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이 갑이다-263화 (263/341)

# 263

레벨이 갑이다

263화

“그 말이 사실이겠지?”

“네, 마스터님. 놈이 우리에게 짝퉁의 짝퉁을 팔았습니다.”

“감히 나에게 짝퉁을 팔아? 이놈이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왔구나. 넌 당장 가서 놈을 잡아 와라.”

“잡아 오는 거야 어렵지 않지만 천유종을 어쩌시려고…….”

“어쩌긴 뭘 어째? 협상을 해야지.”

“하지만 천유종이 화가 단단히 났습니다.”

“돈으로 잘 달래면 된다. 그리고 천유종에게 준 돈의 몇 배를 초대박에게 뜯어 내면 돼. 그러니 반드시 잡아 와!”

“네, 마스터님!”

안낙원은 서둘러 대박 길드 거처로 향했고, 배상철은 길드원들을 재빨리 소집해 천유종이 오고 있는 길목으로 서둘러 달려갔다.

20만 명을 끌고 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어서 속도가 빠르지 못해 대비할 시간을 벌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가 모은 길드원은 고작 1만 명이 전부였다. 던전에 있거나 하이 레벨 지역에서도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 사냥을 한다고 연락조차 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다.

‘개자식들. 마스터가 오라면 바로 올 것이지 이것들이 개겨? 어디 이번 일만 넘기면 보자.’

그 동안 너무 풀어줬다고 생각한 배상철은 천유종을 달랜 뒤 제대로 교육을 시켜야겠다고 결심을 했다.

30분쯤 기다리니 수많은 사람들이 개미떼처럼 몰려오고 있었다.

이미 소문이 났는지 주변에는 유저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경비병들에게 제재를 당할 것을 우려해 마을에서 꽤 먼 거리에서 기다리고 있어 뒤탈은 생기지 않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가장 선두에 천유종이 있었다.

“사기꾼 새끼가 알아서 죽으려고 나왔구나.”

“천 마스터, 뭔가 오해가 있나 본데, 나도 물건을 제공해준 놈에게 당한 거야.”

“그래서? 랭킹 1위 길드의 마스터나 되는 주제에 책임을 회피하시겠다?”

“책임을 회피하겠다는 게 아니라 좋게 일을 마무리했으면 한다는 거지.”

“황당한 놈이군. 우리가 네놈의 그 약초액 때문에 얼마나 피해를 본 줄 알아? 전장의 망나니에게 죽은 인원만 10만 명이야. 뭔가 잘못됐다는 걸 알고 재빨리 후퇴를 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50만 명이 다 죽었을 거야. 그건 어떻게 책임질 거지?”

“그건…….”

일찍 알았든 늦게 알았든 어차피 전장의 지배자에게 죽었을 거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차마 입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그러면 천유종은 그걸 알면서도 그 딴 쓰레기 아이템을 팔았냐고 호통을 칠 게 뻔했으니까 말이다.

20분 지속 시간이어서 천유종은 전장의 망나니(중국 유저들은 전장의 지배자를 그렇게 부른다)를 만나면 약초액을 쓰라고 신신당부했다.

워낙 고가여서 최대한 시간 활용을 잘해야 낭비를 줄일 수 있다는 이유를 달았다.

그 말대로 이서우가 나타났을 때 그들은 일제히 약초액을 사용했다.

한데, 공격과 방어력도 형편없었고, 지속 시간도 3분이 채 되지 않았다.

약초액 효과가 1분 만에 사라지는 사람도 있었다.

10만 명이 희생되고서야 완전히 후퇴할 수 있었다.

화가 단단히 난 천유종은 모든 길드원을 이끌고 헤라클레스 길드를 치기 위해 움직였다.

소식을 들은 배상철은 처음에는 천유종을 피하기 위해 하이 레벨 지역을 벗어나 기존 지역으로 갈까 했었다.

