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4
레벨이 갑이다
224화
“놔! 도와주러 온 사람을 이렇게 대접해?”
“닥치고 조용히 따라와. 너 하나쯤 사라지게 하는 건 일도 아니니, 자꾸 설치면 목을 따 버릴 테다.”
“…….”
발악적으로 소리치던 홍영철은 덩치 큰 사내가 살기를 담아 말하자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말았다.
홍영철도 산전수전 다 겪었는데, 덩치 큰 사내에게서 나오는 포스가 매섭기 그지없었다.
괜히 험한 꼴 보기 싫어 홍영철은 조용히 그를 따랐다.
‘그래. 진짜로 죽일 거라면 날 이렇게 데려갈 필요도 없겠지. 분명 보스에게 연락이 갔을 거야.’
홍영철은 애써 마음을 진정시키고는 사내가 하라는 대로 했다.
잠시 후, 아담한 방으로 들어갔다.
“회장님의 말씀이 있기 전까지 얌전히 있어라.”
“알았수다.”
지지 않으려고 눈에 힘을 주고 대답했지만 덩치 큰 사내는 그 모습이 같잖은지 피식 웃어 버렸다.
잠시 후, 커다란 영상이 하나 떴다.
-이서우를 잡을 수 있다고 한 놈이 너냐?
“그, 그렇소만.”
퍽!
“컥.”
“회장님 앞이다. 예를 갖춰라.”
단 한 번의 주먹으로 홍영철이 무릎을 꿇었다.
‘젠장. 곰 같은 새끼, 너 나중에 두고 보자.’
홍영철은 다리에 힘을 잔뜩 주고 억지로 버텼다.
여기서 쓰러지면 이들의 하수인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아는 것이다.
-됐다. 그래도 강단이 있는 녀석인 것 같은데, 한 번쯤은 용서해 줘라.
“네, 회장님.”
덩치 큰 사내가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홍영철은 바로 서서 고장수를 쳐다보았다.
“도와주러 온 사람을 이렇게 대하십니까?”
-진즉 지금처럼 예를 갖췄으면 그런 봉변은 당하지 않지. 그래, 그놈을 잡을 수 있게 도와준다고? 조건이 있을 것 같은데?
“제 조건은 간단합니다. 놈을 잡는 데 공을 세우면 1시간 동안 놈을 구타할 수 있게 해 주시고, 500억을 주십시오.”
-뭐? 500억?
“새 인생을 살려면 그 정도는 있어야 한다는 걸 모르지 않으실 겁니다.”
-내가 처음 보는 네놈에게 그런 돈을 줄 거라 생각했나?
“물론이죠. 저도 그냥 이곳에 온 게 아닙니다.”
-나름대로 조사를 했다?
“그렇습니다. 당신이 왜 이서우를 잡고 싶어 하는지 전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멈춰! 더 이상 주둥이 놀리면 넌 죽는다.
“…….”
홀로그램을 통해 보고 있는데도 오금이 저렸다.
‘역시 전설적인 인물이야. 괜한 도발을 했다가 도와주고도 봉변을 당하는 수가 있어. 정신 똑바로 차리자.’
-말은 잘 듣는군. 그래, 앞으로도 그렇게 해야 네 목숨도 보존할 수 있어. 알겠어?
“알겠습니다. 하지만 전 당신의 부하가 아니라는 걸 아셔야 합니다. 기본적인 권리마저도 침해당한다면 죽는 한이 있어도 당신을 돕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도 아주 맹탕은 아니네. 너 같은 놈을 부하로 둘 생각도 없으니 착각에서 헤어 나오는 게 좋아. 그래, 어떻게 그 놈을 잡을 수 있다는 건지 말해 봐.
“아마 회장님께서도 다양한 방법을 생각하셨을 겁니다. 대표적인 방법이 이설아를 이용하는 것이겠죠.”
-계속해 봐.
“회장님의 부하들은 이설아가 조금 쉽다고 여겨 그녀를 공략하기 위해 그녀 주변을 살폈을 겁니다. 하지만 하나 있는 오빠와는 사이가 좋지 않아 이용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셨겠죠. K사에서도 붙박이처럼 나오지 않으니 답답하셨을 거고요”
-이제 본론을 얘기하지?
“전 그놈의 친구들을 이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왜 대한민국을 떠나 있는지 몰라서 그딴 걸 계획이라고 가져온 건 아니겠지?
