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1
레벨이 갑이다
241화
동문회를 기다리는 동안 이서우는 그 날 벌어질 일을 틈틈이 시뮬레이션했다.
김명국이 가상현실로 납치 상황을 시뮬레이션해서 이서우는 다양한 돌발 상황을 경험했다.
이서우는 마치 특수요원처럼 빠르게 훈련을 받아들였다.
훈련을 지도하는 교관은 이서우의 적응력을 보며 감탄에 감탄을 거듭했다는 후문이다.
김명국도 놀랐다. 움직임이 그 어떤 특수요원보다 뛰어나 당장이라도 실전에 투입해도 되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훈련과 더불어 이서우는 뉴 월드에서도 최선을 다했다.
반다이젠 후작과 합심해 엘사둔 제국을 수복하는 일에 매진했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엘사둔을 회복할 수는 없었다. 그나마 이서우와 타이탄의 활약으로 일부 지역을 되찾을 수 있었다.
이서우는 언데드들을 처치하면서 레벨을 올려 420에 도달했다.
엄청난 발전이지만 경험치를 사들이는 유저들과 점점 차이가 벌어졌다.
드디어 500레벨을 찍고 4차 전직을 이룬 유저가 나타난 것이다.
모두가 랭킹 1위는 전신일 거라 예상했는데, 그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와, 베스트 길마 장난 아니네. 풀 파티가 다 풀 접속을 해도 쉽지 않았을 텐데 벌써 500이나 찍고.”
“그러게. 500이상 몬스터를 처치해도 1달 정도가 지나야 4차 전직 유저가 나온다고 예상했는데, 모두의 예상을 뒤엎어 버리네.”
최초 4차 전직 유저가 탄생했다는 소식에 오랜만에 핵심 멤버들이 모였다.
그들은 최초의 4차 전직 유저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박민수와 류종명은 350레벨을 넘기면서 이서우와 함께 파티를 이뤘다.
김소연은 너무 바빠서 빠질 수밖에 없었고, 그녀의 자리를 박민수의 애인인 하유진이 대신했다.
하유진은 버퍼지만 전투에 특화된 캐릭터였는데, 400레벨을 찍으면서 고렙 반열에 올랐다.
박민수와 류종명도 이서우와 함께 다니면서 어느새 레벨이 올라 380이 되었고, 이설아는 470레벨이 되었다. 일행 중에서는 그녀가 가장 고레벨이었다.
박민수와 류종명도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열심히 레벨 업을 하고 있지만 갈수록 힘들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그들은 4차 전직 유저가 당장은 나오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한데, 그들의 예상을 깨고 4차 전직 유저가 나타났으니 놀랄 수밖에.
“소문으로는 10인 파티에 5인으로 들어가서 엄청난 경험치를 얻었다고 해.”
“10인 파티가 생긴 게 그에게는 행운이었네.”
“그렇지. 던전 재입장 대기 시간 동안에는 하이 레벨 지역에서 폭렙을 하고, 쿨마다 던전에 들어간 거지. 경험치는 하이 레벨 지역이 조금 더 좋지만 경쟁이 워낙 심하다보니 던전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 거야.”
류종명의 분석은 정확했다. 길드원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베스트라는 길드 명답게 길드마스터를 최강으로 만들 계획을 짰다.
처음에는 레벨을 비공개로 해서 사람들은 그가 얼마나 레벨을 올렸는지 알지 못했다. 괜히 알려지면 견제를 받을 테니 베스트 길드로서도 단속한 것이다.
그러다가 4차 전직을 하고 당당하게 영상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영상을 본 사람들은 4차 전직의 화려함과 강함에 환호를 보냈다.
얼마나 인기가 있었는지 상당수의 유저들이 전장의 지배자보다 오히려 그가 더 뛰어나다는 평가를 하기도 했다.
“언제까지 밀대가 가능할까?”
“아마 조만간 밀대가 사라질 확률이 높아.”
