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7
레벨이 갑이다
247화
“이렇게 많은 분들이 참여해 주시니 이 자리가 더욱더 빛나는 것 같습니다. 특히 각계각층에서 많은 일을 하고 계신 분들도 보여서 기분이 남다르네요.”
이서우는 무대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가 다닌 학교는 국내에서도 꽤 유명한 곳으로 재벌들의 자녀뿐 아니라 연예인, 정치인들과 그 자녀들을 많이 배출한 곳이었다.
하지만 동문회를 해도 오늘처럼 많은 사람들이 나오지는 않았다.
유명한 사람들이 뭐가 아쉬워서 이런 모임에 나올까. 자기들끼리 모여서 놀지.
하지만 오늘은 특별한 사람이 나왔다. 바로 전장의 지배자로 알려진 이서우였다.
워낙 바깥출입을 안 하고, 사람들을 만나는 걸 싫어하다 보니 그를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많아졌다.
강진영, 구소예와 대화할 때도 힐끗힐끗 많은 사람들이 이서우를 쳐다보았고, 최수연과 즐겁게 대화를 나눌 때도 마찬가지였다.
최수연과 대화하는 걸 강진영, 구소예보다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도 다 지켜본 터다.
“자, 오늘 우리 동문회를 위해 조찬휘 대표님이 이 별장을 흔쾌히 빌려주셨습니다. 여러분 조찬휘 대표님을 모시겠습니다!”
사회자의 외침에 조찬휘가 활짝 웃으며 무대로 나왔다.
조명이 비췄고, 사람들의 이목도 집중 되었다.
“이렇게 누추한 곳까지 오신 분들에게 심심甚深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조찬휘의 인사에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하지만 이서우는 그저 멀뚱히 바라만 볼뿐이었다.
조찬휘도 그것을 봤다. 누구보다 자존심이 강한 그였기에 이서우의 그런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겉으로는 결코 드러내지않았다.
‘돈 좀 벌었다고 목에 힘이 제대로 들어가셨네. 감히 나의 진영이를 망신 줬겠다? 어디 너도 한번 당해 봐라.’
조찬휘는 찰나지간 영악한 미소를 짓는가 싶더니 다시 부드러운 얼굴을 하고서는 말을 이었다.
“몇 차례 동문회를 열었지만 오늘처럼 많은 분이 오신 적은 없었군요. 저도 그렇지만, 아마 ‘이분’을 보기 위해서 다들 오셨을 겁니다. 그렇지 않나요?”
“네에!”
조찬휘가 ‘이분’에게 시선을 보냈고, 사람들도 그가 누군지 알기에 모두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곳으로 향했다.
“그럼 이럴 게 아니라 오늘의 주인공을 무대로 불러 보죠. 어떻습니까?”
“좋습니다!”
“찬성입니다!”
어서 모셔 달라, 꼭 보고 싶다 등등 온갖 찬성의 말들이 쏟아졌다.
“자, 그럼 오늘의 주인공인 전장의 지배자 님을 모셔 보겠습니다. 설마 이렇게 절대다수의 성원이 큰데 무시하지는 않겠지요. 전장의 지배자 님?”
한 개의 조명이 이서우에게 향했었는데, 조찬휘의 말에 모든 조명이 일제히 그를 비추었다.
사람들은 기대감 어린 시선으로 이서우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방송에서는 많이 봤지만 이렇게 실물로 보는 건 처음인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이었다.
‘날 납치하려는 놈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참 일을 복잡하게 하네. 뭐, 미끼를 던지려면 끌려가는 척은 해야겠지?’
잠시 석상처럼 우뚝 서 있던 이서우가 차분히 무대로 걸어갔다.
모세의 기적이 이런 것일까. 그의 앞에 있던 사람들이 양쪽으로 갈라지며 길이 생겨났다.
“별 볼일 없는 사람을 이렇게 환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와아아아, 잘생겼다!”
이서우의 인사에 사람들은 환호했다.
이설아와 함께 나와 공개적으로 고백할 때를 제외하고는 뉴 월드에서 본 게 전부다.
훤칠한 키에 잘 다져진 근육, 그야말로 완벽한 몸매를 가진 이서우에게 많은 여성들이 관심을 보였다.
“제가 이곳을 누추하다고 표현한 것도 다 이분 때문입니다. 최근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면서 재벌의 반열에 오르셨죠. 듣기로는 벌써 국내 재산 순위 10위권 안에 들었다고 하시던데, 정말인가요?”
“글쎄요. 순위에는 별 관심이 없어서 말이죠.”
“하하하. 역시 뉴 월드에서와 마찬가지로 통이 크시네요. 저라면 매일 얼마가 들어왔나 계산해 볼 것 같은데 말이죠. 여러분도 그렇지 않나요?”
