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8
레벨이 갑이다
248화
“서우 씨, 서우 씨!”
“오빠, 무슨 일이야?”
“연락이 끊겼어.”
“뭐? 그게 무슨…….”
“우리 오빠랑 연락이 끊겼다는 건가요?”
“……네.”
김명국의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이서우를 놓치지 않을 거라 호언장담했는데, 그만 신호가 끊기고 말았다.
“어, 어떻게 해 봐요! 자신 있게 말씀하셨잖아요!”
“지금 은밀히 대원들을 투입했습니다.”
“은밀히요? 지금 은밀히 처리할 때인가요? 오빠가 혹시 죽기라도 하면 당신이 책임질 거예요?”
이설아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지금까지 이처럼 화를 낸 적이 없었는데, 이서우의 안전과 연관되지 앞뒤 생각하지 않고 쏘아붙였다.
“외부로 나온 흔적은 없으니 별장 안에 있을 겁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찾아낼 테니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꼭 찾아내셔야 할 거예요. 꼭!”
“네. 반드시 찾아내겠습니다.”
김명국은 결의의 찬 얼굴로 힘주어 대답했다.
불안하지만 이설아로서도 당장 어찌할 수 없는 문제여서 애써 흥분을 가라앉혔다.
하지만 도무지 마음이 진정이 되지 않았다.
‘오빠, 무사해야 돼. 제발…….’
이설아는 이서우를 떠올리며 간절히 빌고 또 빌었다.
김명국은 무선통신으로 대원들을 지시했고, 즐겁게 떠들고 노는 별장에서 미소를 잃은 남녀 대원들은 분주히 이서우의 흔적을 찾았다.
-과장님, 아무래도 민수 군과 종명 군에게 물어봐야 하지 않을까요?
-아냐. 그들은 이번 일과 관련이 없어. 서우 씨가 그 자리에서 벗어났다는 것조차도 지금은 모를 거야. 그러니 조용히 일을 추진해.
-네.
누군가가 알게 되면 납치범들이 어떤 행동을 할지 몰랐다. 통제를 벗어나는 것이야말로 가장 최악의 결과를 만들어 낸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기에 김명국은 은밀히 행동하는 것을 택했다.
하지만 별장 곳곳을 다 뒤져도 도무지 이서우가 갔을 법한 곳은 찾을 수가 없었다.
-CCTV 있지?
-네, 과장님.
-해킹을 해서라도 봐야겠으니 실행해.
-하지만 여기는 재계 서열 4위 그룹의 별장입니다. 알려지면 뒷감당을 어떻게 하시려고…….
-상관없어. 모든 책임은 내가 질 테니 실행해!
-……네.
현장 대원을 이끌고 있는 대장으로서는 과장의 말이 절대적이어서 듣지 않을 수가 없었다.
대장은 원격으로 CCTV 해킹을 시도했다. 보안이 꽤 강했지만 별장에 양자암호를 두지는 않아서 다행히 볼 수 있었다.
대장이 보는 장면은 김명국도 확인이 가능하다. 자세히 살피는데, 이서우의 모습이 보였다.
어떤 남자가 그의 뒤에 바짝 붙어 있었다.
“저, 저건!”
-과장님 보셨습니까?
-그래. 작열탄이더군. 안전하게 제거가 가능해?
-가능은 한데, 쉽지 않습니다.
-일단 화장실로 들어간 것 같으니 그곳을 샅샅이 뒤져 봐.
-네. 과장님.
네 명의 대원이 화장실로 들어갔고, 다른 두 명의 대원들은 신속히 ‘수리 중’이라는 팻말을 걸어 놓고 입구를 막았다.
* * *
“당신이 문태식이군.”
“역시 알아보는군. 김 과장이 친절히 보여 줬나 보지?”
“알고 있었군.”
“모를 수가 있나. 그놈이 어떤 놈인데. 한데, 난 널 해칠 생각이 전혀 없는데, 왜 그 난리를 치는지 모르겠단 말이야.”
“해칠 생각이 없다라……. 고양이가 생선을 먹지 않겠다는 말과 다를 바가 없군. 당신들이 그동안 해 온 일이 있는데, 누가 그 말을 믿을까.”
“믿어 봐. 지금도 널 안 죽이고 있잖아.”
“그건 얻어야 할 게 있기 때문이겠지.”
이서우의 가슴은 차갑게 식었다. 마치 뉴 월드를 플레이하는 캐릭터처럼 냉정하게 상황을 분석했다.
‘내가 이렇게 차분했었나.’
자신의 신중한 모습에 스스로가 놀랐다.
운동을 하면서 신체 능력이 강해진 이후부터는 더욱 침착해졌다.
