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2
레벨이 갑이다
212화
특별한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마련된 공간으로 김소연을 데려갔다.
“이서우 진짜 많이 출세했다. 설마 카이젠 제국의 수호기사가 될 줄은 몰랐어.”
“워낙 조건이 좋아서 받아들이지 않을 수가 없더라고.”
“그렇게 조건이 좋아?”
“엄청나. 아마 들으면 놀랄걸?”
“정보 팀의 팀장으로서 알아둘 필요가 있겠는데?”
“알아 두고 이용해 먹으려는 건 아니고?”
“날 어떻게 보고! 난 정말 순수하게 네가 가진 혜택으로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판단해 보려는 거야.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대처할 수도 있고.”
“의심스러운데?”
“쳇. 믿기 싫으면 말아라. 손해는 네가 보는 건데, 뭐.”
“하하하, 농담이야 농담. 당연히 설명해 줘야지.”
이서우도 김소연의 말에 동의했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터지면 다양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김소연이 대책을 내놓기가 좋다.
이서우는 굵직한 흐름만 알아 두고, 세부적인 것은 정보 팀이 관리하는 쪽으로 역할 분담을 하는 게 필요했다.
이서우는 어떤 혜택이 있는지 꼼꼼하게 이야기했다.
와이번을 타고 오면서 1시간 이상 살펴보았는데도 기억을 못해 일일이 확인한다고 설명이 길어졌다.
“이야, 진짜 대박이네. 난 주급이 젤 마음에 든다.”
“누나도 돈 많이 벌었잖아.”
“너만 할까. 난 너만큼 벌었으면 세계일주 간다.”
“지금도 몇 번은 갈 수 있을 텐데?”
“노후까지 편안하게 보내려면 아직은 부족해.”
“얼마나 편안한 노후를 보내려고 그래?”
“평온한 섬나라에서 몇 년 보내고, 유럽 중에서도 자연 경관이 뛰어나고 조용한 나라에서 또 몇 년 보내고. 150세 시대에 접어들었으니 100년 정도는 먹고 놀아야 하는데 당연히 부족하지.”
의료 기술과 예방 의학의 발달로 2000년도 이후 태어난 사람들은 150세까지 살 수 있다는 것이 거의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세상이었다.
보통 65세까지 정년이지만 김소연은 60살까지만 일을 하고 평화로운 노후를 보낼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이서우와 이설아를 만나기 전이고, 지금은 40대 중반까지만 일을 하고 여생을 편안하게 보내고 싶었다.
단 1퍼센트지만 그녀가 벌어들인 돈이 벌써 100억이 넘었다.
물론 1퍼센트 비율로만 얻은 수익은 아니었다.
그녀의 연봉은 10억이 넘는다.
인센티브까지 있으니 1년에 벌어들이는 수익이 얼마가 될지는 그녀조차도 알지 못했다.
그 외에 골드 투자로 얻은 수익도 상당했다.
2배 이상의 수익이 발생해 그야말로 대박을 쳤다.
15년 전만 해도 부부가 노후에 필요한 생활비가 250만 원 정도였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돈의 가치가 떨어져 2034년 현재는 적정 금액이 400만 원이다.
적정 금액이라는 것은 빚이 없고, 아픈 곳이 없으며 한 달에 두세 번 정도 외식을 하는 수준에 머무는 정도라는 뜻이다.
해외여행은 꿈도 꿀 수 없고, 국내에서도 저렴한 곳을 갈 수 있는 정도에 지나지 않아 여유로운 삶을 꿈꾸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돈이었다.
국내 여행도 종종 다니고, 사람들과 모임도 가지려면 부부가 적어도 한 달에 600만 원은 있어야 가능했다.
하지만 해외여행을 1년에 한 번 정도 다니려면 1,000만 원 정도는 필요했다. 1년이면 1억 2천이고, 10년이면 12억이다.
150세 시대니 70세에 일을 놓으면 80년 동안 풍족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100억이 든다는 뜻이었다.
