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1
레벨이 갑이다
231화
“오빠, 막혔어.”
“그러게. 바다가 막고 있을 줄이야.”
이서우는 백호까지 동원해 빠르고 북쪽으로 달리며 흔적을 찾았다.
뛰어난 정찰자라도 일주일이 지난 흔적을 찾기가 쉽지 않은데, 이서우는 2주가 흐른 흔적도 거뜬히 찾아낼 수 있었다.
그가 그토록 뛰어난 능력을 가지지 않았다면 반다이젠 후작의 흔적을 찾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반다이젠 후작이 쫓기는 신세가 아니었다면 치밀하게 흔적을 지워, 찾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리치 킹 덕분에(?) 접속 종료 전에 그의 흔적을 쫓아 이곳까지 올 수 있었다.
“어쩌지?”
“엘사둔에 없다는 건 타이탄을 타고 바다로 건너갔다는 뜻이야. 그러니 우리도 쫓아가 봐야지.”
“맨몸으로?”
“방법은 있을 것 같아. 일단 종료하고 다시 접속한 뒤에 따라가자.”
“응.”
8시간이 지났기에 이서우는 접속을 종료하고 곧장 체력단련실로 갔다.
머릿속에는 반다이젠 후작이 과연 바다를 건넜는지, 아니면 가다가 죽었는지 궁금한 것이 많았지만 이내 머릿속을 비웠다.
운동을 할 때는 운동에만 집중해야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었다.
가볍게 몸을 풀고 팔꿈치와 무릎으로 단단한 통나무를 하염없이 치기 시작했다.
보통이라면 멍이 드는데 이서우는 오히려 통나무가 부러질 듯 불안했다.
‘확실히 예전보다 조금 더 몸이 가벼워진 것 같아.’
자주 먹던 음식에 약간만 간을 다르게 해도 사람들은 알아차린다.
몸 상태도 운동을 꾸준히 하던 사람이라면 작은 변화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이서우는 예열된 육체를 서서히 한계까지 몰아가기 시작했다.
퍽퍽! 퍽퍽퍽!
크고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특별히 주문 제작해서 튼튼한 나무로 만들었는데 평소에는 강철처럼 단단하던 것이 갈수록 가볍게 느껴졌다.
30분 쯤 지났을 때였다.
힘을 한껏 끌어올려 팔꿈치로 통나무를 강하게 치자 ‘퍼석’하는 소리가 나며 부러져 버렸다.
“와, 이 정도로 차이가 나나.”
이서우는 자신이 한 일인데도 믿을 수 없다는 듯 부러진 통나무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분명 평소랑 다를 바 없이 훈련을 한 건데, 기분 탓인가. 아니면 그동안 내가 너무 통나무를 혹사시켜서 부러질 때가 된 건가.”
확인해 볼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이서우는 아무도 쓰지 않았던 통나무를 가져왔다.
워밍업도 끝났으니 이서우는 곧장 전력 질주했다.
퍽퍽퍽! 퍽퍽퍽퍽퍽!
손과 발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통나무를 가격했다.
20분쯤 지났을까. 또다시 ‘퍼석’하는 소리를 내며 통나무가 부러져 버렸다. 재차 확인을 하니 그제야 현실로 다가왔다.
하지만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앞으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접속 종료하자마자 운동을 해야겠구나.”
사실 이서우가 강한 힘을 발휘한 것은 그동안의 훈련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육체가 단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힘이 생겼다면 아마 통나무가 아니라 이서우의 팔이 먼저 부러졌을 것이다.
이서우는 남은 1시간 동안 다양한 테스트를 하며 정말 이전과 달라졌는지 꼼꼼하게 살폈다.
이미 두 눈으로 확인을 했지만 믿을 수 없는 일을 겪게 되면 이서우와 같은 반응을 보이는 게 당연했다.
110분이 지나자 이서우는 온몸으로 달라진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건 뭐, 경차 타다가 스포츠카 타는 기분이네.”
몸을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확실히 힘이 샘솟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동안은 육체가 더 강해졌을 거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운동을 해서인지 변화를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
훈련이 잘 되는 날에는 그저 컨디션이 좋아서 그런가 보다 싶었는데 오늘로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하긴. 그동안은 접속 종료하면 대부분 씻고 자기 바빴으니까.”
