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이 갑이다-233화 (233/341)

# 233

레벨이 갑이다

233화

“서우야,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지?”

“혹시 정 회장님에게 연락이 온 건가요?”

“오면서 연락받았다. 갑자기 테스트를 잠시 미룬다고 해서 많이 걱정하시더라. 분명 합당한 이유가 있겠지만,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궁금은 하구나.”

“일단 자료부터 한번 보세요.”

“자료?”

“네. 그동안 최 박사가 절 테스트하면서 얻은 자료예요. 일단 보고 이야기하죠.”

“그러자.”

커다란 홀로그램 화면에 그동안 최 박사가 들인 노력이 고스란히 보였다.

꼼꼼하게 정리를 하고, 코멘트까지 일일이 달려 있어 보기가 편했다.

핵심만 압축한 것이어서 영상은 그리 길지 않았다.

“방금 보신 영상을 풀어 놓은 것도 있지만 그건 너무 길어서요.”

“근데, 영상을 봐도 난 이유를 잘 모르겠구나.”

“서우야, 나도 특별한 이유는 모르겠어.”

“아마 당시 최 박사의 눈빛을 보지 못해서 그럴 거야.”

“최 박사의 눈빛?”

“언니, 난 최 박사의 눈빛이 영화에서 나오는 사이코같아 보였어. 왜 있잖아. 인간을 실험해서 초인을 만드는 그런 과학자.”

“아! 설마, 최박사가 그런 욕심을 보였단 말이야?”

“그렇다니까. 오빠의 육체적 이점을 이용해 전 세계 사람들을 변형시키려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니까.”

“세상에. 그렇게 안 봤는데.”

이설아의 설명이 이어지고서야 박 대표와 김소연은 왜 이서우가 이번 테스트를 갑작스럽게 미뤘는지 알 수 있었다.

“확실히 과학자의 입장이라면 서우의 육체를 보면서 욕심을 낼 만도 하지. 평범한 인간보다 10배 이상 회복력을 가졌다는 것만으로도 활용도가 엄청나니까.”

“지금까지 발견된 것만으로도 그런데, 앞으로 육체 능력이 더 발전하면 아마 당장이라도 이것저것 실험을 하자고 했을 거야.”

“어쩌면 채혈을 하려는 이유도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일 거예요. 꽤 많은 양의 혈액이 필요하다고 그래서 이상하게 여겼거든요.”

“그럴 수도 있겠네. 여튼, 최 박사가 그런 욕심을 가지고 있었다면 테스트를 미루는 게 나아. 정 회장님이 약간 신경 쓰이지만 이제 우리 회사도 그리 만만하지 않으니 쉽게 건드리지는 못할 거야. 그리고 정 회장님의 그룹은 광고에서 배제하자.”

“괜찮으시겠어요?”

“당연히 괜찮지. 그런 걱정은 나에게 맡기고 너희들은 뉴 월드만 열심히 해. 그리고 보너스를 주식으로 지급할 거야. 열심히 모아 둬.”

“그렇게 자꾸 퍼주셔도 돼요?”

“그리 많은 양은 아냐. 그리고 너희들 때문에 회사가 나날이 커지고 있는데, 나만 혼자 꿀꺽할 수는 없잖아. 난 그런 좀생이 같은 사람은 되고 싶지 않다.”

“한 주의 가치가 얼마나 되는데 그걸 퍼주고도 좀생이 소리를 하겠어요?”

“맞아, 오빠. 대표님이 좀생이면 대한민국 국민 전부가 아마 좀생이일걸? 호호호.”

이설아의 웃음에 다른 사람들도 표정이 많이 부드러워졌다.

“여튼, 그래도 잉여금이 꽤 많아서 누가 건드려도 끄떡없으니까 회사는 걱정하지 말라는 뜻이야. 두 사람의 활약이 워낙 뛰어나서 뉴 월드를 오픈한 나라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어.”