“물론입니다. 회장님께서는 이번 일과 전혀 상관이 없으십니다. 단지 저에게 돈만 지원해 주시면 제가 알아서 모든 걸 다 하겠습니다.”
-경찰에 붙잡혔을 때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고 확신하나?
고장수라고 이서우의 친한 친구들을 몰랐을까.
그는 일을 최대한 깔끔하게 끝내기 위해 이서우를 직접 공략할 생각이었다.
어렵게 간호사를 매수하고, 주변을 유심히 살피며 기회를 노리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
한데, 생각지도 못한 인물이 고장수에게 제안을 해 왔다.
“어차피 전 회장님이 어디에 계신지도 모르고, 이곳에 대해 알지도 못합니다. 제가 회장님의 존재에 대해 이야기 해 봐야 경찰들이 알 수 있는 건 없다는 뜻입니다.”
-영악한 놈이군.
“칭찬 감사합니다.
-한데, 대체 왜 그놈을 그렇게 잡으려는 거지?
“개인적인 복수입니다.”
-복수라……. 복수만큼 강한 집념을 만들어 주는 감정도 없지.
고장수는 홍영철의 제안을 거의 받아들이기로 마음을 굳히고 있었다.
“그럼 거래는 성사된 것입니까?”
-이름이 뭐지?
“홍……영철입니다. 하지만 과거의 제 얼굴은 이미 사라지고 없을 겁니다.”
-복수를 위해 얼굴까지 바꾸었다?
“그렇습니다.”
-재밌는 놈이군. 그래, 얼마를 지원해 주면 되지?
“초기 자금으로 100억을 주시고, 일이 성공하면 잔금을 주시면 됩니다.”
-욕심이 많은 놈이구나.
“사람을 쓰는 데 돈이 많이 듭니다. 그리고 저도 안전장치 정도는 해야지요.”
-우리 조직의 힘을 안다면 허튼 짓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물론입니다. 전 그놈이 폐인이 되는 걸 꼭 지켜볼 겁니다.”
-놈의 생사여탈권은 내가 가진다. 괜히 내 허락 없이 손을 댔다가는 화를 면치 못할 것이다. 알겠느냐?
“네.”
-좋다. 그럼 큰곰을 따라가라. 추적이 되지 않게 현금으로 줄 것이다.
“가, 감사합니다 회장님!”
홍영철은 떨리는 음성으로 크게 대답했다.
거래를 성사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지만 막상 고장수와 마주하니 두려움이 엄습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물러설 수는 없는 일. 배짱 있게 자신의 주장을 펼쳤는데, 다행히 일이 잘 성사되었다.
‘기다려라. 내가 간다.’
큰 곰이라 불리는 커다란 덩치 사내를 따라가며 홍영철은 복수의 칼날을 다시 한 번 매섭게 갈았다.
* * *
뉴 월드에 접속하자마자 이서우는 재봉사를 찾아 한 가지 물건을 구입하고는 약속 장소로 갔다.
“오빠, 인제 말해 줘.”
“뭘?”
“에이, 모른 척하기야?”
“아, 언데드가 어디서 온 건지 알아내는 방법?”
“응. 계속 궁금했단 말야.”
“조금 있으면 알게 돼.”
“대체 무슨 방법인데 그리 애간장을 태우실까.”
“진짜 무식한 방법이야.”
너무 궁금해 힌트라도 얻으려는데 파티원들이 접속을 했다.
“어머, 서우 씨, 일찍 와 계셨네요. 설아 씨도 다시 만나서 반가워요. 오늘 경매 방송 잘 봤어요.”
“보셨구나. 괜히 쑥스러운데요?”
“에이, 완전히 날아다니시던데요, 뭘.”
“호호호, 그랬나요?”
“네. 정말 멋졌어요. 주변 사람들도 난리더라고요.”
최혜진은 방송에 나오는 유명인과 함께 파티를 한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워 경매를 보면서도 뜻 모를 자신감이 생겼다.
“오늘은 어떻게 할 거죠?”
“생각해둔 방법이 있는데, 저밖에 할 수 없는 일이어서 다른 분들은 절 엄호하는 역할을 해주셨으면 해요.”
“서우 님이 할 수 있다면 저도 할 수 있는데 말이죠.”
“제가 무슨 일을 하려는지도 들어 보지 않으시고 그렇게 대답하시네요. 정말 할 수 있겠어요?”
“물론이죠.”
자존심이 상한 김규철은 자신감에 찬 표정으로 이서우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여기서 밀리면 입지가 더 좁아진다고 생각한 것인지 물러서지 않았다.