워낙 장시간 뉴 월드에 접속하고 나오다 보니 몇 시간이라도 자고 운동을 하는 게 보통이었다.
바로 잠자리에 들지 않더라도 샤워와 휴식을 취하고 운동을 했기에 효과를 보지 못했다.
유지 시간이 짧은 것도 이유였다. 지금도 2시간을 채 유지하지 못하니 과거에는 더 짧았을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육체 강화 효과가 줄어드니 이서우로서는 미리 알 방법이 없었다.
“뭐, 어쨌든 지금이라도 알게 됐으니 다행이야. 이렇게 되면 여행 다닐 시간도 꽤 늘어나고, 풀 접속을 해도 큰 부담이 없겠어.”
운동에 빠져 거기에 쏟는 시간은 갈수록 늘었다. 처음에는 하루 2시간이던 것이 어느새 5~6시간까지 늘어났다.
하루 종일도 운동을 할 수 있다 여겼는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전혀 없었다.
1시간 만 운동을 해도 하루 양을 모두 채우고도 남기 때문에 여유 시간이 많아진다.
이서우는 남는 시간으로 맛집도 찾아다니고, 여행도 갈 생각이었다.
뉴 월드를 하는 것이 그에게는 큰 즐거움이지만 현실을 즐기는 것은 그보다 더 큰 즐거움이었다.
“오빠, 어서 와. 시간 맞춰서 딱 세팅해 뒀어.”
“피곤할 텐데 좀 자지 그랬어.”
“아냐. 나도 요가를 열심히 했더니 체력이 많이 좋아졌어. 어서 앉아. 식겠다.”
이서우는 이설아가 차려 놓은 상을 말끔히 비웠다. 영양학적으로 아주 바람직한 식사였다.
“앞으로는 새벽 5시부터 일과를 시작하면 되겠네.”
“8시간 패턴이면 그쯤 시작해야지.”
“안 피곤하겠어?”
“피곤하지는 않아. 근데, 하루에 8시간씩 두 번 연속 접속을 할지, 아니면 다른 패턴으로 갈지 조금 더 생각을 해 봐야 할 것 같아.”
“훈련 성과가 꽤 좋은가 봐?”
“과거보다 5~6배 이상은 효율이 좋아진 것 같아.”
“헐. 그 정도야?”
“나도 훈련하면서 놀랐어. 이 정도일 줄은 몰랐거든.”
이서우는 통나무를 부술 때가 떠올랐는지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 어떤 패턴으로 할 거야?”
“1시간만 해도 이전과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으니 차라리 풀 접속을 하고 110분을 훈련한 뒤 나머지를 수면 시간으로 할지, 아니면 8시간 접속, 110분 훈련을 두 번 나눠서 할지 고민이 되긴 해.”
“6시간 패턴은?”
“그것도 고려 중이야. 일주일 내내 빡세게 일정을 잡을 수는 없으니 2~3일은 6시간 접속을 두 차례 하고, 훈련은 2시간만 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아.”
“그러면 수면 시간도 7시간 이상 챙길 수 있으니 좋겠네.”
“그렇지. 근데 퀘스트 상황에 맞춰서 접속 시간을 정하는 게 제일 좋을 것 같아.”
“하긴. 중간에 멈추고 나오면 흐름이 끊기니까.”
“맞아. 그래서 퀘스트가 길어지는 날은 풀 접속을 하고. 그렇지 않은 날은 6시간 패턴으로 가는 게 나을 것 같아. 그리고 일주일에 하루는 푹 쉬어 주고.”
“정말?”
“돈은 벌 만큼 벌고 있으니 즐기면서 살아야지. 150세 인생이라지만 세상을 다 보려면 그 시간으로도 어림없잖아.”
수명대로 산다면 이서우에게 주어진 시간은 120년이 넘는다.
한 달에 10억 이상, 하루에 3,500만 원 이상씩 써도 돈이 남을 정도로 많은 부를 쌓았다.
