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2
레벨이 갑이다
262화
배상철에게 명령을 받은 안낙원은 간부들에게 몇 가지 지시를 하고 돌아왔다.
초대박과의 약속 시간을 놓치지 않으려는 것이다.
‘흐흐흐, 혼자 독립하면 대박이 놈을 좀 부려먹어야지. 그러려면 약점을 확실히 잡는 게 최고지.’
그의 머릿속에는 오직 돈을 벌 궁리밖에 없었다. 그것도 정상적인 방법이 아니라 사기를 치면서까지 말이다.
잠시 후 초대박이 찾아왔다.
“마스터 님을 뵙습니다.”
황제에게 예를 올리는 것처럼 극존칭을 써 가며 허리를 숙였다.
배상철은 뉴 월드를 현실과 다름없다고 생각하는지 초대박의 예를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배상철은 초대박의 행동이 만족스러운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며칠 더 걸릴 줄 알았는데, 빨리 온 걸 보니 결심이 섰나보네.”
“변수가 생겨서 빨리 온 것입니다.”
“변수? 무슨 변수?”
“테스트를 해 보려고 골드를 복사했는데, 불가능하다는 메시지를 들었습니다.”
“뭐? 복사가 안 된다고?”
“네.”
“지금 그걸 나보고 믿으라는 거야? 이게 지금 누굴 바보로 아나. 영약이 복사가 됐는데, 골드가 안 된다는 게 말이 돼!”
배상철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바짝 긴장한 초대박은 호흡을 가다듬고는 말했다.
“저도 이상해서 글로벌사에 문의를 한 결과까지 가지고 왔습니다.”
“글로벌사? 보여 줘.”
“네.”
문의 내용이 담긴 파일을 변환하면 게임 내에서도 확인이 가능했다.
초대박이 홀로그램을 띄우자 글로벌사의 답변이 떴다.
-귀하가 보내 주신 문의 내용은 잘 확인해 보았습니다. 말씀하신대로 특수 능력 또한 이미 글로벌사가 개발한 것이기에 한계가 없어야 합니다. 다만, 귀하께서 획득하긴 능력은 특수한 것으로, 자칫 뉴 월드 시스템을 붕괴시킬 수 있는 위험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배상철은 부정적인 글로벌사 측의 도입부에 살짝 얼굴을 찌푸렸다.
아직 뒷이야기가 더 있어 배상철은 헛기침을 한 번 하고는 계속 읽어 내려갔다.
-개발 당시 이 때문에 복사 능력을 빼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다양성을 위해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이에 복사 능력에 강한 페널티를 줬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골드 복사는 불가능하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힘들게 숙련도를 높이셨다는 것은 잘 알지만 많은 사람들이 뉴 월드를 재미있게 즐기기 위해서 부득이하게 제한을 둔 점 너그럽게 이해해 주기를 바랍니다. 혹시 추가로 궁금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 문의해 주십시오. 뉴 월드 운영자 올림.
“이런 썩을!”
정말 뉴 월드에서 보낸 답신이었다.
배상철은 거친 소리를 내뱉으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하지만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불가능한 것으로 초대박을 압박할 수는 없었다.
“저기…….”
“뭐야!”
분노가 조금 사그라졌다고 여기고 말을 꺼낸 것인데, 여전히 화가 단단히 난 목소리였다.
“골드는 되지 않지만 제가 한 가지 생각해 낸 게 있습니다. 그래서 골드 복사가 불가능하다는 걸 알지만 서둘러 찾아온 것입니다.”
“뭐지?”
대안이 있다고 하자 그제야 조금은 목소리가 누그러졌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실망스러운 말을 하면 가만히 안 두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초대박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카피 기술로 돈을 벌기 위해 저는 많은 아이템을 살폈습니다. 처음에는 마나 비약으로 할까 했는데, 들이는 노력에 비해 수익은 적을 것 같아 패스를 했죠. 그러다가 영약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건 알고 있다. 그맘때쯤 카피 숙련도가 발전했으니 당연히 영약으로 눈이 돌아갔겠지. 잡소리는 빼고 본론만 말해라.”
“다름이 아니라 골드가 안 된다는 걸 알고 또 뭐가 좋은 게 있나 싶어 찾는 중에 한 가지 좋은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래? 뭐지?”
배상철은 그에게 질문을 하고서 잠시 안낙원을 바라보았다. ‘그런 아이템이 있으면 진즉 말을 했어야지.’라는 눈빛이었다.
하지만 안낙원은 억울했다. 할 일이 태산 같은데 매일 같이 거래중개소나 경매장만 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
물론 모니터링을 하는 인원을 두고 있다. 하나 4차 전직에 대간 기대감이 극에 달해 하루 종일 아이템이나 뒤지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구멍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강제로 일을 부여한다면 반발이 커져서 오히려 손해였다.
“혹시 약초액이라고 들어보셨는지요?”
“약초액?”
“아, 마스터님, 초반에 잠깐 물건이 나온 적이 있습니다. 그 이후로는 사라져서 신경을 쓰고 있지 않았는데 아이템에 바르면 공격력이나 방어력을 상승시켜 주는 소모품 아이템입니다.”
