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9
레벨이 갑이다
259화
이서우는 미친 듯이 중국 유저들을 처치했다.
어차피 서로 죽고 죽이는 게 당연시되고 있으니 거리낄 것도 없었다.
중국 유저들은 중국 유저들 나름대로 자신이 있었다.
인원이 많았고, 일시적이지만 스텟을 증가시키는 영약이 중복 복용이 가능해서 자신감을 가질 만도 했다.
하지만 수백, 수천의 유저들이 덤벼들었음에도 이서우를 어쩌지 못했다.
이에 중국 유저들은 이서우를 죽일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을 주겠다며 랭커들을 불러 모았다.
그중 가장 강한 중국 유저가 이곳에 있었다.
“전장의 지배자를 죽이기만 하면 그 관리자와 연결시켜 준다는 말, 진심이겠지?”
“물론이다. 그놈만 처리해 준다면 그 관리자에게 널 안내하겠다.”
“거짓말이면 후회하게 될 거야.”
“내 자존심이 걸린 일이다.”
“그거면 충분하지.”
중국 랭킹 공식 1위는 천유종이지만 비공식 1위는 지금 천유종과 대화를 하는 테라칸이라는 사내였다.
그는 특수한 직업을 얻어 강력한 스킬을 내세워 강자들을 물리쳤다.
천유종도 그와 우연히 만나게 되었는데, 아슬아슬하게 그에게 패하고 말았다.
이후, 그를 이기기 위해 천유종은 강력한 아이템을 구했고, 지금은 간발의 차까지 쫓아왔다.
하지만 천유종은 테라칸이 4차 전직 유저가 되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멍청한 놈. 곧 4차 전직을 한다고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갔구나. 하지만 난 네가 연결시켜 준다는 관리자로 인해 또 다시 강해질 것이다.’
188센티미터가 넘는 장신에 80킬로그램의 체구를 가진 사내는 짙은 눈썹에 날카로운 눈빛을 하고 있었다.
남자다운 외모와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천유종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지금 갈 텐가?”
“시간을 오래 끌 필요는 없겠지.”
테라칸은 전장의 지배자를 이길 수 있다는 자심감에 차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4차 전직의 힘을 직접 경험했다.
전장의 지배자도 4차 전직을 이루었겠지만 그에게는 특수한 스킬이 있어 절대 패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4차 전직에 만족하지 않았다.
‘크크크. 네가 소개해 줄 관리자가 어떤 존재인지 알게 된다면 넌 아마 땅을 치고 후회할 거다. 이번 일을 마무리 하고 퀘스트만 완료하면 하이 레벨 지역은 내가 접수한다.’
천유종에게 도움을 주는 것 같지만 사실 테라칸은 철저히 자신만을 위해 이곳에 왔다.
테라칸이 이토록 관리자를 만나고 싶어 하는 것은 바로 퀘스트 때문이었다.
4차 전직을 한 뒤 그는 곧장 하이 레벨 지역을 접수하고 랭킹 1위에서 5위 길드를 삼켜 최고가 되려 했다.
한데, 그때 퀘스트 하나를 받았다.
-새로운 경지에 대한 고찰.
최단 기간에 500레벨을 이뤄 전직까지 완성한 당신은 충분히 더 높은 경지로 나아갈 자격을 갖추었다.
하이레벨 지역은 수많은 강자들이 존재한다.
세 명의 절대자, 그리고 그 절대자들을 보필하는 칠인의 지배자.
절대자는 초월 레벨을 이룬 존재로 신의 힘에 필적한다고 알려져 있고, 지배자는 하이 레벨에 올라 8천 살 이상의 드래곤과 비슷한 힘을 낼 수 있다.
그런 강자들의 명령을 듣는 통치자들 또한 4천 살에서 7천 살까지의 드래곤에 필적한다. 그들을 만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5차 전직에 올라야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5차 전직 이전, 당신은 지금보다 한 단계 육체의 성장을 이뤄 하급 관리자들이 이룬 중간 단계에 올라서야 한다.
중간 레벨이 되어야만 하이 레벨로 갈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관리자들 중에서도 상위 등급에 속한 관리자와 친분을 맺어 새로운 경지에 도달하기 위한 가르침을 받아라.
난이도 : A+
완료 조건 : 상위 등급에 속한 관리자를 만나 더 높은 경지에 도달하면 된다.
성공 시 보상 : 육체 진화. 10레벨 경험치. 500만 골드.
실패 시 : 20레벨 다운.
테라칸이 받은 퀘스트는 엄청났다. 보상도 물론 좋았지만, 육체가 진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놀라웠다.
‘천유종이 4차 전직을 이룬다면 관리자에게 중간 레벨에 대한 정보를 듣게 될 것이다. 4차 전직을 해야 퀘스트가 뜰 테니까. 그 전에 재빨리 전장의 지배자를 처치하고, 관리자를 만나야 한다.’
만약 테라칸이 4차 전직을 한 사실을 알게 된다면 천유종은 이번 일에서 빠져 미친 듯이 레벨을 올릴 것이다. 그나마 전장의 지배자에게 관심이 어느 정도 쏠려 있을 때가 기회였다.