하지만 천유종의 분노가 다른 길드에게 영향을 미치면 결국은 헤라클레스 길드가 곤란한 처지에 놓인다.

누구도 이유 없이 죽는 걸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그런 일이 발생하면 모든 분노는 헤라클레스 길드로 향할 것이고, 대형 길드들과 적이 되는 상황까지 몰릴 수 있다.

그것만큼은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 무작정 나온 것인데, 배상철로서는 마땅히 화를 누그러뜨릴 만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시팔. 괜히 돈 이야기 꺼내면 상황이 더 험악해질 것 같은데 어쩌지?’

배상철은 천유종의 눈치를 보았다. 길드원이 죽은 것 때문에 분노하는 상황에서 돈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바보 멍청이가 아니라면 절대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이었다.

일촉즉발의 상황.

이 상황에서 먼저 입을 연 것은 천유종이었다.

* * *

“크하하하하하. 아이고, 배야. 당황해하며 초 마스터님을 욕하고 있을 놈을 생각하니 배꼽이 빠질 것 같네요.”

“호호호. 오빠. 그렇게 웃으니 나도 못 참겠잖아.”

“쌍으로 참 잘 하는 짓이다. 아무리 재미있는 일이라지만 웃음소리가 그게 뭐냐?”

“뭐 어때. 이럴 때 아님 언제 웃어 본다고.”

김소연의 타박에도 이서우는 더 큰 소리를 내어 웃었다.

“한데, 전장의 지배자 님,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다들 동의한 거니 괜찮습니다. 그것보다 초 마스터님이야말로 괜찮으시겠어요?”

“어차피 이대로 있으면 그놈에게 박살이 납니다. 그럴 바에는 확실한 보금자리로 들어가는 게 낫죠.”

“그동안 고생해서 일궈 오셨을 텐데…….”

“다 길드원들 잘되자고 한 일이니까요. 솔직히 욕심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죠. 하지만 덕분에 이미 꽤 벌만큼 벌었답니다.”

“아, 그거 말이군요.”

“네. 서우 님이 고생하셨는데 제가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게 아닌지 모르겠네요.”

“저야 그냥 약간 손만 본 거죠. 고생은 초 마스터님이 다 하셨잖아요.”

“아닙니다. 서우 님이 아니었으면 놈들의 눈을 제대로 속일 수 없었을 겁니다.”

“여튼 그건 초 마스터님이 노력한 대가니 더 이상 그 문제는 꺼내지 않으시는 게 좋겠습니다.”

“네, 서우 님.”

초대박은 이서우의 배려에 고개를 깊숙이 숙였다. 그냥 형식적으로 하는 감사의 표현이 아니라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것이었다.

이서우는 초대박이 찾아와 진실된 언행으로 용서를 구하는 모습에 화가 어느 정도 풀렸다. 대신 배상철에 대한 분노가 더욱 치밀어 올랐다.

이서우는 고민했고, 배상철을 완벽하게 엿 먹일 방법을 찾아냈다.

그가 생각한 방법은 바로 짝퉁의 짝퉁을 만들어 파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럴 듯한 짝퉁을 만들어 배상철과 안낙원을 속인다.

이미 몇 차례 초대박에게 짝퉁 아이템을 받은 경험이 있기에 그들은 크게 의심하지 않고 초대박이 만든 아이템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그게 바로 함정이었다. 겉으로는 약초액의 짝퉁으로 보이지만 그것은 짝퉁의 짝퉁으로 효능이 형편없었다.

그들을 속이는 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초대박에게서 얻은 정보 때문이다.

배상철과 안낙원은 그동안 스텟 증가 영약 짝퉁을 만들어다 주면 아무 의심 없이 팔았다는 것이다.

초대박도 후환이 두려워 절대 다른 마음은 품을 수 없었기에 그가 설마 짝퉁에 짝퉁을 만들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서우는 바로 그 점을 노린 것이었다.

“그럼 시작할까요?”