“뭐? 그게 정말이야?”
“네, 마스터님.”
안낙원이 추가 설명을 하자 배상철의 눈빛이 반짝였다. 공격력과 방어력을 올려 준다면 많은 유저들에게 인기를 끌 수 있었다.
특히 중국 유저와 기존 유저 간의 전투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엄청난 돈을 벌어다 줄 수 있는 아이템이었다.
“그 약초 액을 복사할 수 있다는 뜻이겠지?”
“물론입니다! 11개 아이템에 모두 다 바를 수 있어서 효과도 엄청납니다.”
“오오, 그래? 공격력이나 방어력이 얼마나 오르지?”
“놀라지 마십시오. 스페셜 등급의 약초액은 공격과 방어력을 동시에 올려 주면서 생명력과 마나까지 증가시켜 줍니다. 그것도 1시간씩이나요.”
“헐! 그게 정말이더냐?”
“네. 잽싸게 구입해 온 게 있습니다. 한 번 보십시오.”
“어서 가져와 봐라.”
초대박이 스페셜 등급의 약초액을 건넸고, 배상철과 안낙원이 서둘러 확인했다. 아이템 하나당 그런 능력치 향상이 있다면 엄청난 가격에 팔릴 것이다.
“아이템 능력은 확실히 뛰어나군. 하지만 카피 이후가 문제일 터. 카피를 하면 어느 정도 성능을 보이지?”
“3분의 1입니다.”
“3분의 1? 그게 정말인가?”
“네, 마스터님.”
“마스터님, 3분의 1의 능력을 카피할 수 있다면 정말 대박입니다. 11개 아이템에 모두 다 바르면…….”
스페셜 약초액은 공격과 방어력을 3,000씩 올려 주고, 생명력 1만에 마나 5,000까지 상승시켜 준다.
3분의 1이면 공격과 방어가 1,000씩, 생명력 3,333, 마나 1,666을 증가시켜 준다.
11개 아이템에 모두 다 바르면 엄청난 효과를 누릴 수 있었다.
이서우는 하이 레벨이고, 능력치 상승도 일반 유저보다 훨씬 높다.
전직으로 인한 능력치 향상은 거의 사기 수준인 데다가 진화하는 아이템까지 있기에 공격력이 500만에 가까운 것이다.
하지만 일반 유저는 100만까지 올리기도 쉽지 않았다. 그나마 4차 전직을 하고, 전설 최상급 아이템을 초월강화 풀셋으로 맞춰야 100만을 넘길 수 있었다.
그것도 철저히 전투 위주의 세팅이 되어야 그런 것이지 탱커의 경우는 70만도 넘기가 힘들었다.
스킬이 있으니 레이드 몬스터나 던전 보스와 싸울 수 있는 것이지 순수한 공격력만으로는 게임이 쉽지 않았다.
그러니 공격과 방어를 1만 1천이나 올릴 수 있다는 것은 큰 매력이다.
집단 전투가 벌어질 때는 더 큰 이점을 누릴 수 있으니 지금이 비싼 값에 팔 수 있는 적기였다.
“유지 시간도 20분이면 정말 엄청 난 겁니다. 복사하기도 쉬워서 공급도 용이합니다.”
“하하하하. 역시 초대박 마스터군. 뭔가 신선한 걸 보여줄 거라 믿었어.”
“여부가 있겠습니까.”
배상철은 마치 화를 낸 적이 없는 사람처럼 표정이 밝아졌다.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안낙원의 얼굴에도 옅은 미소가 담겨 있었다.
‘크크크. 이번에도 엄청 챙길 수 있겠군. 얼마나 건질 수 있으려나.’
서로 다른 상상을 하던 두 사람은 이내 현실로 돌아왔다.
“30만 개 정도 분량이면 1차분으로 충분할 것 같은데, 얼마나 모여 있지?”
“30만 개 정도면 하루만 여유를 더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래? 양이 꽤 많은데도 엄청 빨리 카피가 가능한가 보군.”
“네. 물약에 속하는 거라서 비교적 쉽습니다.”
“좋아. 아주 좋아. 그러면 내일 약초액을 가지고 이곳으로 오도록.”
“네, 마스터님.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그래, 그래. 얼른 가 봐.”
“네.”
초대박은 조심스럽게 헤라클레스 길드 마스터의 거치를 빠져나갔다.
사실 물양은 이미 충분했다. 단지 더 많은 양을 가져오라는 말을 듣는 게 싫어서 하루 말미를 달라고 한 것이었다.
초대박이 나가고 배성철과 안낙원이 미소를 지으며 마주 보았다.
“넌 어서 천유종에게 이 사실을 말하고 가격을 협상하도록.”
“네. 마침 놈들도 전장의 지배자에게 당한 게 있어서 기를 쓰고 사려 할 겁니다.”
“개당 최소 50골드는 받을 수 있겠군.”
“50골드가 아니라 잘만 거래하면 100골드도 충분할 겁니다.”
“크크크. 이래서 내가 부길마를 좋아한다니까.”