눈을 뜬 순간부터 돈만 써도 다 쓰지 못할 엄청난 돈이었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앞으로 벌어들일 돈은 그보다 몇 십 배는 많아서 쓰는 속도보다 벌어들이는 속도가 훨씬 빠르다.
이서우는 그 많은 돈을 아끼면서 일만 하고 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면 여행 다니기는 좋겠다.”
“당연히 좋지. 해외여행을 가고 싶으면 4일 정도 풀 접속 하고 아예 3일은 여행 가는 것도 괜찮고.”
“와! 그러면 유럽이든, 남미든, 어디든 갈 수 있겠네?”
밝게 웃고 있는 이설아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국내 교통 환경만 좋아진 것이 아니다. 초음속 여객기가 등장하면서 전 세계가 하루 생활권에 들어왔다. 아무리 먼 곳도 4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었다.
마하 3.3 이상의 속도를 내는 여객기도 있었는데 2시간이면 세상 어디든 갈 수 있었다.
문제는 비용이었다. 마하 1.5정도의 초음속 여객기는 그나마 평범한 사람들도 이용이 가능했지만, 마하 3.3 이상은 비용이 몇 배나 들었다.
마하 1.5의 속도를 가진 초음속 여객기는 속도 때문에 ‘쩜오’라고 불렸고, 3.3은 ‘삼삼이’라는 별칭이 있었다.
쩜오는 일반 좌석 비용이 거리에 따라 달랐지만 가장 비싼 곳이 왕복으로 2천만 원에 육박했고, 비즈니스 석은 5천만, 일등석은 1억에 달하는 금액이어서 평범한 사람은 평생 한 번 타 볼 수도 없었다.
삼삼이는 가격이 더 비쌌는데, 일반 좌석이 3천, 비즈니스석은 7천, 일등석은 1억 5천이 넘는 금액이니 웬만한 부자가 아니면 자유롭게 타고 다니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이 비용도 많이 내려간 것이다. 처음에는 비행기 크기를 크게 할 수 없어 100좌석 이상은 갖추지 못했다.
비행기가 작은 데다가 좌석을 늘이려다 보니 일등석은 존재하지도 않았고, 일반석도 많이 좁았다. 그런 데다가 가격이 5천만 원이나 하니 누가 쉽게 이용하려 하겠는가.
기술의 발전은 빨랐고, 곧 200좌석을 확보한 초음속 여객기가 등장했다.
그때부터 가격도 다운되고 좌석도 비교적 편하게 만들어서 인기를 끌었다.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 지금의 쩜오와 삼삼이는 일반석이라도 꽤 편하게 이용할 수 있었다.
과시욕이 있는 사람들은 2배나 넓은 일등석을 이용했고, 여자에게 잘 보이고 싶은 남자들은 프라이버시 공간까지 있는 커플석을 이용했다.
2~3시간, 길어도 5시간을 넘지 않는 여행인데 굳이 일등석이 필요하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지만 부자들은 단 2시간을 가도 안락함을 추구했다.
이서우가 이용하는 전용 비행기도 속도가 마하 1정도지만 돈보다 시간을 더 중요시 여기는 그이기에, 해외여행에는 이용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이참에 삼삼이를 하나 구입할까?”
“너무 무리하는 거 아냐?”
“쩜오보다 시간을 2배 아낄 수 있잖아.”
“아니면 박 대표님이 쓰라고 하신 쩜영이에 접속 베드를 설치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아! 그럴 수도 있겠네.”
“응. 그러면 6시간 정도는 접속할 수 있잖아.”
“그거 좋은 생각이네. 6시간 접속하고, 1시간 운동할 시간도 되고.”
“먼 곳은 쩜영이로 9시간까지도 가니까 그게 좋을 것 같아.”
쩜영이는 마하 1.0을 뜻한다. 비행기에 탑승한다고 곧장 날아오르는 게 아니니 미리 도착해 뉴 월드를 편하게 즐길 수 있었다.
접속 베드에 있는 개인 정보는 이용하지 않을 때 차단을 해 버리면 되니 도난을 당해도 걱정이 없었다.
“그렇게 되면 3일만 풀 접하고 이동해도 되겠다. 완전히 대박인데?”
