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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이 갑이다-251화 (251/341)

# 251

레벨이 갑이다

251화

“아, 그 날의 일은 우연이었던가.”

이서우는 미친 듯이 주먹을 휘둘렀지만 그 날의 일은 반복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예 성과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수련 성과는 이전보다 훨씬 좋아졌네. 이대로라면 금세 강해지겠어.”

더 강해질 수 있을까, 했는데 오늘 수련을 하면서 느꼈다. 아직까지는 한계점에 도달하지 않았다는 것을.

인간은 자신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느낌으로 안다.

“10분만 더 하고 가볼까.”

이서우는 너무 몰입해서 훈련을 한다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잊고 있었다.

효과가 지속되는 110분 동안 최대한 육체를 단련하고 나머지 시간은 쉬는 게 훨씬 효율적이어서 시계를 힐끗보면서 조금만 더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한데, 시계를 보던 이서우는 그만 몸이 굳어지고 말았다.

“헉!”

헛바람을 삼킨 이서우는 자신이 잘 못 봤나 싶어 눈을 비비며 시계를 다시 확인했다.

“뭐, 뭐야. 벌써 3시간이나 지났잖아! 그런데도 효과가 사라지지 않았다고?”

지금까지는 분명 정확히 110분만 지나면 효과가 거의 사라져서 근육에 힘이 살짝 빠지는 느낌을 받았다.

훈련으로 육체의 한계 이상으로 힘을 끌어올렸다가 지속 효과가 사라지면서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한데, 3시간이 지나도록 그 효과가 사라지지 않고 유지가 되고 있었다.

이서우는 조금 더 정확히 알아보기 위해 시간을 꼼꼼히 체크했다.

“3시간 40분이네. 2배로 늘어났잖아? 그때 그 일 때문인가.”

이서우는 자신의 몸에 일어나는 변화에 대해 너무 모른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까지는 단순히 뉴 월드에 접속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육체의 한계를 벗어나는 시간이 길어진다고만 알고 있었다.

왜 그런지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지만 일정한 규칙이 있기에 안심했다. 인간은 불규칙한 것에 불안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한데, 문태식과의 일이 있고나서는 전혀 예상치 못한 변화가 생기고 말았다.

이서우는 이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분명 좋아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원인을 정확히 알 수 없으니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불안해할 수만은 없으니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당장 해결할 수 없는 일에 매달려봐야 아무런 득이 없었다.

이서우는 3시간 40분 동안 유지가 된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앞으로 어떻게 활용할지 생각했다.

“아, 이런 멍청한……!”

3시간 40분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나 고민하는데 불현듯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이서우는 다시 뉴 월드에 접속했다.

8시간이 아니라 딱 4시간만 제조에 시간을 보내고 칼같이 종료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수련에 매진했다.

“역시, 짧은 접속도 2배 연장이 됐네. 나머지 시간도 정확하게 확인해 보자.”

이서우는 자신의 예상이 맞는지 5시간부터 7시간까지 접속하고, 종료하기를 반복하면서 단련을 했다.

“이젠 6시간만 해도 예전 8시간과 비슷한 수준이 됐네. 이대로 발전하면 접속 시간에 상관없이 쭉 이어질 수도 있겠는걸?”

3시간 40분 이상은 지속되지 않았지만 지속 시간이 늘어났으니 앞으로도 늘어날 가능성이 높았다.

테스트를 끝내니 어느새 이틀이 지났다.

걱정이 된 이설아가 수시로 이서우를 찾았는데, 괜찮다는 말만 하니 차분히 기다려 주었다.

이틀이 지나고 왜 이서우가 그랬는지 알게 되자 이설아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뉴 월드에 얽매이지 않고 언제든 마음껏 수련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졌다.

물론 그의 직업이 뉴 월드니 열심히 플레이를 하겠지만, 이서우는 문태식과의 싸움에서 썼던 그 기술을 다시 한 번 현실에서 사용해 보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3시간 40분의 훈련 시간을 온전히 활용하는 것이 중요했다.

“설아야, 오래 기다렸지? 3일 동안은 푹 쉬자.”