‘전장의 지배자는 아주 일부의 하이 레벨 지역만 얻었는데도 엄청난 부를 가지게 됐다. 내가 그 힘을 얻는다면 난 누구도 이루지 못한 업적을 이룰 수 있다!’
테라칸의 눈빛은 곧 탐욕으로 물들었다. 하지만 전방을 주시하고 있던 테라칸의 모습은 누구도 볼 수 없었다.
“곧 돌아올 테니 기다려라.”
“내가 그리 한가해 보이나 봐? 나도 할 일이 있으니 마무리 하면 귓말을 보내라.”
“그러지.”
테라칸은 더 이상 대화를 할 필요가 없었기에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갔다.
‘멍청한 놈. 전장의 지배자가 그리 쉽게 죽을 것 같으냐. 그자와 씨름하는 동안 난 네놈의 꿀사냥터로 가서 4차 전직을 이뤄 주마. 그 뒤 내가 직접 네놈을 짓밟고, 전장의 지배자도 내손으로 없앨 것이다!’
천유종은 멀어지는 테라칸의 뒷모습을 보며 진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길드 간부들에게 몇 가지 당부를 한 뒤 사라졌다.
* * *
이서우는 몇 명을 처치했는지도 모른 채 마나가 고갈 될 때까지 대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초월 가속을 풀로 사용하지 않는 이상 그의 마나가 바닥을 보일 일은 없었다.
스페셜 물약에 스페셜 비약까지 쓰고 있었고, 경지가 올라가면서 마나 효율도 최고조에 달해 쉽게 줄어들지 않았다.
거기다 이서우가 긴장할 만큼 강자도 없어 여유가 넘쳤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명성 10이 올랐습니다.
‘유저들과의 전쟁도 할 만하네.’
벌써 2레벨이 올랐고, 명성도 100만 이상을 올렸다.
한 번 처치한 유저에게서는 명성이 오르지 않았지만 유저가 워낙 많고, 레벨 차에 따라 높은 명성을 얻을 수 있어 아직까지는 잘 올랐다.
마나가 가득 차고 다시 절반의 마나를 썼을 때다.
‘응?’
멀리서 느껴지는 강렬한 기운이 이서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정도 기운이라면 4차 전직 유저에게서나 나오는 건데.’
이서우는 중국 유저가 설마 벌써 4차 전직을 이루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그의 감각은 지금까지 한 번도 자신을 속인 적이 없었다.
잠시 후, 장신의 사내가 나타났다. 바로 테라칸이었다.
그가 나타나자 중국 유저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 뒤로 빠졌다.
“중국에서 나름 비밀 병기를 숨기고 있었군.”
“날 보고도 그런 자신감을 가지다니 칭찬해 주지.”
“고작 4차 전직을 했다고 그렇게 자신만만해하다니. 나에 대해 모르고 온 건가?”
이서우가 자신의 상태를 단번에 파악하자 상당히 놀랐다. 다행히 중국 유저들은 거리를 두고 있어 누구도 들은 사람이 없었다.
‘아직은 우리 측에도 4차 전직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안 돼.’
어느 정도 거리가 있어 안심은 되지만 테라칸은 중국유저들이 더 물러나도록 손짓을 했다.
중국 유저들은 테라칸의 손짓에 아무 불만 없이 더 멀리 떨어졌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고, 가까이 있어서 좋을 게 없다는 것을 잘 아는 것이다.
“아주 자신감이 넘치는군. 특수 기술을 물려받은 특수 직업 유저인가.”
“…….”
“맞나보군.”
테라칸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고, 이서우는 그의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이서우는 평소 말이 앞서지 않지만 어깨에 힘을 잔뜩 준 채 다가오는 테라칸의 모습에 흥미가 동해 그 자신감이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했다.
뭔가 색다른 게 있을 거라 여겼는데 그의 예상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특수 직업에, 특수 기술까지 아는 걸 보니 너도 역시 특수 직업군이었군. 어쩐지 단기간에 그런 명성을 얻었다 했지.”
“얼마나 자신이 있기에 기습도 하지 않고 당당히 나타났는지 보지.”
“너 따위를 상대하는데 굳이 기습이 필요할까.”
“그 말 곧 후회하게 될 거야.”
이서우는 대검을 살며시 들어 올리며 테라칸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테라칸도 대검을 뽑아 들었다.
“대검?”
“왜? 같은 무기라서 놀랐나?”
“같은 무기라면 너무 쉽게 끝날 것 같아서 말이야.”
누구보다 대검에 자신이 있는 이서우다. 특이한 무기에 특이한 기술을 써도 진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대검이라면 보다 쉽게 이길 자신이 있었다.
이서우는 먼저 공격하지 않고 테라칸을 향하고 있던 대검을 살며시 내렸다.
“오만방자하군!”
하수에게나 보이는 행동을 이서우가 했으니 테라칸으로서는 화가 날 수밖에.