“다행이네요. 괜히 정 회장이 해코지할까 봐 걱정했는데.”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 그것보다 DNA변이 여부에 대해 알 수 없게 돼서 아쉽네.”

“괜찮아요. 제 몸은 제가 제일 잘 알잖아요. 갈수록 건강해지고 있으니 별문제는 없을 거예요. 필요하면 그 때 다시 테스트 하면 되고요.”

“그거야 그렇지만…….”

박 대표는 아직 수명이 한참이나 남았는데 20년이나 30년 후에 급격한 변이가 일어나면 어떻게 하냐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나저나 지난번에 네가 말한 거 있잖아. 너처럼 육체의 능력이 월등히 좋아진 경우.”

“성과가 있어?”

“아니. 지금까지는 보고된 바 없어. 아직 조사를 시작한지 며칠 되지 않아서 은밀히 실험실에서 테스트가 이뤄지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드러난 건 전무해.”

“계속 알아봐 줘.”

“걱정 마. 내 똘마니가 잘 처리하고 있으니까.”

“똘마니?”

“응. 인공지능이 알아서 조사하고 있거든. 비밀 유지도 확실하고, 시간 절약도 되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거지.”

“그래도 안전장치는 확실히 해 둬.”

“걱정 마. 대표님이 신경 써 주셔서 해킹 염려도 없으니까. 해킹을 시도하려면 직접 접근을 해야 하는데, 보안이 엄청 철저하거든.”

“박대표님 덕분에 정말 편하게 뉴월드만 즐길 수 있네요. 고맙습니다.”

“고마우면 시청자들을 팍팍 늘여봐.”

“걱정 마세요. 그게 제 전문이잖아요.”

이서우의 목소리에 강한 자신감이 담겨 있었다.

넷은 30분 정도 더 대화를 나누고는 헤어졌다.

“너무 시간을 끌었네. 슬슬 접속할까?”

“응. 그렇지 않아도 반다이젠 후작이 어떻게 됐는지 무척이나 궁금하던 참이야.”

최 박사와 헤어지기 전 뉴 월드 접속을 유지하면 어떤 효과를 얻는지 알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 이서우는 기분 좋게 뉴 월드에 접속했다.

이서우는 그동안 고생한 최 박사에게 그다지 미안해하지는 않았다.

그도 분명히 이익을 취한 게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서로 이익을 주고받았으니 미안해할 필요는 없었다.

‘원본을 넘겼다지만 분명 사본이 있겠지. 하지만 채혈도 한 번밖에 하지 않았고, 육체 변화도 오래 살펴본 게 아니니 큰 도움은 안 될 거야. 지금이라도 최 박사의 욕망을 볼 수 있어서 천만다행이야.’

원본과 사본을 모두 달라고 했다면 최 박사는 철저히 사본에 대한 사실을 부정했을 것이다.

하지만 하루라도 빨리 정리를 했기에 그나마 안심이 되었다.

현실은 사라지고 곧 뉴 월드 세상에서 새롭게 눈을 떴다.

“지금 바로 건널 거야?”

“당연하지.”

“설마 헤엄쳐서 가려고?”

“뉴 월드에서는 한 번 호흡으로 1시간 이상을 잠수할 수 있어. 그러니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야.”

“하지만 난 헤엄을 잘 못 치는걸?”

“걱정 마. 다 생각이 있으니까. 일단 내가 안고 가는 게 빠를 테니 목 꽉 잡아.”

“응? 응.”

이설아의 다리와 등을 받치고 안아 들었다. 그러자 그녀는 이서우의 목을 꼬옥 끌어안았다.

이서우가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한데, 그때 메시지가 들렸다.

-물의 정수를 복용하시겠습니까?

‘응? 물의 정수?’

-물의 정수를 복용하시면 물속에서 자유롭게 호흡이 가능합니다. 중급 이상은 한 번 복용으로 일주일 동안 호흡이 가능합니다. 물의 정수를 복용하시겠습니까?

