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2
레벨이 갑이다
232화
“아, 너무 그렇게 긴장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의외의 결과지만 생각보다 나쁜 결과는 아니니까요.”
“휴우, 최 박사님, 저 엄청 긴장했다고요. 앞으로는 그런 표정으로 말씀하지 마세요. 심장 쫄깃해진다고요.”
“아, 죄송합니다. 저도 다양한 테스트를 했지만 이렇게 저를 놀라게 하는 분은 없었거든요.”
가슴을 쓸어내린 이설아는 그제야 표정이 밝아졌다.
“최 박사님, 뭐가 그리 의외라는 건지 이제 말씀해 주세요.”
“조금 전 서우 님이 격렬하게 움직였을 때 근섬유들이 일제히 찢어지더니 빠른 속도로 회복을 했습니다. 평범한 사람보다 10배 이상 빠른 속도여서 제가 놀란 겁니다.”
“대충 무슨 이야기인지는 알겠는데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 주세요.”
“평소보다 활동량이 많으면 산소가 많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운동을 격렬하게 하면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산소 공급이 충분하지 않게 되죠.”
“그래서요?”
“그 결과로 피로를 유발하는 물질인 젖산이 쌓이게 되는데, 근육통은 그 때문에 발생하죠. 즉, 젖산 때문에 근육섬유가 미세하게 파열되면서 염증이 생겨 쑤시고, 아프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저에게도 그 과정이 벌어지는데, 비정상적으로 빨리 회복이 된다, 이 말씀이신가요?”
“네. 쉽게 말하면 그렇다는 겁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훈련을 하면서는 그런 말씀 없으셨잖아요.”
“그때는 그나마 어느 정도 예상 범주에 있었으니까요. 물론 그때도 평범한 사람보다 월등하기는 했지만 혹독한 수련을 거친 사람들에게 가끔 나타나기 때문에 말씀을 안 드린 것입니다.”
“절 찾아오신 건 그 범주를 많이 넘어섰다는 뜻이겠군요.”
“네!”
힘주어 말하는 최 박사의 대답에 이서우와 이설아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보면 기뻐 보이는 듯도 했고, 또 어떻게 보면 걱정스러워 보이기도 했다.
어떤 것이든 너무 부족해도 문제지만, 너무 과해도 좋지 않았다.
“우려할 정도의 수준인가요?”
“아닙니다. 오히려 좋은 징조입니다.”
“그런가요?”
“네. 회복력이 빨라졌다는 뜻이니까요.”
“회복력이 빨라졌다뇨?”
근육에 대한 회복력이 빨라졌다면 근육이라고 했을 텐데 여러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회복력이라는 표현을 써서 더욱 궁금했다.
“근육뿐만이 아니라 모든 장기, 뼈 등 신체 전반에 걸친 회복력이 상승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상처가 나도 남들보다 훨씬 빨리 회복을 한다는 건가요?”
“네. 외상뿐 아니라 내상도 마찬가지고, 장기들이 손상을 입어도 심하지 않다면 자가 치유가 될 겁니다.”
“헐. 사람이 그게 가능한가요?”
기분이 좋다가도 모든 신체의 회복력이 좋아졌다고 하니 돌연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뉴 월드에 나오는 트롤 수준으로 회복이 되는 건 아니니 너무 그렇게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트롤 수준이면 그건 완전 괴물이죠.”
“평범한 사람이 보면 지금 서우 님의 회복력도 괴물급일 겁니다.”
“그럴 수도 있겠군요.”
“아직 정확한 건 모르지만 어쩌면 암도 치료가 될지도 모릅니다.”
“네? 암까지요?”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론 테스트를 해 봐야겠지만요.”
“이것저것 검사해야 할 게 많아진다는 소리로 들리는군요.”
“아무래도 그렇게 되겠죠.”
저렴하고, 확실한 암 치료제를 개발할 수 있다는 생각에 들떴지만 테스트받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이서우의 성격을 잘 알기에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그것 말고 다른 변화는 없나요?”
“네. 지나치게 건강하다는 것 말고는 딱히 큰 변화는 없습니다. 아, 제가 빠트린 게 있네요.”
“뭔가요?”
이서우는 또 뭔가 걱정해야 할 게 있나 싶어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면역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했고, 근육이 회복되면서 유연성이 더욱 좋아졌다는 겁니다.”
“아, 그렇군요. 난 또…….”
“오늘의 변화는 서우님에게 전혀 해가 될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요.”
“그래서 말인데…….”
“또 뭐가 남았나요?”
“아무래도 채혈을 해서 더 정밀하게 살펴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몸에 안 좋은 영향을 끼쳤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그건 아니지만 원래 한 점의 의심도 남기지 않는 게 저 같은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채혈을 하셨는데, 그에 대한 성과는 있나요?”
“그건 시간이 좀 필요합니다. 오늘처럼 극적인 변화 전에 채혈한 것과 변화를 이룬 지금은 상황이 다를 겁니다. 지나고 나면 지금 이 순간의 상태는 영원히 알 수 없기 때문에 부탁을 드리는 겁니다.”