적정 수준의 생활만 해도 40억 정도가 들어가니 노후 준비에 다들 헉헉거리며 살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만큼 일자리도 늘어났고, 벌어들이는 돈도 많아졌지만 노후 준비는 여전히 부담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지금 모은 돈으로도 그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잖아.”
“얘가 아직 뭘 모르네. 1년에 여유롭게 해외여행 한 번씩 가면서 80년을 지내려면 부부합산 금액이 100억 정도 돼. 난 100년 넘게 그리 살아야 하니 130억은 들 텐데, 어떻게 해외에 몇 년씩 있냐? 그러려면 적어도 200억 이상은 있어야 해.”
“이백억? 뭐가 그리 많이 들어?”
이서우도 노후 자금이 많이 필요하다는 건 알았지만 얼마인지는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다.
“기본적인 생활을 하는 데만도 100년이면 50억은 들어. 더 빨리, 더 편안하게 여행하려면 돈이 많이 들어가니 세계를 다 돌아다니려면 그만큼 들지. 난 여행 다니기 시작하면, 젊을 땐 자유여행, 나이가 들면 가이드 붙여서 갈 거거든.”
“생각해 보니 진짜 풍족히 다니려면 그 정도는 들겠네.”
“그렇지. 나이가 들면 자유여행은 아무래도 힘드니 시간이 지날수록 돈이 더 많이 들지.”
“오래 산다고 다 좋은 게 아니구나.”
“넌 이미 그 이상의 돈을 벌어 놨잖아. 엄살은.”
“그러지 말고 누나도 이번에 빌딩 하나 사. 부모님이 요즘 접속 방 장사 잘된다고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몰라.”
“그래?”
“당연하지. 수익도 장난이 아니더라고.”
이서우는 부모님과 통화를 할 때면 매번 깜짝 놀란다.
식물인간에서 깨어났을 땐 어딘지 모르게 목소리에서 그늘이 느껴졌는데, 지금은 완전히 달랐다.
목소리가 밝고 힘이 넘쳤다.
“얼마나 되는데?”
“카페까지 하면 이것저것 다 떼고 한 달에 15억 정도 벌어.”
“헐, 그렇게나 많이?”
“나도 놀랐다니까. 거의 모든 접속 베드가 쉬지를 않으니까. 게다가 마실 것도 다 있고, 음식도 정말 신경 많이 쓰시거든. 유명 셰프까지 구하셨더라. 한식, 양식, 중식, 일식, 싹 다 있어서 사람들 반응도 좋아.”
“와, 대단하시다. 어떻게 유명 셰프를 뽑으실 생각을 했지. 보통은 그렇게 못하는데.”
“차별화를 해야 인기를 끄니까.”
“하긴, 그건 그래. 그 정도면 나라도 가겠다.”
김소연은 한 달 순수익을 듣고는 귀가 번쩍 뜨였다.
2년만 벌어도 노후는 걱정 없이 보낼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금액이니 마음이 동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워낙 투자자금이 많이 들기 때문에 섣불리 뛰어들 수는 없었다.
“그래서 지금 난 몇 군데 더 알아보는 중이야. 그렇지 않아도 주 변호사님과 연락을 해 봐야 되는데. 말 나온 김에 종료하면 한 번 전화라도 드려 봐야겠네.”
“그러다 접속 방 재벌 되는 거 아냐?”
“그래 볼까?”
이서우는 자신이 재벌이 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사람들의 비난을 받는 재벌이 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참, 길드 정보나 좀 알려 줘. 어떤 곳이 어느 정도로 타락했는지 알아야지.”
“잠시만.”
김소연은 인벤토리에서 책 한 권을 꺼냈다.
얇은 책자였는데, 거기에 길드 정보에 대해 상세히 나와 있었다.
이서우는 앞에 정리된 악질들부터 보았다.
“헤라클레스 이것들은 진짜 악질 중에 악질이네. 대체 얼마나 많이 벌어들인 거야?”
“그 짧은 시간에 수천만 골드는 벌었을 거다. 진짜 걔들이 제일 쓰레기야.”
