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0
레벨이 갑이다
260화
“저런 미친놈!”
이서우는 1킬로미터 밖까지 충분히 볼 수 있어 테라칸이 뭘 하는지 똑똑히 봤다.
테라칸은 인벤토리에서 뭔가를 꺼냈는데, 바로 장궁이었다.
2미터가 넘는 길이었는데, 딱 봐도 전설 급의 아이템이었다.
대검을 쓰는 자가 갑자기 장궁을 꺼내 들자 이서우는 뭐 저런 미친놈이 다 있나 싶어 어이없어 했다.
하지만 화살을 재고 잡아당기는데, 강력한 힘이 느껴졌다.
그제야 이서우는 테라칸의 특수 기술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직업이 두 개였다니. 어떻게 저게 가능하지? 이크,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냐. 일단 놈을 잡고 보자.’
이서우는 장난스러운 마음을 버렸다. 1킬로미터 밖에서 공격할 수 있다면 그에게도 상당히 위협이었다. 시간을 끌어 봐야 좋을 게 없기에 초월 가속을 최고로 끌어올리기로 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바람을 가르며 마나를 품은 화살이 날아왔다.
쌔애애액!
마나를 품은 화살은 음속을 돌파하며 엄청난 속도로 날아왔다.
보통은 일정 거리를 날아가면 화살의 속도는 약해지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테라칸이 쏜 화살은 갈수록 속도가 빨라졌다.
이서우는 순식간에 날아오는 화살을 보며 어떻게 처리할지 잠시 고민했다.
대검을 든 이서우는 힘의 우위를 확실히 보여 주기 위해 날아오는 화살을 잘라 버렸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언제 쏘아 보냈는지 은밀히 뒤따르는 화살이 있었다.
‘첫 발은 미끼였고, 이게 진짜군. 하지만 대상을 잘못 골랐어.’
퍼석 하는 소리가 나며 화살이 힘없이 잘려 나갔다.
이서우는 곧장 초월 가속을 사용했다.
그러나 화살 공격을 다 막아 낸 줄 알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진짜 뭐하는 놈인지 궁금하네.’
이서우는 화살비가 날아오는 것을 느끼면서도 전혀 위축된 모습이 아니었다. 오히려 재미있다는 반응이었다.
이서우는 마나를 끌어 올려 마나 막을 펼쳤다.
팅팅팅팅팅팅팅팅팅!
수많은 화살이 마나 막에 부딪치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서우는 초월 가속을 유지하며 거리를 좁혔다.
‘어쭈, 이놈 봐라.’
화살 공격으로 인해 초월 가속 속도를 약간 줄였지만 일반 유저가 따라갈 수 없는 속도였다.
한데, 테라칸은 언제 몸을 뺐는지 다시 이서우와 거리를 벌였다.
피융! 피융! 피융!
또다시 먼 거리에서 화살이 날아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미약한 소리만 날 뿐 전혀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는 마나도 담겨 있지 않아 기운조차 느낄 수 없었다.
‘진짜 재밌는 녀석이네.’
화살 공격은 어차피 마나 막을 형성하고 있으면 당하지 않는다. 4차 전직을 통해 큰 발전을 이루어서 마나 막을 형성하고도 마나 공격을 펼칠 수 있었다.
그러니 이서우가 곤란할 일은 전혀 없다. 그 사실은 곧 증명되었다.
‘좋은 구경을 시켜 줬으니 나도 질 수 없지. 최근 깨달은 건데, 어디 한번 받아 봐.’
이서우는 마나 탄의 진화형인 마나 작열탄을 준비했다.
이전처럼 100만의 마나는 필요하지 않았다. 4차 전직 이후 10만의 마나만으로도 100만의 마나를 담은 작열탄과 비슷한 위력을 낼 수 있었다.
“마나 작열탄!”
마나 막을 펼친 상태에서 초월 가속에 마나 작열탄까지 사용했다.
3차 전직이었다면 이렇게까지 깔끔하게 세 가지 기술을 동시에 사용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서우가 동시에 세 가지 기술을 쓰자 테라칸은 눈으로 보면서도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마나를 담는다는 것은 파괴력을 극대화한다는 뜻이다.
그런 공격을 펼치면서 다른 스킬에 마나를 담는다?
그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크아아아악!”
거리가 무려 1킬로미터나 떨어져 있었는데도 마나 작열탄은 순식간에 날아와 꽂혔다.
테라칸은 긴 비명 소리와 함께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생명력이 무려 50퍼센트나 빠져나갔다.
거리가 멀어서 크리티컬 대미지가 터지지 않았으니 망정이지 가까웠다면 생명력이 30퍼센트 미만으로 떨어졌으리라.
이서우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이제 이겼다는 의미다.
초월가속을 극대화해서 가까이 다가가 대검을 찔러넣었다.
“큭. 이, 이놈. 오늘 일은 절대 이, 잊지 않겠다.”
-테라칸을 처치하셨습니다.
-명성 500이 올랐습니다.