조찬휘의 말에 사람들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돈 들어오는 소리만큼 아름다운 소리는 없고, 벌어들인 돈이 쌓이는 것만큼 즐거운 일도 없었다.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돈이 쌓이지 않는다는 것이지만 말이다.
이곳에 온 사람들도 잘 사는 축에 들지만 이서우와는 비교할 바가 아니어서 모두가 부러운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내 이서우가 한 말을 곱씹으며 살짝 인상을 쓰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순위에 관심 없다고? 그럼 우리 같은 서민들은 죽으라는 건가. 돈 많다고 더럽게 자랑질이네.’
절반이 넘는 사람들은 이서우가 별뜻 없이 한 이야기로 받아들였지만, 돈에 욕심이 많은 사람들은 자격지심이 발동했다.
조찬휘가 노린 게 바로 그거였다.
“다음 동문회는 전장의 지배자 님의 별장으로 해야겠군요. 얼마나 멋진 곳일지 궁금하네요. 그렇지 않나요, 여러분?”
조찬휘의 말에 다들 동의하는 분위기였다.
이서우는 조찬휘의 의도를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적대감을 심어 주겠다는 건가? 아주 지능적으로 나오네. 선동꾼 기질이 다분해.’
그의 의도를 알지만 이서우는 별생각이 없었다.
동문회 장소를 빌려만 주고 자신은 나가지 않으면 그뿐이었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여름 때 한 번 초대하겠습니다. 아주 멋진 곳을 준비할 테니 다들 기대해 주십시오.”
“와! 역시 화통하신 분이시군요. 다들 여름휴가는 전장의 지배자 님의 별장으로 가면 되겠네요. 아마 한 번도 보지 못한 음식부터 술까지 모든 게 준비되어 있을 겁니다.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데요?”
조찬휘의 말에 사람들도 기대가 되는지 눈동자에 별을 담아 둔 듯 반짝였다.
“자, 그럼 전장의 지배자 님을 계속 곤란하게 하는 것도 예의는 아니니 파티를 열심히 즐겨 주십시오. 저도 여러분들과 함께 열심히 즐기겠습니다.”
그것으로 조찬휘의 말이 끝났다.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대화를 나누었다.
“야, 이서우, 너 괜찮겠어?”
“뭐가?”
“뭐긴 뭐야. 여름휴가 말이지.”
“언제는 별장 하나 만들라며?”
“그건 그렇지만…….”
“말이 씨가 된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어 봤지만 이건 씨를 뿌리기도 전에 열매가 열려 버리네.”
류종명은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는 것을 보니 놀랍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했다.
늘 곁에 있으니 이서우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 자주 까먹곤 하는데, 오늘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었다.
“너희들도 사람들하고 대화 나눠. 난 괜찮으니까.”
“괜찮겠어?”
“괜찮아. 너희들이 있으니 오히려 사람들이 접근을 못 하잖아.”
“아, 그런가. 그럼 종명이랑 다녀올 테니 사람들 많이 사귀고 있어.”
둘이 사라지자 예상대로 사람들이 하나둘씩 이서우에게 접근했다.
가볍게 인사를 하며 주로 뉴 월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동문이라고는 하지만 이서우는 사실 졸업생도 아니어서 동문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단지 그의 위치가 너무 높아져서 사람들이 억지로 동문으로 인정한 것일 뿐이다.
이서우도 그걸 알지만 박민수와 류종명이 있어 보조를 춰주었다.
몇몇 사람이 스쳐 지나가고 남자 둘이 다가왔다.
한 사람은 호리호리했는데, 다른 한 사람은 덩치가 엄청났다.
“안녕하십니다.”
“네.”
“전 서우 씨보다 2년 선배, 아니, 선배라고 하기도 애매하네요. 졸업생이 아니시니. 추광훈이라고 합니다. 이쪽은 황재규고요.”
“반갑습니다. 황재규입니다.”
추광훈이 손을 내밀었다. 이서우도 예의상 마주 내밀어 악수를 했다.
꽈악.
추광훈이 손에 힘을 주자 이서우도지지 않고 힘을 주었다.
‘재수 없는 배진성과 친구라더니 하는 행동도 유치하네. 드디어 나타난 걸 보니 행동을 하려는 거겠지? 어디 조금 장난을 쳐볼까.’
이서우가 조금 더 힘을 주자 추광훈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이거, 제가 못 당하겠네요. 항복입니다. 항복. 휴우, 손이 화끈거리네요. 무슨 운동을 하셨기에 악력이 그리 강하신지.”
“그냥 이것저것 잡다한 운동을 조금 했습니다.”