“좋습니다. 그러면 규철 님께 이번 일은 양보하죠. 따라오세요.”
‘이번 기회에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주겠어!’
김규철은 이서우를 따르며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하지만 그 다짐은 1시간이 채 되지 않아 무너지고 말았다.
“헉헉헉, 서, 서우 님. 도, 도저히 못 하겠습니다.”
“네? 이제 시작인데요?”
철퍼덕!
김규철은 이제 시작이라는 말에 질렸다는 표정으로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규철 씨, 그렇게 앉아 있다가 언데드들에게 물릴지도 몰라요.”
“히익!”
김규철은 얼른 일어나 잡고 있던 천을 놓아 버렸다.
그러자 그가 잡고 있던 커다란 천 안에서 수십 마리의 언데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것 참. 수천 마리는 잡아야 하는데, 100마리도 안 되는 걸로 이러시면 곤란한데 말이죠. 사나이가 한 번 말했으면 지켜야죠.”
“제,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발 살려주세요!”
길게 늘어진 천을 붙잡고 다시 김규철에게 가져가자 소스라치게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이서우가 떠올린 방법은 바로 언데들을 한 자루에 모아서 일일이 방향을 따라 돌아다니는 것이었다.
한데, 뼈가 부서진 언데드 수십 마리를 자루에 담자 점점 무거워져 빠르게 달릴 수가 없었다.
언데드가 많아지자 김규철을 잡아먹겠다고 덤벼드는 녀석들까지 생기면서 생명의 위협까지 느꼈다.
이대로 가면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김규철은 결국 백기를 들고 말았다.
자루가 풍성해질수록 꿈틀거림이 느껴지니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뒤에 누군가가 칼을 들고 계속 쫓아온다면 누구나 지금의 김규철처럼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실망이네요. 호언장담하셔서 잘하실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죄, 죄송합니다. 제가 큰 실수를 했습니다.”
“뭐, 그렇게까지 말하신다면 제가 해야죠.”
“가, 감사합니다!”
신관들과 이설아는 김규철을 보며 키득키득 웃고 있었다. 그렇게 자신 있게 말하던 사람이 꼬리를 말고 거의 빌다시피 이서우에게 매달리고 있으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이서우는 곧장 거대한 자루 손잡이를 잡고는 허공으로 휙휙 돌렸다.
그러자 안에 있던 언데드들이 공처럼 뭉쳐졌다.
“다들 잘 따라오셔야 해요.”
“네.”
이서우는 수백 킬로그램의 자루를 들고서도 바람처럼 달렸다.
시간이 지나면서 언데드들의 숫자는 점점 많아졌다.
그렇게 주변에 언데드들의 흔적이 없어질 때쯤 이서우의 움직임이 멈췄다.
“헉헉헉. 어, 언제쯤 휴식을 취하는 건가요?”
“이제 시작인데 이러시면 곤란한데요?”
“네? 이제 시작이라고요?”
“네. 정찰자시면 그 정도는 충분히 달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봅니다?”
“그, 그건 그렇지만…….”
김규철은 백호의 등에 앉아 있는 여자 셋을 바라보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젠장. 자존심 버리고 번갈아 가면서 탄다고 했어야 했는데.’
워낙 먼 거리를 달려야 해서 최혜진이 교대로 앉으면서 가자고 제안을 했었다. 한데, 김규철은 그 제안을 거절했다.
남자가 쪽팔리게 여자들을 힘들게 하면 안 된다는 게 이유였다.
여자들에게 잘 보이려고 한 말이었는데, 오히려 그 말로 인해 비호감이 되고 말았다.
게임에서까지 남녀를 따진다면서 미움을 받고 만 것이다.
“자, 그럼 지금부터 달리면서 이놈들이 어느 방향으로 가려고 하는지 느껴 볼 차례네요. 그럼 달리겠습니다. 혹시라도 못 쫓아오는 분이 계시면 같이 파티를 할 생각이 없다고 여기고 추방하겠습니다.”
“자, 잠깐만요!”
김규철이 이서우를 불러보았지만 이미 그는 사라지고 없었다.
“이게 무슨 파티냐고! 아이고, 내 팔자야.”
김규철은 신세한탄을 하며 이서우의 뒤를 쫓았다.
갈수록 빨라지고 있어 사냥에 쓰려고 했던 마나를 계속 털어 넣고 있었다.
“내 도오오오온!”
절규해 보지만 아무도 듣는 이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