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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이 갑이다-238화 (238/341)

# 238

레벨이 갑이다

238화

2017년 전 세계적으로 기업들의 화두는 4차 산업혁명이었다.

세계시장을 주도하는 기업들은 변화의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대한민국의 기업들도 다르지 않았다. 뒤처지면 도태된다는 것을 알기에 미래를 대비했다.

하지만 큰 기업들과는 달리 규모가 작은 곳은 변해 가는 세상에 발맞추기가 힘들었다.

기술 개발비도 부족했고, 4차 산업혁명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한 지식도 부족했다.

일반 국민들도 마찬가지였다. 4차 산업혁명이 앞으로 도래할 것이라는 전망은 했지만 실제로 그에 맞춰 자신을 바꾸지는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약 2천만 명에 달하는 근로자 중 거의 절반이 월 200만 원도 채 벌지 못한다.

200만 원 이상을 벌어들이는 사람들 중에서 30퍼센트가 수입이 350만 원 미만이었다.

전체 근로자들 중 약 80퍼센트가 서울에서 집 하나 장만하려고 30년 이상을 짠돌이처럼 지내야 한다.

결혼을 해서 맞벌이로 지낸다고 나아지는 것도 아니다.

둘이 열심히 돈을 벌면 모이는 게 있어야 하는데, 아이가 생기면 삶이 더 힘들어진다. 출산과 육아는 사직서나 다름없이 취급되기 때문이었다.

이런 힘든 상황에서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한다는 것은 그들에게 불가능했다.

미래에 해고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고 건강도 등한시한 채 일을 해야만 하는 시대.

그게 바로 2017년의 현실이었다.

그런 걱정과 염려 속에서도 시간은 흘렀다.

2020년, 5세대 이동통신이 상용화되면서 드디어 4차 산업혁명이 시작되었다.

그와 동시에 사물인터넷과 자율주행자동차에 대한 관심이 폭발했다.

또한 가상현실과 증강현실도 빠르게 발전하면서 다양한 분야로 뻗어 나갔다.

안전에 대한 문제가 늘 제기되어 왔지만 양자암호가 도입되면서 그런 우려는 사라졌다.

처음 기술의 발전이 급격해진 2020년 초반은 대량실업 때문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기술이 점점 발달할수록 오히려 다양한 직업들이 생겨났다.

번역 기술이 발달하면서 다양한 콘텐츠들이 전 세계로 뻗어 나갔다.

영화, 소설, 드라마 등 대한민국에서 사랑받던 작품들이 쉽게 세계인들에게 전해지면서 문화와 관련된 직업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과거에는 대한민국만을 시장으로 여겼다면 지금은 85억이 넘는 전 세계가 시장이었으니, 어떤 장르든 취향에 맞는 나라만 찾으면 평생을 먹고살 길이 열렸다.

관광산업이나 서비스 업종도 많은 인기를 누렸다.

그런 발전 가운데 전 세계에 유일하게 가상현실 게임인 뉴 월드가 상용화되었다.

물론 이전에도 가상현실 게임이 많이 나왔다. 다양한 장르에서 등장했지만 현실과의 괴리감이 느껴져 폭발적인 반응은 얻지 못했다.

하지만 뉴 월드는 달랐다.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경험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이런 인기는 생각지도 못한 변화를 만들었다. 바로 일자리 창출이었다.

접속 베드만 해도 각종 부품을 만드는 회사가 있어야 했고, 설치 기사도 필요했으며 고객 서비스까지 책임져야 하니 수십만의 일자리가 발생했다.

어디 그뿐인가. 골드 거래가 합법화되면서 거래가 활발해졌다.

아이템 관련된 거래 사이트만 수백, 수천 곳이었다.

대형 사이트들도 있지만 생산직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이나 아이디를 단 마켓을 만들며 꽤 탄탄한 수익 구조를 만들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뉴 월드 내에서 여러 대회들도 많아졌다.

현실에서 종합격투기가 있다면 뉴 월드에서는 최강자를 뽑는 대회가 인기를 끌었다.

기업들이 발 빠르게 움직이면서 최강자 대회에 참여하는 유저들의 몸값이 고공 행진했다.

다양한 분야에서의 발전은 국민총생산 5만 불 시대를 이끌었고, 경제성장률이 5퍼센트대로 진입하는 데 아주 큰 역할을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많은 국가들이 가상현실 게임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그들도 뉴 월드가 어느 정도 성공은 할 거라 예측했다.