“좋습니다. 주사기 하나 분량만 허락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주사기가 꽤 커서 피를 많이 뽑아야 하지만, 이서우도 회복력이 조금 떨어질 때와 지금의 상태가 어떻게 다른지 보다 정확하게 알고 싶었다.
“참, 박사님.”
“네. 말씀하세요.”
“다른 나라에서도 이런 인체의 변화를 테스트하고 있나요?”
“뉴 월드가 뇌에 미치는 영향이 어떤지에 대해서는 한창 연구가 진행 중입니다. 충분한 시간을 들여 확인하지 못하고 오픈해서 우려하는 하는 나라도 많으니까요.”
“꽤 오래 테스트를 한 것으로 아는데, 아직도 우려의 목소리가 있나요?”
“원래 연구자들은 십수 년씩 연구를 해도 만족하지 못하니까요.”
“그렇군요. 그럼 지금까지 특별히 이상한 건 없는 건가요?”
“네. 계속해서 연구를 하고 있지만 별다른 특이점은 없다고 하네요.”
“제가 조금 특이한 경우인가 보네요.”
“솔직히 조금 많이 특이한 경우죠. 다행스러운 것은 안 좋은 쪽으로의 변화가 아니라 그 반대라는 거죠. 아마 서우님께 찾아온 변화라면 다들 환호를 할지도 모르겠네요.”
“그건 박사님처럼 연구자에게나 해당되는 거겠네요. 저처럼 평범한 사람은 좋든, 나쁘든 걱정이 되기 마련이니까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서우 님을 통해 전 세계인들이 긍정적으로 변하게 될 세상을 그려 보신다면 기분이 조금 나아지실 겁니다.”
“저로 인해 긍정적으로 바뀌게 될 세상이라고요?”
“네. 대부분의 질병이 정복될 것이고,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일들을 각 분야에서 이룰 수 있을 겁니다.”
“제가 우둔해서 어떻게 변할지 상상이 가지 않네요.”
“프리다이빙으로 바닷속을 30분 이상 움직일 수도 있을 것이고, 200미터 이상의 깊이까지 아무 장비 없이 잠수할 수도 있겠지요. 9초의 벽을 넘지 못한 100미터에서도 세계신기록이 나올 것이고, 기존의 스포츠 경기보다 더욱 더 격렬하고 화려한 플레이가 가능해질 겁니다.”
“그렇게 변한 세상이 꼭 긍정적일까요?”
“서우 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저는 모든 일에는 장단점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장점이 있다면 단점이 있겠지요.”
“범죄자들 중에 서우 님과 같은 특이 신체를 얻게 되더라도 그리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여기서 얻게 되는 데이터를 통해 미리 누가 특이 신체를 가지고 있는지 알게 될 테니까요.”
“사고는 언제나 인간의 예측을 벗어나는 법입니다.”
“전 생각이 다릅니다. 단점들을 통제할 수 있다면 오히려 더 큰 이익이 발생할 겁니다. 물론 인류의 발전에는 반드시 양면성이 있겠죠. 하지만 구더기가 무섭다고 장을 안 담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최 박사는 전형적인 과학자의 마인드를 가지고 이번 일을 대했다.
이서우도 일정 부분은 최 박사의 말에 동의하지만 자칫 그것을 악용할까 염려가 되었다.
‘마냥 좋게만 생각할 수는 없어. 뉴 월드에서처럼 암살자 조직이라도 만들면 낭패야.’
최근 뉴월드에서 사용하는 무기를 본따 만든 것으로 공격을 당한 경험이 있어 완전히 걱정을 지울 수는 없었다.
“피는 약속대로 주사기 1개 분만 빼 가지고, 당분간은 천천히 시간을 들여 테스트를 진행하도록 하죠.”
“네? 그게 무슨…….”
“테스트를 중단한다는 건 아니니 그리 염려하실 것 없습니다. 단지, 조금 늦추자는 것뿐이니까요.”
“하지만 서우 님…….”
“저와 같은 사람이 더 발견된다면 그때는 조금 달리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최 박사와의 대화에서 너무 빨리 변하게 될 미래가 살짝 걱정되어서 테스트를 조금 더 신중하게 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그동안 자신의 변화에만 치중한 나머지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는데, 그래서는 안 될 것 같았다.
반대로 최 박사는 이서우의 결정이 마른하늘의 날벼락 같아서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다.
이유라도 알면 좋겠는데 아무런 설명도 없이 통보만 하다니.
서로 생각이 완전히 다르기에 최 박사는 왜 이서우의 태도가 돌변했는지 알지 못했다.
수박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 수박의 맛을 상상해 보라고 한다면 무슨 생각을 할까.
수박을 본 적이 없으니 이내 포기하고 말 것이다.
최박사도 마찬가지였다. 이서우가 걱정하는 것을 걱정이라고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으니 당연히 지금 이서우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다.
“참, 지금까지의 자료 원본도 넘겨주십시오. 조금 더 면밀히 검토를 한 뒤 다음 테스트 일정을 잡도록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최 박사는 어쩔 수 없이 지금까지의 자료 원본을 넘겨주었다.