쉽게 흥분하지도 않았고, 상황에 이끌려가기보다 상황을 주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몸에 폭탄이 붙어 있고, 자신을 납치하기 위해 문태식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버티고 있었지만 이상할 정도로 덤덤했다.
“시간이 없는 것 같으니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하지. 네가 우리 형님을 좀 도와줘야겠다.”
“도움을 요구하는 사람이 이런 식으로 사람을 협박하나?”
“우리 입장이 대놓고 모습을 드러내기에는 좀 곤란해서 말이야.”
“무슨 도움을 원하는지는 모르지만 일단 들어나 보지.”
문태식은 곁에 있던 사내와 이서우를 데려온 사내에게 턱짓을 했다.
나가 보라는 뜻이었는데, 이서우를 데려온 사내가 반발했다.
“이놈을 손 볼 수 있게 해 준다고 하셨지 않습니까. 이놈 때문에 제 인생이 엉망이 되었단 말입니다!”
“내 볼일부터 본 뒤에 알아서 해. 하지만 지금은 안 돼.”
“그 말을 저보고 믿으라는 겁니까? 저놈 때문에 중국으로 도망간 것도 모자라 성형수술까지 해야 했습니다. 연놈들을 죽일 때까지 전 놈의 곁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내가 말했지. 내 볼일이 끝나면 알아서 하라고.”
문태식의 눈빛에 살기가 번뜩였다.
‘설마 저놈……. 에이, 아니겠지?’
이서우는 사내의 말에서 누군가가 떠올랐다.
잠시 고민을 하더니 조용히 입을 열었다.
“홍영철?”
“크크크, 그래도 알아보는군. 그래, 나다. 네놈을 반드시 죽여 줄 테니 기다려라.”
“이 새끼가 정신을 못 차렸네.”
탓!
문태식은 명령 불복종을 극도로 싫어한다. 한 번 기회를 줬는데도 행동을 하지 않으면 누구라도 베어 버린다.
지금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언제 꺼내 들었는지 긴 회칼이 홍영철의 복부에 박혔다.
“이, 이런 개, 자식…….”
홍영철의 입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그의 눈빛은 분노가 담겨 있었다.
“그러게 진즉 말을 들을 것이지. 하여튼 멍청한 새끼들은 안 된다니까.”
“크크크, 나 혼자만 죽을 수 없지. 잘 가라.”
“이놈이……!”
홍영철은 죽기 직전 이서우에게 부착시켜 뒀던 폭탄을 터트렸다.
주변에는 전혀 피해가 없고 강렬한 열기가 몸 안으로 파고들기 때문에 엄청난 고통을 동반하게 된다.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고통 중 가장 큰 고통이 바로 작열감이다.
작열탄은 바로 그런 고통을 주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화르르르륵!
강렬한 불꽃이 이서우의 등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 개자식이!”
푹! 푹푹푹!
급소만 노리고 찌르자 홍영철은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문제는 이서우였다.
“크악!”
이서우는 이곳에 오기 전 특수한 섬유로 된 옷을 입었다.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해서다.
두께는 겨우 1밀리미터에 지나지 않지만 총탄도 뚫을 수 없고, 칼도 통하지 않을 정도로 질긴 섬유였다.
하지만 작열탄이 워낙 강력해 피해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었다.
“큭.”
뜨거운 물을 들이부은 것처럼 등이 화끈 달아올랐다.
이서우는 고통에 신음하며 무릎을 꿇었다.
“김 과장에게 고마워해야 하나.”
너무 고통스러워 이서우는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하지만 곧 등이 시원해졌다.
‘나노로봇이 작동하는가 보네. 이럴 줄 알았으면 화장실로 들어오기 전에 반항 한번 해 볼 걸 그랬나.’
속으로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지만 지금 느껴지는 고통만 해도 엄청나서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만약 반항을 했다면 이서우는 반병신이 되어 이곳으로 끌려 왔을 것이다.
“자, 이제 그럼 제대로 된 대화를 진행해 보자고.”
“큭. 제대로 된 대화? 이런 상황에서 제대로 된 대화를 해 보자고?”
이서우의 입가에 조소가 맺혔다.
“너에게도 나쁜 제안은 아닐 테니 그리 화내지 말라고.”
“서로 예의를 지켰다면 이야기라도 들어 보려 했는데, 이런 취급을 당했으니 이젠 생각이 바뀌었어.”
“일단 이야기나 들어 보라고.”
“…….”
이서우는 억지로 몸을 일으키며 문태식을 죽일 듯 노려보았다.
문태식이 턱짓을 하자 남아 있던 사내가 모습을 감추었다.
그가 사라지는 것을 본 문태식은 편안하게 하고 싶은 말을 했다.
“정 회장을 만났지?”