최초라는 타이틀과 함께 완성도도 어느 정도 된다고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지대한 관심을 끌 만큼 완벽한 몰입도를 갖추고 있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들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이용자가 10억에 가까워지면서 글로벌사는 돈방석에 앉았다.

출시한 지 2년차가 되면 글로벌사의 영업이익은 50조가 넘을 거라는 전망이 나왔다.

이는 국내에서도 5위 안에 드는 엄청난 규모였다.

하지만 50조라는 수치에는 중요한 것이 하나 빠져 있었다. 바로 뉴 월드에서 거둬들이는 수수료였다.

3퍼센트의 수수료 중에 뉴 월드로 회수되는 양은 아주 미미하지만, 중요한 것은 하루 거래량이 수십조에 달하고 계속 늘고 있다는 점이다.

0.1퍼센트만 해도 1백억 원이 넘기에, 그냥 앉아서 1년에 수조원의 이익이 발생한다.

100퍼센트 순수한 이익 말이다.

이용자의 숫자가 20억까지 올라갈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니 앞으로 수익은 더 많아질 것이다.

레벨이 증가하면서 골드 소비도 커질 테니 발전 가능성은 무궁무진했다.

국가나 기업들이 이를 모르지 않는다.

특히 중국과 같은 나라에서는 뉴 월드를 밀어내고 그 많은 이익을 가져오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하지만 과거처럼 기업들을 철저히 통제하는 것이 불가능해 뉴 월드를 완전히 몰아낼 수는 없을 거라는 게 다수의 의견이었다.

만약 그런 믿음이 없었다면 글로벌사의 주가는 곤두박칠쳤을 것이다.

뉴 월드의 발달이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사행성이 짙은 대회들이 암암리에 이뤄지고 있었고, 도박에 가까운 대회들 때문에 빚에 허덕이며 자살까지 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또한 일명 ‘현피’라고 불리는 일도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었다.

게임에서 생기는 다툼이 현실까지 영향을 미치면서 범죄가 되는 것이다.

문제는 뉴 월드에서 암살자 조직들이 활발해지면서다.

게임에서 유저들을 죽이는 게 일상화되면서 현실에서도 막대한 의뢰비를 받고 사람을 죽이게 된 것이다.

과거 현실과 게임을 혼동해 끔찍한 살인이 가끔 발생했다.

하지만 가상현실 게임은 뇌를 속이는 기술이 핵심이기에 게임에서 벌어진 살인이 현실에서 영향을 미치지 못하도록 조치를 했다.

게임에서는 피가 터지며 살점이 떨어지는 살인 현장을 경험하지만 그게 현실이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접속을 종료하면 과거 마우스와 키보드로 게임을 하던 시절의 흥분 정도만 남아 있었다.

물론 게임에서 경험한 현실감은 생생하고, 단지 살인에 대한 부분만 조정이 되는 것이었다.

이런 안정장치가 있기에 암살자라도 현실에서의 살인은 벌어질 수 없었다.

하지만 원래 그 사람이 가진 폭력성을 없애 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살인 사건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국내에서도 2천만 이상의 유저가 뉴 월드를 즐기니 범죄가 많을 수밖에.

“배상철은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지만 그는 다른 사람에게 이용을 당하고 있습니다.”

“헤라클레스라면 랭킹 1위 길듭니다. 그런데, 그 대형 길드의 마스터가 이용을 당하고 있다고요?”

“네.”

“대체 누가 그를 이용한다는 거죠?”

“혹시 장길수라고 아십니까?”

“장길수라고요?”

이서우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을 떠올려 보려 했다. 하지만 장길수라는 이름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역시 모르시고 계시군요.”

“그가 배상철을 조종하는 인물입니까?”

“조종한다라……. 그건 적절한 표현이 아닐 것 같네요. 그는 정말 존재감이 없거든요.”

“대체 누군데 존재감도 없으면서 그런 일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는 바로 헤라클레스 길드의 부길드마스터입니다.”

“네에?”

이서우는 다시 한 번 크게 놀랐다.

길드마스터와 비교하면 중요도가 많이 떨어지지만 랭킹 1위 길드의 서열 2위가 이렇게 존재감이 없다니.

