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2
레벨이 갑이다
272화
다음 날 이서우는 게임에 접속하자마자 이설아와 김소연에게 활을 보여 주었다.
“우와, 오빠. 이거 진짜 대박이다.”
“이야, 서우 넌 진짜 전생에 우주를 구했을 거야. 어떻게 매번 이렇게 대박을 치냐?”
“얼마나 할 것 같아?”
“모르긴 몰라도 이거 수천억 갈 것 같은데?”
“그렇게나 비싸게 팔리겠어?”
“모르는 소리. 이게 최초의 신화템이잖아. 500레벨 레이드 몬스터를 홀로 잡아야 아주 희박한 확률로 나올걸? 인원이 10명만 돼도 아마 거의 보기 힘들 거야. 그런 아이템이니 얼마나 비싸겠어?”
“지금 전설 최상급 장비가 얼마지?”
“초월 강화까지 하면 500억 이상은 할 거야.”
“그러면 누나 말대로 그 정도에 팔릴 수도 있겠네.”
“어쩌면 더 비싸게 팔릴지도 몰라.”
“에이, 설마.”
“아냐. 활을 사용하는 사람도 의외로 많아. 비율은 적어도 뉴 월드 이용자가 12억이야. 그중 1퍼센트만 돼도 1,200만이니 수요는 많다고.”
김소연의 말이 완전히 틀리지는 않았다. 단 하나밖에 없다는 희소성도 있고, 옵션도 최상급이었다. 게다가 진화까지 이루었고, 초월 강화도 풀이어서 엄청난 가격이 책정될 거라는 건 누구나 짐작할 수 있었다.
“나도 언니 말에 동의해. 예술 작품을 수천억에 사는 이유가 소장 가치도 있지만 놔두면 돈이 된다는 걸 알기 때문일 거야.”
“맞아. 뉴 월드가 엄청난 돈이 된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이젠 없어. 이 활 정도면 PK뿐 아니라 레이드 몬스터도 홀로 상대해 봄직 해.”
“와, 그러면 완전 돈방석에 앉는 거니 고레벨이 적을 때 사서 뽕을 뽑으려 하겠네.”
“맞아. 설아의 말대로 그럴 가능성이 높아. 그러니 시간 끌지 말고 빨리 팔아 버려.”
“그럴까?”
“그래. 지금 활을 쓰는 직업 중에 500레벨이 넘는 사람들이 꽤 돼.”
“얼마나 되는데?”
“1만 명쯤 될걸. 500레벨 근처에 도달한 사람도 수십만 명은 되니 그 사람들까지도 사려고 난리일 거야.”
“그럼 경매장에 올려야 하나.”
“현실에서 하지 말고 그냥 뉴 월드에서 올려. 어차피 24시간 풀 접속이 되니 그게 나을 거야.”
“그럼 기간은 3일 정도면 되겠지?”
“보고 가격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수수료 물고 취소하면 되니 3일만 해.”
“오빠, 팔리면 한턱 쏴야 해!”
“당연하지. 아주 거하게 쏠게.”
“나도!”
“역시 공짜는 안 빠지는군. 누나, 그러다 대머리 돼.”
“상관없거든. 요즘 발모 제품 좋은 게 얼마나 많은데.”
“에혀, 탈모가 되는 한이 있어도 공짜 밥을 먹겠다니.”
“언니, 존경해요!”
“호호호, 역시 우리 설아.”
“설아야, 벌써 물든 거니?”
“호호호. 나도 공짜는 좋아하잖아.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얻어먹고 말 거야!”
“그러셔요.”
이서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경매장으로 갔다.
경매 기간은 3일.
시작 가는 1천억.
즉시 구매 가는 1조.
물론 즉시 구매를 할 사람은 없겠지만 1조 미만으로는 재경매를 한다는 걸 보여 주기 위해 말도 안 되는 가격을 책정한 것이었다.
이서우의 생각으로는 비싸게 팔려도 2~3천억 수준일 거라 여겼다.
경매가 완료되려면 시간이 필요할 테니 이서우는 다음 사냥터를 고민했다.
‘아무래도 상급 관리자들을 잡아야겠지?’
하급 관리자는 이서우에게 더 이상 좋은 아이템을 주지 않았다.
중급 관리자도 있지만 더 좋은 아이템과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는 상급 관리자가 안성맞춤이었다.
이서우는 즉시 실행에 옮겼다.
가속화를 시전해 바람처럼 달렸다.
1시간 만에 하급 관리자 영역을 벗어났다.
중급 관리자가 있는 곳부터는 최대한 외곽 쪽으로 돌아서 이동했다.
다시 1시간을 달려 상급 관리자가 있는 지역에 도착했다.
지금까지는 중급 관리자가 있는 곳까지만 가 봤다. 그것도 초입 부분 이상은 들어가지 않아 상급 관리자가 얼마나 강한지 이서우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하급 관리자가 너무 쉬워서 상급도 그다지 기대하지 않았다.
‘어서 상급 관리자를 처리하고 통치자가 있는 영역으로 가야겠네. 과연 통치자들은 얼마나 강할까?’
새로운 도전은 언제나 가슴을 뛰게 만든다.
이제 관리자는 그에게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해 통치자에게 눈을 돌렸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상급 관리자 영역을 통과해야 했다.
‘뭐지?’
한참 안으로 들어가는데, 강력한 기운을 가진 관리자가 없었다.
‘설마 나보다 강하다는 건가?’
기운을 느낄 수 없는 이유는 두 가지다. 자신보다 강하거나, 아니면 주변에 없거나.
