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1
레벨이 갑이다
221화
이서우는 갈수록 부지런해져서 새벽 4시 반에 눈을 떴다.
운동 시간을 30분 더 늘려 3시간 반 동안 집중력을 발휘했다.
“와, 서우 씨, 진짜 할 말이 없네요. 어떻게 그리 짧은 시간에 이렇게까지 성장하시는지. 이젠 열 번에 한 번밖에 못 이기겠네요. 그것도 겨우. 이러다가 며칠 지나면 백전백패겠는데요?”
“자라나는 새싹을 밟지 않으시려고 배려해 주신 덕분이죠.”
“어휴, 새싹이라뇨. 서우 씨는 이미 용이예요. 용!”
사범은 이서우의 배려가 담긴 말이 싫지 않은 표정이었지만 그의 말은 진심이었다.
처음에는 이서우의 말처럼 운동을 너무 쉽게 포기할 것이 염려되어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
열심히 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고, 항상 진지하게 훈련에 임하는 모습에 그가 조금 더 운동에 흥미를 느끼기 원했다.
하지만 이서우의 빠른 성장에 최근에는 전력을 다해 상대했지만 갈수록 차이가 커졌다.
이제는 오히려 이서우에게 배워야 할 상황에 직면하고 말았다.
“서우 씨, 진짜 프로로 전향할 생각은 없으세요?”
“네. 전 이대로 홀로 운동을 하며 지내는 게 좋아요.”
“격투 천재를 이대로 묻어 두려니 안타깝네요.”
“천재라뇨. 저보다 더 뛰어난 사람은 많습니다.”
“에이, 저도 이 바닥에서 꽤 오래 있었지만 서우 씨만큼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은 못 봤어요. 이건 진심입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하지만 뉴 월드를 해 보시면 재능이 특출난 사람이 많다는 걸 알게 되실 겁니다.”
“현실과 게임은 엄연히 다르죠.”
사범은 다소 부정적인 목소리였다.
운동을 위해 모든 시간을 쏟아 붓는 그다.
가상현실이 아무리 많은 발전을 이뤘다 해도 현실과 같아질 수는 없다고 여겼다.
최근 많은 사람들이 뉴 월드를 이용 중이고, 그가 가르치는 제자들도 상당수 그 게임에 빠져 있다.
그는 최근 그들에게 ‘사범님도 뉴 월드 한번 해 보세요.’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그는 그럴 시간에 몸 한 번 더 움직이라는 말만 하고 외면했다.
한데, 이서우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니 그냥 무시할 수가 없었다.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이서우의 변화를 목격했다. 이서우의 직업이 뉴 월드를 플레이 하는 것이어서 하루의 대부분을 게임 속에서 보낸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훈련이라고는 아침, 저녁으로 하는 5시간 정도가 전부다.
그는 아침, 점심, 저녁으로 3시간씩, 총 9시간을 훈련한다. 현역에서 물러났지만 여전히 현역 못지않은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이유였다.
철저한 몸 관리로 현역 선수보다 더 현역 같은 그에게 관심거리는 오직 무에타이였다.
더 강해지기 위해 단련에 매진하면서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다.
그런 삶을 살아왔으니 그에게 다른 관심사가 들어올 자리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 이서우의 말은 그런 그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켰다.
“알고 계신지 모르겠지만 전 5년 넘게 식물인간으로 지내다가 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어요.”
“네? 서우 씨가 식물인간이었다고요?”
인간의 육체에 대해 누구보다 많은 공부를 했기에 이서우의 말이 얼마나 믿기 힘든 것인지 누구보다 잘 알았다.
5년 동안 식물인간으로 지내면 근육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
건강을 잃기는 쉬워도 회복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듯 근육도 마찬가지였다. 탄력적이고, 유연하며, 탄탄한 근육을 만들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했다.
한데, 식물인간에서 깨어난 이서우가 자신이 그리고 바라던 육체를 이루다니.
“저에 대해 검색을 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니 거짓말 할 이유가 없죠.”
“그럴 수가…….”