“최근 쩜오와 삼삼이도 접속 베드를 설치하는 추세더라고. 사업 하는 사람들이 이동하면서도 뉴 월드를 즐기기 원하니 인기가 좋나 봐.”
“왕복이면 5시간이니 비행기를 자주 타는 사람은 진짜 희소식이겠네.”
“좌석이 없어서 난린가 보더라고.”
뉴 월드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생활 전반에 걸쳐 많은 것이 변하고 있었다.
비행기뿐만 아니라 초고속 열차도 접속 베드를 이용할 수 있도록 했고, 선박에도 적극 활용했다.
“어쨌든 이전보다는 확실히 여유가 생길 테니 가고 싶은 곳 있으면 목록 쫙 만들어 놔.”
“응!”
이서우와 함께 한다면 어디든 좋았지만 새로운 곳을 여행하고 싶은 욕구가 아예 없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서우가 신경 쓰지 않도록 그런 내색을 전혀 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편하게 놀러 갈 곳을 이야기할 수 있어서 좋았다.
식사 시간이 끝나갈 때쯤 뜻밖의 손님이 왔다.
“식사 중인데 찾아와서 미안합니다.”
“최 박사님?”
이서우와 이설아가 공동 생활하는 곳은 들어올 수 없지만 식당과 휴게실은 이용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혹시라도 연락이 닿지 않을 때를 대비해 찾아올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할 이야기가 있는데 괜찮나요?”
“식사도 끝났으니 말씀하세요.”
“접속 종료를 하고 격렬한 운동을 하셨지요?”
“네. 테스트도 해 볼 겸 힘을 최대한 발휘해 봤는데, 뭔가 문제가 있나요?”
“그게 조금 의외의 결과가 나와서요.”
“의외의 결과요?”
“네.”
최 박사는 담담하게 대답했지만, 이설아의 표정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혹시라도 좋지 않은 결과면 어떡하나 염려하는 얼굴이었다.
* * *
“이거 반다이젠 후작님이 어떻게 여기에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토첸 단장, 나도 자네가 왜 여기에 있는지 모르겠구먼.”
“저야 전략적 차원에서 잠시 이곳으로 왔지만 반다이젠 후작께서는 이렇게 한가하게 보낼 시간이 없을 텐데요?”
“남의 사정이야 어떻든 자네가 상관할 일은 아닌 것 같은데?”
“아이쿠. 왜 상관이 없겠습니까. 이제 우린 적대적인 관계인데요.”
“뭣이?”
“타이탄을 두고 간다면 목숨만은 살려 드리겠습니다.”
“크크크, 엘사둔이 건재할 때는 그렇게 손을 싹싹 비비더니 이제야 본색을 드러내는 것이더냐!”
“에이, 선수끼리 왜 이러십니까. 반다이젠 후작께서도 반대의 상황이었다면 똑같이 행동하셨을 거 아닙니까.”
“…….”
반다이젠 후작은 그의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사람은 본심을 숨기고 살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를 죽이기라도 하겠다는 뜻이냐?”
“옛정이 있는데 어떻게 그런 무서운 말씀을 하십니까. 저는 그저 후작께서 타이탄만 놔두고 가시면 어디든 마음껏 갈 수 있도록 해 드리겠다는 겁니다. 아예 후작님을 보지 않은 것으로 해 드리겠습니다.”
“흥, 어림없다, 이놈. 네놈의 속을 모를 줄 알고?”
“캬, 역시 후작님이십니다. 후작님께서도 저와 같은 상황에 처했다면 똑같이 하셨을 테니 금세 제 행동을 추측할 수 있었을 텐데, 제가 그 점을 간과했군요. 한 방 먹었습니다.”
토첸은 시종일관 여유로운 모습으로 반다이젠 후작의 신경을 자극했다.
“네놈의 지금 이 행동에 대한 책임은 쿠아노 후작에게 묻겠다! 모두 타이탄을 소환…….”
“타이탄 소환은 허락할 수 없습니다. 각오하시기를!”
타이탄을 소환하는 명령을 내리기도 전에 토첸이 움직였다.
그의 움직임을 신호로 긴장감 어린 얼굴로 상황을 주시하던 기사들이 순식간에 한데 뒤엉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