“그러네. 이놈들은 무조건 아웃이고, 어디 보자, 이놈들도 아웃, 아웃, 아웃…….”
앞쪽에 있는 길드들은 거의 다 부당한 이득을 취하고 있어 운영권을 박탈하기로 결정했다.
“와, 뉴 월드 시간으로 겨우 석 달 정도 지났는데, 이건 심하네. 절반 정도가 이렇게 타락했다니.”
“아직 낙담하기에는 일러. 뒤쪽에 보면 괜찮은 길드들도 꽤 있어.”
“그래?”
이서우는 책을 넘겨 괜찮은 길드가 있는 곳을 찾았다.
“오, 규모는 작지만 정직한 곳이네.”
“그러니까. 파티 사냥에서 매너 플레이하기로 유명한 길드들이 꽤 있어.”
“근데 규모가 너무 작은데 괜찮을까?”
“그건 용병을 고용하는 방법으로 메우면 돼. 어차피 운영권을 주면 사람들이 몰리잖아. 혜택이 좀 좋아야지.”
“하긴, 인원을 모으는 건 순식간일 테니 규모 걱정할 필요는 없겠네. 하지만 문제는 상식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유저들을 받는 거겠네.”
“그건 알아서 잘 하겠지. 그 길드들은 마스터가 나름대로의 철학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럼 마스터들에게 연락 좀 해 줘. 여기서 보자고.”
“바로 처리하게?”
“쇠뿔도 단 김에 빼야지. 각 마을에 공지 띄워 줘. 운영권 박탈 이유도 공지하고.”
“응. 알았어!”
이서우는 시간을 질질 끌고 싶지 않았다.
발 빠르게 움직이자 하이레벨 지역에 태풍이 불어닥쳤다.
사람들은 갑자기 운영권을 박탈한다는 공지에 크게 반발했다.
하지만 이미 명령은 내려졌다. 경비병들이 적극적으로 나서 마을 열여섯 곳을 비워 버렸다.
NPC들의 인원은 적지만 그들에게 반발했다가는 자칫 조세프 백작에게 반기를 드는 게 되어 버려서 함부로 경비병들에게 반항조차 할 수 없었다.
길드 마스터들이 우르르 몰려왔지만 이서우의 저택은 이미 경비병들이 가득했다.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을 염려해 사이먼 자작에게 도움을 구한 것이다.
사이먼 자작도 편법과 불법이 버젓이 자행되고 있는 상황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
그러던 찰나에 이서우가 결단을 내렸으니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혹시 모를 몬스터 공격을 대비해 각 마을로 경비병들을 보냈다.
하이레벨 지역에서 혹독한 훈련을 이겨낸 경비병들이어서 든든했다.
일이 빠르게 진행되는 동안 운영권을 가질 새로운 길드의 장들이 나타났다.
“반갑습니다. 이서우입니다.”
16명의 길드 마스터들이 원탁에 앉아 있었고, 이서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을 소개했다.
이미 다들 그가 누군지 알기 때문에 새삼스러울 것은 없었지만 그가 자신들을 불렀다는 것에는 많이 놀랐다.
그들 중 규모가 가장 큰 곳도 2,000명이 넘지 않으니 의아한 것이다.
“죄송하지만 정말 마을 운영권 때문에 저희를 부른 게 맞나요?”
“네. 맞습니다. 여러분도 상식에 어긋나는 일들이 상당수의 마을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실 겁니다. 오시면서 소문을 들으셨겠지만 이미 그런 곳의 운영권은 박탈했습니다.”
“네. 들었습니다. 하지만 박탈당한 길드들의 불만이 하늘을 찌르는데 저희가 운영권을 갖고 편하게 지낼 수 있을까요?”
“그 점은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수익 중 일부를 용병들을 고용하시면 될 테니까요. 그들도 아마 쌍수를 들고 환영할 겁니다.”
“그건 그렇지만…….”
마을을 운영하는 길드 마스터와의 관계가 돈독해지는 일이라면 유저들이 반발을 할 이유가 없었다.
