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4
레벨이 갑이다
234화
이서우는 인벤토리에서 몇 가지 아이템을 꺼내더니 하나씩 사용했다.
처음 사용한 것은 염색약이었는데, 머리가 순식간에 노랗게 변했다.
다음으로 옷을 노란색으로 염색했다.
작업을 마친 이서우는 높이 도약해 한창 전투 중인 곳으로 뛰어들었다.
“감히 어떤 놈이 나의 휴식을 방해하는 것이냐!”
마나를 이용해 몸을 허공에 띄운 이서우는 목소리에 마나를 잔뜩 담았다.
그러자 피터지게 싸우던 자들의 행동이 동시에 중단되었다.
스스로 멈춘 것이 아니라 이서우가 내지른 마나 때문에 충격을 받아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 것이었다.
“감히 나의 보금자리에 기어들어 오다니!”
“고, 골드 드래곤?”
토첸과 타이탄에 타고 있는 반다이젠 후작이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났다.
이 정도 존재감과 힘을 가진 존재는 드래곤뿐이었다.
‘아, 이놈들 어서 바짝 엎드려라. 마나 팍팍 단다. 비약 아깝게.’
열심히 비약을 복용하면서 마나를 이용해 허공에 떠 있으려니 죽을 맛이었다.
하지만 이왕 시작한 것이기에 애써 태연한 척하며 뒷짐까지 지었다.
“내 존재를 알고서도 목을 뻣뻣이 들고 있다니 죽고 싶은 게로구나.”
“위, 위대한 존재시여, 이곳이 당신의 영역이라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나이다. 기회를 주신다면 이곳에서 물러갈 테니 자비를 베푸시옵소서!”
“자비를 베푸시옵소서!”
NPC들은 벌벌 떨면서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여기서 자칫 실수라도 한다면 목숨이 위태롭다.
이서우는 쐐기를 박는 의미로 양손을 뻗어 50만이 넘는 마나를 한꺼번에 풀었다.
그러자 NPC들이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서, 설마 소, 속박의 권능? 위, 위대한 존재시여, 제, 제발 자비를…….”
“위, 위대한 존재시여, 자, 자비를…….”
다른 NPC들은 말할 힘도 없는지 마나를 일으켜 정신을 잃지 않으려고 애썼고, 그나마 토첸과 반다이젠 후작이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간청했다.
“타이탄이라. 재미있는 장난감을 가지고 있구나. 타이탄을 가진 놈들은 남고, 나머지 놈들은 가진 것을 모두 토해 놓고 물러가라. 10분이 지나도 얼쩡거린다면 죽음을 면치 못하리라!”
“가, 감사합니다, 위대한 존재시여!”
“위, 위대한 존재시여, 어찌하여 저희들은…….”
“시끄럽다! 그 장난감을 어디서 가져왔는지 소상히 말해야 할 것이다.”
반다이젠 후작에게 호통 치는 사이 토첸과 다른 NPC들은 가진 것을 모두 버리고 줄행랑을 쳤다.
젖 먹던 힘까지 뽑아내 도주하는 데 사용한 덕분에, 10분이 아니라 5분도 되지 않아 기척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멀리 달아났다.
80퍼센트의 마나를 사용하고서야 이서우는 서서히 바닥으로 내려왔다.
“아오, 진이 다 빠지네. 그래도 살고 싶은지 아주 꽁지가 빠져라 도망가는구나.”
“……?”
이서우가 바닥에 내려와 장난기가 섞인 목소리로 말하자 반다이젠 후작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서우는 자연스럽게 바닥에 떨어진 수많은 아이템들을 인벤토리에 담았다. 가속화까지 써서 담은 터라 순식간에 그 많은 것들이 사라졌다.
“이봐, 그대가 반다이젠 후작인가?”
“다, 당신은 누구지?”
반다이젠 후작은 그제야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처음에는 드래곤처럼 강한 존재감이 느껴졌는데, 지금은 평범한 사람 같았다.
“난 카이젠 제국의 수호기사다. 그대가 엘사둔의 반다이젠 후작이 맞는가?”
“그, 그렇다. 내가 바로 반다이젠 후작이다.”
“지난번엔 타이탄을 타고 있어서 몰랐는데, 그쪽은 날 봤잖아. 아, 복장 때문에 헷갈린 건가?”
“누, 누구? 아!”
반다이젠 후작은 그제야 이서우가 누군지 떠올렸다.
한데, 그가 왜 자신을 찾는단 말인가.
