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4
레벨이 갑이다
214화
“오, 오빠?”
“이게 대체…….”
이서우는 자신의 오른팔을 보며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의료기술의 발달과 함께 획기적인 신약들도 많이 개발이 되었다.
그중에 상처가 잘 아무는 연고 타입의 약이 있었는데, 10바늘 정도는 잘만 발라 주면 24시간 만에 상처가 말끔히 낫는다.
한데, 이서우는 5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상처가 아물어 있었다.
“오빠, 최 박사님께 한번 가 봐야 될 것 같은데?”
“일단 배부터 채우고 가자.”
이서우는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자 멋쩍은 웃음을 짓고는 이설아를 번쩍 안아 들었다.
“오빠, 팔 아프잖아.”
“다 나은 거 방금 봤잖아.”
“아, 그렇지.”
이설아도 조금 전에 본 것이 믿기지 않는지 착각을 하고 말았다.
둘은 밥을 먹으면서도 수시로 이서우의 팔을 쳐다보았다.
식사를 마친 둘은 곧장 최 박사를 찾았다.
“박사님. 바쁘세요?”
“잠시 데이터를 분석하고 있었는데, 무슨 일이신가요?”
“오늘 제가 상처를 좀 입었거든요.”
“아, 그렇지 않아도 들었습니다. 괴한이 습격했다면서요. 서우 씨가 멋지게 무찔렀다고 하던데, 대단하시네요. 한데, 왜 그러시죠? 상처가 덧나기라도 했나요?”
“아뇨. 그 반대라서 찾아온 거예요.”
“네? 반대라고요?”
“네. 한번 보세요.”
“서우 씨, 다른 팔을 보여 주신 거 아닌가요?”
이서우가 오른팔을 내밀자 최 박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아해했다.
아무리 봐도 상처가 없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여기는 더 깨끗해요.”
“그런…….”
왼팔까지 보여 주었지만 상처는 전혀 없었다.
할 말을 잃은 최 박사는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싶었다.
“지금은 식사에 샤워까지 하고 온다고 6시간 정도가 지났지만, 일어났을 때만 해도 5시간밖에 안 지났거든요. 한데, 이렇게 멀쩡하게 상처가 나을 수도 있는 건가요?”
“아주 드물게 상처가 빨리 아무는 경우도 있지만 이 정도까지는 아닌데.”
최 박사는 이해를 해 보려고 해도 도무지 이서우의 회복력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반나절 정도 만에 상처가 아무는 경우도 엄청난 회복 속도라며 놀라워한다.
한데, 평범한 사람보다 4배 이상이 빨랐으니 이해가 되지 않을 수밖에.
“이럴 줄 알았으면 제가 직접 치료를 하고 자료를 남길 걸 그랬네요.”
“지금 이 상태로는 왜 그런지 알 수 없다는 뜻인가요?”
“네. 피검사나 다른 검사를 통해서는 회복력이 빠를 만한 이유를 찾지 못했거든요.”
“흠. 그럴 만한 이유도 없는데, 상처가 아물었다라…….”
“저도 지금 어안이 벙벙합니다. 여러 사람들이 서우 씨가 다쳤다고 하니 그런 것이겠지만, 팔을 보니 그 말을 믿기가 힘드네요.”
“저부터가 그러니 최 박사님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당연하죠. 어쨌든 알 수 있는 게 없으니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당장 알 수 없다는 것이지 여러 테스트를 해 보면 나오는 게 있을 겁니다. 데이터를 가지고 나름대로 조사를 해 볼 테니 맡겨 주십시오.”
최 박사는 여지를 남겨 두었다.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야 이서우가 조금 더 적극적으로 테스트에 참여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부탁드릴게요.”
“네. 그럼 푹 쉬시고, 접속하실 때 다시 오세요.”
“네. 그러죠.”
이서우는 의문만 안고 몸을 돌렸다.
“참, 박사님, 저도 오빠랑 같이 접속했으면 좋겠는데, 가능할까요?”
“그럼요. 특수 제작한 베드는 더 있습니다. 서우 씨를 테스트하기 전에 다른 사람들도 확인을 해야 했기에 몇 개 만들어 두었죠.”
“네. 그럼 부탁드릴게요.”
“네.”
최박사는 데이터가 많아지는 것을 즐거워했다.
테스트 룸을 빠져나가면서 이서우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괜찮겠어?”
“응. 언니랑 박 대표님이 잘 지켜본다고 하셨으니 별다른 문제는 없을 거야. 게다가 아무 성과도 없는데 괜히 작은 실수를 해서 모든 게 날아가면 정 회장의 분노만 살 테니 최 박사도 오빠에게 잘 보이려고 애를 쓸걸?”