“정말?”

“응. 영약도 좀 만들어 뒀고, 빌딩 상황도 다 체크했거든. 카이젠 제국도 이제 안정기에 접어들어서 당분간은 괜찮아.”

“잘됐네. 기다린 보람이 있는걸?”

“해외로 갈 수 없는 게 좀 아쉽지만 주변에도 힐링할 수 있는 장소는 많으니까.”

“응. 해외는 암살자가 잡히면 가도 돼. 불안해하면서 여행을 하는 것 보다 마음 편하게 다니는 게 좋아.”

“나도 마찬가지야. 괜히 뒤통수가 찝찝하면 여행을 가도 흥이 제대로 안 날 테니까.”

“응!”

이설아는 이서우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문태식에게 죽임을 당하지나 않았을까 염려하던 그날, 이설아는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테니 제발 살려만 달라고 기도했었다.

불구가 되든, 말을 못하든 어떤 상태든 상관없으니 살려만 달라고.

그랬기에 이설아는 이서우가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그리고 휴식 끝내고 접속하면 란셀 님을 찾으러 갈 거야.”

“맞다! 하도 정신이 없어서 나도 깜빡하고 있었네.”

“괜찮아. 나도 너무 정신없어서 잠시 잊고 있었으니까.”

현실에서 목숨이 오가는 상황에 직면하다 보니 이서우도 란셀을 구해야 한다는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문제가 거의 대부분 일단락되었으니 찾아나서야 할 때였다.

“참, 오빠. 블랙드래곤은 어떡할 거야?”

“일단 란셀 님부터 찾고 처리를 하려고. 놈과 싸우기 시작하면 또 여유가 없을 테니까.”

“하긴, 리치 킹과 싸울 때도 다른 걸 못할 정도였으니 그 편이 나을 것 같기는 해.”

“리치 킹과는 달리 블랙드래곤은 힘을 키우려면 시간이 꽤 걸리잖아. 그러니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

“응!”

이설아도 고개를 끄덕이며 이서우의 의견에 동조했다.

이서우가 여유를 부리는 것은 드래곤에 대한 조사가 어느 정도 되었기 때문이었다.

“일단 주 변호사님께 잠시 들렀다가 여행가자.”

“응!”

이서우는 주 변호사를 만나 보고를 받고, 이설아와 함께 국내를 돌아다녔다.

검색을 통해 몇 군데를 소화했고, 나머지 시간에는 그동안 가 보고 싶었던 곳을 찾았다.

3일의 시간은 금세 지나갔다.

시간이 짧다며 다음을 기약하고, 이서우는 뉴 월드에 접속했다.

이서우가 접속한 곳은 개척자 도시였다.

그의 빌딩은 하루에도 수십 만 명의 사람들이 오가는 랜드마크가 되어 있었다.

호텔도 늘 사람들도 북적거려서 빈 방이 없을 정도였다.

주변으로도 큰 건물들이 하나둘씩 들어섰다.

이미 원하는 땅은 어디든 차지할 수 있는 권한이 생기면서 유저 중 이서우가 가장 땅을 많이 차지한 사람이 되었다.

“아이고, 회장님. 오셨습니까.”

“프랑드 님, 그놈의 회장 소리는 그만 좀 하세요.”

“이젠 서른여섯 곳의 거대 빌딩의 주인이신데 당연히 회장님이라 불러드려야죠.”

“자꾸 회장이라고 하시면 매장을 빼 버리는 수가 있어요.”

“아이고, 그런 말씀 마세요, 서우 씨. 저 이제 이거 없으면 죽어요.”

“엄살도 심하셔. 지금까지 벌어들인 수익이 얼만지 읊어 드려요?”

“에이, 끽해 봐야 몇 달 되지도 않았는데 수익이 나 봐야 얼마나 났다고요.”

“그러니까 어디 보자. 그동안 벌어들인 게…….”

“하하하. 제가 졌습니다. 졌어요.”

이서우가 그동안 벌인 들인 수익 내역을 이야기하려 하자 프랑드가 얼른 그의 입을 틀어막으며 항복 선언을 했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시죠. 드릴 말씀도 있고.”