“제 몸이 좋아진 건 재활훈련과 운동을 병행해서겠죠. 하지만 사범님께서도 그러셨잖아요. 제 성장이 이례적이라고.”
“물론이죠. 아주아주 이례적이죠. 지금까지 서우 씨처럼 빠른 성장을 한 사람은 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거든요.”
“그래서 말씀드리는 거예요. 운동 말고 제가 한 건 재활훈련과 뉴 월드밖에 없으니까요.”
“서우 씨의 상황에서는 확실히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겠네요.”
이서우가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납득은 되지만 사범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부정적인 시각이 남아 있었다.
만약 이서우의 말을 인정하게 되면 그는 자신이 걸어온 길을 부정해야만 한다.
그 긴 세월을 무에타이에만 집중했는데, 짧은 시간 게임을 한 것만으로도 같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는 걸 어떻게 쉽게 인정할 수 있을까.
이서우도 그걸 알기에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다.
“뭐,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거지 저도 확실한 건 몰라요. 솔직히 가상현실 게임이 그런 엄청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걸 믿기도 힘들고요. 하지만 전 분명히 매일 경험을 하고 있으니 완전히 부정하지도 못하겠네요.”
“……네.”
“그럼 오늘 훈련은 여기까지 하죠.”
“네, 서우 씨. 고생하셨어요.”
“사범님께서 더 고생하셨죠. 참, 그리고 앞으로는 더 이상 오지 않으셔도 될 것 같아요.”
“그렇지 않아도 제가 말씀드리려 했습니다. 이제는 제가 없어도 잘 하실 수 있을 테니 그동안의 배움을 잘 활용하시면서 꾸준히 정진하세요.”
“네. 그동안 감사했고, 고마웠습니다.”
“저야말로 서우 씨 덕분에 많이 발전했는걸요. 오히려 제가 고맙죠.”
이서우와 사범은 서로를 바라보며 진한 미소를 지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새벽 시간이 기다려졌고, 아무 고민 없이 모든 열정을 쏟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사실, 사범은 이서우를 가르치기 전부터 육체가 더 이상 발전하지 않아 정체기에 빠졌었다.
고민하고 갈등하던 차에 이서우가 개인 교습 신청을 했고, 변화를 줘 보자는 생각에 받아들였다.
지금은 인간의 육체는 더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의욕이 불타오르고 있어 과거의 슬럼프는 모두 사라졌다.
이 모든 게 이서우와의 만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훈련을 종료한 이서우는 샤워를 하고 아침 식사를 한 뒤 방송 장비가 있는 방으로 갔다.
“준비는 끝났나 보네?”
“응. 이제 막 끝났어. 안 피곤해?”
“개운한데?”
“평소보다 30분 이상 더 일찍 일어났는데도 멀쩡하네. 난 힘들던데.”
“나도 좀 피곤할 줄 알았는데, 아무렇지도 않더라고.”
늘 일어나던 시간보다 30분이 빨라지면 육체는 민감하게 반응한다.
특히 일에 지친 직장인들은 5분 일찍 일어나는 것도 힘들다. 그런데 30분을 일찍 일어나서 출근을 한다? 아마 아침 시간은 내내 피곤해서 하품을 연신 해 댈 것이다.
하지만 이서우는 평소와 다름없이 활기찬 모습이었다.
“차 한 잔 하고 접속하자.”
“그래.”
버튼 하나로 원하는 모든 차가 제조 가능해 각자 마시는 차를 가지고 테이블로 갔다.
“오빠도 참여할 거지?”
“내가 만든 물건이니 다른 사람에게만 맡겨 둘 수 없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경매만 진행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그것도 생각은 안 해 본 건 아닌데, 영약은 첫 경매니 참여하려고.”
“응.”
이미 사람들에게 많이 노출되었지만 판매하려는 아이템이 워낙 큰 이슈를 만들고 있어 이설아는 이번 경매에 이서우가 나서지 않기를 바랐다.
하지만 이서우의 의사에 반해서 자신의 주장을 펼치지는 않았다.
