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9
레벨이 갑이다
249화
-박 대장, 박 대장!
박 대장이 응답이 없자 김명국은 거칠게 테이블을 쳤다.
쾅 하는 소리가 들리자 이설아도, 김소연도 불안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젠장!”
김명국의 거친 목소리에 이설아는 급기야 눈물을 흘렸다.
“오, 빠…….”
이서우를 떠올리자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김소연은 할 말을 잃은 채 멍한 시선으로 허공을 응시했다.
김명국을 막았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 생각하니 모든 게 자기 잘못 같았다.
너무 미안해서 미안하다는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저 눈물만 흘리며 바닥을 내려다볼 뿐이었다.
무거운 슬픔이 방안을 뒤덮자 한동안 아무도 입을 떼지 못했다. 마치 누군가 그들의 입을 꿰매기라도 한 듯 벙어리가 되고 말았다.
그때 침묵을 깨는 소리가 있었다.
“아직, 아직 오빠가 죽은 거라고 할 수 없어요.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야죠! 안 그런가요, 김 과장님?”
“…….”
김명국은 눈물 자국도 채 마르지 않은 상태로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이설아를 마주 보았다.
이제 20대 중반의 여성이다. 이런 상황을 자주 접하는 그조차도 심하게 흔들리는데, 이설아는 터져 나오려는 슬픔을 꾹 눌러 참으며 희망을 말하고 있었다.
만약 이번 일이 그의 동생과 연관이 있지 않았다면 김명국도 이렇게나 좌절하지 않았을 것이다.
젊은 나이지만 누구보다 경험이 많아 어떻게든 다른 대안을 찾으려 노력했을 텐데, 동생이 겪게 될 슬픔을 생각하니 그도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 김명국을 깨운 것이 이설아였다.
“맞습니다! 설아 씨의 말처럼 아직 희망을 버리기는 이릅니다. 마지막 희망이 있으니까요.”
김명국의 눈빛이 바뀌었다. 흔들리던 눈동자는 더욱 선명해졌고, 약해졌던 의지는 더욱 견고해졌다.
-스왓 팀, 모두 들어간다. 별장에 있는 사람들을 싹 비우고 박 대장이 들어갔던 곳을 폭파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대원들을 구하고, 서우 씨를 구해라. 그리고 놈들에게 한 방 제대로 먹인다. 알았나!
-네!
-네, 과장님!
-듣고 싶었던 말입니다!
혹시나 싶어 별장에서 1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스왓 팀을 대기시켰다.
하지만 별장에 있는 사람들의 면면이 워낙 막강해 함부로 진입할 수 없었다.
재벌 2세와 3세는 물론이고, 국회의원의 자녀들까지 있었으니 김명국도 꺼려질 수밖에 없었다.
하나, 지금은 그런 것을 가릴 때가 아니었다. 자칫 타이밍을 놓치면 영원히 이서우를 되찾을 수 없을지도 몰랐다.
대원들이 위험에 처한 것을 알게 된 스왓 팀원들도 불안한 마음에 당장이라도 뛰어들어 가고 싶었지만 명령없이는 불가능했다.
다들 마음을 졸이며 김명국의 명령만 떨어지기를 바라고 있었는데, 드디어 기다리던 명령이 왔다.
대원들은 무장을 한 채 별장으로 들어갔다.
절대로 있을 수가 없는 일이지만, 김명국은 이번 일에 모든 것을 걸었다.
‘무조건 구해 낼 테니 조금만 참아요. 조금만!’
* * *
이서우는 결국 마지막 발악을 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웬만하면 김명국을 기다리고 싶었지만 지금은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이서우가 자세를 취하자 문태식이 가소롭다는 듯 소리내어 웃었다.
“크크큭, 나와 주먹을 섞겠다고? 네놈이 운동을 조금 한 것 같다만 목숨이 걸린 실전은 그런 놀이와는 달라. 그냥 순순히 하라는 대로만 하면 좋잖아. 왜 자꾸 날 귀찮게 하지?”
“조용히 시키는 대로 해라? 흥. 웃기는군. 내가 살아 있는 한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거야.”
“뉴 월드를 오래하더니 현실과 게임을 구분 못 하는가 본데, 지금의 선택을 후회하게 될 거야. 결국 넌 내 의도대로 될 테니까.”
“길고 짧은 건 대 봐야 알아. 나도 만만치 않을 테니 각오하라고.”
등이 여전히 화끈거려서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지만 나노로봇들이 치료를 하고 있어 빠르게 회복되고 있었다.
문태식도 그것을 아는지 시간을 끌지 않고 곧장 이서우에게 뛰어들었다.
쉭쉭!
오랜 경험으로 단단해진 주먹이 이서우의 턱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다행히 대비를 하고 있어 아슬아슬하게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주먹에서 느껴지는 풍압이 장난이 아니었다.