‘날 죽일 생각이라면 벌써 죽였겠지. 하지만 일부러 연기를 하면서까지 날 남겨둔 것이라면 내게 원하는 것이 있을 터. 대체 저자가 왜 날 찾은 걸까. 그리고 언제 카이젠의 수호기사가 됐지?’
강한 의문을 가지고 이서우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먼저 하나 묻지. 당신은 엘사둔을 버린 건가?”
“내가 엘사둔을 버렸다고? 쿠아노 후작 따위가 카이젠을 버리려고 하니 나까지 그리 보이나 보군.”
“그게 무슨 소리지?”
“몰랐나 보군. 쿠아노 후작은 카이젠 제국을 삼키기 위해 나와 손을 잡으려 했다.”
“뭐? 당신과 손을 잡으려 했다고?”
이서우는 반다이젠 후작의 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반황제파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엘사둔에게까지 손을 뻗었다니.
“그런 점에서 보면 카이젠은 리치 킹에게 감사해야겠군. 그놈 덕분에 쿠아노 후작의 야심이 무너졌으니까.”
“그놈이 아니라도 쿠아노 후작의 욕심은 이뤄지지 못했을 거야.”
“대단한 자신감이군. 하긴, 조금 전의 모습은 정말 충격이었으니까. 한데, 그런 대단한 자가 왜 나 같은 사람을 찾는 거지?”
“엘사둔 제국을 다시 찾고 싶지 않나?”
“뭐라고?”
이번에는 반다이젠 후작이 크게 놀랐다. 어찌나 놀랐는지 심장이 두근거렸다.
안전한 곳으로 피해 있다가 엘사둔과 카이젠이 전쟁을 벌이면 그때 행동하려 했었다.
그날을 꿈꾸며 치욕스러운 도망자 신세가 되었지만 훗날 얻게 될 영광을 위해 참았다.
엘사둔을 되찾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다른 방법이 있었다면 그는 결코 홀로 도망치지 않았을 것이다.
“호기심이 생기나 보군.”
“설마 날 조롱하기 위해서 그런 말을 지껄인 것은 아니겠지?”
“지껄여? 지금 네놈의 위치가 어디인지 모르는 건가!”
“미, 미안하네. 그러니 일단은 진정 좀 하게.”
이서우가 분노를 담아 말하자 자신도 모르게 흥분했던 반다이젠 후작이 얼른 진화에 나섰다.
“다시 한 번 그따위 소리를 지껄인다면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아, 알겠네.”
화를 가라앉힌 이서우는 그제야 살기를 거뒀다.
“엘사둔을 되찾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진지하게 임하는 게 좋을 거야.”
“그러지.”
이서우는 다시 한 번 경고를 하고는 말을 이었다.
“이번 일은 손발이 잘 맞아야 돼. 그러니 이걸 가지고 있어.”
“통신구군.”
“내가 지시를 할 테니 그대로만 하면 돼.”
“……그러지.”
이서우는 반다이젠 후작의 자존심을 확실히 눌렀다.
사람에 따라, 그리고 상황에 따라서는 그의 행동이 역효과가 날 수도 있지만 지금은 오히려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일으켰다.
이서우의 예상대로 반다이젠 후작은 목숨을 버리는 한이 있어도 반드시 이번 일을 성공하겠노라고 다짐했다.
‘그래. 그런 독기가 있어야 이번 일은 성공할 수 있어.’
이서우의 입가에 미소가 살짝 맺혔다가 사라졌다.
“작전은 일단 가면서 얘기해 주지. 그리고 황제폐하께 직접 가서 쿠아노 후작의 반역에 대해 증언을 해 줬으면 좋겠군. 증거도 있을 테니 이왕이면 그것도 같이.”
“엘사둔을 되찾을 수 있다면 그까짓 일은 어렵지 않지. 하지만 가서 날 가두거나 죽이지 않는다는 걸 어떻게 믿지?”
“자, 이걸 받아.”
“이건…….”
“그래. 황제폐하의 옥쇄가 찍힌 문서야. 그리고 내 이름을 걸고 약속하지. 적어도 엘사둔을 되찾기 전까지는 죽이지 않도록 하지.”
“엘사둔을 찾게 되면 죽을 수도 있다는 거군.”
“그 문제는 또 그때 가서 논의하면 돼.”
“그러지.”
반다이젠 후작은 이서우가 진실을 말한다고 믿었다. 만약 죽일 것이라면 처음 나타났을 때 충분히 죽일 수 있었다. 그런데도 손을 쓰지 않았으니 믿음이 갔다.
