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9
레벨이 갑이다
219화
“안녕하세요. 최혜진이에요.”
“안녕하세요. 고아라예요.”
“반갑습니다. 김규철입니다.”
“이서우입니다.”
“오빠, 백작님이 걱정이 된다고 신전에 말씀드려서 오신 분이야. 규철 님은 정찰자시고, 다른 두 분은 신관이셔.”
“세 분 다 유저시네?”
“응. 우릴 배려해서 유저분들을 보내셨어.”
20대 초중반의 남녀를 보는 이서우의 표정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걸 알았는지 최혜진이 얼른 인벤토리에서 서신을 하나 꺼냈다.
“백작님께서 이걸 전해 드리라고 하더군요.”
이서우는 서신을 받아들고는 읽어 내려갔다.
-깊어지는 대륙의 위험.
날세. 리치 킹과 블랙드래곤의 일도 모자라 쿠아노 후작까지 신경을 쓰는 자네를 생각하면 얼마나 안타까운지 모르네. 홀로 많은 짐을 져야 하는 자네에게 늘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라는 것을 알아주게.
리치 킹은 신성력에 매우 취약하네. 그를 따르는 언데드는 말할 것도 없겠지.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추적술에 능한 자가 있어야 한다는 것일세. 자네의 능력은 알지만 놈들을 추적하기 위해서는 정찰자가 필요할 것이야.
이들과 힘을 합쳐서 카이젠 제국에 있는 모든 언데드을 섬멸해 주게.
난이도 : B++
완료 조건 : 조세프 백작이 보낸 사람들과 함께 힘을 합쳐서 최대한 빠른 시간에 언데드들을 섬멸하라.
성공 시 보상 : 3레벨 경험치, 50만 골드, 고급 강화석 50개.
실패 시 : 5레벨 다운.
‘중복의 의미가 있긴 하지만 언데드들을 최대한 빨리 처치하고 싶다는 의지가 느껴지네. 블랙드래곤에 엘사둔 제국의 위협까지 있어서 더 조급해하는 거겠지.’
이서우에게는 손해가 없는 퀘스트다.
사람들과 함께해야 한다는 게 약간 불편하지만 갈수록 레벨을 올리기 힘들다는 점을 감안하면 거절할 수 없었다.
그리고 거절하는 순간 다음 퀘스트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니 받아들이는 게 현명하다.
‘그나저나 서신을 통해서도 퀘스트가 진행이 되는구나. 신기하네.’
대개는 NPC와 만남을 가져야 퀘스트가 완료된다. 보상을 받으려면 다시 해당 NPC에게 가야하니 계속 만남을 가져야 퀘스트가 이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서우처럼 NPC와 특별한 관계를 유지하면 서신으로도 퀘스트가 가능했다.
“백작 님에게 이야기는 들으셨겠지만, 모든 결정권은 저에게 있다는 걸 잊지 마세요.”
“물론이에요. 저희가 어떻게 전장의 지배자 님의 지시를 따르지 않을 수 있겠어요.”
“맞아요. 이번 일이 워낙 중요하다는 것을 전해 들었으니 무조건 전장의 지배자 님의 말에 따를게요.”
최혜진의 말에 고아라가 지원사격을 해 주었다.
하지만 김규철은 별다른 대답이 없었다.
이서우의 시선이 그의 얼굴에 꽂혔다.
얼른 대답을 하라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추적과 관련된 사항만 아니라면 저도 서우 님의 말에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전투 상황이 아니라도 유효합니다.”
“네.”
“네.”
“……네.”
신관들은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는데, 김규철은 약간 시간차를 두고 말했다.
김규철은 일부러 전장의 지배자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
그 말을 하게 되면 이미 이서우가 월등히 앞서가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굳이 이서우의 이름을 불러 자신과 동등하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드러냈다.
‘자존심인지, 괜한 자격지심인지는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되겠지.’
남자들 중 상당수는 다른 남자보다 더 강해 보이고 싶어 한다.
특히 뉴 월드에서는 그런 양상이 더 심하게 나타났다.
열심히 레벨을 올리는 이유도, 화려한 아이템을 사는 이유도 남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였다.
대놓고 드러내는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 않지만 은연중에 과시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분명 많다.
하지만 뉴 월드가 인기를 끌면 끌수록 타인의 눈을 의식하는 사람들의 숫자도 많아지고 있었다.
김규철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다.
현실에서는 약하고 볼품없지만 뉴 월드에서는 장비만 잘 갖추면 누구도 자신을 무시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그는 귀하디귀한 정찰자였다.
전투를 펼치고, 화려한 스킬로 사냥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는 남들이 하지 않는 일에 더 관심을 가졌다.
그 결과 그가 선택한 것은 바로 정찰자였다.
김규철은 미래를 봤다.
레벨이 오를수록 더 험난한 곳이 많아질 테니 정찰자들의 역할도 분명히 중요해질 것이라 여겼다.
그의 예상은 점점 현실로 드러났다.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는 하이 레벨 지역은 정찰자가 활약하기 정말 좋은 곳이었다.