‘오, 물의 정수가 그런 효능이 있었어?’

이서우는 다시 물 밖으로 나왔다.

“오빠?”

“아, 좋은 아이템이 있었는데 깜빡했더라고. 이걸 복용해.”

“뭔데?”

“물의 정수라고 물의 엘프가 준 건데, 물속에서 자유롭게 호흡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아이템이야. 일주일간 유지가 된다고 하니 유용할 거야.”

“와, 엄청 편리하네. 그런 거라면 당장 복용해야지.”

물의 정수를 복용한 두 사람은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이서우는 그녀를 안고 초월 가속을 펼쳤다.

지상에서만큼 빠르지는 않았지만 그 어떤 어류도 따라오지 못할 정도의 속도였다.

물속을 가르며 북쪽으로 이동했다.

틈틈이 지상으로 나와 육지가 있는지 살폈다. 하지만 하루 종일을 이동해도 망망대해였다.

초월 가속을 펼칠 때는 영약 제조에 집중할 수 없어 성과가 하나도 없었지만 시간을 낭비하는 것보다는 잠시 제조를 쉬는 게 나았다.

그렇게 3일을 쉬지 않고 물속을 달린 결과 드디어 육지가 보였다.

“오빠, 육지야!”

“드디어 왔네.”

이서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육지로 이동했다.

물을 털어 내고 젖은 옷을 마나로 말린 이서우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백호야, 저쪽으로 가서 타이탄 흔적을 찾아봐.”

“네, 주인님.”

백호는 오랜만에 소환이 되어 기분이 좋은지 폴짝폴짝 뛰며 이서우가 가리킨 방향으로 달려갔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백호 진짜 귀여워. 나도 저런 펫 하나 얻고 싶다니까.”

“패치 되면서 펫도 늘어났던데 하나 구입해.”

“아냐. 백호와 달리 먹이도 줘야 하고, 자주 소환해서 애정도 쏟아야 해. 물을 자주 주지 않아도 되는 식물도 말려 죽인 적이 있을 정도여서 펫은 엄두도 안 나.”

“하긴, 나도 그래서 애완동물을 키우기 힘들어. 응?”

“뭔가 보여?”

대화를 나누며 전방을 향해 달리는데, 어떤 흔적이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자 이설아도 알 수 있을 정도로 흔적이 뚜렷했다.

“오빠!”

“맞아. 타이탄의 흔적이야. 이곳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나봐.”

그들은 보름 만에 왔고, 이서우는 3일 만에 와서 그리 많이 뒤처지지는 않았다.

-백호야, 이쪽이야.

-네. 주인님.

백호의 기운이 느껴지자 이서우는 흔적을 따라 빠르게 이동했다.

뒤늦게 합류한 백호는 자연스럽게 이설아를 등에 태웠다.

“고마워, 백호야.”

“헤헤, 언제든 말씀만 하세요. 넓은 등이 준비되어 있으니까요.”

“호호호, 알았어. 그럼 부탁해.”

“네.”

한참을 달리던 이서우가 멈춰 섰다.

“여기서부터 타이탄을 사용하지 않았네. 어디 보자.”

이서우는 희미한 흔적을 놓치지 않았다.

4차 전직 상태였으면 통찰력이 한 단계 발전해 멈출 필요도 없었지만, 지금은 100퍼센트 확신할 수 없어 세밀하게 살폈다.

“저쪽이네.”

방향을 잡은 이서우는 망설임 없이 달렸다.

그렇게 한참을 달렸을 때였다.

“이건!”

“오빠?”

“피 냄새야. 싸움이 난 것 같아. 서두르자.”

“응!”

상어는 수백 미터 떨어진 곳에서 떨어진 피 한 방울의 냄새도 맡는다.

감각이 그 정도까지 발달하지는 않았지만 피 냄새가 워낙 강해서 1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곳에서도 맡을 수 있었다.