‘2인자 자리는 그냥 고스톱으로 딴 건 아니군. 하지만 몸만 멀쩡했다면 상대하지 못할 정도도 아냐.’
이서우는 애써 자신감을 불어넣고는 주먹을 뻗었다.
슉!
몸이 불편해 연타를 할 수 없어 하는 수 없이 오른 주먹만 내뻗었는데 문태식은 마치 이서우가 어떤 공격을 할지 알고 있었다는 듯 쉽게 피해 버렸다.
“오호. 그래도 아주 맹탕은 아니네. 주먹이 매서워.”
문태식은 이서우를 가지고 놀 듯 천천히 힘이 빠지도록 기다렸다.
당장이라도 이서우를 제압하고 싶었지만 죽음을 등한시한 상대에게 방심은 금물이었다.
‘산 채로 잡아 가야 하는 상황만 아니라면 당장이라도 목을 비틀어 주고 싶지만 맛있는 음식은 원래 나중에 먹는 법이니까.’
문태식의 성격에 이서우의 태도를 참고 있는 것 자체도 대단한 일이었다.
그에게는 고장수의 명령이 절대적이어서 어쩔 수 없지만 실험만 끝이나면 아주 잔인하게 응징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퍽!
이서우의 힘겨운 노력으로 드디어 문태식의 얼굴에 한 방 날릴 수 있었다.
하지만 문태식이 이서우의 힘을 흘리면서 큰 대미지를 입지는 않았다.
“이제 꽤 힘도 빠진 것 같으니 그만 놀자고. 널 찾기 위해 꽤 난리들인 것 같으니 사라져 줘야지, 안 그래?”
이서우가 힘이 빠지도록 기다린 것은 혹시라도 모든 것을 포기하고 목숨을 끊을까 봐 염려가 되어서였다.
이서우는 억지로 두 다리에 힘을 주며 버텨 보았지만 자꾸만 힘이 빠져 비틀거렸다.
문태식이 다가오는 걸 느끼면서도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해 답답했다.
‘젠장. 작열탄에 당하지만 않았어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쉽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다. 되돌릴 수 없는 일에 후회를 하지 않는 이서우지만 목숨이 걸려 있으니 아쉬움이 컸다.
‘이럴 때 뉴 월드에서처럼 초월 가속을 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아. 아니, 가속화만 쓸 수 있어도 저딴 놈은 한 주먹 거린데.’
이서우는 피식 웃었다. 궁지에 몰리니 자신도 모르게 뉴 월드의 이서우가 떠올랐다. 전장의 지배자라 불리며 강한 몬스터를 홀로 처치한 존재.
수만, 수십만의 몬스터와 상대하면서도 밀리지 않은 절대적인 존재.
그 존재가 쓰는 필살기라면 지금의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자 이서우는 스스로를 비웃었다.
바랄 수 없는, 도저히 벌어질 수 없는 일을 바라며 간절함을 품는 자신의 모습이 너무 어리석게 느껴진 것이다.
‘뭐, 그게 인간이잖아.’
당첨되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매주 로또를 사는 사람.
아무리 공부해도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놓치 못하는 사람.
아무리 노력해도 부자가 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밤낮없이 미친 듯이 일하는 사람.
그게 인간이었다.
이서우는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자 불현듯 그런 어리석음을 가진 존재야말로 인간이라고 여겼다.
그리고 그런 헛된 희망을 품는 것이야말로 결코 헛된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 희망조차 사라지는 순간, 인간은 인간의 모습을 잃어버린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었다.
물론 그런 깨달음이 이서우의 목숨을 건져 주는 것은 아니었다.
‘아무것도 변하는 것은 없지만 비굴한 모습이 아니라 인간인 상태로 죽음을 맞이하잖아. 그걸로 된 거야.’
이서우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세상 다 산 노인네 같은 얼굴이군. 걱정 마. 지금은 널 죽이지 않을 테니까.”
“크, 크큭.”
이서우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웃기만 했다.
문태식은 그런 그를 제압하기 위해 천천히 다가갔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이서우의 몸속에서 뜨거운 기운이 몰아닥쳤다.
‘이, 이건?’
이서우는 지금 느껴지는 기운이 무엇인지 똑똑히 알고 있었다.
꺾이려던 무릎에 탄력이 생겼다.
눈빛은 날카로워졌고, 주먹에는 힘이 실렸다.
타핫!
이서우의 육체가 흐릿해지더니 순식간에 문태식의 코앞에 도달했다.
퍽!
“커억! 이, 이게 대체…….”
갑자기 이서우의 모습이 사라지더니 극심한 고통이 몰려왔다.
고개를 살짝 떨구니 이서우의 주먹이 자신의 심장에 있었다.