분노를 터트리며 테라칸이 땅을 박차고 선공을 취했다.
‘뭐지?’
빠르게 움직일 거라는 것은 알았지만 갑자기 시야에서 사라지더니 코앞에서 존재감이 나타나 살짝 놀랐다.
하지만 이서우는 특수한 스킬을 쓰고 있다고 여기고 대검을 들어 올려 공격을 막았다.
챙!
강렬한 쇳소리에 이번에는 테라칸이 놀랐다. 지금까지 누구도 이렇게 쉽게 공간 접기 이후에 펼친 공격을 막지 못했었다.
‘설마 저자도 공간을 활용하는 기술이 있는 건가?’
테라칸은 분명 바닥을 향하던 이서우의 대검이 순식간에 자신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중간 과정 없이 아래로 향한 대검이 눈앞에서 나타나려면 공간을 활용하는 기술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했다.
“좋은 걸 보여 줬으니 나도 그에 화답을 해야겠지.”
예상치 못한 방어에 놀라 잠시 멈칫 하는 사이 이서우의 모습을 놓치고 말았다.
이서우는 초반부터 몰아치기로 하고 초월 가속을 사용했다.
그러자 그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지더니 테라칸의 등 뒤에서 나타났다.
테라칸은 이서우가 등 뒤로 갈 동안 전혀 반응을 하지 못하다가 차가운 대검의 기운이 느껴지자 화들짝 놀라 다시 공간 접기를 펼쳤다.
안도의 한숨을 쉬며 이서우에게 끌려 다니지 않으려고 더 강력한 공격을 준비하려는데, 느껴지지 말아야 할 기운이 코앞에서 감지되었다.
“헉!”
언제 다가왔는지 이서우가 대검을 휘두르자 테라칸은 급히 몸을 틀었다.
펑!
아슬아슬하게 피했다고 여겼는데 바닥이 폭발하며 돌파편들이 심하게 튀었다.
그냥 평범한 돌이었다면 테라칸에게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았겠지만 내려찍는 순간 마나를 담았기에 돌조각에도 마나가 담기게 되었다.
“큭.”
신음 소리가 절로 나왔다.
테라칸은 이대로 있다가는 큰 낭패를 당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직감하고 공간 부수기를 시전했다.
공간 부수기는 타인의 영역에서 벗어나는 기술 중 하나로 공간 접기보다 훨씬 빠른 기술이었다.
하지만 이서우의 동작이 더 빨랐다.
“공간 장악!”
테라칸이 벗어나려 한다는 것을 알고 이서우는 짧게 외쳤다.
굳이 소리치지 않아도 되지만 상대에게 경고를 하는 것이다. 네가 가진 이동 기술로는 날 벗어날 수 없다고.
일견 자신의 수를 드러내는 것이 미련해 보일 수도 있지만 이서우가 이렇게 함으로 이제 테라칸은 공간 접기와 공간 부수기를 편하게 쓸 수 없었다.
“큭.”
몸이 옴짝달싹할 수 없게 되자 테라칸의 인상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이서우는 여유롭게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항상 뛰는 놈 위에 나는 분이 계시다는 걸 기억해.”
대검이 닿는 거리까지 간 이서우는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대검에 마나가 담기자 영롱한 푸른빛이 감돌았다.
4차 전직으로 하이 레벨 최종 단계까지 진화하면서 마나의 성질도 달라졌다.
더 순수하게 정제된 마나는 화려하게 보이지 않아도 그 속에 무서운 힘을 내포하고 있었다.
지금 보이는 은은한 푸른빛과 과거에는 10만 가까이 마나를 불어넣어야 가능한 힘을 담고 있었다. 1만도 안 되는 마나로 말이다.
테라칸은 이서우의 대검에 맺힌 마나의 힘을 읽을 수 있었다.
정확하게 얼마나 강한 힘을 낼지는 감을 잡을 수 없지만 치명타를 맞으면 생명력이 상당히 빠질 거라는 짐작은 가능했다.
이서우는 대검을 횡으로 그어 테라칸의 목을 베려 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이었다!
팟!
목이 잘렸어야 할 테라칸의 모습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공간 장악은 10미터 안에 있는 대상을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있는 막강한 스킬이다.
4차 전직 이후 깨닫게 된 것으로 그 능력을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도 한 수는 있다는 거군. 그래, 너무 쉽게 죽으면 재미가 없지.”
“이놈. 잠시 후에도 그런 말을 할 수 있나 보자!”
“응?”
등 뒤에서 테라칸의 기운이 느껴져 몸을 돌려 보니 100미터 밖까지 벗어나 있었다.
대체 어떻게 그 짧은 순간에 저 먼 곳까지 갔을까.
어떤 기술을 썼는지도 궁금했지만 저 먼 거리에서 대체 뭘 하려고 저런 자신감을 보이는지가 더 궁금했다.
한데, 한 술 더 떠서 테라칸은 더 멀리 벗어났다.
찰나의 순간에 거의 1킬로미터까지 떨어졌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테라칸이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이서우는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