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8
레벨이 갑이다
268화
“그 사람 기억나?”
“그 사람? 누구?”
“무기 두 개 쓰던 사람.”
“아! 기억나지. 근데, 그 사람이 왜?”
“그 한 사람 때문에 지금 기존 유저들이 아주 곤란한 상황에 처했어.”
“어떤?”
“어떤 기술을 익혔는지 모르지만 갑자기 엄청나게 강해져서 돌아왔거든.”
“그렇게 강하지 않았는데. 4차 전직 유저 중 벌써 600레벨에 육박한 사람도 있잖아.”
“너 없는 동안 600레벨 넘겼지. 중국 쪽은 550도 안 됐고.”
“그런데도 곤란을 겪고 있단 말이야?”
“응.”
이서우는 쉽게 납득이 되지 않았다. 550레벨이 안 된다면 아무리 높은 등급이라도 540레벨 장비를 차야 한다.
반면, 600레벨 장비는 능력치부터 차이가 커서 레벨 차에 따른 힘을 극복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곤란한 경우를 겪는다? 이서우가 상대해본 테라칸은 그 정도 수준은 아니었다.
“언니, 무슨 일인데 그래? 뜸 그만 들이고 빨리 말해 줘.”
“말보다는 직접 봐.”
김소연이 영상 하나를 띄웠다.
일대 다수의 전투였는데, 테라칸이 등장했다.
김소연이 부가 설명을 해 주었다.
“저기 모여 있는 사람들은 기존 유저들 중에서도 꽤 강력한 사람들이야. 전부 550레벨을 넘겼고, 아이템도 전부 초월강화까지 했어.”
“언니, 저건 마치…….”
“그래. 서우가 고레벨 유저를 상대하는 것 같은 느낌이지? 다들 이 영상 보면서 서우를 떠올리더라.”
“설마, 저 사람도 오빠처럼 하이 레벨을 깨달았다는 거야?”
“그건 아냐.”
영상을 묵묵히 바라보던 이서우가 끼어들었다. 누구보다 하이 레벨에 대해 잘 아는 그다.
“정말? 난 서우 너처럼 하이 레벨 유저가 아닌가 했는데.”
“하이 레벨은 저것보다 훨씬 강해. 뭔가 다른 게 있어.”
“다른 거?”
“일단 무기가 달라졌어. 날 상대할 때는 저 활이 아니었거든.”
“설마, 장비 차이 때문인 거야? 하지만 어차피 다들 전설 초월 장비일 텐데 차이 날 리가 없잖아.”
“누가 전설이라고 그래?”
“뭐? 설마…….”
이서우는 테라칸의 무기가 전설 등급 이상일 거라 예상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4차 전직 후 등급이 변한 펠렌의 장비에서 추측이 가능했다.
“내가 볼 땐 신화 등급 같아.”
“뭐? 신화 등급? 전설 위 등급이 벌써 나왔다는 거야?”
“벌써는 아니지. 레벨이 500을 넘겼는데, 신화 등급이 안 나온 게 오히려 이상하지 않아?”
“하긴, 생각해보면 네 말도 일리가 있어. 출시된 지 1년이 다 됐고, 평균 레벨도 370에 이르렀는데 신화 등급 아이템이 나오지 않은 게 좀 이상하긴 해.”
“오빠, 신화 등급이면 대박이겠다. 그치?”
“전설보다 2배 이상은 강해.”
“헐. 그 정도야?”
“내가 착용한 아이템은 기존보다 2배 이상 상승했어.”
“와, 대박. 그럼 서우 네 템도 신화라는 거잖아. 세트 템이니 전부다 신화라면…….”
김소연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무기만 신화인데도 레벨을 압도하는데, 모든 세트가 다 신화 장비라면 얼마나 강하다는 건지.
“오빠 장비가 다 신화 등급이었어?”
“4차 전직하고 진화하면서 바뀐 거야. 원래는 등급 표기조차 안 됐었으니까.”
“등급이 노출되자마자 신화라니. 5차 전직하면 그 위 등급이 된다는 거잖아. 6차 전직이면…….”
전직을 할 때마다 등급이 상승한다고 생각하니 정말 엄청난 아이템을 얻었다는 게 피부로 와 닿았다.
“하지만 서우야, 저 사람 장비가 신화라는 증거가 없잖아.”
“증거야 있지.”
“있어?”
“활만 쓰잖아. 저 사람 대검도 잘 썼어. 힘의 차이가 분명한데, 인원이 적든, 많든 활만 쓰는 걸 보면 대검보다 활이 훨씬 강하다는 뜻이야. 당시 대검도 전설 등급이었거든.”
“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
“백이면 백 전설과 신화 등급을 동시에 가지고 있으면 신화를 쓰고 싶을걸?”
“그건 그래. 나라도 그렇게 할 테니까.”
이서우의 말에 세 사람은 모두 동의를 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더 높은 등급의 무기를 쓴다는 건 게임 초보도 아는 사실이니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여튼 골칫거리가 저 사람이라는 거네?”