그 덕분에 그는 사이먼 자작과 친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운이 좋아 사이먼 자작과 인연이 되었는데, 그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굳이 귀족과 친분을 가지지 않아도 정찰자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어 찾는 곳은 많았다.
하지만 그는 더 먼 미래를 보고 이번 일을 수락했다.
‘이번 기회에 제대로 활약해서 나도 나만의 대저택을 얻고 사람들을 부리면서 살겠어!’
김규철은 이서우처럼 대저택에서 살며 하인들을 부리는 게 소원이었다.
현실에서는 찢어지게 가난한 삶을 살아서 집에 대한 욕심이 남달랐다.
최근에는 정찰자가 빛을 발하기 시작하면서 집을 옮길 수 있었지만 반전세여서 만족스럽지 못했다.
아무리 정찰자가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어도 수십억이나 하는 아파트를 구할 수는 없었다.
좋은 곳에는 살고 싶고, 돈이 부족하니 어쩔 수 없이 대출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뉴 월드가 인기를 누리면서 직업과 레벨, 그동안 벌어들인 골드가 얼만지만 증명하면 낮은 금리로 대출이 가능했다.
“오빠, 어디부터 갈 거야?”
“언데드가 어디에 주로 출몰하는지부터 파악해야 될 것 같은데, 혹시 들은 정보 있어?”
“응. 오빠가 다른 일 하는 동안 다 준비해 뒀지.”
곳곳에서 언데드가 출몰하고 있어 정보를 모으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어디가 많아?”
“수도는 출몰 소식이 전혀 없고, 다른 곳은 비슷한 비율로 나타나는 것 같아.”
“피해는 어디가 심해?”
“이상한 게 작위가 낮을수록 피해가 심해. 아마 최대한 많은 피해를 주려고 그런 게 아닌가 싶어.”
“아마 그 이유가 맞을 거야. 대귀족들은 그만큼 기사나 병사들이 많으니까.”
전쟁 상황이니 최대한 피해를 많이 주려는 게 당연한 것이지만 이서우는 화가 났다.
“참, 베손 남작님의 마을은 어때? 다론은 괜찮은 것 같은데, 다른 곳은 소식을 못 들었네.”
“그게 좀 이상해. 아르곤 산맥 남쪽, 그러니까 베손 남작님이 다스리는 지역은 조용해. 그쪽이 인구가 적어서 그런 걸까?”
“아마 그럴 확률이 높겠지. 리치 킹이 머리가 있다면 인구가 많은 곳 위주로 노리겠지. 그 외에 좀 심각한 곳 있어?”
“피해가 큰 곳은 아고나 마을이야. 자유도시여서 그런지 그 일대에 언데들이 많이 몰려서 피해가 크다고 해.”
“그럼 거기부터 가야겠네.”
“응. 거기부터 시계 방향이든, 시계 반대방향이든 아무 곳이나 방향을 잡고 돌면 될 것 같아.”
비슷한 횟수로 출몰을 해도 지역에 따라 피해 정도는 다른 법이다.
이왕 움직일 거라면 피해가 큰 곳부터 정리하는 것이 사상자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었다.
“다들 아고나 마을 알고 계시죠?”
“네. 알고 있어요.”
“알고 있습니다.”
“그럼 아고나 마을 이동관리사 앞에서 1시간 뒤에 뵙겠습니다. 정비를 하실 분은 이곳에서 하고 가시는 게 나을 겁니다.”
“네.”
“정비는 이미 끝났습니다만?”
“제가 한 번 움직이면 쉬지를 않기 때문에 생각보다 더 많은 준비를 하시는 게 좋습니다.”
“……그러죠.”
당신이나 철저히 준비 하고 오라는 뉘앙스가 살짝 풍겼는데, 이서우의 말에 김규철은 꼬리를 내렸다.
셋은 정비를 위해 움직였고, 이서우와 이설아는 자리에 앉아 대화를 이어 갔다.
“호호호. 오빠, 저 사람 재밌네.”
“누구? 김규철?”
“응. 오빠에게 안 지려고 발악하는 모습 말이야. 오빠도 느꼈지?”
“강한 사람에게 지고 싶지 않은 마음이라면 별문제는 없을 거고, 단순한 자격지심이라면 고생 좀 하겠지.”
“그건 그렇고, 오빠는 준비 안 해도 돼? 난 넉넉하게 준비를 끝내긴 했어.”
“나도 이미 만반의 준비를 마쳤어. 물약은 이미 차고 넘치거든.”
황제를 치료하기 위해 미친 듯이 만든 물약만도 수십만 개가 넘는다.
마나 비약은 쿨마다 썼는데도 몇만 개가 남아 있었고, 마나 물약은 쿨이 1시간이어서 꽤 많았다.
영약이 남아 있으면 엄청난 가격에 판매가 될 텐데 모두 복용해 버려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이동하면서 영약을 만들어야겠네. 영약은 아무래도 팔지 않는 게 나으려나. 아니면 시험 삼아 하나만 경매장에 올려 봐야 하나.’
일단 유저는 1레벨이 오를 때 랜덤 스텟이 하나, 보너스 스텟 3개가 주어진다.