“그나저나 참여 의사를 밝힌 사람이 너무 많아져서 가격이 어떻게 책정 될지 나도 알 수가 없어.”
“스텟1의 가치는 한계가 있으니 전설 아이템처럼 놀랄만한 가격은 나오지 않을 것 같은데?”
이설아가 생각보다 더 기대감 어린 얼굴을 하고 있자 이서우는 약간 부정적인 의사를 내비췄다.
비싸게 받으면 좋겠지만 너무 큰 기대로 인해 실망감이 클 수도 있었다.
“처음엔 1억 선으로 내다봤잖아. 하지만 오늘 아침까지의 반응을 보니 15~20억 정도까지도 가격이 형성될 것 같다고 하던걸?"
“경쟁이 과열되면 어떻게 될지 알 수는 없지만 이번 경매는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참여할 생각이야.”
“원래 대박은 기대하고 있으면 안 터지던데. 오빠가 그런 마음이라고 하니 왠지 대박이 터질 것 같은데?”
이설아는 방송 전부터 촉이 좋았다.
주변 반응도 그렇고, 어떤 생산직도 스텟 증가 아이템을 만들 수 없다는 점에서도 그랬다.
3차 전직한 생산직 유저들도 엄청나게 늘어났고, 곧 4차를 바라보는 유저도 있었다.
하지만 4차 전직을 하더라도 영약을 만들 수 없다는 게 그들의 판단이었다.
그렇다면 5차 전직을 바라봐야 하는데, 1,000레벨이라는 것이 공개되어 향후 몇 년 동안은 누구도 스텟 영약을 만들 수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열리는 경매니 이설아도 기대를 할 수밖에.
“참, 설아야, 진행은 참여 인원이 워낙 많아서 공개적인 곳에서 못하지만 낙찰가는 기존 경매와 조금 다르게 하는 게 어때?”
“다르게?”
“1차에 1억 이상 쓴 사람들을 걸러내서 2차를 진행하는 거지. 2차에서 높게 쓴 사람들 일부를 걸러내고 최종 경쟁을 붙이면 좋잖아.”
“아, 그러면 낙찰가가 엄청나게 뛰겠네! 역시 우리 오빠!”
“사실, 박 대표님이 조언을 해 주신 거야. 부자들은 자존심이 강하니 그걸 이용하면 더 비싸게 팔 수 있다고 하시더라고.”
“하긴 과시용으로 수십억짜리 케이크도 만들고, 수십 억 하는 와인이나 위스키를 사는 사람들도 꽤 많으니까.”
다이아몬드로 꾸며진 술을 수십억에 샀다는 뉴스는 이제 기삿거리도 아니었다.
이제는 100억 이상이 되어야 사람들이 눈길을 주는 시대여서, 삶이 되어 버린 뉴 월드에 수십억을 투자하는 것도 일상이 되었다.
이서우의 아이템이 100억 이상에 팔리면서 큰 이슈를 끌기는 했지만, 지금은 그 이상의 아이템도 자주 거래가 되는 편이어서 웬만한 가격으로는 놀라지도 않았다.
그런 분위기와 함께 갈수록 뉴 월드에 투자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더더욱 이번 경매에 관심이 쏟아졌다.
“이제 슬슬 접속할까?”
“응. 참, 그리고 이번 경매는 개인 방송으로도 진행돼. 오빤 두 채널을 동시에 볼 수 있도록 해 뒀으니 편하게 즐기면 될 거야.”
“그거 재밌겠는데?”
“무조건 방송을 해야 한다는 시청자들의 요구가 있어서 특별히 넣기로 했어.”
“이왕이면 여러 사람들이 보는 게 좋지.”
“응. 그래서 이번 경매는 무료로 하고, 광고 수익으로만 충당하기로 했어.”
“잘했어. 근데, 여기서 접속하게?”
“응.”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 이설아는 가상현실에 접속하기 위해 선글라스와 유사한 고글을 가져왔다.
참여자들이 워낙 많아 가상의 공간을 만들어 그곳에서 경매를 진행하기로 했다.
