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7
레벨이 갑이다
227화
새벽 4시에 종료를 한 이서우는 2시간을 자고 일어나 오전 9시까지 격렬한 운동을 했다.
잠을 적게 자도 컨디션에 별다른 지장이 없어 혹시나 싶었는데, 역시나 아무 이상이 없었다.
일시적인 것을 수도 있지만 최근 자주 경험을 하는 터라 앞으로는 수면 시간에 구애 받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오빠, 안 피곤해?”
“오히려 기력이 넘치는걸?”
“이상하네. 어떻게 잠을 그리 적게 자고 멀쩡하지.”
“요즘 체력이 갈수록 좋아지고 있잖아. 운동의 힘이지.”
“하긴, 나도 요가를 하고부터는 적게 자도 그다지 피곤하지는 않아. 하지만 오빠처럼 격렬하게 그리 오래 운동은 못해. 끽해야 2시간 정도지.”
“자기 몸에 맞게 하면 돼.”
“그건 그렇지. 참, 오빠, 오늘 최 박사님이 잠깐 보자고 하던데.”
“그래? 뭔가 변화가 있나.”
“아마도 그렇겠지? 10시쯤에 같이 간다고 해놨어.”
“그럼 밥 먹고 가 보면 되겠네.”
“응.”
테스트 룸에 오는 것을 꺼려하는 이서우를 배려해 최박사는 접속 베드 방에 모든 장치를 설치하고 정보만 따로 얻을 수 있게 해놓았다.
최 박사는 원하는 테이터를 얻고, 이서우와 이설아는 안전하게 뉴 월드를 즐길 수 있었다.
접속 베드 방은 오직 두 사람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어서 그들도 만족했다.
쑥국과 생선, 두부조림, 장조림, 배추김치, 각종 나물들이 한 상 가득했다.
아침을 잘 먹어야 한다는 생각에 항상 푸짐하게 먹는 편이었다.
반찬을 몇 가지 집어먹었을 때, 이설아가 말했다.
“오빠, 주 변호사님이 이번에 얻은 수익을 다른 데 투자할 건지 궁금해하시던데. 오빠가 워낙 바빠서 나한테 넌지시 말씀하시더라고.”
“그렇지 않아도 한 번 만나 뵈려 했는데, 내일쯤 약속을 잡아야겠네.”
“생각해 둔 곳이라도 있어?”
“일단 접속 방 하나 더 하고, 중국과 인도 쪽 주식에 조금 더 투자해 보려고.”
“투자 금액 늘이려고?”
“뉴 월드 때문에 재미를 좀 봤으니 조금 더 투자해도 될 것 같아서.”
“하긴, 나도 재미를 좀 봐서 생각은 하고 있긴 했어. 주 변호사님이 수익을 내려고 사람들까지 충원해서 더 안심이 되는 것 같아.”
“건물도 구입하시더니 인원까지 늘였어?”
“응. 우리 둘만 해도 수익이 엄청 나오잖아. 돈이 쓸어 담고 있으니 미래를 보고 인원을 보강한 것 같아. 투자분석가와 부동산 전문가도 몇 명 추가됐다고 하셨어.”
“요즘은 AI가 더 잘하지 않아?”
“그렇긴 한데. 사람과 AI가 같이 하면 더 성과가 좋다고 하시던데?”
2020년부터 금융계에도 AI바람이 크게 불었다.
이전에도 일부 적용을 했지만 본격적인 시작은 그때부터였다.
이후 사람들은 AI와 경쟁하며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도태된 사람들은 대부분 떨어져 나갔고, 그 자리를 AI가 대체했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이 필요한 자리는 사라지지 않고 보존이 되었으며 지금은 AI를 적극 활용하는 전문가들이 좋은 성과를 내는 세상이 되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지식적인 면만 아니라 감성적인 부분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투자자들을 기계적으로 대하지 않고, 어떤 사소한 일도 자신의 일처럼 생각하며 공감하는 역할을 톡톡히 수행했다.
간혹 상식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고객들이 하인처럼 대하기도 했지만 갑을 관계가 아니라 상생의 관계여서 지금은 그런 무례한 사람들은 거의 보기 힘들었다.