갈수록 레벨 상승이 어려워지고 있어서 고렙들에게는 스텟 하나가 엄청난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특히 순수 스텟 증가에 따른 능력치 향상에 대해 알고 있는 유저들은 어떻게든 사려고 경쟁에 뛰어들 것이다.
마침 마을로 오면서 제작을 해 둔 근력 스텟 영약이 완성되었다.
다른 제조 기술은 대성공이 뜨면 보다 성능이 좋은 물약이 탄생했지만, 영약 제조 기술만큼은 변함이 없었다.
만들 수 있는 영약 종류가 늘어나고, 조금 더 제조 완료 시간이 단축되는 것 외에는 변화가 없었다.
‘영약 제조도 대성공이 뜨면 2나 3씩 오르면 좋은데 말이야.’
스텟을 올려 주는 영약을 만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사기나 다름이 없는데 대성공으로 몇 개씩이나 오를 수 있는 영약을 바라다니.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 지나친 욕심이라 여겼는지 피식 웃고 말았다.
“참, 사람들이 있어서 말을 못했는데, 란셀 님 소식은 어때?”
“그게, 미안해. 아무리 수소문을 하고 정보 팀을 풀어 봐도 흔적조차 찾을 수 없어. 그건 대신관님도 마찬가지고.”
“그렇겠지. 리치 킹이 작정하고 납치를 해 갔으니 쉽게 발견이 안 되겠지. 그래도 일단 계속 흔적을 찾아봐 줘.”
“응, 오빠.”
“난 그럼 잠시 경매장에 다녀올게.”
“정비 다 끝난 거 아녔어?”
“스텟 영약 올려 놓고 오려고.”
“스텟 영약?”
“아, 내가 말 안 했었던가.”
“응. 그게 뭐야?”
“스텟을 올려 주는 영약이야.”
“헐. 스텟을 올려 준다고?”
이설아는 너무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연금술사나 물약제조사도 아니고 어떻게 스텟을 증가시켜주는 영약을 만들 수 있단 말인가.
“스텟을 올려 주는 영약을 만들 수 있는 생산직은 엄청 희귀하다 들었는데. 오빠가 그런 사람들 중 하나라니.”
“스텟 영약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있어?”
“응. 아주 일시적으로 올려 주는 거라 그리 널리 퍼지지는 않았는데, 알 만한 사람은 다 알아. 가격이 비싸서 중산층 이하는 솔직히 쓰기 힘들고, 레이드를 잡거나 던전 최종 보스 잡을 때 정도나 쓰지, 평상시에는 너무 비싸서 못 쓰거든. 보통 사람들은 아예 엄두도 못 내고.”
“일시적으로 스텟을 올려 준다고?”
“응. 오빠도 제작 가능하니 알잖아.”
“난 영구적으로 올려 주는 건데?”
“뭐? 영구적으로 올려 준다고?”
이설아는 너무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주 일시적으로 올려 주는 스텟 영약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손에 꼽을 정도다.
한데, 영구적으로 스텟을 증가시켜 주다니.
“와, 오빠, 진짜 대박이야. 스텟을 영구적으로 올려 주다니.”
“가격은 어느 정도나 할까?”
“모르긴 몰라도 개당 억 단위까지 갈걸? 돈 많은 사람들이라면 아마 그 정도는 지불할 거야.”
“그렇게나 비쌀까?”
“그럼. 순수 스텟 올리기가 얼마나 힘든데. 참, 그러지 말고 접속 종료하고 올리는 게 어때?”
“접속 종료하고? 종료하고 어떻게 물건을 팔아?”
“언니랑 박 대표랑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우리 방송을 통해 경매를 진행하면 어떨까 해서.”
“방송으로?”
“응. 가상현실 공간에서 진행하는 거지. 어차피 오빠가 동영상을 찍어서 정보를 자세히 공개하면 아이템이 있다는 건 사람들도 믿을 테니 이참에 가끔 특별한 아이템이 나오면 경매까지 진행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법적 절차도 신경 써야 하고, 이것저것 신경 써야 할 게 많지 않아?”
“아냐. 이미 박 대표님이 그에 따른 절차는 마쳤어.”
“추진력 한번 좋네.”
“나 접속 못 할 때 심심해서 이야기가 나온 김에 바로 처리하셨더라고. 자체적으로 진행하면 세금 명목으로 떼 가는 것 외 수수료는 절약할 수 있으니까.”
“이득이 되는 거면 좋지. 그럼 그건 그렇게 처리하도록 하고, 아고나 마을로 가자.”
“오랜만에 오빠랑 같이 사냥하겠네.”
“불청객들과 말이지.”
“그러게 말이야 오랜만에 데이트하면서 사냥 좀 하려 했더니 안 도와주네. 일단 종료하고 광고 올리고 올게.”
“오늘 일찍 종료할 테니 내일 오전으로 하자.”
“응, 오빠, 그럼 잠시만 실례.”
스텟을 영구적으로 올려 주는 아이템에 대한 경매 공지를 올린 이설아는 서둘러 접속했고, 두 사람은 아고나 마을로 이동했다.
현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모르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