“…….”
“뭐, 대답하지 않아도 좋아. 다 알고 있으니까. 정 회장의 손자가 식물인간이라는 건 알고 있을 거야. 네가 그랬던 것처럼. 아쉽게도 우리 형님의 아들도 지금 네가 경험한 것과 똑같은 처지라는 거지.”
“…….”
“오호라. 다 알고 있다는 거네? 그럼 이야기가 빠르겠군. 우린 네가 어떻게 깨어날 수 있었는지 그게 궁금하다. 그래서 정 회장이 하려했던 실험을 이어가고 싶은 거고.”
“나보고 지금 실험용 쥐가 되라는 건가?”
“아니지. 네가 살아 있어야 되니 우리는 널 실험용 쥐처럼 다루지는 않을 거야. 단지 실험을 하고 싶다는 거야. 성공하면 막대한 돈과 함께 자유를 주지.”
“돈은 차고도 넘쳐. 그리고 네놈들에게 실험을 당할 바에는 그냥 죽는 게 나아.”
“그래? 정말 그럴까?”
“…….”
문태식의 자신감 넘치는 말에 이서우는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대체 뭘 믿고 저렇게 자신감에 차 있는 걸까.
그 이유는 곧 드러났다.
“네 여자, 참 예쁘더군. 나 같으면 그 여자를 위해서라도 살고 싶을 텐데 말이야. 안 그래?”
“너……!”
“그러니까 그만 버티고 순순히 제안을 받아들여. 그게 네가 살 길이야.”
“살 길이라. 크흐흐흐, 조금 전 홍영철과의 대화에서는 전혀 그게 아니던데?”
“그건 놈의 선택이야. 반항만 하지 않았다면 부를 얻었겠지. 그러니 너도 순순히 따르는 게 좋을 거야.”
“자기 포장은 아주 수준급이네. 난 네가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안 믿어.”
“이것 참. 좋게 좋게 대화를 진행하려 했는데, 도저히 안 되겠네.”
문태식의 표정이 바뀌었다. 지금까지는 웃는 얼굴이었는데, 갑자기 싸늘하게 변했다.
문태식이 이서우의 머리채를 잡아 세웠다.
그가 피식 웃더니 주먹을 힘껏 내뻗었다.
“큭.”
복부에 정확히 꽂히자 통증이 밀려왔다. 하지만 생각만큼 극심한 고통은 아니었다.
“운동을 했다고 하더니 맷집이 상당해. 하지만 매에는 장사가 없는 법이야.”
문태식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고, 이서우의 얼굴에는 그늘이 졌다.
문태식이 다시 주먹을 들어올렸다.
* * *
-과장님, 찾았습니다!
-좋아. 들어가!
-네, 과장님.
-앞으로 벌어지는 일에서는 대장의 결정이 최우선이야. 괜히 보고한다고 시간 낭비하지 말고 상황에 맞게 빠르게 대처해.
-네.
모든 책임은 김명국이 진다고 했으니 대장은 힘주어 대답하고는 비밀 통로로 들어갔다.
네 명의 대원이 안으로 들어갔다. 누를 수 있는 버튼은 없었다.
그들이 모두 들어가자 엘리베이터가 자동으로 움직였다.
덜컹 하는 소리가 들리며 엘리베이터가 내려갔다.
한참을 내려가자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천천히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밝은 조명이 나타났는데, 멀리 복도에 문이 하나 보였다.
대장이 차분히 앞장섰다.
복도의 폭은 3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았고, 일자로 뻗어 있어 따로 엄호를 할 필요는 없었다.
전방을 주시하며 천천히 문을 향해 다가갔다.
문은 잠겨 있었지만 대장은 문을 딸 수 있는 장치가 있었다.
손잡이 부분에 설치를 하자 ‘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조심스럽게 열린 문을 밀고 들어갔다.
“대, 대장님…….”
“젠장! 속았다. 어서 빠져!”
문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대신 시한폭탄이 작동했다.
대장의 외침에 대원들은 미친 듯이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하지만 이미 늦고 말았다.
펑! 퍼퍼펑!
강렬한 폭발음이 들렸다.
하지만 그 소리가 지상에까지 들리지는 않았다.
지상에는 들리지 않았지만 지하에서 폭발음이 크게 들렸다.
“네놈을 찾기 위해 온 쥐새끼들이 저세상으로 갔군. 자, 이제 널 도와줄 사람은 없어. 이래도 버틸 테냐?”
‘젠장. 이런 식으로 함정을 파 놓았을 줄이야. 이렇게 되면 다른 방법이 없어.’
이서우의 눈빛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김과장의 대원들이 마지막 희망이었는데, 그 희망마저 사라졌으니 이제 다른 방법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