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8
레벨이 갑이다
258화
뉴 월드를 유료로 즐기는 사람 중에 과연 그 가치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1년이 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10억 명에 육박하는 사람들 지갑을 열게 했으며, 게임 머니가 현금과 똑같은 역할을 하게 만든 것만으로도 가히 혁신이라 할 만했다.
1주년을 앞두고 사람들이 더욱 늘어나 곧 10억을 넘어설 것으로 기대됐으며, 1주년 행사가 진행되면 다시 한 번 폭발적인 이용자들을 불러모아 12억 명은 되지 않을까 하는 추측도 나오고 있었다.
이런 추측이 가능한 것은 최근 중국에서 오픈하기로 계획된 가상현실 게임의 일정이 미뤄지면서 유저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미국은 가상현실의 고른 성장을 위해 대작 게임 출시가 조금 늦을 거라는 예상을 했지만, 중국의 실패는 꽤 큰 충격이었다.
그 덕분에 뉴 월드 관련 주가가 고공행진했다.
중국 소식으로 글로벌사의 주식을 팔았던 사람들은 땅을 치고 후회했고, 계속 사들인 사람들은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이서우도 즐거운 비명을 지르는 사람 중 하나였는데, 하루아침에 수천억을 벌어들였음에도 그다지 표정이 좋지 않았다.
“오빠, 1분간 지속돼. 어쩌다 3분이나 5분짜리가 있기는 한데 대부분은 1분이야.”
“나도 확인했어. 제조자가 누굴까?”
“그러게. 대체 누가 짝퉁 스텟 증가 영약을 만든 걸까?”
“문제는 이 물량이 중국 쪽으로 넘어갔다는 거야.”
“누군지 몰라도 오빠가 곤란해하도록 일부러 그쪽으로 넘긴 거겠지.”
“그렇겠지. 사람들의 반응만 봐도 놈들의 의도가 너무 잘 드러나니까.”
온라인에 있는 수많은 커뮤니티를 비롯해 게임 방송 채널과 개인 방송까지도 모두 이서우를 비난했다.
대규모 전쟁이 벌어질지도 모르는데, 일시적이지만 스텟을 증가시키는 물약을 중국에 대거 팔았다는 게 그 이유였다.
김소연이 발 빠르게 해명을 내놓았지만 사람들은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스텟 증가 영약은 오직 이서우만이 만들 수 있다고 알려졌다. 그러니 일시적으로 증가시킬 수 있는 영약도 이서우 외에는 만들지 못한다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물량이 얼마나 많이 넘어갔는지는 모르지?”
“응. 어느 정도 빠르게 제조가 가능한지도 모르고, 몇 명이 제조에 동참했는지도 몰라서 정확한 건 알기 어려워.”
“추측 데이터는 있지 않아?”
“제조자는 그다지 많지 않을 것 같다고 했어. 특수한 방법을 썼을 거로 예상하고 있어서 한 손으로 꼽을 거라고 하던 걸. 문제는 얼마나 많은 양을 비축하고 있다가 터트렸느냐겠지. 지금 풀린 걸 대충 예상해 보면 꽤 시간을 두고 준비한 것 같으니까.”
“분명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절대로 영약을 만들 수 없어. 나도 엄청 고생했으니까.”
이서우는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레벨도 신경 써야 하고, 세 가지 제조 기술을 스페셜 마스터급까지 올리는 것은 엄청난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다.
이서우도 가속화가 아니었다면 지금까지도 스텟 증가 영약을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특수한 스킬이 있다는 추측이 가장 신빙성이 높네?”
“그렇지. 분명 특수한 스킬일 거야. 이를 테면 아이템을 흉내 내서 만들거나, 아이템 능력을 잠깐 빌려 쓸 수 있게 하는 그런 기술 말이야.”
“카피 기술?”
“그것도 가능하겠지. 근데, 단순히 복사를 하는 건 아닐 거야. 뉴 월드가 아무리 자유도를 높여 놓고, 다양한 직업을 만들었다지만 아이템 복사를 가능하게 한다는 건 받아들이기 힘들어.”
“하긴, 그렇게 되면 뉴 월드의 시스템이 완전히 무너지고 말 거야.”
사실 이서우의 제조 기술이 더 말도 안 되는 것이지만 워낙 조건이 까다롭고, 대량으로 만들어 낼 수 없기 때문에 글로벌사도 크게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정당하게 익힌 기술이니 제한을 할 수도 없고 말이다.
하지만 아이템 카피 기술은 달랐다.
앞으로 나오게 될 신화 등급 이상의 아이템이 복사로 풀려 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많은 사람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될 것이고, 게임을 접는 사람도 생기게 될 것이다.
정당한 노력으로 얻는 것이라면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지만 부당하게 취한다는 인식이 생기면 반발을 살 수밖에 없었다.