NPC중에서도 용병은 있기 때문에 인원도 부족하지 않았다.
이서우는 길드 마스터들과 대화를 하며 계약 조건을 조율했다.
대부분 이서우의 요구 사항이 받아들여졌다.
각 길드들도 이번 기회에 성장과 확장을 할 수 있는 기회여서 놓치지 않으려 했다.
처음에는 우려를 표하던 사람이 절반 정도는 있었지만, 이서우와 대화가 진행될수록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운영권은 기본적으로 뉴 월드 시간으로 1년 동안 주어집니다. 그 사이 재평가를 통해 1년 더 연장할지 말지를 결정할 겁니다. 그 사이에라도 이번 경우처럼 부당한 이득을 취하려 한다면 운영권이 박탈당한다는 것을 명심해 주십시오.”
“네!”
길드 마스터들의 목소리에 힘이 느껴졌다.
이 소문은 빠르게 뉴 월드에 퍼져나갔다.
사람들은 이서우의 파격적인 행보에 의견이 분분했다.
30퍼센트 정도는 미쳤다는 반응이었고, 나머지 70퍼센트 정도는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새롭게 운영권을 획득한 16개의 길드에 대한 뜨거운 관심이 쏠리면서 이서우에 대한 평가도 희석이 되고 있었다.
운영권을 획득한 길드는 문의가 빗발쳐서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었고, 박탈당한 쪽은 초상집 분위기였다.
남아 있는 16개의 길드 중에서도 절반은 경고 조치를 받았고, 나머지는 아무런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지만 칭찬을 받지는 못했다.
이서우의 이런 조치에 운영권을 유지하게 된 길드들도 긴장했다.
자칫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언제든 쫓겨날 수 있다는 긴장감이 팽배했다.
일은 하루 만에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지만 밥을 빨리 먹으면 체하기 마련이다.
* * *
“이런 시팔!”
“마스터님, 그냥 밀어 버리는 게 어떨까요?”
“조세프 백작이 가만있겠어?”
“그러면 쿠아노 후작에게 가서 따져야 하지 않을까요?”
“그 새끼가 얼씨구나 하고 우릴 만나 주겠다. 아마 성문도 들어가지 못하고 쫓겨날 거다.”
“지금까지 먹은 돈이 얼만데 그러기야 하겠습니까.”
“그게 권력의 속성이야. 돈이 될 때는 잘해 주는 척하다가 이런 상황이 되면 내던지는 거지.”
배상철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지금까지 뉴 월드를 하면서 이렇게까지 화를 내는 것은 처음이었다.
곁에서 지켜보던 부마스터 장길수도 그의 표정이 너무 좋지 않아 말하는 내내 조심스러웠다.
“일단 넌 다른 길드 마스터들에게 한 번 만나자고 연락해.”
“이번에 운영권 박탈당한 길드 마스터들 말이죠?”
“그럼 지금 이 상황에서 누굴 만나겠냐. 제발 좀 생각이라는 걸 해라.”
“죄, 죄송합니다.”
장길수가 얼른 고개를 숙였다.
‘아오, 말도 잘 듣고 부려먹기도 좋아서 부마스터 시켜 놨더니 아주 속을 뒤집어 놓네. 이참에 확 바꿔 버려?’
너무 똑똑한 사람을 부하로 두고 있으면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려 할 것이 염려되어 어수룩한 사람을 부마스터 자리에 앉혔다.
자기가 과거 배신을 한 경험이 있으니 남들도 그럴 거라 생각하는 것이다.
“얼른 안 가고 뭐 해?”
“네? 네. 갑니다. 가요!”
장길수는 서둘러 각 길드마스터들을 찾아 배상철의 말을 전달했다.
“이대로 쉽게 물러난다고 생각하지 마라.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일 뿐이니까. 그리고 뉴 월드에서만 널 응징할거라는 생각을 했다면 그건 큰 오산이야.”
혼자 남겨진 방 안에서 배상철은 살기를 드러내며 음흉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