“그래요? 어쩐지 바쁜 분이 뛰어나오시나 했네요.”

“제가 바빠 봐야 서우 씨보다 바쁘겠습니까.”

“저야 뭐 직원들이 다 알아서 하니 크게 바쁠 것도 없죠.”

“여튼, 안으로 들어가시죠.”

프랑드의 안내를 받아 매장 안으로 들어갔다. 손님들이 많아서 직원들만 드나들 수 있는 문을 이용했다.

“차는 뭐로 드릴까요?”

“녹차면 됩니다.”

“네.”

프랑드의 사무실로 들어온 이서우는 소파에 편안하게 앉았다.

프랑드가 녹차와 커피를 가지고 왔다.

“서우 씨를 위해 준비한 것이니 입맛에 맞을 겁니다.”

“이런 호사를 다 누리다니. 좋네요.”

“아닙니다. 서우 씨 덕분에 구사일생했으니 제가 오히려 신세를 많이 졌지요.”

호로록.

따뜻한 녹차가 식도를 타고 넘어갔다.

향과 함께 입안에 퍼지는 맛이 일품이었다.

“확실히 좋은 차네요.”

“네. 서른세 번째 마을 주변에서 수확을 한 것인데, 아주 좋더라고요. 일반 유저들은 생명력 회복 효과까지 얻을 수 있어서 인기 만점이랍니다. 가격도 엄청 저렴하거든요.”

“역시 대상인이시네요.”

“이제 곧 상인왕이 될 날도 머지않았습니다.”

“오, 벌써 그렇게 레벨을 올리셨어요?”

“아직 400대 초반밖에 안 됐습니다. 하지만 장사를 하다 보니 경험치가 무섭게 쌓이고 있어 1년 안에는 충분히 상인왕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좋은 소식이네요. 한데, 그것 때문에 절 찾은 건 아닐 테고, 무슨 일이시죠?”

이서우도 해야 될 일이 있어 되도록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서우 씨에게도 분명 도움이 되는 일일 겁니다.”

“그래요? 그렇게 말씀하시니 더 궁금하네요.”

“제가 마을의 특징을 살려서 장사를 해볼 생각이라고 말씀드렸죠?”

“그랬죠.”

“32개 마을, 최근에 생긴 4개의 마을까지 싹 돌면서 이걸 찾았습니다. 서우 씨에게 필요한 재료 같은데, 그렇지 않나요?”

프랑드는 인벤토리에서 뭔가를 꺼내 이서우에게 보여 주었다.

그것을 본 이서우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 * *

“따분해.”

“민후 님, 따분하시면 영역을 넓혀가는 건 어떨까요?”

“따분해에!”

“그러니까 민후 님, 영역을 확장하시면 지루할 일이 없지 않을까요?”

“그것도 따분하다고!”

“그, 그렇군요.”

사내는 정민후의 호통에 거북이처럼 목을 쏙 집어넣었다. 지금 상태로는 말을 걸어 봐야 손해였다.

“통치자들에 대한 소식은 좀 있어?”

“뭐 늘 그렇죠. 별로 움직일 생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놈들은 지루해서 어떻게 살지? 나도 이렇게 지루한데.”

“서로 기싸움을 한다고 아마 지루할 틈이 없을 겁니다.”

“기싸움은 개뿔. 눈치싸움이지.”

“……네.”

아무리 등급이 높은 관리자라도 통치자에 대해 함부로 이야기할 수 없다.

한데, 정민후는 그러거나 말거나 하고 싶은 말은 다 했다.

그를 따르는 사내는 혹시 통치자가 보낸 스파이가 들을까봐 불안해하면서도 정민후를 막을 수 없었다.

“그만 가 봐.”

“네, 민후 님. 그럼 시키실 일이 있으시면 불러 주십시오.”

“알았어.”

퉁명한 정민후의 말에도 고개를 깊숙이 숙이며 존경의 의미를 담아 절을 했다.

사내가 나가고 나자 정민후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에휴. 500레벨을 찍은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전직을 못하는지, 원. 대체 뭘 어떻게 해야 전직이 되는 거지?”