“결국 아이템 능력을 일시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해 주는 기술이라는 건데, 그런 기술이라면 내 누명이 쉽게 벗겨질지도 모르겠네.”
“아, 그럴 수도 있겠네!”
이설아는 이서우의 말을 바로 알아들었다.
그 때 부팀장이 길드 창으로 말했다.
-마스터님, 더 이상 매물은 올라오지 않고 있습니다. 중국 쪽과 직거래를 하는 것 같은데, 어떻게 할까요?
-일단 계속 상황을 주시해 주시고, 누가 제조자인지 알아봐 주세요.
-네. 그럼 길드 랭킹 100위 밖까지 영역을 넓히겠습니다. 시간이 조금 걸릴 겁니다.
-그리고 스텟 증가 영약이나 저만 만들 수 있는 것 외에도 이와 유사한 능력을 보이는 아이템이 있는지 알아봐 주시고, 만약 있다면 물량을 확보해 주세요.
-아, 그런 아이템을 발견하면 마스터님이 이번 일과 관련이 없다는 게 증명되겠네요!
-네. 만약 놈의 기술이 아이템을 유사하게 카피하는 거라면 분명 욕심이 날 겁니다.
-그렇겠죠. 1분 정도 유지로는 솔직히 돈이 별로 안 되니까요. 더 고가의 아이템이 있다면 반드시 놈은 그걸 흉내 내려 하겠군요.
-네. 그럼 부탁드릴게요.
-염려 마십시오. 철저히 조사하겠습니다.
부팀장과 대화를 마친 이서우는 직접 거래중개소창과 경매창을 열어 확인해 보았다.
“일단 날 모함하려는 자를 어떻게 찾을지 방향은 잡았으니 조금 기다려봐야겠네.”
“그 동안 오빠 명성에 흠이 갈 걸 생각하니 화가 나.”
“나도 화는 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으니까. 그것보다 방송에 악영향을 미치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시청자들이 많이 떨어지긴 하겠지. 하지만 어차피 즐기면서 하기로 했으니까 괜찮아.”
이설아의 말은 진심이었다.
이번 사태로 절반 이상의 시청자가 떨어져 나갈 것을 이미 각오하고 있었다.
그 정도로 인원이 빠져 버리면 수백억이 날아가게 된다.
하지만 이설아는 돈에 연연하지 않고 방송 활동을 하기로 결심하고 개인 방송을 시작했기에 흔들리지 않았다.
“그것보다 오빠, 또 중국 애들 쓸어 버릴 거지?”
“그래야지. 당분간은 친구들하고 사냥하도록 해.”
“응!”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았지만 이설아는 자신의 욕심을 내려놓았다. 4차 전직을 했지만 이서우를 따라가는 것도 벅찼다. 지금은 믿음을 가지고 지켜보는 게 그녀가 할 일이었다.
‘누군지 밝혀지면 그게 누구든 철저히 응징해주마.’
이설아와 헤어져 중국 유저가 자주 나오는 지역으로 이동했다.
* * *
“젠장!”
“형님, 무슨 일인데 그러십니까? 설마 그놈들이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한 겁니까?”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했지.”
“설마 아이템 가격을 더 후려치는 건 아니죠? 개자식들! 형님, 이대로 가만히 있을 겁니까?”
대박 길드 마스터 초대박은 경매에 참여해 근력 스텟 증가 영약과 체력 스텟 증가 영약을 구입했다.
가격이 생각보다 너무 치솟아 올라서 민첩력 스텟 증가 영약은 살 수 없었다.
길드 여유 자금은 500억이 있었지만 일부는 길드원들을 위해 써야 했고, 일부는 아이템 복사하는 데 필요했다.
귀한 아이템일수록 복사에 소모되는 골드가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비교적 덜 중요하다 여겨지는 민첩력을 포기했다.
힘은 모든 근접 계열에게 필수다. 체력은 근접, 원거리, 마법 계에 필수였고 말이다.
하지만 민첩력은 원거리 계열에게는 필수일지 모르지만 근접이나 마법 계열은 2순위에 불과했다.
근접 계열 중에서도 속도에 비중을 많이 두는 직업들도 있지만 그들조차도 근력을 먼저 올리고 민첩력에 투자한다.
초대박의 예상은 적중했다. 근력 영약 카피 아이템이 불티나게 팔려 나갔다. 더 많은 카피 영약을 만들고 싶었지만 골드 소모가 커서 여유 자금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결국 초대박과 노가다의 개인 돈까지 다 끌어 모아 물량을 비축했다.
한데, 문제는 물량을 어느 정도 비축했을 때 어떻게 알았는지 헤라클레스 길드 마스터가 찾아왔다는 것이다.
배상철은 단도직입적으로 초대박에게 요구했다. 모든 영약을 넘기라고.
물론 공짜는 아니었지만 초대박이 생각한 것보다 저렴한 가격이어서 갈등이 되었다.