“응. 혼자서 아주 깊숙이 접근해서 유저들을 치고 빠지니 여간 까다로운 게 아냐. 사정거리도 1킬로미터 이상이어서 대처하기도 힘들고.”
“일반 유저라면 확실히 곤란할 거야. 저 사람 말고는 다른 문제없지?”
“저 사람이 가장 문제야. 어찌나 깊숙이 들어왔는지 가끔 마을에 있는 유저들을 공격한다니까.”
“마을까지?”
“응. 아주 골 때린다니까. 사람들이 전장의 지배자 빨리 안 오냐면서 난리도 아냐.”
“어쩐지 귀가 간지럽더라니.”
“이번에는 여행 가서 뉴 월드 소식 하나도 안 본 거야?”
“안 봤지. 앞으로는 여행 가면 일은 아예 머릿속에서 지우려고.”
“어쩐지 아무것도 모르더라니.”
이서우와 이설아는 여행하는 내내 뉴 월드 관련 소식을 일절 보지 않았다.
우연이라도 소식을 접할 법도 한데, 자연 속에 풍덩 빠져 허우적거린다고 문명과는 담을 쌓고 지냈다.
그 덕분에 아무 고민 없이 휴식을 즐길 수 있었다.
하루에 1시간만 자도 피곤이 풀리는 육체가 되었지만 확실히 제대로 휴식을 취하니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기분이 상쾌했다.
정신과 육체가 새로워지는 기분까지 들었다. 한 번 그 맛에 취하니 계속 갈구하게 되었고, 어느새 그 속에 풍덩 빠져들고 말았다.
감각이 극대화된 것도 바로 휴식을 제대로 취하면서부터였다.
“여튼, 테라칸만 처리하면 된다는 거네?”
“응. 지금으로서는 그래.”
“지금으로서는?”
“중국과 인도 쪽 길드들도 문제고, 또…….”
“또?”
“두 연합 간의 싸움으로 하이 레벨 지역이 어수선하잖아. 네가 관리자들도 엄청 죽여 버렸고.”
“통치자라도 나타난 거야?”
“아니. 아직은 아닌데, 상급 관리자들이 움직이려는 조짐이 보인다는 보고가 있어.”
“그래?”
“응. 아직 확실한 건 아닌데, 아마 그 부분도 네가 조사를 해 봐야 할 거야.”
“어차피 상급 관리자는 만나야 하니까 겸사겸사 확인하면 되겠네.”
“조심해. 상급 관리자는 하급 관리자보다 몇십 배나 강하다는 소문이 있으니까. 어쩌면 너처럼 하이 레벨일지도 모르고.”
“하이 레벨은 맞을 거야. 일반 몬스터도 하이 레벨이니 그들이라고 하이 레벨이 아닐 리는 없지.”
“그건 그렇지만 아직 확실히 드러난 건 아니잖아. 하급 관리자들도 하이 레벨이 아니었고.”
“그땐 나도 하급 관리자가 하이 레벨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여행 오기 전에 하급 관리자 많이 상대했었잖아. 그때 느낌으로는 일반 레벨과는 뭔가 다른 것 같았어.”
“그거야 원래 걔들이 강해서 그런 거 아냐?”
“처음에는 나도 그런 줄 알았는데, 내가 강해져서 그런지 상대의 경지가 보이더라고. 아마 일반 레벨과는 분명 다를 거야.”
“그러면 오히려 더 큰 문제네.”
“그리 큰 문제는 아냐. 어차피 걔들은 유저들이 강해져야 모습을 드러낼 테니까.”
“그거야 일반적인 경우고. 두 연합의 분쟁이 오래 지속될수록 통치자가 더 빨리 움직일 가능성이 높은 거 아냐?”
“그럴 가능성도 있긴 하지. 뭐, 그땐 또 나름의 방법이 생기지 않겠어?”
3차 전직 때 관리자를 처리했을 때는 별다른 느낌이 없었다.
그때는 그냥 강한 상대인 줄로만 알고 좋은 아이템을 얻기 위해 처치했었다.
한데, 4차 전직 이후 관리자를 상대할수록 뭔가 다르다는 게 느껴졌다.
자신과 같은 하이 레벨은 분명 아닌 것 같은데, 뭔가 다른 느낌 말이다.
이서우는 그것이 무엇인지 아직은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그래서 상급 관리자를 만나 보고 싶었다.
통치자가 먼저 나타난다고 해도 이서우로서는 큰 걱정거리는 아니었다. 4차 전직을 했고, 스텟 증가 영약도 많이 복용한 상태다.
4차 전직 후 근력 1당 공격력이 몇 배나 높아졌고, 다른 스텟들도 더 많은 능력치 향상을 보였다.
레벨 업 속도는 더디지만 스텟 증가 영약을 만들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능력치는 계속해서 상승하고 있었다.