“쳇. 아이템도 안 떨구네. 하긴, 보호 주문서를 발라 놨겠지.”
패치가 되면서 죽어도 장비를 떨어뜨리지 않는 아이템이 생겨났다.
1회성 소모품 아이템이었는데, 가격이 상당히 비싸지만 전설급 아이템을 착용한 유저가 늘어나면서 불티나게 팔리고 있었다.
생산직들은 이 보호 주문서를 혹시나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열심히 숙련도를 올렸지만 아직까지는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4차 전직을 완료하고 고급 숙련도에 도달해야 해서 당분간은 NPC를 통해서만 구입이 가능했다.
가격은 등급에 따라 달랐는데, 영웅 등급 보호 주문서만 해도 가격이 백만 단위고, 전설급은 천만 단위였다.
초월 강화까지 하면 영웅 아이템도 수억 원이나 하니 그다지 비싸지 않다고 여길지도 모르지만 방어구, 악세서리, 무기까지 무려 11개에 주문서를 다 발라야 한다.
게다가 일회성이니 한 번 죽으면 또 사야 한다.
부자들이야 전설급 아이템에 모두 보호 주문서를 발라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현질을 할 수 없는 유저에게는 큰 부담이었다.
“테라칸이라……. 기억해 두지.”
이서우와 테라칸의 싸움이 시작되자마자 유저들이 다 도망을 가 버려서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서우는 접속 종료 시간이 다가와 마을로 향했다.
접속을 종료하자마자 이서우는 이설아에게 테라칸의 영상을 건넸다.
“이거 올려 줘.”
“무슨 영상이야?”
“중국쪽 4차 전직 유저 영상.”
“중국쪽에 벌써 4차 전직 유저가 나왔어?”
“나도 놀랐어. 한데, 좀 특이한 기술을 사용하는 녀석이야.”
“오빠가 영상을 찍을 걸 보니 영상 속 주인공이 누군지 몰라도 완전 좌절했겠네.”
“많이 놀랐을걸.”
“얼굴은 안 나와도 싸우는 거 보면 누군지 다 알 텐데, 공개되면 얼굴 못 들고 다니는 거 아냐?”
“그쪽에서 먼저 도발한 거니까 그런 사정까지 다 신경 써줄 필요는 없지.”
“하긴, 그것도 그러네. 그럼 이건 광고만 넣어서 무료로 올릴게.”
“본방송에 넣기에는 좀 그러니까 그게 낫겠네.”
“응.”
영상 업로드는 그 자리에서 금세 처리가 되었다.
광고는 이미 대기가 있어 따로 확인할 필요가 없었다.
그때 김소연이 들어왔다. 한데, 표정이 상당히 딱딱했다.
“조금 전에 종료했다고 해서 바로 왔어.”
“누나 급한 일인가 봐?”
“급해.”
“무슨 일인데 그래?”
“우리 회사에 방송 진행자들 공간이 따로 있는 거 알지?”
“알지. 거기도 폭발 직전이야?”
“짝퉁 영약 사건이 벌어지고 이틀 만에 불만 글이 천만을 넘어서기는 했지.”
“좀 많네?”
“전무후무한 기록인데 좀 많다는 말로 때우려고?”
“근데 거기가 왜?”
여기서 차단을 안 하면 잔소리가 또 나올 테니 이서우는 얼른 본론을 꺼내라고 압박했다.
“거기 비밀 글이 하나 올라왔거든.”
“비밀 글?”
이서우의 되물음에는 평소에도 자주 올라오니 특별할 게 없지 않느냐는 의미와 함께, 그런 뻔한 이야기라면 굳이 꺼내지 않았을 테니 그 비밀 글이 무슨 내용인지 얼른 말해 보라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었다.
“응. 비밀 글. 익명으로 쓴 건데, 아무래도 이번 짝퉁 영약 사건과 연관이 있는 사람 같아. 어쩌면 짝퉁을 만들어 낸 당사자일지도 모르고.”
“그래?”
“응.”
“무슨 내용인지 일단 보여 줘.”
“잠시만.”
김소연은 얼른 홀로그램을 띄웠다.
-이번 짝퉁 영약 사건 때문에 직접 만나고 싶은데, 괜찮다면 답글로 장소와 시간을 말해 줬으면 좋겠군요.
글의 내용은 무척이나 짧았다. 구구절절 나열된 게 아니라 핵심만 나와 있었다.
“이래서 누나가 확실히 말을 못 한 거구나.”
“응. 이 글만 봐서는 당사자인지 모르니까. 하지만 연관이 있는 사람이라는 건 확실해.”
“나도 그 점에는 동의해. 한데, 왜 하필이면 직접 보자고 했을까?”
“내가 추측하기로는 게임 내에서는 감시가 붙은 것 같아. 들키면 안 되는 이유가 있는 거겠지. 그러니 이렇게 은밀한 방법으로 널 보자고 하는 거 아니겠어?”
“일리가 있네. 방법을 우리보고 정하라고 하니 안심도 되고.”