“네.”

-헤븐 길드의 길드 마스터 이서우가 당신을 길드로 초대합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네!”

초대박은 힘주어 대답했다.

-길드 마스터가 길드를 탈퇴하지 않고 가입을 수락할 경우 모든 길드원들이 자동으로 새로운 길드의 소속됩니다. 또한 그동안 대박 길드에서 누린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그래도 수락하시겠습니까?

“네!”

초대박이 길드 마스터여서 재차 물었지만 그는 짧고 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헤븐 길드에 가입이 되셨습니다.

-대박 길드를 통해 얻는 모든 혜택을 잃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저희가 오히려 고맙죠. 길드원들 중에 남아 계신 분들은 모두 저의 말에 따르고, 불법적인 일을 하지 않겠다고 확실히 약속한 거 맞나요?”

“네. 어떤 일이 있어서 마스터님의 명령을 따를 겁니다.”

“명령이라뇨. 그리 거창한 건 아닙니다. 같이 좋은 길드를 만들어 가면 되는 것이죠.”

“네.”

이서우는 이번 일을 진행하면서 길드 명을 바꾸었다. 사람들이 많아져서 그럴 듯한 이름을 생각하다가 자신이 속한 길드에서 뉴 월드를 하면서 모두가 낙원에서 살 듯 행복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변경한 것이었다.

이서우의 뜻을 따를 수 없는 사람들은 모두 길드에서 탈퇴했다.

아쉽지만 뜻을 같이 하지 않는 사람과는 함께 지낼 수가 없었다.

-마스터님, 지금 헤라클레스 부길마가 그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잘됐네요. 그렇지 않아도 상황을 좀 알아보려 했는데.

-네. 그럼 저희는 하던 일을 계속하겠습니다.

-네. 여기 일은 신경 쓰지 마시고 편하게 게임 즐기세요.

-네.

길드 채팅 창으로 소식이 전달되었다.

내용 전달이 끝나자 김소연이 입을 열었다.

“참, 서우야, 정보 팀은 따로 길드를 만들어서 운영할게.”

“따로?”

“길드명도 바꿨고, 인원도 늘었으니 정보만 따로 취급하려면 그게 낫지 않을까?”

“하긴, 전쟁이라도 나면 괜히 싸움에 휘말릴 테니 조용히 정보를 모으려면 그게 나을 수도 있겠네.”

“응. 어차피 이젠 NPC들도 너와 관련된 걸 다 아니까 정보 모으는 것도 어렵지 않아.”

“그러면 그렇게 해.”

이서우는 흔쾌히 승낙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초대박이 미안한 기색으로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 때문에 괜히 불편을 겪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호호, 아니에요. 너무 유령길드여서 걱정했는데, 차라리 잘 됐죠. 서우가 길드를 만들었다는 사실도 모르는 사람이 많거든요. 이제는 인원도 늘었으니 외부 활동도 좀 하겠죠.”

“언니, 과연 그렇게 될까?”

“쟤 성격상 힘드려나?”

“오빤 귀찮은 거 질색하잖아. 그냥 무난하게 흘러가지 싶어.”

“나 같으면 다 때려잡고 지존 놀이 제대로 한번 해 보겠다.”

“누나, 안 늦었어. 지금이라도 광렙해서 지존 놀이 해.”

“됐네요. 난 그냥 지금 이대로가 좋다.”

“거 봐. 귀찮잖아. 나도 그렇다니까.”

“그런가?”

김소연은 막상 힘을 휘두르며 유저들과 피터지게 싸울 걸 생각하니 고개가 절로 옆으로 움직였다.

“야 이, 개자식아!”

한창 대화를 하는데 갑자기 밖에서 누군가가 욕을 아주 목청껏 해 댔다.

“왔나 봅니다.”

“나가 볼까요?”

“네.”

“앞장서시죠. 전 뒤에서 따라가겠습니다.”

“네.”