“일리는 있는 말씀이시네.”
“주 변호사님 덕분에 골치 아픈 일들은 안심하고 맡길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지 몰라.”
“그건 나도 인정. 우리가 손해 안 보게 사소한 것부터 서류 작업까지 완벽하게 챙겨 주시니 편하긴 해.”
주선용은 철저히 고객 위주로 일처리를 한다.
고객이 손해 볼 것 같은 일은 절대로 하지 않고, 서류도 꼼꼼하게 챙기기 때문에 한 번 고객이 된 사람들은 그를 떠나지 않는다.
물론 아무나 고객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어서 겨우 10명 정도만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대부분 스포츠 스타였고, 뉴 월드를 주업으로 여기는 사람은 이서우와 이설아가 유일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연봉 100억 이상 받는 선수는 손에 꼽을 정도다.
하지만 50억 내외의 선수들은 꽤 많이 늘어나서 스포츠 부자들도 심심치 않게 생겨나고 있다.
골프 같은 경우에는 상금 규모가 커지면서 상금 액수만 100억에 육박하기도 한다.
스폰서도 받고, 광고까지 더하면 부자 대열에 합류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비인기 종목들 중에 2군도 이제는 5천만 원 이상은 받는다. 국가의 지원과 기업들이 투자를 하면서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물론 15년 전과 비교하면 돈의 가치가 달라져 5천만 원이 그리 큰돈은 아니지만, 혼자 지내면서 돈 걱정 없이 운동에 매진할 수 있을 정도의 금액은 된다.
과거에는 돈이 없어 좌절하는 선수들이 많았지만 로봇이 인간의 자리를 대체하는 상황이 오면서 스포츠에 더 뜨거운 관심을 보여 상황이 많이 좋아졌다.
“여튼 주 변호사님과도 내일 오전 10시에 약속 잡아 둘게. 운동하고 잠시 만난 뒤 바로 접속하면 시간은 절약할 수 있을 거야.”
“고생이 많네.”
“방송도 하고, 자료 준비도 하고, 비서 역할까지 하려니 조금 타이트하지만 재미는 있어. 오빠랑 가끔 여행도 가고 그래서 지금에 만족해.”
“앞으로 세계를 내 집처럼 누빌 테니 체력이나 만들어 둬. 노는 것도 체력 없으면 힘드니까.”
“오빠랑 노는 거라면 없는 체력도 솟아나는걸?”
“그럼 부지런히 다녀야겠는걸.”
“난 콜!”
뉴 월드에서 최고가 되는 꿈을 실현하고, 더 큰 부자가 되는 것도 좋지만 여유로운 삶을 사는 것도 이서우가 바라는 것이었다.
돈을 벌어서 죽을 때 가져갈 것도 아니니 틈나는 대로 해보지 못한 것도 하면서 지내고 싶은 욕구가 갈수록 강해졌다.
그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여행이었다.
몰디브에 다녀오면서 더욱 여행에 대한 욕심이 커졌다.
식사를 끝낸 이서우는 테스트 룸으로 갔다.
최 박사가 웃는 얼굴로 그들을 맞았고, 사무실로 안내되어 편안한 소파에 앉았다.
“바쁠 텐데 이렇게 불러서 미안합니다.”
“아닙니다. 저극 협조를 하기로 했으니 도울 게 있으면 도와야지요.”
“그렇게 말해 주니 마음이 편하네요.”
“한데, 무슨 일로 절 찾으셨나요?”
“지금까지의 경과도 보고하고, 조금 다른 방법도 써볼까 해서 찾았습니다.”
“말씀해 보세요.”
이서우는 팔짱을 낀 채 의자에 기댔다.
들어 보고 판단하겠다는 뜻이다.
이서우와의 만남도 꽤 잦아지고 있는데도 최박사는 항상 그를 어려워했다.
‘아직 젊은데, 마치 회장님과 독대를 하는 것 같은 기분이네. 요즘 너무 밤낮없이 무리했더니 기가 허해졌나. 보약이라도 한 첩 먹어야겠네.’
농업기술의 발달로 양질의 농작물을 재배할 수 있게 되었고, 한약재도 많은 발전을 이루었다.