하지만 777위 길드와 1위 길드의 차를 극복할 수 없었다.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대박 길드를 괴멸시킨다는 협박에 결국 백기를 들고 말았다.
노가다는 절반 값에 카피 영약을 넘긴 게 화가 났다. 길드 자금과 그들이 투자한 돈까지 포함하면 500억이 훌쩍 넘었다.
지금까지 만들어 놓은 것만 팔아도 2천 억 가까이 벌어들일 수 있는데, 반 토막이 났으니 얼마나 억울할까.
500억에 육박하는 수익도 결코 적은 것은 아니지만 그에게는 눈앞에서 날아간 1천억만 아른거렸다.
노가다는 길드 간부들 중에 배신자가 있다고 확신하고 그를 찾기 위해 매의 눈으로 관찰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배신자 색출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면 찾아낼 수 있었겠지만, 영약을 만들 재료를 구하고 헤라클레스 길드 마스터까지 상대해야 하니 쉽지 않았다.
노가다의 불만이 극에 달한 상태에서 초대박이 헤라클레스 길드 마스터를 만나고 돌아왔다.
표정을 보아하니 또 부당한 대우를 받은 것 같아 기어이 폭발하고 말았다.
“그게 문제가 아냐.”
“반값을 후려치는 것도 모자라 거기서 더 이득을 취하려는 게 문제가 아니라면 뭐가 문제란 말입니까!”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도 받지 못하고 노예처럼 일만 하는 것도 서러운데, 초대박이 그런 것 따위는 별게 아니라는 뉘앙스를 보이자 노가다는 더 화가 났다.
하지만 이어진 초대박의 말에 노가다는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놈들이 골드를 복사하란다.”
“…….”
“나도 처음에는 너처럼 딱 그런 표정이었다. 하지만 놈은 진심이더군.”
“혀, 형님. 그게 말이나 될 법한 소립니까? 골드를 복사하는 순간 형님은 계정 정지가 됩니다. 그것도 영구 정지요!”
“알아. 그래서 나도 그건 안 된다고 했다. 한데…….”
“설마 또 길드를 박살낸다고 협박한 겁니까? 차라리 대항이나 해 봅시다. 이대로 놈들의 손에 질질 끌려 다닐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놈이 한 판 붙자는 식으로 말했다면 나도 너처럼 말했을 거다.”
“설마 현피를 하겠다는 건 아니겠죠?”
“길드원들도 내가 어디 사는지 모르는데 현피 한다고 협박해 봐야 콧방귀나 꼈겠지.”
“그럼 대체 놈이 무슨 말을 했기에 형님 표정이 그런 겁니까?”
차마 길드 마스터에게 썩은 동태 눈깔 같다는 표현은 쓰지 못했다.
초대박이 한숨을 깊이 쉬고는 입을 열었다.
“이번 영약 카피 사건의 주범이 나라는 걸 전장의 지배자에게 알린다고 했다.”
“네에?”
생각지도 못한 말에 노가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헤라클레스 길드와 한 판 붙는 것이라면 치고 빠지든지, 아니면 여론 몰이를 해서 어떻게든 버텨 보겠지만 전장의 지배자는 달랐다.
일인 군단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전장의 지배자는 강하다. 뉴 월드를 하는 사람치고 그걸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 그와 적이 된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그가 이 사실을 알면 어떻게 되겠느냐?”
“아마, 대박 길드는 하루아침에 사라지고 말겠죠. 평생 전장의 지배자와 적이 되어야 한다는 걸 알면 길드원들도 다 탈퇴해 버릴 테고요.”
“그렇겠지. 헤라클레스 길드와 전쟁을 하는 거야 명분을 세워서 길드원들의 힘을 하나로 모을 수 있지만, 전장의 지배자와는 그게 안 돼. 명분이 없으니까.”
“…….”
지금 전장의 지배자가 얼마나 많은 비난을 받고 있는지 두 사람은 모르지 않았다.
“내가 만약 전장의 지배자의 상황이라면 가만히 있을 수 있을까.”
“절대 가만히 못 있겠죠. 아마 게임을 접을 때까지 죽일 겁니다. 그와 관련된 사람들까지도 모조리 말이죠.”
“그래. 그렇기에 그들의 요구를 확실히 거절 못한 거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도 없는 일이 아닙니까!”
“휴우. 나도 답답하다. 욕심을 부리지 말았어야 하는데…….”
후회해 봐야 이미 벌어진 일을 되돌릴 수 없다.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해결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초대박은 고개를 떨군 채 말이 없었고, 노가다는 그런 그를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한참을 그렇게 있던 노가다가 눈동자를 빛내며 말했다.
“형님, 어쩌면 방법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방법? 정녕 해결 방법이 있는 것이냐?”
“가능성은 있을 것 같습니다.”
“어서, 어서 말해 보아라.”
“그게…….”
초대박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노가다의 말에 집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