“오빠, 만나 보려고?”
“지금으로서는 다른 방법이 없잖아. 일단 우리 쪽이 주도권을 쥘 수 있으니 만나 보는 게 좋지 않겠어?”
“그건 그렇지만…….”
이설아가 걱정하는 것도 이해는 된다. 최근 여러 사건이 터졌으니 염려가 되는 것이리라.
하지만 약속 장소만 잘 잡으면 우려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걱정 마. K사에서 직접 보면 되니까.”
“K사에서?”
“똥개도 자기 집 앞마당에서는 50점 먹고 들어간다잖아.”
“그런 말도 있었어?”
“아버지께서 자주 하시던 말씀이야. 옛날에 자주 쓰신 말이겠지.”
“듣고 보니 현명한 말씀이네.”
출처가 이서우의 아버지라고 하니 이설아는 얼른 동조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럼 답변을 K사로 할까?”
“그렇게 해 줘. 오랜만에 박대표님 사무실에서 미팅 한번 하지 뭐.”
“알았어. 시간은?”
“7시간 뒤.”
“괜찮겠어?”
“시간을 최대한 아껴야지. 난 괜찮으니 그 시간으로 잡아 줘.”
“알았어. 설아도 그럼 그 때까지 푹 쉬고.”
“응. 언니도 좀 쉬어 둬.”
“그래야지. 그럼 내일 봐.”
“응. 언니.”
“누나, 들어가.”
이서우는 3시간 동안 운동을 했고, 이설아는 먼저 잠이 들었다.
3시간을 자고 일어난 이서우는 이설아와 식사를 한 뒤 김소연과 함께 박 대표의 집무실로 향했다.
약속 시간까지는 아직 조금 남아 있었지만 오랜만에 박대표와 이야기도 나눌 겸 일찍 나섰다.
오늘 방문자 인원은 두 사람이라고 했다.
박 대표와 대화를 한창 하고 있는데, 비서가 방문자를 데리고 왔다.
* * *
“이 방법이 통할까?”
“형님, 제가 파악한 바로는 전장의 지배자는 그렇게 상식에 어긋나는 사람이 아니에요. 이설아 사건도 그렇고, 방송에서 보인 이미지도 그렇고, 먼저 진심어린 사과를 하면 받아줄 겁니다.”
“그러면야 좋겠지만 이번 사건으로 명성이 곤두박질쳤는데, 정말 이해해 줄지 그게 걱정이다.”
“일단 비밀 글에 익명으로 글을 올려 뒀으니 답변이 오겠죠. 약속 장소와 시간을 정하라고 했으니 아마 그들이 일하는 K사로 오라고 할 겁니다.”
“넌 만남을 허락할 거라 확신하는구나.”
“네. 어차피 저들도 이번 사건에 대한 실마리가 없기 때문에 분명히 받아들일 겁니다.”
“진짜 그랬으면 좋겠다. 고생해서 키운 길드가 한 순간에 날아간다고 생각하니 잠이 안 온다. 잠이 안 와.”
“놈들에게 끌려다니는 것보다는 이편이 훨씬 더 결과가 좋을 테니 너무 염려하지 마세요.”
“그러고 싶다만 그게 어디 쉽냐.”
노가다도 말은 그렇게 했지만 염려를 모두 떨칠 수는 없었다. 앞으로 어떻게 하냐에 따라 길드가 와해될 수도 있었다.
대화가 잠시 중단되자 두 사람은 새로 고침을 초단위로 설정해 둔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형님!”
“나도 봤다. 얼른 열어 봐.”
“네.”
그는 답글을 보며 떨리는 손으로 터치했다.
-7시간 후 K사 대표실에서.
“역시!”
“네 말대로 진짜 받아들였구나!”
“네, 형님. 일단 한 고비는 넘겼어요. 가면 서로 통밥 굴리지 말고 진실된 사과부터 하셔야 해요. 저도 마찬가지고요.”
“당연히 그래야지. 하지만 당한 입장에서 보면 과연 받아 줄지 모르겠다. 이번 사건으로 손해를 엄청 봤을 테니 말이다.”
“하는 데까지는 해 봐야죠. 일단 눈 좀 붙이세요. 맑은 정신으로 가야 대화가 잘되죠.”
“그래. 알았다. 너도 눈 좀 붙여라.”
“네, 형님.”
초대박과 노가다는 서로 의기투합해서 한 집에 같이 생활하고 있었다.
같이 있는 편이 의견을 나누기도 좋고, 효율적으로 게임을 할 수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나갈 준비를 했다.
자율주행차에 올라 목적지를 말하고 차분히 기다렸다.
K사에 도착해 데스크 직원에게 말하자 일사천리로 대표실까지 안내를 받았다.
막상 대표실이 보이니 심장이 튀어나올 듯 심하게 요동쳤다.
하지만 내친걸음이다. 이제는 되돌릴 수가 없었다.
“안으로 들어가시면 돼요.”
“고맙습니다.”
비서가 노크를 하고 사라지자 초대박과 노가다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