이서우는 늦어질 줄 알았던 반역의 증거를 찾는 퀘스트를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완료할 수 있게 되어 기분이 좋았다.
반다이젠 후작과의 이야기가 끝나고 이설아를 불러냈다.
백호를 타고 나온 이설아는 당당히 이서우의 곁에 섰다.
이서우는 몰디나에게 통신을 넣었다.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으려면 텔레포트가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10명이 넘는 인원이고, 거리가 상당히 멀었지만 이서우가 마나로 지원을 하면서 어렵지 않게 이동할 수 있었다.
“역시, 해냈네. 황제폐하께서 널 기다리고 있어. 가자고.”
“네.”
몰디나는 반다이젠 후작을 힐끗 바라보고는 앞장섰다.
곧 황제가 있는 곳에 당도했다.
“황제폐하를 뵙습니다.”
“엘사둔의 반다이젠 후작이 카이젠 제국의 황제폐하를 뵙습니다.”
“수호기사는 일어나게. 그리고 반다이젠 후작도 일어나시게.”
“네, 폐하.”
“네, 폐하.”
이서우와 반다이젠 후작은 동시에 대답하고는 꿇었던 무릎을 폈다.
“역시 수호기사가 해낼 줄 알았네.”
“과찬이십니다. 폐하의 축복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아닐세. 이렇게 빨리 임무를 완수할 줄은 몰랐다네. 그나저나 반다이젠 후작. 수호기사에게 설명은 들었는가.”
“네, 폐하. 그리고 쿠아노 후작이 반역을 꾀하고 있다는 사실과 그 사실을 뒷받침할 증거도 가져왔습니다.”
“뭣이! 그게 정말인가?”
“네, 폐하, 이걸 보십시오.”
반다이젠 후작인 품에서 얇은 가죽을 꺼내자 황궁기사단의 단장이 그것을 받아 황제에게 건넸다.
“이, 이런 쳐 죽일 놈 같으니!”
가죽에 적힌 내용을 보며 황제는 분노를 이기지 못해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가죽에는 쿠아노 후작과 반다이젠 후작이 맺은 계약 내용이 있었고 선명하게 가문을 상징하는 문장이 찍혀 있었다.
황제는 진위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마법 아이템을 꺼내 문장을 확인했다.
마법 아이템에 반응이 왔고, 황제의 얼굴이 보기 흉하게 일그러졌다.
-‘쿠아노 후작이 반역을 꾀하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를 찾아라.‘를 완료하셨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200만 골드를 획득하셨습니다.
-명성 10만이 상승합니다.
“수호기사는 들으라!”
“네, 폐하!”
“그대는 가서 즉시 쿠아노 후작과 그의 가족들까지 모조리 목을 베어라. 그리고 그와 함께 반역을 저지르려 했던 자들도 모두 응징하라!”
-반역자 쿠아노 후작과 그를 따르는 자들을 처단하라.
황제는 드디어 반역을 저지르는 자들에 대한 증거를 찾았다. 이에 수호기사인 당신에게 그와 관련된 자들을 모두 처단하라는 명령을 하달했다.
난이도 : A
완료 조건 : 반역에 가담한 자들을 찾아 응징하라. 반역에 가담한 귀족 절반을 처치해야 완료가 된다.
성공 시 보상 : 귀족 한 명당 1레벨 경험치, 20만 골드. 1만 명성. 절반 이상 귀족 처치 시 5레벨 경험치. 200만 골드. 10만 명성 추가 획득.
실패 시 : 7레벨 하락. 황제와의 친밀도 대폭 하락.
‘그렇지!’
이로써 이서우의 레벨은 385가 되었다. 반역의 무리들을 싹 처리하면 400레벨도 금세 찍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전쟁을 통해 또 한 번 폭풍 레벨 업을 할 수 있으니 이서우로서는 대만족이었다.
“황제 폐하, 무슨 일이 있어서 명령하신 일을 신속히 완수하겠습니다!”
“그대를 믿는다.”
이서우는 깊이 허리를 숙이고는 반다이젠 후작과 물러났다.
그를 기다리고 있던 이설아와 함께 반다이젠 후작에게 필요한 지시를 하고는 쿠아노 후작의 영지로 향했다.
반다이젠 후작은 이서우의 계획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북쪽 국경과 근접한 곳까지 갔다. 그곳은 자크 후작이 관리하는 곳이었고, 최대한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몰디나의 텔레포트를 이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