“놀라는 것도 당연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어리바리해서 경쟁 길드에서도 전혀 그를 견제하고 있지 않으니까요.”

“철저히 사람들을 속였단 뜻이군요.”

“숨긴 건 그것뿐이 아닙니다. 그는 은밀히 아주 강력한 암살자 집단을 이끌고 있습니다.”

“허, 참.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더니 어떻게 그게 가능한지 모르겠군요.”

“저도 처음에는 많이 놀랐습니다. 어수룩해 보이는 가면 뒤에 그렇게 철저히 자신을 숨기는 것은 쉽지 않으니까요.”

한 사람이 전혀 다른 삶을 산다는 것은 상당히 힘든 일이다. 죽을 각오로 수년 동안 철저히 훈련받은 스파이들도 쉽지 않았다.

한데, 평범한 사람이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었을까.

처음에는 놀랐는데, 이제는 호기심이 생겼다.

“그자의 목적이 뭔지는 알아내셨는지요?”

“저도 겨우 그가 암살자들을 이끌고 있다는 것을 알아냈을 뿐입니다. 만약 제가 은막의 지배자가 되지 못했다면 그의 존재에 대해서도 알 수 없었을 겁니다.”

“그랬군요. 하긴, 늘 함께 생활하는 길드마스터도 속인 자이니 모르는 게 당연하겠군요.”

“자신을 그 정도로 절제할 수 있다면 현실에서도 꽤 성공한 인물이겠네요.”

“그게 오리무중입니다.”

“장길수가 본명이 아니군요.”

“네. 그 이름으로는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서우 씨도 정보를 수집하는 루트가 있을 테니 그 부분에 대해서는 직접 알아보셔야 할 것 같네요.”

박기준은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했지만 이서우는 그가 정보팀의 존재를 알고 있다는 사실에 살짝 놀랐다.

“그리 놀라실 것 없습니다. 누구나 서우 씨 정도라면 따로 정보를 모으고 있다고 생각할 테니까요. 게다가 최근에는 설아 씨와 방송까지 하고 있으니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게 오히려 이상한 거겠죠.”

“하긴, 그것도 그러네요.”

뉴 월드에서 정보의 가치는 엄청나다. 만원도 되지 않는 쓸모없는 정보가 있다면 수백, 수천억의 가치를 지닌 것도 있었다.

“참, 이야기를 더 진행하기 앞서 그 자가 서우 씨와 설아 씨를 공격했다는 어떤 물증도 잡아 내지 못했습니다.”

“물증을 잡지 못했다고요?”

“네.”

“그러면 그를 잡아들일 수 없다는 겁니까?”

“지금으로는 그렇습니다.”

“지금으로는 그렇다라……. 한데, 말씀하시는 걸 보니 상당히 확신에 차 계신 것 같은데 말이죠.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시는 거죠?”

“은막의 지배자가 된 이후 그자를 보고 알게 된 것입니다.”

“전투를 하는 걸 본 건가요?”

“아닙니다. 그냥 멀찍이 배상철과 같이 있는 것만 봤을 뿐입니다.”

“그러니까 스킬 같은 것도 쓰지 않았는데 그냥 보고 알았다는 겁니까?”

“네.”

이서우의 표정에는 강한 의구심이 담겨 있었다. 자신도 통찰력이 있어 웬만한 것들은 다 꿰뚫어보지만 흔적이 남아 있거나 스킬을 쓰는 상태여야만 한다.

“은막의 지배자가 되면서 같은 암살자들을 알아볼 수 있는 능력이 생겨서 그런 겁니다. 이전에는 몰랐는데, 은막의 지배자가 되니 암살자들의 몸 주변에 특이한 현상이 벌어지더군요.”

“어떤…….”

“그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말씀드린다고 해도 은막의 지배자가 아니시기에 모를 테니 굳이 말할 필요는 없겠지요.”

“뭐, 그게 계약 사항은 아니었으니 어쩔 수가 없군요. 하지만 증거를 잡아 와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는 건 잊지 않으셨겠죠?”

“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위험인물이라는 것을 알고 계셔야 할 것 같아서 미리 보고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 점은 잘하셨습니다. 몰랐다면 깜빡 속을 뻔했으니까요.”