15년 전만 해도 값싼 약재를 들여와 법제法製도 제대로 하지 않고 팔아 효능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공장에서 찍어 내듯 다뤘으니 약효가 좋을 수가 없었지만 지금은 약재의 독성을 없애고 효능을 극대화 시키는 작업을 단시간에 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최 박사는 한약이 간절히 떠올랐다.
하지만 이내 본래의 목적을 떠올리고는 입을 열었다.
“이걸 보시죠.”
최 박사의 말에 홀로그램이 떴다.
이서우의 육체가 보였고, 글자와 숫자들의 조합이 화면을 채우고 있었다.
“흰색의 글자는 이전의 서우 씨의 육체 능력을 수치화한 것이고, 빨간색은 최근의 수칩니다.”
“높아졌네요?”
“네.”
“운동으로 인한 변화일 수도 있지 않나요?”
“운동할 때의 데이터도 확인을 했습니다만 그때의 변화만으로 이런 수치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박사님 말씀은 뉴 월드를 해서 제 몸이 변했다는 거네요.”
“추측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지요.”
최박사도 이서우도 뉴 월드가 이서우의 변화에 도움을 줬을 거라는 추측은 했었다.
하지만 과학은 언제나 그렇듯 추측만으로 인정이 되지 않는다.
“보고할 내용은 그게 전부인가요?”
“또 한 가지 재미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뭐죠?”
“서우 씨가 뉴 월드에 접속해 있는 동안 육체는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변화가 진행되는데, 이게 접속을 종료해도 유지가 된다는 겁니다.”
“네? 그러니까 뉴 월드를 종료해도 접속한 것 같은 효과를 낸다는 건가요?”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이서우는 최 박사의 말에 눈을 크게 떴다.
함께 이야기를 듣던 이설아도 마찬가지의 반응이었다.
“어느 정도 그 상태가 유지되는 겁니까?”
“현실에서 유지되는 시간은 대충 110분 정도더군요. 놀라운 건 뉴 월드에 접속한 총시간이 많아질수록 유지 시간도 늘어난다는 겁니다.”
“접속 시간에 따라 얼마나 늘어나는지 알 수 있을까요?”
“현재로서는 뉴 월드에 1시간 접속하시면 유지 시간은 3초 정도가 늘어납니다.”
“3초요? 꽤 정밀한데요?”
“평균값으로 나눠서 그런 겁니다.”
“그렇군요.”
이서우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에 적잖게 당황했다.
“아마 서우 씨가 강해질 수 있었던 건 뉴 월드 접속 때의 변화도 있겠지만, 현실에서 그것이 유지되는 것도 한 몫 했을 겁니다. 접속 종료하자마자 운동하신 적도 분명 있을 테니까요.”
최 박사의 말에 이서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 많은 횟수는 아니지만 분명 그의 말처럼 접속을 종료하자마자 운동을 한 적도 있었다.
뉴 월드에서도 육체가 조금씩이지만 변화가 진행되었고, 현실에서도 그랬다면 빠른 발전도 설명이 되었다.
그 때 이서우의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박사님 말씀은 접속 종료한 뒤 110분 정도만 바짝 운동을 해도 엄청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는 뜻이 되는군요!”
“네.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서우의 얼굴이 밝아졌다.
같은 종목의 운동선수라도 사람에 따라 훈련 방법이 다르다.
천편일률적으로 같은 훈련을 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는 것이 이미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것은 교육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은 주입식 교육이 사라지고, 사람 중심의 교육이 보편화되어 있었다.
각자의 적성에 맞는 분야를 선택해 꾸준히 연구하고 발전하는 시스템이 정착이 되었다.
기업들도 그런 인재가 더욱더 좋은 성과를 낸다는 것을 알고 채용에 적극적이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이서우는 지금까지 주먹구구식으로 자신을 단련한 것이다.
물론 이전에는 최 박사가 준 정보를 몰랐으니 그런 것이지만 지금은 알게 되었으니 패턴을 바꿀 필요가 있었다.
한데, 한 가지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었다.
“최 박사님, 그러면 얼마 동안 접속을 해야 종료를 해도 그 상태가 110분 동안 유지가 되는 건가요?”