“오, 우리 정밀분석가님께서 견적을 다 뽑으셨나?”
류종명은 워낙 분석하는 것을 좋아해서 ‘정밀분석가’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이서우도 궁금한 것이 있으면 류종명에게 많이 물어볼 정도였다.
“베스트 길마가 끈기와 오기는 있는 것 같은데, 미래를 보는 눈은 없나 봐.”
“그게 무슨 소리야?”
“자신이 4차 전직한 것 때문에 밀대가 점점 사라질 거야.”
“진천 그 사람 때문에 밀대가 사라진다고?”
“그렇게 될 확률이 높아. 솔직히 서우는 넘사벽 수준이어서 사람들이 아무도 따라잡으려고 안 했잖아. 허접한 장비를 차고도 전신을 능가할 정도였으니까.”
“그렇지. 감히 따라갈 엄두가 안 났지.”
“하지만 진천은 그렇지 않아. 4차 전직만 하면 강해질 수 있다는 걸 직접 보여 줬지.”
“하지만 장비발도 있잖아.”
“장비발도 있겠지만, 기술의 화려함이 3차 전직 유저와는 차원이 달라. 그러니 그 영상을 본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겠어?”
“그러니까 밀대를 하던 사람들도 자신의 레벨을 올려 빨리 4차 전직을 하고 싶어질 거라는 거네?”
“맞아.”
류종명은 확실히 이번 기회에 밀대가 많이 사라질 것으로 내다봤다.
길드 자체에서 밀어주기가 성행할 수는 있지만 그것도 그리 오래가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
이서우도 그 생각에 동의했다. 장비는 운이 좋아야 획득할 수 있고, 돈이 있어야 살 수 있지만 레벨은 아니다. 사냥만 해도 누구나 올릴 수 있기에 충분히 노려봄직하다.
대화를 듣고 있던 이서우가 입을 열었다.
“걔들은 걔들이고. 우리도 부지런히 레벨 업을 해야지. 안 그래?”
“당연하지! 언데드 녀석들을 싹 쓸어 버리자고!”
“하여튼 큰소리는. 네가 제일 활약이 저조해. 입으로 싸움해?”
“으이고, 애인이라고 있는 게 사랑하는 남자친구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네.”
“넌 좀 스파르타로 굴려야 정신을 차리잖아. 잔말 말고 스킬이나 팍팍 좀 써.”
“네가 몰라서 그렇지 궁수가 얼마나 마나를 많이 잡아먹는데!”
“여기서 네가 제일 마나 적게 쓰거든?”
애인인 하유진이 나서자 바른 말을 하자 박민수도 목소리를 높일 수 없었다.
그래서 이서우에게로 시선을 돌려 도움을 요청했다.
“아오, 이것들이 다 한통속이라니까. 서우야, 네가 좀 말해 줘라.”
“다 맞는 말했구먼, 뭘.”
“이런 배신자. 이런 식으로 다굴 모드면 평타만 치면서 띵까띵까 노는 수가 있어!”
“노는 거 보이면 바로 강퇴시킬 테니 마음대로 해.”
“와, 친구가 더 무섭다 진짜. 내가 세상을 헛살았지. 이렇게 친구들에게 따돌림이나 당하다니. 흑흑흑.”
믿었던 친구에게 배신(?)을 당하자 박민수는 고개를 숙인 채 우는 시늉을 했다.
하지만 친구들은 그러거나 말거나 박민수에게서 고개를 돌린 채 갈 길을 갔다.
서로 즐겁게 대화를 나누면서 말이다.
“민수 오빠, 저희 먼저 가요!”
“야, 설아, 너까지 이러기야?”
하도 우는 시늉을 많이 해서 통하지 않자, 박민수는 부랴부랴 일행의 뒤를 쫓았다.
이서우의 작전은 간단했다.
파티를 이뤄 언데드들을 물리치면서 시선을 끈다. 통신구로 반다이젠 후작에게 상황을 알리면 세력이 약한 영지를 공격해 엘사둔 지역을 조금씩 취한다.