“제가 아니라면 그가 암살자라는 걸 아무도 몰랐을 겁니다. 뭐, 은막의 지배자도 서우 씨 덕분에 가능한 것이었지만 말입니다.”

“저에게도, 그쪽에게도 다행스러운 일이네요.”

“네. 여튼, 그가 암살자라는 걸 알고 뒤를 추적해 암살자 집단을 가진 것까지는 알게 되었지만 그들이 누군지, 어떤 일을 하는지 등에 대해서는 하나도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앞으로 조금 더 고생을 해 주셔야겠네요.”

“물론입니다. 저도 그자가 왜 그런 가면을 쓰고 있는지 궁금하니까요.”

지금까지 가만히 듣고 있던 이설아는 궁금증이 생겨 박기준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한데, 우리를 죽이라고 지시한 사람이 배상철이라는 걸 어떻게 알아낸 거죠?”

“간단합니다. 장길수가 없을 때 그의 거처로 잠입해 알아낸 것입니다. 아무리 레벨이 높아도 은막의 지배자가 된 저를 찾아낼 수는 없으니까요.”

“아, 그렇군요.”

“물론 장길수라는 자가 얼마나 뛰어난 암살자인지는 몰라 그에게는 차마 접근할 수 없었지만, 암살자가 아닌 사람들에게는 아주 가까이 다가갈 수가 있습니다.”

“하긴, 그게 가능했다면 기준 씨가 그냥 왔을 리가 없겠지요. 근데, 혼자 있는 방에서 그리 쉽게 이야기를 하던가요?”

“네. 혼잣말로 서우 씨를 어찌나 욕하던지 알아서 술술 내뱉더라니까요.”

“아마 운영권을 빼앗긴 것 때문에 더 화가 났을 겁니다.”

“네. 그렇지 않아도 그 이야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운영권을 박탈하고 자기는 빌딩 지어서 돈 번다고 어찌나 욕을 하던지…….”

박기준은 그때가 떠오르는지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생각을 지워 버렸다.

비록 암살자지만 욕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이후 세 사람은 몇 가지 사항에 대해 더 대화를 나눈 뒤 헤어졌다.

“오빠, 우리도 따로 장길수라는 사람에 대해 알아봐야겠지?”

“그래야지. 단서가 전혀 없는 상태였기에 박기준에게 맡겨 뒀지만 누가 우리를 죽이라고 했는지 알았으니 철저히 조사를 해야지.”

심증만 가지고 범인을 잡을 수 없다. 철저히 물증을 확보한 뒤 책임을 물어야 했다.

이설아는 곧장 김소연을 불렀고, 박 대표까지 이번 일에 합류했다.

하지만 물증을 잡기 전까지는 경찰이나 다른 사람에게 이번 일에 대해 알려지지 않도록 철저히 보안에 신경 썼다.

한편, 박기준은 장길수에 대해 강한 의구심이 생겨 이서우와 헤어진 뒤 뉴 월드에 접속해 그를 뒤쫓았다.

하지만 빨리 계약을 마무리하고 홀가분하게 레벨 업을 하고 싶은 욕심에 무리를 한 것이 탈이었다.

“날 뒤쫓은 게 네놈이었군? 뒤통수가 찝찝해서 설마설마했는데 말이야.”

“설마, 함정을 판 것이냐?”

“그래. 워낙 흔적을 찾기 힘들어서 머리 좀 썼지. 누구지? 누가 날 감시하라고 시켰지?”

“어리바라하게 행동하는데 암살자의 기운이 풍기더란 말이지. 당연히 호기심을 가질 수밖에.”

“암살자 스킬을 쓴 적이 없거늘. 어떻게 안 거지?”

“영업 비밀을 쉽게 알려 주면 쓰나.”

“뭐, 그거야 곧 밝혀지겠지.”

“날 잡아서 고문이라도 하겠다는 뜻 같네. 그게 가능할 것 같아?”

“불가능할 것도 없지. 내가 좀 특수한 스킬을 가지고 있거든. 그리고 도망갈 생각은 하지 마. 이 주변에는 내 심복들이 있으니까.”

“과연 네 말처럼 일이 풀릴지 보자고.”

박기준의 앞에 나타난 사람은 바로 장길수였다. 거리를 유지하면서 철저히 신경을 썼는데도 발각이 되고 말았다.

서로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치며 불꽃이 튀었다.

먼저 움직인 것은 박기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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