초대박이 앞장섰고, 몇 발짝 뒤를 이서우가 쫓았다.

초대박이 길드 건물 밖으로 나가자 안낙원이 무기를 뽑아든 채 고래고래 소리를 치는 모습이 보였다.

“야 이, 개자식아. 네놈이 감히 짝퉁에 짝퉁을 팔아? 너 이 새끼, 앞으로 뉴 월드 못 하게 만들어 주…….”

분기탱천해서 떠들어 대던 안낙원은 초대박의 뒤에서 나타난 사람 때문에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왜? 더 해 봐?”

“다, 당신은…….”

“그래도 난 아네?”

“저, 전장의 지배자, 당신이 어떻게…….”

“그동안 힘없는 사람 돈 갈취하니까 좋았어?”

“가, 갈취라니. 우린 정당하게…….”

“정당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네놈이 무슨 짓을 한지 모를까 봐?”

“…….”

안낙원은 말문이 막혔다. 어떻게 전장의 지배자가 자신이 한 일을 안단 말인가.

그냥 찔러 보는 걸까.

그래, 그냥 툭 던져 보는 것일 테지. 길마도 모르는데 어떻게 저놈이 알까.

안낙원은 그렇게 생각하고 시치미를 떼기로 했다.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지만 난 저놈과 볼일이 있다.”

“그래? 네가 돈 빼돌린 걸 배상철에게 말할까?”

“그, 그걸 어……. 아니, 난 그런 적 없다!”

당황해서 자신도 모르게 말이 헛 나온 것을 얼른 수정했다. 하지만 이미 들을 사람은 다 들었다.

“뭐, 네가 배상철의 돈을 빼먹었든, 그놈을 배신하든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지.”

배상철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겠다는 뉘앙스를 풍기자 안낙원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서우의 뒷말에 다시 긴장했다.

‘대체 저놈이 여기에 왜 있는 거지. 젠장. 저놈을 당장 잡아 죽여야 하는데, 저 새끼 때문에 되는 일이 없네.’

이서우가 묘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몸이 움츠러들었다.

“나, 난 당신과는 정말 볼일이 없으니 자리를 비켜 주시오. 초대박과 할 이야기가 있소.”

“어쩌지? 초대박 님은 이제 우리 길드원인데.”

“뭐, 뭐요?”

안낙원의 목소리가 소프라노 톤으로 높아졌다. 남자의 입에서 고음이 나올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초대박 님에게 할 말이 있는 것 같은데 해 봐? 어차피 이제 우린 같은 길드여서 나도 들을 자격이 있으니까.”

“아, 아니오. 내가 잘못 찾아온 것 같소.”

“그런가. 천하의 헤라클레스 부길드 마스터가 실수를 할 때도 있나 보네. 돈 빼돌리는 건 정말 기가 막히게 하던데.”

“…….”

안낙원의 얼굴이 씰룩거렸다. 화는 나지만 이서우가 어떤 존재인지 알기에 꾹 눌러 참아야 했다.

“다시 말하지만 그건 오해요. 난 아무것도 잘 못한 게 없소. 그럼 난 이만 가 보겠소.”

“그러시든가.”

이서우는 피식 웃고는 안낙원을 쏘아보았다. 노골적으로 무시를 하는 눈빛인데도 안낙원은 이서우에게 아무런 불만도 제기하지 못했다.

그가 사라지자 일행들은 주변이 떠나가라 웃었다.

눈에서는 사라졌지만 그 큰 웃음소리를 안낙원이 듣지 못했을 리가 없다.

‘그래, 지금은 실컷 웃어 둬라. 너 혼자 그 많은 놈들을 다 지킬 수 있을 것 같으냐? 저렙 녀석들부터 불만이 쏟아지게 만들어 주마. 네놈에 대한 원성이 자자해지면 너도 별수 없을 것이다!’

안낙원은 걸음걸이에 분노를 담아 배상철이 있는 곳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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