니다. 정말 의욕적이신 분이더군요.”
“아마 사활을 걸었을 겁니다.”
이서우는 프랑드가 열심히 일하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는 이번에 모든 것을 걸었다. 대리상인을 정리하는 것이 그 증거였다.
돈을 마련하기 위해 지금 당장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이 운영하던 대리상인들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는 것이었다.
워낙 잘 관리가 되어 있어 꽤 좋은 값에 팔 수 있기 때문에 사업 자금으로 활용할 정도는 충분히 되었다.
문제는 그 돈으로도 몇 달 버티지 못한다는 것이지만 그는 이번 사업에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참, 김소연 씨는 어디에 있나요?”
“아, 그분도 공사 현장에 있습니다.”
“제가 없을 때는 그분이 저를 대신하는 것이니 잘 따라 주세요.”
“네.”
“그럼 바쁠 텐데 일 보세요.”
“네, 주인님.”
이서우는 집사와 헤어져 공사 현장으로 갔다.
현실과는 너무 다른 세상이어서 공사를 하면서 별다른 안전사고는 없었다.
-설아야.
-오빠, 메시지 들었어. 수호기사 됐더라.
-유저들에게도 소식이 갔나 보네.
-응. 지금 전장의 지배자가 일 제대로 냈다고 난리야.
-어쩐지 저택으로 가는데 사람들이 날 계속 쳐다보더라. 에혀, 이제는 얼굴도 가리고 다녀야 하나.
-그거 할 짓 못 돼. 그냥 당당히 다니는 게 나아. 이크.
-어라, 던전이야?
-응. 오빠. 나 지금 거의 끝나 가니 마무리 하고 그리고 갈게.
-알았어. 천천히 하고 와.
이서우는 방해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아 얼른 귓말을 종료했다.
“근데 설아가 지금 접속해 있을 시간인가?”
퀘스트에 집중한다고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몰랐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설아가 접속할 시간을 넘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뭐, 중간에 접속 종료를 몇 시간 했겠지.”
이서우는 대수롭게 않게 여기고 다시 김소연에게 귓말을 넣었다.
-누나.
-어라, 서우구나. 이제 끝난 거야?
-어. 공사 진행은 좀 어때?
-순조로워.
-참, 나 칼을 뽑아 들러 갈 건데, 정보 좀 줄래?
-오오, 드디어 정의의 사도가 나서는 것인가!
-정의의 사도는 무슨. 어차피 나도 이득을 보려는 사람 중 하나지 뭐.
-에이, 넌 정당하게 수익을 얻는 거고. 그놈들은 그게 아니잖아. 비교할 걸 비교해라.
-여튼, 지금 저택으로 와.
-알았어. 조금만 기다려 금세 갈게.
귓말을 종료하고 이서우는 저택 앞 정원 벤치에서 기다렸다.
이젠 진짜 칼을 빼 들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