정민후는 벌써 몇 달째 전직을 못하고 있었다. 더 강해질 욕심은 있는데, 전직이 되지 않으니 늘 제자리걸음이었다.

매사에 의욕이 생기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한참 동안 신세 한탄을 하는데, 갑자기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그래도 완전 허접은 아니네.”

“누구냐!”

“그건 알 것 없고. 강해지고 싶어?”

“뭐?”

“귓구멍이 막혔어? 강해지고 싶냐고.”

“그건 당연한 거 아닌가. 그것보다 넌 누구지?”

“내가 누군지가 중요하나?”

“나에게는 중요하다.”

정민후는 기척 없이 나타난 중년 사내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나이는 40대 초반으로 보였는데, 이목구비가 뚜렷했다.

“그건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그것보다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으냐?”

“무슨 뜻이지?”

“이곳을 빠져나가고 싶지 않냐고 묻는 것이냐?”

“그러니까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묻잖아!”

“이곳에 오랜 시간 갇혀서 지냈으니 바깥 구경을 하고 싶을 텐데?”

“그걸 어떻게…….”

정민후는 자신의 상태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내를 바라보며 불신이 가득 찬 눈빛을 보였다.

그 누구도 자신이 이곳에 갇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한데, 저 사내는 대체 어떻게 알았단 말인가.

“이곳에 갇혀 지내는 사람이 너밖에 없다고 생각하느냐?”

“설마…….”

“그래. 너 말고도 몇 명이 되지. 그들은 이미 더 높은 경지에 올라갔는데, 넌 여기서 언제까지나 제자리걸음을 할 거지?”

“그게 너와 무슨 상관이냐!”

“나와는 상관없지만 너와는 상관 있지.”

“…….”

정민후는 사내가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말만 하니 답답했다.

당장이라도 멱살을 잡고 따져 묻고 싶은데, 태산을 앞에 둔 기분이어서 도무지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네가 이곳을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통치자를 넘어 지배자가 되어야 한다. 아니, 어쩌면 그것으로도 부족할지 모르지. 하지만 절대자가 된다면 무조건 이곳을 빠져나가 현실로 돌아갈 수 있다.”

“그, 그게 정말이냐?”

“그래. 이미 현실로 돌아간 존재가 있다. 너와 같은 신세였다면 현실로 돌아가서 아주 멋진 삶을 살고 있지.”

“그게 누구냐!”

“그건 네가 직접 찾아봐야지.”

“어떻게 하면 그를 찾을 수 있지?”

“하이 레벨로 올라서야 한다.”

“하이 레벨? 그건 이미 이루었는데?”

“쯧쯧쯧, 넌 진정한 하이 레벨이 아니다. 내가 전직을 시켜 주마. 그러면 넌 진정한 하이 레벨이 될 것이다.”

“나더러 지금 그 말을 믿으라는 거냐?”

“믿지 않으면 어쩔 테지?”

“세상에 공짜는 없다. 네놈이 뭘 원하는지 말하지 않는 이상 받아들이지 않겠다.”

정민후는 사내에게 확실히 선을 그었다. 밖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그것을 약점으로 잡혀 사내의 손바닥에서 놀아나고 싶지는 않았다.

“현실에서든 이곳에서든 내 부탁 세 가지만 들어주면 된다.”

“부탁? 설마 노예가 되라는 건가?”

“네 목숨에는 전혀 지장이 없을 것이다.”

“그걸 어떻게 믿지?”

“영혼의 계약을 하면 된다.”

“무슨 개뼈다귀 같은 소리냐. 영혼의 계약이라니! 그 따위 것이 현실에서 통용이 된단 말이더냐!”

“되지. 되고말고. 모든 것은 뇌가 일으키는 현상이야. 뇌에 제약을 두면 서로가 원하는 것을 줄 수밖에 없거든.”

“…….”

정민후는 사내의 말을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뇌에 제약을 두다니. 그게 가능한 일이란 말인가.