“그렇겠지. 정 회장 성격이 워낙 강하니까.”
이서우는 언제나 자신을 배려하는 이설아를 보며 손을 꼭 잡아 주었다.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게 좋은지 이설아는 건강한 치아가 보일 정도로 활짝 웃었다.
이서우가 깨어났다는 소식을 들은 김소연과 박 대표가 휴게실을 찾았다.
“서우야! 괜찮아?”
“난 괜찮아.”
“정말? 10바늘이나 꿰맸다면서?”
“다 나았다니까.”
“헐. 무슨 약을 발랐기에 상처 하나 없어?”
“나도 그게 의문이어서 최 박사님을 찾았는데, 잘 모르겠다고 하시더라. 빨리 나으면 좋지, 뭐.”
“오감도 남들보다 뛰어나더니 회복력도 좋네.”
“그러게. 어쩌면 오감이 뛰어나서 회복력이 좋은 걸지도 모르지.”
이서우는 모든 감각이 좋아졌기에 다른 능력도 발전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었다.
그것 외에는 지금의 상황을 설명할 길이 없었다.
“괜찮다니 다행이야. 걱정 많이 했어.”
“괜히 걱정 끼쳐서 죄송해요.”
“아니야. 당연한 일이지.”
박 대표는 이제 이서우에게 말을 편하게 낮추었다.
서로 존대를 하려고 했지만 이서우가 불편해하며, 낮추지 않으면 방송에 안 나간다고 협박을 하고서야 고집을 꺾었다.
“참, 범인이 누군지 알아냈나요?”
“그렇지 않아도 너 깨어나면 그거 말해 주려 했어.”
“누군데?”
“평범한 30대 남자야. 근데, 널 습격한 이유가 황당해.”
“이유가 뭐래?”
“그냥 네가 꼴 보기 싫었대.”
“뭐?”
김소연의 말에 이서우는 어이가 없었다. 꼴 보기가 싫다는 이유로 사람을 해치려 하다니.
“뭔가 수상한데. 아무리 세상이 미쳐 돌아가도 꼴 보기 싫다고 전혀 모르는 사람을 공격한다고?”
“내 말이. 그래서 경찰에게 좀 따졌더니 조금 더 조사를 해 보고 말해 주겠대.”
김소연도 기가 차는지 팔짱을 낀 채 코웃음을 쳤다.
“참, 언니. 그러고 보니 나 그 사람 칼, 뭔지 알 것 같아.”
“그거 회칼이잖아.”
“아냐. 겉으로 보기에는 그런데, 나 그거 뭔지 알아.”
“그래? 경찰들도 그냥 회칼이라고 하던데.”
“잠깐만.”
이설아는 급히 스마트 워치를 조작해 홀로그램을 띄웠다.
“이거 맞지?”
“어! 맞아! 근데, 네가 어떻게 이걸 알아?”
“잠깐이지만 공격할 때, 칼을 봤거든. 그때는 너무 정신이 없어서 몰랐는데, 지금 보니 기억이 나네. 이거 암살자들이 쓰는 무기야. 흔한 건 아니고 고레벨 유저가 쓰는 건데, 혹시나 싶어서 캡처를 해 뒀거든.”
“뭐? 암살자? 설마 뉴 월드 암살자를 말하는 거야?”
“응. 이것도 게임에서 캡처한 거야.”
“헐. 그러면 그자가 뉴 월드에서 의뢰를 받고 현실에서 살인을 저지르려 했다는 거야?”
“일반적인 회칼의 모양과 조금 다르니 그럴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네 말대로 평범한 회칼을 쓸 수도 있었는데, 굳이 다른 모양의 칼을 쓴 게 이상하긴 해.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조금만 조사하면 뉴 월드에서 암살자가 쓰는 칼이라는 걸 알 수 있잖아. 뻔히 드러날 걸 알고서도 암살자 무기를 썼다는 게 이상하지 않아?”
“언니 말도 일리는 있는데, 왜 영화에서 보면 암살자들이 자신의 무기에 애착을 많이 가지잖아. 성공률을 높이려고 그랬던 건 아닐까?”
“하지만 그건 영화잖아.”
“언니, 현피가 실제로도 많이 벌어지잖아. 물론 이 정도까지 막 나가지는 않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니니 배제할 수도 없어.”
“그건 그렇지만…….”
게임에서 플레이어들 간의 전투를 이르는 말은 PK와 PVP 두 가지가 있다.