이서우의 존재로 인해 리치 킹은 강력한 언데드들을 반다이젠 후작이 활약하는 곳으로 보낼 수가 없다.
이 작전은 잘 맞아떨어져 엘사둔 지역의 20퍼센트 정도를 회수할 수 있었다.
한 달 이상을 이런 식으로 언데드들을 물리쳤고, 420이던 이서우의 레벨도 다시 430까지 뛰었다.
풀 파티 경험치는 200퍼센트다. 120퍼센트는 이서우 혼자 가져가게 했고, 나머지 80퍼센트로 4명이서 나누었다.
사냥하는 몬스터 중 60퍼센트 정도는 이서우가 모두 처치하기 때문에 경험치를 보존해 주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20퍼센트씩 받으니 손해일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이 풀파티를 이뤄 사냥할 때보다 10배 정도는 빨라서 훨씬 이득이었다.
그렇게 리치 킹이 점점 코너에 몰렸다.
리치 킹은 계획이 틀어지자 또 다른 계획을 세우기 위해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이런 쳐 죽일 놈들!”
“왕이시여, 어둠의 군사들이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저희를 이끌어 주십시오!”
“그깟 놈들 때문에 불안해한단 말이더냐!”
“전력의 절반을 잃었습니다.”
“매일 수만의 군사들이 생성되고 있지 않느냐. 인해전술로 밀고 나가면 될 일.”
“하, 하지만…….”
언데드 총사령관은 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여기서 말실수를 하면 영구 소멸이 될지도 몰랐다.
“대체 어떻게 된 놈이기에 매번 데이터가 틀린단 말이더냐!”
“그, 그것이…….”
언데드 총사령관도 이서우와 한 번 마주쳤다. 그 동안의 데이터가 있어 자신감을 가지고 상대했는데 웬걸, 10분도 버티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
그 데이터를 다시 리치킹에게 전달해서 자신은 더욱 강한 상태로 부활했다.
그런데도 언데드 총사령관은 이서우를 다시 만나면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없었다.
“이렇게 되면 내가 직접 나서는 수밖에.”
“하지만 주인님…….”
“뭐냐? 설마 내가 놈에게 질 거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냐?”
“아, 아닙니다. 제가 어찌 그런 불경스러운 생각을 품을 수 있겠습니까. 단지, 후방에 있는 타이탄들이 걱정이 되어서…….”
“다른 사령관들을 총동원하면 되지 않느냐.”
“하지만 많은 영지를 빼앗겼습니다. 그 많은 기사와 병사들을 상대하기에는…….”
리치 킹은 불가능하다는 말을 가장 싫어한다. 그래서 언데드 총사령관은 차마 뒷말을 이을 수 없었다.
“이거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겠지?”
“그, 그건…….”
언데드 총사령관은 리치 킹의 손바닥에 올린 물건을 보며 탐욕이 불일 듯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이걸 가지고도 진다면 영원한 소멸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그것만 있으면 타이탄이 아니라 그자를 이길 수도 있습니다!”
“아니다. 그놈은 내가 직접 상대하겠다. 그러니 넌 타이탄을 막아라. 놈을 상대할 때 타이탄이 나타나면 나라도 곤란하니.”
“주인님의 명을 받듭니다! 반드시 만족할 만한 결과를 만들어 내겠습니다!”
“그래야지. 가져가라.”
“네, 주인님!”
언데드 총사령관은 리치 킹이 건네는 물건을 조심스럽게 받았다.
“가라. 가서 준비를 하라!”
“네, 주인님!”
언데드 총사령관은 탐욕이 가득한 눈빛을 하고는 리치 킹의 거처에서 물러갔다.
* * *
“하하하하하, 이렇게 통쾌할 수가! 고생했네. 고생했어.”
“아직 안심하기에는 이릅니다.”