두근, 두근 뛰던 심장이 갑자기 멈춰 버렸다.
문태식은 불신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쓰러졌다. 얼마나 억울했는지 눈도 감지 못했다.
하지만 이서우도 무사하지는 못했다. 육체의 힘을 모두 쥐어 짜낸 상태여서 힘없이 쓰러지고 말았다.
털썩!
이서우와 문태식이 모두 쓰러진 뒤 문이 급하게 열렸다.
이서우는 흐릿해지는 의식으로 그가 누군지 떠올렸다.
‘젠장. 한 놈이 더 있었지. 개고생했는데, 이게 뭐람.’
문태식이 나가 있으라고 한 사내.
이서우가 떠올린 것은 바로 그 사내였다.
* * *
-오빠, 날 두고 가면 어떡해.
-응? 그, 그게 아냐. 난 네 곁에 언제까지나 있고 싶었는데…….
-그런 핑계 대지마. 오빤 날 두고 갔어. 날 언제까지나 지켜 주겠다고 약속을 했잖아.
-미안해.
-미안하다면 다야? 날 행복하게 해 준다면서! 그런데 어떻게 날 두고 혼자만 갈 수 있어? 나도 처녀 귀신이 되어 오빠 따라갈 거야. 귀신이 되어서도 오빠 곁에 있을 거라고!
“서, 설아야! 안 돼! 그러면 안 돼!”
“오, 빠?”
이서우는 식은 땀을 뻘뻘 흘리며 이설아의 이름을 외쳤다.
처녀 귀신이 된다는 말에 놀라서 소리를 친 것이다.
한데, 그렇게 보고 싶던 설아가 그의 곁에 있었다.
“오빠, 괜찮아?”
“서, 설아야!”
“응. 나야. 설아야.”
“정말, 설아가 맞는 거지?”
“그렇다니까. 나처럼 생긴 사람이 또 있겠어?”
“처녀 귀신 아니지?”
“처녀 귀신이라니. 갑자기 무슨 소리야?”
와락!
이서우는 힘껏 이설아를 끌어안았다. 꿈이라도 좋으니 깨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그녀를 더욱 힘껏 안았다.
“오빠, 정말 괜찮은 거지?”
“괜찮아. 난 정말 괜찮아.”
이서우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져서 걱정을 했지만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이 분명하게 느껴졌다.
이설아는 이서우를 꼬옥 껴안고는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한참 뒤에야 이서우는 이설아에게 왜 자신이 병실에 있는지 듣게 되었다.
이설아의 이야기가 끝나자 이서우는 문태식과의 마지막이 떠올랐다.
‘그때 그 힘, 분명 뉴 월드에서 가속화를 쓸 때와 비슷했어.’
이서우는 그 느낌을 잊을 수 없었다.
아무리 육체가 약한 상태였다고 해도 온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뉴 월드를 종료한 지 2시간이 지났는데도 오히려 더 놀라운 힘이 발생하다니. 어떻게 가능한지는 모르지만 다시 한 번 테스트해 봐야겠어.’
이서우가 한창 의문의 힘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이설아는 사람들에게 그가 깨어났다는 것을 말해 주었다.
그 소식을 듣고 김명국과 김소연, 박 대표까지 모두 병실로 들어왔다.
박민수와 류종명은 아직까지 이서우가 어떤 일을 당했는지 모르기 때문에 찾아오지 않았다.
스왓 팀이 들어왔을 때, 박민수와 류종명은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것을 느끼고 이서우를 찾았다.
하지만 대원 중 한 명이 이서우는 중요 인물이기에 아주 안전한 곳에 있다고 말해서 안도했다.
그 일이 있고 시간이 그리 많이 지나지 않았기에 친구들은 특별히 이서우에 대해 걱정하지 않았다.
“몸은 좀 괜찮습니까?”
“네. 좀 살 것 같네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덕분에 문태식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문태식을 잡았나요?”
“네. 심장이 멈춰 있던 걸 대원들이 살려 냈습니다.”
“또 다른 사내가 하나 있었을 텐데요?”
“네. 그자도 잡았습니다.”
“그렇군요.”
의식이 사라지기 직전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는데, 그게 문태식의 똘마니가 아니라 스왓 팀이었다.
이서우는 그때 마침 기절을 했기에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문태식 문제로 잠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대화가 가능하겠습니까?”
“네. 전 정말 멀쩡해요. 무슨 일인가요?”
김명국의 표정이 다소 심각했기에 이서우는 그의 이야기를 꼭 듣고 싶었다. 그리고 묻고 싶은 것도 있었다.
문태식이 어떻게 되었는지, 어떤 상태인지, 그에게서 무엇을 얻어 냈는지 말이다.
김명국의 말이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