경매 참여자들은 집이나, 각자가 원하는 장소에서 이설아가 만든 가상공간으로 접속하게 된다.
이서우도 그녀와 같이 이곳에서 접속하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무방비 상태가 되기 때문에 두꺼운 철문을 설치해 두었다.
밖에서 경호원과 김소연, 박 대표까지 지키고 있어 안전하지만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신경을 쓰는 것이다.
“아무래도 고글만 착용하기에는 불안해서 공간을 따로 만들었어. 이왕 하는 거면 누워 있는 게 편하잖아.”
“그건 그렇지. 근데, 이런 건 또 언제 만들어 놨대?”
“원래 공간은 있었는데, 일할 때는 굳이 여기를 쓸 필요가 없어서 비워 뒀었지. 근데 빈 공간을 놀리니 아깝더라고. 공간에 대한 배신이랄까? 그래서 열심히 꾸며 봤어. 괜찮아?”
“아늑하고 괜찮은데?”
따로 방은 없었고, 침대와 소파 등 대형 아파트 거실처럼 잘 꾸며져 있었다.
20평 남짓한 공간이어서 단순하게 경매를 위해서만 사용하기에는 아깝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보안 때문에 박 대표님이 특별히 신경 써 주셨어. 누가 우리를 지키는 것 자체가 불안하다면서 철통 보안을 해 주셨지.”
“그래서 문이 엄청 두꺼웠던 거구나.”
“응. 갈수록 박 대표님이 우리 안전을 중요하게 여기시거든. 문뿐만 아니라 각종 안정장치들이 있어서 이 안에 있으면 안전해. 조만간 지하 공간에 우리 공간을 또 주신다고 하던데?”
“이러다가 연예인 병을 넘어 대통령 병에 걸리는 거 아닌가 몰라.”
“호호호. 대통령 병?”
대통령의 삼엄한 경계를 비유해서 한 말이었는데, 이설아는 그게 재밌는지 소리까지 내며 웃었다.
경매 시간을 5분 남겨 두고 두 사람은 나란히 침대에 누워 접속했다.
벌써 수많은 사람들이 경매에 참여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정확히 10시가 되자 이설아는 가상공간의 문을 닫아 버렸다. 이제는 초대장이 있어도 들어올 수가 없었다.
총 참여 인원은 천만 명이 넘었다.
그중 실제 경매에 참여하는 인원은 십만 단위였고, 그 외의 사람들은 실시간으로 구경하기 위해 이 자리를 찾았다.
이렇게 인원이 많아진 것은 나 홀로 길드에도 초대장을 보냈기 때문이다.
일부는 어중이떠중이까지 다 참여시키면 혼란스러워진다고 반발했지만 그런 말에 꿈쩍도 하지 않았다.
공평한 기회를 주고 싶은 이서우의 의지였는데, 소규모 길드는 참여를 포기한 곳이 많았다.
쟁쟁한 길드장과 경쟁을 하는 것이 부담스러운 것이다.
정각 10시가 되자 이설아의 멘트가 이어졌다.
* * *
“각 길드들에게 압박은 했겠지?”
“네. 하지만 그게…….”
“무슨 문제라도 있어?”
헤라클레스 길드 마스터 배상철은 얼버무리는 장길수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다들 경쟁에 적극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습니다.”
“뭐? 이 새끼들이!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말을 전달했는데도 그 따위 반응이란 말야?”
“네. 최근 대형 길드들끼리 연합을 이루면서 목에 힘이 많이 들어갔습니다.”
“마을 운영권을 빼앗겼다고 아주 나를 우습게 아네. 똑똑히 전해. 영약이 절반 이상 내게 들어오지 않으면 가만 안 두겠다고.”
“네, 마스터!”
장길수가 헐레벌떡 뛰어나갔다.
그의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배상철이 중얼거렸다.
“이게 다 그놈 때문에 벌어진 일이야. 길드들만 손보고 네놈도 꼭 짓밟아 주마. 아주 게임을 못하도록 만들어 주지.”
배상철의 눈빛이 분노로 타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