“광훈이를 악력으로 이기는 사람은 못 봤는데, 대단하십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힘이 세 보이지 않는데 말이죠.”
“광훈 씨가 많이 봐줘서 그런 겁니다. 한데, 절 찾은 이유가 있으신지.”
“아, 이거 바쁘신 분인데 제가 실수를 했네요. 무대에서 별장을 언급하셔서 잠시 찾아 뵌 것입니다.”
“그런가요?”
“네. 제가 알기로는 서우 씨에게 별장이 없다고 아는데, 그렇지 않나요?”
“정보가 빠르시네요.”
“하하하. 원래 이쪽은 정보가 생명입니다. 넓은 수영장이 딸린 별장이라면 저희가 전문이어서 혹시 생각이 있으시면 따로 연락을 주십사 하고 찾아온 것이랍니다.”
“그렇군요. 어차피 마련은 해야 되니 한 번 생각은 해 보겠습니다.”
“네. 그럼 명함을 드리고 가겠습니다.”
“네.”
이서우가 수락하자 추광훈과 황재규의 스마트 워치에서 그들의 간단한 정보가 이서우에게로 넘어갔다.
“다음에 꼭 시간 한번 마련하겠습니다. 그럼 저흰 볼일이 있어서 이만…….”
“아, 네.”
추광훈과 황재규가 고개를 살짝 숙이더니 몸을 돌려 가 버렸다.
‘뭐지? 저놈이 분명 이번 모임을 추진했을 텐데.’
이서우는 그들의 뒷모습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강한 의구심을 가졌다.
그때 누군가가 이서우의 등뒤로 다가왔다.
“조용히 하는 게 좋을 거야.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죽는 걸 보고 싶지 않으면.”
“…….”
“조용히 걸어서 화장실 쪽으로 가.”
이서우는 별다른 대꾸 없이 화장실로 향했다.
‘드디어 나타났군. 황재규는 그저 눈속임에 지나지 않았다는 말인가.’
이서우는 드디어 목표물이 나타나자 김명국에게 대화를 시도했다.
-놈이 나타났습니다.
-…….
-김명국 과장님?
이후로도 몇 차례나 불러봤지만 김명국은 대답하지 않았다.
“네놈에 붙여 놓은 건 폭발물이야. 주변에는 피해가 전혀 없지만 열기가 네 몸속으로 파고들어서 장기들을 다 녹여 버려. 그러니 허튼 짓 할 생각 말고 얌전히 있는 게 좋을 거야.”
이서우는 김명국이 대답하지 않자 답답한 마음에 계속해서 그를 찾았다.
“크크크, 멍청한 놈. 네놈이 나노로봇을 삼켰다는 걸 몰랐다고 생각해? 그에 대한 모든 대비를 끝냈다. 들어가.”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이서우를 협박했던 사내가 문을 잠가 버렸다.
고개를 돌렸는데,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배진성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넌 누구지?”
“누군지는 자연히 알게 될 거야, 크크크.”
“왜 날 납치하려는 거냐?”
“그것도 곧 알게 될 거고. 들어가.”
사내는 화장실 빈 칸을 가리키고는 손짓했다.
이서우는 어쩔 수 없이 그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반항하는 순간 몸이 타들어간다고 했으니 단숨에 그를 죽일 수 없다면 시키는 대로 하는 게 이로웠다.
화장실 칸은 상당히 넓었는데, 뒤따라 들어온 사내가 뭔가를 만지자 벽이 열렸다.
“준비를 진짜 철저히 했군.”
“알아주니 고맙군. 들어가.”
안으로 들어가자 덜컹 하는 소리가 나더니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엘리베이터인가?”
“맞아. 전쟁 상황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 둔 특수 공간이지.”
“전쟁? 이미 전쟁은 벌어지지 않는다는 걸 모르지 않을 텐데.”
“돈 많은 놈들은 모든 집에 다 벙커를 설치하고 있다는 걸 알려나 모르겠네. 돈 많이 벌었으니 너도 만들고 싶을걸? 아, 참. 넌 곧 죽지. 불쌍한 놈. 돈이 있어도 쓰지도 못하고 죽다니.”
비웃음이 가득 담긴 사내의 말에도 이서우는 무덤덤한 반응이었다.
‘날 알고 있는 눈치야. 대체 누굴까?’
한참을 내려가던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그리고 문이 열렸는데, 밝은 조명이 이서우를 맞았다.
“나가!”
퍽!
이서우의 엉덩이를 걷어찬 사내는 표독스러운 얼굴을 하고는 그의 엉덩이를 계속 찼다.
밝은 복도를 따라가자 하얀색 문이 나왔다.
문이 열리자 이서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보였다.
김명국이 사진으로 보여 준 장본인이 그 자리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