“어나더 월드 클로즈베타 테스트를 기억해 봐. 그 때 넌 뇌에 과부하가 왔기 때문에 식물인간이 되어서 가상현실에 갇히게 되었어. 뇌는 참으로 신비해. 뭐든지 가능하지. 나와 계약을 하겠나?”

정민후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그동안 이곳을 벗어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던가. 가상현실에서 20년을 넘게 보내면서 온갖 방법을 다 써 봤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벗어날 수 없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이곳에 적응하고 있는데, 갑자기 이상한 사내가 나타나 가려운 곳을 긁고 있었다.

사실, 솔직한 심정으로는 당장이라도 계약을 하겠다고 대답하고 싶었다.

하지만 계약을 하는 순간, 자유가 사라져 버릴 것 같은 불안감에 휩싸였다.

“너의 자유를 침해하지는 않을 거야. 그러니 그리 걱정할 필요 없어. 정말 너에게는 아무런 해가 되지 않아. 계약 사항에 그것도 넣도록 하지.”

“정말인가?”

“당연하다.”

“좋다. 그렇게까지 한다면 계약을 마다할 이유가 없지. 계약하자.”

“잘 생각했다. 너와 나의 뇌가 서로 소통을 해야 하니 마음을 편안하게 먹어라.”

“알았다.”

정민후는 결국 사내의 요구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무료하고 따분한 시간을 보낼 바에는 차라리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게다가 자유까지 보장되고, 생명에 지장이 없는 환경에서 부탁을 들어주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잠시 후, 눈을 감았던 사내가 눈을 떴다.

“계약은 이루어졌다.”

“뭐? 별로 달라진 게 없는데?”

“나를 거부하는 생각을 강하게 해 보면 안다.”

“그런 생각으로 어떻게……. 아악!”

“나를 거부하는 생각이 강해질수록 고통은 커질 거야.”

“이건 약속에 없던 거잖아!”

“아니지. 내 부탁을 들어주려면 당연히 해야 될 절차일 뿐이야. 너도 날 거부하지만 않으면 되잖아. 안 그래?”

“그건 그렇지만…….”

정민후는 사내의 말을 반박할 수 없었다.

“자, 너에게 힘을 주도록 하지.”

사내가 손을 뻗자 정민후는 허공으로 떠올랐다.

갑자기 몸의 통제력을 잃게 되자 크게 당황했지만 온몸에 힘이 넘쳤다.

정민후는 육체의 변화에 집중했다.

“자, 모든 것을 마쳤다. 이제 넌 진정한 하이 레벨이 되었다. 하지만 하이 레벨의 끝을 보려면 정말 멀고도 험한 길을 가야한다. 명심해라. 통치자를 넘어 지배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그것으로도 부족하면 절대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그러면 넌 네가 원하는 것을 모두 얻게 될 거다.”

“만약 그렇게 되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네가 사라지면 널 어떻게 찾느냐는 말을 간접적으로 묻는 것이다.

“난 내가 필요할 때 나타날 것이다. 그럼 수고하라고.”

“이, 이봐! 야!”

정민후가 소리쳤지만 사내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그는 재빨리 상태 창을 열었다.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한 것이다.

하지만 상태 창을 확인하자마자 절규했다.

“이런 개자식, 레벨이 1이잖아!”

정민후는 한동안 미친 듯이 소리치고는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모든 시간을 투자해 사냥에 매진했다.

육체가 달라진 것이 느껴져 레벨을 조금 올려 보기로 한 것이다.

정민후는 하루가 채 되지 않아 깨달았다.

“시팔. 이거 완전 사기당한 거 아냐? 레벨 업이 뭐 이리 힘들어? 아오, 500레벨까지 어떻게 올렸는데, 또 그 짓을 하라는 거냐고! 개자식, 만나기만 해 봐라. 아주 작살을 내놓을…… 아악!”

사내를 거부하는 마음을 가지자 고통이 몰려왔다.

정민후는 다시 발악하고는 사냥에 몰두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열이 받아서 미칠 것만 같았다.

레벨이 올리는 과정에서 그는 관리자 지역을 5개나 집어삼켰다.

그렇게 그는 400레벨을 넘겼다.

그때가 바로 리치 킹이 죽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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