“중국 놈들이 괜한 자존심만 세잖습니까. 자존심을 살살 긁으면 100골드에 살 겁니다.”
“하긴, 중국 놈들이 돈이 많지. 대륙 스케일이란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니까. 혹시라도 깎으려면 다른 사람에게 넘긴다고 해. 전장의 지배자를 상대하려고 눈에 불을 켜고 있을 테니 어쩔 수 없이 사게 될 거야.”
“네. 제게 맡겨주십시오. 한데, 초대박에게는 개당 얼마를 주실 생각이십니까?”
“25골드 정도면 되지 않겠어?”
“그렇게나 많이 주시게요?”
“너무 홀랑 벗겨먹으면 오래 못 가. 놈들도 돈 맛을 조금 보여 줘야 신나서 만들지.”
처음에는 파는 금액의 반을 줬다. 한데, 가격이 계속 줄어들더니 4분의 1 수준으로 내려와 있었다.
배상철의 말에 안낙원이 굽실거리며 말했다.
“마스터님의 깊으신 뜻을 제가 이해를 못 했네요. 죄송합니다.”
“아냐, 너도 조금 더 지내다 보면 그 정도는 충분히 파악할 수 있을 거야.”
“마스터님 밑에서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암, 그래야지.”
배상철은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활짝 웃어 보였다.
초대박이 말한 하루는 현실 시간이다.
하루가 지나고 초대박은 다시 배상철을 찾았다.
“드디어 왔군. 기다렸어.”
“풀 접속으로 열심히 만들어서 마스터님의 기대보다 훨씬 더 좋은 성과를 가지고 왔습니다.”
“그래?”
“네. 말씀하신 물량보다 20만 개가 더 만들어졌습니다.”
“오오, 좋아. 아주 좋아!”
안낙원의 활약으로 개당 100골드에 팔기로 합의를 봤다.
초대박이 물약을 만들고 있을 때, 이서우는 중국 유저들을 아주 싹 쓸어 버렸다.
너무 많은 유저들이 죽는 바람에 천유종이 독이 바짝 올랐다.
그런 이유로 흔쾌히 100골드에 사겠다고 한 것이었다.
“한데, 저에게는 얼마나 주실지…….”
“25골드로 하지.”
“하지만 마스터님, 그 가격으로는 재료비도 안 나옵니다.”
“그래서 더 가져가겠다고?”
“그게, 30골드는 주셔야 더 만들 의욕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밤새 열심히 해서 마스터님이 말씀하신 것보다 무려 20만 개나 더 가져왔는데 재료비 걱정을 해야 한다면 어찌 앞으로 카피를 할 수 있겠습니까?”
허리를 깊숙이 숙이는 초대박을 보며 배상철은 안낙원을 쳐다보았다.
-마스터님, 아무래도 이번에는 들어줘야 할 것 같은데요? 50만 개면 이익도 엄청납니다. 만드는 속도가 엄청나니 30골드로 하시죠.
-하긴, 30골드라도 70골드는 앉은 자리에서 이득을 보는 거니 상관은 없겠지. 줘.
-네, 마스터님.
배상철의 명령이 떨어지자 안낙원이 초대박을 바라보았다.
“물건은?”
“가져왔습니다.”
“개당 30골드면 1,500만 골드지?”
“가, 감사합니다.”
“물건이나 내 놔.”
“네. 부마스터님.”
안낙원은 배상철에게 돈을 받아 거래 창에 올렸다.
서로 확인을 선택하고 거래를 완료했다.
초대박은 인벤토리에 적힌 골드 숫자를 감격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앞으로도 개당 30골드에 쳐 줄 테니 열심히 만들어. 알겠어?”
“여부가 있겠습니까. 앞으로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만 가 봐.”
“네. 마스터 님.”
초대박이 물러가고, 안낙원은 그길로 천유종을 만나 거래를 했다.
천유종에게 개당 100골드에 판매한다고 했지만 그건 표면적인 것이었다.
안낙원은 거래가격의 10퍼센트 정도를 물건으로 받았다.
‘크흐흐흐흐. 한 번에 500만 골드라니. 다음번에는 100만 개라고 했으니 1천만 골드구나. 그것만 하고 사라지는 거야.’
안낙원은 거래를 완료하고 즉시 배상철에게로 갔다.
배상철은 5,000만 골드가 생겨서 기분이 좋았고, 안낙원은 수고비로 받은 100만 골드와 뒷거래로 얻은 500만 골드까지 공돈이 생겨서 좋았다.
하지만 몇 시간 뒤, 안낙원이 사색이 되어 뛰어들어 왔다.
“마, 마스터님! 크, 큰일 났습니다!”
“큰일? 무슨 큰일?”
“그, 그게 천유종이 우리 길드를 치기 위해 20만 명을 이끌고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뭐? 20만 명?”
“네.”
“아니, 대체 그자가 왜?”
“그것이…….”
이어진 설명을 들은 배상철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어찌나 화가 났는지 무기를 꺼내 테이블을 반 토막 내 버렸다.
“이런 개자식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