“언니, 나도 그 점은 걱정 안 해. 그동안 오빠는 누구도 못 할 일들을 해 왔으니까.”
“여행 다녀오더니 아주 둘 사이가 더 끈끈해졌네. 그냥 이대로 결혼식까지 올리지?”
“어, 언니!”
“크흠.”
“쑥스러워하기는. 여튼, 그럼 난 더 이상 걱정 안 한다?”
“걱정 마. 잘 해결될 테니.”
“그래, 그럼 내 볼일은 끝! 대표님은 할 말 있으세요?”
“서우가 알아서 잘할 테니 나도 믿고 있어야지.”
“그럼 우린 가 볼 테니 쉬어. 참, 접속은 언제부터 할 거야?”
“오늘은 주 변호사님과 약속이 있어서.”
“설마 나가려고?”
“아니. 이곳에서 보기로 했어.”
“그래. 당분간은 되도록 나가지 마.”
“그래야지.”
“그럼 쉬고, 내일 보자.”
“들어가. 대표님도 들어가세요.”
뉴 월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장길수와 있었던 일이 희석되었다.
두 사람의 노력에 이서우는 미소를 짓고는 주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약속 시간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는 식사를 했다.
“역시 집밥이 최고야.”
“호호호. 오빠, 거기서도 한식 먹었잖아.”
“근데, 희한하게 느낌이 달라.”
“미각도 예민해진 거야?”
“무슨 재료가 들어갔는지 맛만 보면 척척 알아내니 민감해지긴 했지.”
“그러다가 요리사로 나서는 거 아냐?”
“요리사 되면 가게 하나 차려 주게?”
“호호호. 열 개라도 차려 줘야지.”
“그러다 망하면 어쩌려고.”
“망하면 뭐, 오빠가 책임지는 거고.”
“그건 당연한 거고.”
“호호호. 든든하네. 그럼 식당 자리부터 알아볼까나?”
“일한다고 바쁠 텐데 그럴 시간이나 있겠어?”
“주 변호사님이 있잖아.”
“이크. 주 변호사님이 있었지.”
두 사람은 농담을 주고받으며 긴장을 완전히 풀었다.
이서우가 아무리 요리를 잘하게 되더라도 쉐프가 될 일은 전혀 없다. 그걸 알고도 요리사 이야기를 한 것은 이설아의 부담을 덜어주고 싶어서였다.
말하지 않아도 이설아가 어떤 마음인지 그는 잘 안다. 혼자였다면 위험에 노출되지도 않았을 텐데 자신을 구하기 위해 위험에 노출 됐다고 여길 테니 얼마나 미안해할까.
괜찮다고 백번 말해봐야 이설아가 마음의 짐을 덜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는 걸 잘 알기에 이서우는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오늘 있었던 일로 절대 부담스러워하지 말라고 말이다.
이설아는 이서우의 마음이 어떤지 알기에 눈물이 나올 것 같았지만 애써 웃었다. 우는 순간 이서우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니까 말이다.
두 사람이 한창 웃으며 즐겁게 대화를 하는데 주선용이 왔다.
이서우는 하와이 여행을 하던 중 주선용에게 메시지를 보내 몇 가지 일을 부탁했다.
당분간 바빠질 테니 오늘 한꺼번에 처리하고 뉴 월드에 집중하기 위해 주선용을 만나는 것이었다.
“여행을 다녀오셔서 그런지 두 분 얼굴이 아주 좋아 보입니다.”
“주 변호사님도 너무 바쁘게 지내지 마시고, 시원하게 여행 다녀오세요.”
“그렇지 않아도 뉴 월드 이벤트 기간에 맞춰 가족들과 함께 해외여행을 다녀올까 합니다.”
“그래요. 가서 푹 쉬다 오세요. 저도 미친 듯이 일만하다가 다 내려놓고 쉬니까 좋더라고요.”
“하하하. 저의 최대 고객분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안 들을 수가 없네요.”
“필요하시면 전용 비행기 빌려드릴 테니 마음껏 갔다 오세요.”
“그렇게까지 할 수는 없죠.”
“아니에요. 공항에 세워 두는 것도 낭비니 그렇게 하세요.”
“맞아요. 그렇게 하세요, 주 변호사님.”
“이거 오늘 대화로 가장 이득을 보는 사람은 저겠군요.”
“하하하. 그게 그렇게 되나요?”
“그럼요. 전용 비행기 대여료가 얼마나 비싼데요.”
주선용은 한껏 미소를 지으며 이서우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렇지 않아도 비행기편 때문에 걱정하고 있었는데, 한 방에 고민이 해결되었다.
“그럼 어떻게 되었는지 들어 볼까요?”
“네.”
이서우는 대학생 시절 머릿속에 떠올렸던 일을 이렇게 실행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동안 바쁜 나날을 보내면서 잊고 있었는데, 하와이에서 그 일이 떠올라 이설아와 상의를 한 뒤 바로 결정을 내렸다.
그 결과물이 주선용의 입에서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