“그렇지 않아도 그 부분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눠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까지 서우 씨는 대부분 한 번 접속을 하면 풀접속 시간을 다 사용하셨으니까요.”
“아!”
이서우는 최소 10시간 이상은 접속하고 종료 뒤에 재접속을 하지 않아 그에 대한 데이터가 없었다.
만약 대여섯 시간만 접속해도 그 상태가 유지된다면 이서우는 운동효과를 극대화시킬 수 있었다.
“그걸 알고 싶으시면 1시간부터 점점 늘여 가면서 접속 시간을 보는 게 좋을 것 같네요.”
“그래야 되겠네요. 덕분에 좋은 정보 알았습니다.”
“별말씀을요. 서로 윈윈 하는 거죠.”
이서우는 진심으로 최 박사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얼마나 많은 발전을 이룰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시간을 절약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은 확실했다.
인간은 누구나 하루에 24시간을 산다. 부자나 가난한 자나 남녀노소 상관없이 말이다.
하지만 최 박사의 말이 확실하다면 이서우는 짧은 시간 더 많은 성과를 낼 수 있게 되니 자연스럽게 시간 절약이 될 것이다.
“그럼 오늘부터 바로 테스트를 해 보죠.”
“그 전에 한 가지 더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사실, 이 부분이 어쩌면 더 중요할지 모릅니다.”
최 박사가 무게를 잡고서는 잠시 말을 끊었다.
좋은 소식에 기분이 좋던 이서우도, 기쁨을 함께 표현하던 이설아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최 박사의 말이 이어졌다.
“지금까지의 데이터로 뉴 월드가 서우 씨의 몸에 뭔가 변화를 일으켰다는 것은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변화가 과연 좋은 쪽으로 계속 발전할지, 아니면 DNA의 변형을 일으켜 안 좋은 방향으로 흘러갈지에 대한 부분은 솔직히 알 수가 없습니다.”
“최 박사님, 돌연변이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뜻인가요?”
이야기를 가만히 듣던 이설아가 놀란 얼굴로 다급히 물었다.
다른 생물들은 몰라도 인간 유전자가 변형되면서 좋은 방향으로 가는 경우는 별로 없다.
질병을 이기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경우도 있지만, 부정적인 경우가 더 많아서 아무래도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건 서우 씨의 혈액으로 여러 테스트를 해 봐야 알 수 있어요. 시간도 꽤 걸리고, 채혈도 많이 해야 하니 불편할 수도 있습니다.”
최박사의 말에 이설아가 이서우를 쳐다보았다.
채혈을 많이 해야 한다는 말에 거부감이 느껴졌지만 DNA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 알 수 없어 염려가 되는 것이다.
이서우도 약간 걱정이 되는지 이마를 찌푸리며 고민했다.
‘어차피 테스트에 응하기로 했고, 피도 몇 번 뽑았으니 더 뽑는다고 크게 불편한 건 없지만, 뭔가 끌려가는 기분이란 말이야.’
이서우는 매사에 주도권을 빼앗기는 것을 싫어했다.
그게 얼마나 안 좋은 결과를 초래하는지 경험으로 아는 것이다.
“일단 한 번 살펴볼 수 있는 양을 드릴 테니 확인해 보세요. 그리고 나온 결과에 따라 재차 채혈을 할 필요가 있는지 결정을 하도록 하죠.”
“알겠습니다. 그럼 채혈을 마치시고 현실 유지 시간을 알아보는 테스트부터 진행하시죠.”
“네.”
최 박사는 더 많은 피가 필요하다는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았다.
괜히 조급해하는 모습을 보여 이서우의 의심을 사는 것을 경계했다.
“참, 서우 씨와 관련된 일은 극비여서 되도록 가족에게도 알리지 않으셔야 합니다. 박 대표와 김소연 씨는 어쩔 수 없지만 그 외의 사람들에게는 함구해 주십시오.”
“네, 그러죠.”
최 박사와의 대화를 끝내고, 채혈을 한 뒤 이설아와 함께 접속 방에 들어간 이서우는 철저히 문을 폐쇄하고 뉴 월드에 접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