이서우는 초월 가속을 펼쳐 전력 질주했다. 마나 관리는 잘되어 있어 여유가 있었다.

-먼저 가 있을 테니 천천히 와.

-응, 오빠. 조심해.

이서우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졌지만 이설아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타이탄! 한데, 저들은 누구지?’

이서우는 타이탄과 맞서 싸우는 무리를 보았다.

언뜻 보기에는 카이젠 제국의 기사와 병사들 같았다.

‘저놈은 쿠아노 후작 밑에 있던 기사단장이잖아. 한데, 뭐지?’

잠시 상황을 살펴보기 위해 몸을 숨긴 채 전투를 주시하는데, 익숙한 얼굴이 있었다.

바로 쿠아노 후작을 주군으로 섬기고 있는 기사단장 나곤이었다.

한데, 아무리 봐도 나곤이라는 자의 행동이 이상했다.

‘기사단장이면 서열이 상당히 높을 텐데, 왜 저자에게 명령을 받고 있는 거지? 설마 쿠아노 후작이 날 속인 건가?’

이서우의 의문은 곧 풀렸다. 나곤이 단장님이라고 외치며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이것들 봐라. 아주 날 바보로 알았네.’

카이젠 제국의 기사와 병사들이 피터지게 싸우는 것을 보고 나서려 했지만 쿠아노 후작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끝까지 지켜보기로 했다.

전투는 막상막하였다. 타이탄이 강하지만 세 기를 제외하고는 능력이 안 되는 자들이 억지로 탄 것인지 제 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최소 소드 마스터 중급은 되어야 하는데, 리치킹에게 점령당하면서 희생이 있었나 보네. 동작도 매끄럽지 못하고, 중요한 순간에 실수가 나와.’

아직 목숨을 잃은 타이탄은 없지만 시간이 지나면 절반 정도는 생명이 위험했다.

그때 이설아가 다가왔다.

-오빠?

-잠시만. 아직은 나갈 때가 아냐.

-저 NPC들 카이젠 제국 사람 같은데?

-쿠아노 후작 밑에 있는 놈들이야.

-쿠아노 후작? 한데, 왜 여기에 있는 걸까?

-비밀 세력들이 이곳에 있을지 모르지.

-여기 엘사둔이 아니라 카이젠인 거야?

-아! 이런 멍청한. 반다이젠 후작을 쫓아와서 당연히 엘사둔인 줄 알았는데, 카이젠이었어!

엘사둔이 리치 킹에게 점령당했으니 미치지 않고서야 쿠아노 후작을 따르는 자들이 엘사둔으로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곳은 카이젠일 확률이 매우 높았다. 아니, 무조건 카이젠이라고 봐야 했다.

-어떻게 할 거야?

-반다이젠 후작의 도움을 받아야 하니 쿠아노 후작을 따르는 자들을 처치해야 하는데…….

-그러다가 NPC 하나라도 도망가면 쿠아노 후작에게 알려지잖아. 귀족들의 반발이 클 텐데. 자칫 수호기사의 지위마저 날아갈지도 몰라.

-그런 일이야 없겠지만, 전쟁이 터질지도 모르는 상황이니 귀족들의 힘을 빌리려면 황제도 성의를 보여야겠지. 그렇다고 반다이젠 후작을 칠 수도 없고.

-이대로 시간을 끌면 반다이젠 후작이 확실히 위험해.

-숫자가 워낙 차이가 많이 나니, 어떡한다…….

이서우의 머릿속이 빠르게 회전했다. 위기에서 항상 해답을 찾는 이서우였는데, 이번에도 좋은 방법이 떠올랐다.

-여기에 있어. 내가 유저라는 게 드러나면 안 되니까.

-좋은 방법이라도 있는 거야?

-있지. 구경이나 해.

-응.

이서우의 입가에 장난기가 가득 담긴 미소가 맺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