“아닐세. 리치 킹의 세력이 절반으로 줄어들었고, 엘사둔도 5분의 1이나 회복하지 않았다. 이대로만 간다면 리치 킹이 설 자리는 없을 것이네.”
“아직 한 번도 리치 킹이 나서지 않아 그런 것입니다. 만약 그놈이 나타난다면 상황이 달라질지도 모릅니다.”
“그래 봐야 자네에게는 안 되겠지. 난 자네를 믿고 있다네.”
조세프 백작은 이서우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냈다.
반다이젠 후작과 계약을 하면서 막대한 보상금을 요구한 터다. 계획이 잘 진행된다면 앞으로 카이젠 제국은 대륙을 주름잡게 된다.
엘사둔의 위협이 없다면 하이 레벨 지역도 빠르게 확장할 수 있고, 그럴수록 제국의 힘은 더욱 커진다.
이서우를 비롯해 많은 모험가들이 하이 레벨 지역에 강자들이 넘쳐날 거라 우려를 하고 있지만 조세프 백작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엘사둔만 잘 막는다면 하이 레벨 지역의 영토 확장도 원활하게 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서우라고 조세프 백작의 야심을 모를까.
승승장구를 하던 사람이기에 욕심을 품게 된다.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방심하지 말아야 한다.
이서우도 그 점을 지적하는 것이었는데, 조세프 백작은 그의 말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때였다.
-이봐, 큰일 났어!
-큰일이라니?
-총사령관과 사령관들이 총출동했다고!
-뭐? 그게 정말이야.
-그렇다니까. 지금 수십만의 언데드들이 몰려왔다고!
-기다려. 지금 갈 테니까.
-서둘러야 해. 그렇지 않으면 지금까지 이룬 걸 모두 잃게 돼!
이서우는 반다이젠 후작의 다급한 통신에 화답하고는 조세프 백작을 쳐다보았다.
“무슨 일이 있는 건가?”
“네. 지금 반다이젠 후작이 총공격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뭣이! 그게 정말인가?”
“네. 다급히 통신을 보내 왔습니다.”
“이거 큰일이구먼. 어서 가 보게.”
“네.”
이서우가 예를 갖추고 서둘러 돌아가려 했다.
한데, 바로 그때 조세프 백작이 이서우를 큰 소리로 불렀다.
“이, 이보게, 큰일 났네!”
“네? 큰일이라뇨?”
“화, 황궁으로 리치 킹이 접근하고 있다고 하네!”
“네? 리치 킹요?”
“그, 그렇다네.”
“어쩐지 총공격을 감행했더라니.”
“일단 황궁으로 먼저 가주게. 반다이젠 후작에게는 몰디나 님과 아리아 님을 보낼 테니.”
“네. 그럼 부탁드립니다.”
“이번 기회에 리치 킹을 꼭 처치해 주게.”
“네!”
이서우는 반다이젠 후작에게 자초지종을 말하고는 황궁으로 이동했다.
텔레포트 마법진이 설치가 되어 있어 마법사 하나에 마나만 있으면 이동할 수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이서우는 황제에게로 갔다.
그가 모습을 드러내니 불안해하던 황제는 그제야 안도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안도도 잠시, 이서우가 리치 킹을 상대하러 나가야 한다는 말에 그를 만류했다.
그가 곁을 벗어나는 것이 불안한 것이다.
이에 이서우는 이설아와 친구들을 황제의 곁에 머물도록 했다.
실력을 인정받았고, 더군다나 이서우의 연인인 이설아까지 있으니 그제야 황제는 조금이나마 안심할 수 있었다.
“황제폐하를 잘 부탁해.”
“응, 오빠. 여긴 걱정 말고 이번 기회에 리치 킹을 보내 버려!”
“알았어. 맡겨 두라고.”
이서우는 밝은 미소를 짓고는 황궁을 벗어났다.
하지만 이서우는 몰랐다, 리치 킹이 무엇을 준비하고 오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