PK는 Player Killing 혹은 Player Killer라고도 하는데, PVP(Player versus player)와 달리 상호 동의 후에 벌어지는 전투가 아니기 때문에 여러 사건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뉴 월드에서도 사냥 중에 상대의 아이템을 노리고 뒤치기를 하거나 전문적으로 유저들을 죽이는 자들도 있다.
이런 분쟁이 격해지면서 현실에서도 폭력을 행사하는 일이 생겼는데, 사람들은 이를 ‘현피’라고 불렀다.
과거 인기 있었던 게임에서 현피가 처음 벌어졌고, 살인까지 발생하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가벼운 폭행 정도에서 그치지 살인이 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물론 언제나 예외는 있었기에 김소연도 자신 있게 이설아의 말을 반박하지 못했다.
“중요한 건 정말 그렇다면 앞으로도 오빠에게 계속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는 거야. 그래서 오빠에게 경호 인력을 좀 더 붙였으면 좋겠어.”
“나도 설아 말에 동의!”
“나도 동의하지 않을 수가 없네.”
“뭐, 어차피 경호 인원 몇 명 더 늘이는 거야 큰 문제는 아니지. 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을 차단해야 해.”
경호원을 늘이는 것은 이서우도 찬성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임시방편일 뿐이다.
“당연히 그래야지. 일단 김 팀장은 뉴 월드에서 누가 서우를 공격하려 했는지 철저히 조사해.”
“네, 대표님.”
박 대표의 지시에 이서우는 문득 떠오르는 게 있었다.
“한 가지 짚이는 게 있기는 한데…….”
“정말? 누군데?”
누구보다 이번 일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이설아가 반색을 하며 물었다.
누군지만 알면 일을 쉽게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서우가 차분히 말을 이었다.
“뉴 월드와 연관이 있다는 전제라면 이번에 운영권 박탈당한 사람들 중 하나겠지.”
“아!”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겠네. 그럼 난 정보 팀을 동원해서 그쪽으로 파 볼게. 서우, 넌 당분간 나가지 말고 안에 있어.”
“어쩌면 그거야말로 날 죽이려 한 자가 원하는 일일지도 몰라. 오히려 태연하게 생활하면 화가 나서 실수를 하게 되겠지.”
“오빠, 그건 너무 위험해!”
“경호 인력을 2배 이상 늘이면 돼. 괜히 여기에 틀어박혀 있으면 범인이 몸을 사리고 숨어 있을지 몰라. 그러면 잡는 건 더 힘들어져.”
이서우의 말이 일리가 있어 누구도 반박하지 못했다.
하지만 섣불리 이서우를 미끼로 쓰자는 말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서우가 다시 입을 열었다.
“대표님, 우리 드론 활용할 수 있지 않나요?”
“활용할 수야 있지.”
“하지만 대표님, 우리 회사에서 쓸 수 있는 드론은 몇 기 안 되지 않나요?”
박 대표의 말에 김소연이 나섰다.
정보 팀의 장長으로 여러 정보를 알고 있지만 이서우를 24시간 지킬 정도로 드론을 활용하려면 상당히 많은 숫자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녀가 알기로는 그 정도의 드론은 K사가 쓸 수 없었다.
“내가 말 안 했구나. 최근 대통령님을 만나고 온 건 알지?”
“설마…….”
“그래. 중국과 인도에서 뉴 월드가 오픈되면서 서우와 설아의 인기가 하늘을 치솟고 있잖아. 문화가 세상을 지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영향력이 큰 시대니 대통령님께서 적극적으로 지원을 해 주신다고 하셨어.”
“와, 파격적인데요?”
“여러 기업들의 오너들이 모인 자리여서 우리에게만 혜택을 주는 건 아냐.”
“여튼, 그런 약속을 하셨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건 맞잖아요.”
“그건 그렇지. 나도 그 말을 듣고는 어안이 벙벙했으니까.”
박대표는 대통령과 악수를 하며 국가의 발전을 위해 더 정진해 달라는 말을 들었을 때를 떠올렸다.
K사를 처음 만들었을 때만 해도 대통령을 만날 거라는 상상은 못했었다.
“문제는 두 사람이 중국과 인도에 갈 때야.”
“대표님, 안전에 만전을 기해 달라고 요청하면 되지 않을까요? 머물 공간부터 서우와 설아가 움직이는 경로까지 대통령 수준의 경호를 해달라고 요청하면 들어줄 것 같은데 말이죠.”
“하긴, 우리가 답답한 건 없지. 못 들어주겠다면 안 가면 그만이니까.”
“역시, 우리 대표님 짱이라니까!”
박 대표의 말에 한가득 걱정을 안고 있던 이설아의 얼굴이 그제야 펴졌다.
하지만 그들이 생각한 것만큼 일은 그렇게 쉽게 풀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