이서우는 출입증까지 꼼꼼하게 받아 내고서야 최박사와 헤어졌다.
쫓겨나다시피 나간 최 박사는 곧장 정 회장에게로 갔다.
그가 나가고 나자 이설아가 물었다.
“오빠, 정 회장님과 약속한 건데 괜찮겠어?”
“내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어. 조금 과한 면이 있지만 너도 들었다시피 테스트가 빨리 진행되면 내 피로 뭘 할지 알 수가 없어.”
“하긴, 조금 전에 최 박사님이 말하는 걸 옆에서 지켜봤는데, 아주 흥분했더라고.”
“맞아. 나도 그걸 보고 맥을 끊어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서 더 단호하게 말한 거야.”
“난 오빠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해. 오빠의 그 회복력을 연구해서 좋은 방향으로 쓰면 좋겠지만, 항상 좋은 건 기득권층이 다 가져가 버리니까 조심해야 돼.”
“맞아. 그들이 독점하지 못하도록 시간을 둘 필요가 있어.”
두 사람은 서로의 생각이 동일하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마주보며 미소를 지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같은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고, 행복이었다.
그들의 입가에 맺힌 미소가 더욱 진해졌다.
“평균 수명이 이미 100세가 넘었어. 내 피를 통해 생명 연장까지 된다면 150, 아니, 200세가 될지도 몰라. 아무런 준비 없이 그런 날이 오는 건 진짜 끔찍할 거야.”
“맞아. 노후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 그런데 생명까지 연장되면서 가진 자들만 건강하게 오래 산다면 너무 불공평해.”
“대표님께 말해서 일정이 조금 늦춰졌다고 말해야겠네.”
“응. 내가 말할게.”
이설아는 즉시 연락을 넣어 자초지종을 말했다.
안타까워하는 목소리가 옆에 있는 이서우에게도 들렸지만 박 대표는 금세 수긍했다.
곧 접속 베드가 새로 준비\되었고, 최 박사가 쓰던 테스트 룸의 문이 닫혔다.
걱정이 되었는지 박 대표와 김소연이 모든 일을 제쳐 두고 찾아왔다.
* * *
“최 박사, 그게 무슨 말인가!”
“그게…….”
“이 사람아, 말을 하게. 대체 왜 서우 군이 테스트를 미루겠다고 한 건가!”
“그게, 아무래도 저 때문인 것 같습니다.”
“무슨 소린지 자세히 말해 보게?”
“사실, 너무 대단한 발견을 해서 너무 들떠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저의 욕망을 잠깐이나마 본 것 같습니다.”
“대체 무슨 발견이기에?”
“서우 군에게서 인간의 최종 진화 형태를 보았습니다.”
“최종 진화 형태라고?”
“네, 회장님, 정말 완벽한 최종 진화 형태를 말입니다.”
최 박사는 기대와 열망에 찬 표정을 짓다가도 자신의 실수가 떠오르는지 이내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바라마지않던 일이었는데, 자신의 욕심으로 물거품이 되고 말았으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 발견이 우리 민후를 구할 수 있나?”
“물론입니다!”
“언제쯤 다시 테스트가 재개되겠나.”
“그건 저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민후가 언제까지 버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테스트가 언제 다시 진행될지도 모른다는 건가!”
“죄, 죄송합니다, 회장님.”
최 박사의 고개가 다시 깊숙이 내려갔다.
‘최 박사의 욕심 때문이 아닐 것이다. 분명 다른 이유가 있을 거야. 하지만 그걸 찾아내서 그 아이를 설득할 시간이 없어. 어떻게 한다…….’
정 회장은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손자가 언제까지 버틸 수 있는지 알 수만 있다면 기다릴지, 아니면 다른 방법이라도 쓸지 결정이 쉬울 텐데, 지금으로서는 한 가지밖에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의 태도는 어땠나?”
“단호했습니다.”
“그렇다면 빠른 시일 내로 다시 테스트가 진행되기는 힘들겠구먼.”
“아마도 그럴 것입니다.”
“자료는 가지고 있겠지?”
“원본은 넘겼지만 사본이 남아 있습니다.”
“그럼 서우 군의 혈액만 있으면 언제든 치료약을 만들 수 있겠구먼.”
“네.”
“어쩔 수 없는 건가…….”
“설마, 그 방법을 생각하고 계시는 겁니까?”
“다른 좋은 방법이 있나?”
“그건 아니지만…….”
최 박사의 얼굴에 진한 먹구름이 끼었다.
정 회장이 말한 방법이 무엇인지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 방법을 쓰면 이서우와의 좋은 관계는 모두 날아가고 만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이서우를 믿지만 정회장은 손자의 안위가 더욱 걱정되었다.
“그럼 세부적인 계획까지 꼼꼼하게 정리해서 보고하게.”
“……네, 회장님.”
갈등하던 정 회장의 얼굴은 온데간데없었다. 마치 젊은 날 기적을 이뤘던 그날처럼 확신을 담은 눈빛을 하고 있었다.
‘민후야, 이 할아비가 꼭 고쳐 주마. 그러니 조금만 더 버티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