주변에 없다고 생각하기에는 너무 많은 곳을 돌아다녔다.
이렇게 수백 킬로미터를 돌아다녔는데도 없을 수는 없었다. 아, 한 가지 가능성이 있기는 했다.
“설마, 땅덩어리가 엄청 넓은 건가? 에이, 아냐. 아무리 그래도 중급 관리자랑 몇십 배 이상이나 차이 나려고.”
중급 관리자가 관리하는 땅도 엄청나게 넓었다. 거의 경기도 정도의 넓이였다. 그걸 감안해서 직선거리로 200킬로미터 이상을 이동했다.
그런데도 강력한 기운이 느껴지지 않으니 이상하게 여길 수밖에.
‘아, 그렇지.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지?’
이서우는 곧장 백호를 소환했다.
“흑흑흑, 주인니이이임!”
“에고, 미안하다. 내가 요즘 바빠서 말이야.”
“흑흑흑. 전 주인님께서 절 버리신 줄 알고 얼마나 슬펐다고요.”
“알았다, 알았어. 그만 울고 주변에 강한 녀석이 있는지 같이 찾아보자.”
“강한 녀석이오?”
“그래. 상급 관리자인데, 혹시 알아?”
“몰라요. 강한 녀석이에요?”
“백호 너보다도 강할 거야.”
“네? 저보다도요?”
“그래. 그러니 섣불리 덤비지 말고 찾으면 바로 말해.”
“네. 그럼 제가 저쪽으로 가 볼게요.”
“그래, 난 이쪽으로 가 보마.”
“네, 주인님!”
백호는 11시 방향으로, 이서우는 1시 방향으로 움직였다. 6시 방향은 이서우가 왔던 곳이어서 제외했다.
1시간 정도 지났을 때였다.
“헉, 백호야! 소환 해제!”
이서우는 갑자기 백호의 피가 절반이나 빠지자 놀라서 얼른 소환을 해제했다.
다행히 죽지 않아서 우려하던 메시지는 듣지 않아도 됐다.
이서우는 백호가 있던 곳으로 빠르게 달려갔다. 그리고 그는 한 사내를 만났다.
“네가 조금 전의 강아지 새끼의 주인인가 보군.”
“강아지 새끼라……. 상급 관리자인가? 아니, 통치자인가?”
“크크크, 통치자에 대해 알고 있는 걸 보니 한가락 하는 놈이네. 근데 네 말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해.”
“그래? 내가 널 잡아서 고문을 하면 맞는 말이고, 네가 여기서 도망가면 틀린 건가?”
“크하하하하, 진짜 재밌는 놈이네. 날 이렇게 즐겁게 한 건 그 사이코 같은 놈 이후로 처음이군.”
“사이코? 난 네가 사이코처럼 보이는데 말이야.”
이서우는 눈앞에 있는 사내의 얼굴에서 광기를 보았다. 멀쩡하게 생긴 듯하지만 눈빛에는 강한 살기를 담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인간이 저런 모습일까 싶을 정도로 괴이하게 보였다.
“날 기쁘게 해 준 대가로 내가 누군지 알려 주지. 난 현재로서는 상급 관리자지만 조만간 통치자가 될 몸이야. 정민후라고 하지. 잘 기억해 둬. 앞으로 유명해질 인물이니까.”
“뭐? 정민후?”
이서우는 그의 이름을 듣고 화들짝 놀랐다.
‘저 사람이 정민후라고? 정 회장의 손자 정민후? 생김새가 그다지 닮지 않았는데. 아, 얼핏 닮은 것도 같네. 뭐, 그건 곧 알 수 있겠지.’
이서우는 정말 정 회장의 손자인지 알아보기 위해 다시 입을 열었다.
“설마, 정 회장님의 손자인가?”
“네, 네가 할아버지를 어떻게 알지?”
“쯧쯧쯧. 이곳에 처박혀서 세상과 담을 쌓고 살고 있었군.”
“내가 물었다. 어떻게 우리 할아버지를 아냐고!”
“알 수밖에. 정 회장님이 날 찾아왔었다. 손자가 깨어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뭐? 그게 무슨…….”
정민후는 큰 충격을 받았다.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순간부터 모든 것을 포기하며 지냈다.
사람들과 만나 봐야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나 듣게 될 것이고, 그러면 그리움만 커질 테니 그가 관리하는 지역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과거 전신이 그의 영역에 찾아왔을 때, 세상 돌아가는 것에 대해 물어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미련은 사람을 피 말리게 한다. 20년 이상은 미련으로 살아오면서 뼈저리게 깨달은 바다.
가능성도 없는데, 헛된 희망을 품는 것보다 그냥 게임 속에서 살다가 죽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여겼다.
그랬는데, 자신의 할아버지를 아는 사람이 나타나고 말았다.
그냥 돌아갈까, 아니면 저놈을 죽이고 사라질까 했지만 이미 그 이름을 들어 버렸다.
그의 할아버지는 보통의 인물이 아니다. 평범한 사람이 알 수 있을 정도로 가벼운 이름이 아니기에 이서우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한 번 싹을 튼 호기심은 독버섯처럼 번져 온 머릿속을 뒤덮고 말았다.
이제는 궁금증을 해소해야만 했다.
“너 지금 식물인간 상태지?”
“네가 그걸 어떻게 알지?”
“나도 식물인간이었거든.”
“뭐? 식물인간이었다고?”
“그래. 이었지.”
“그러면 지금은 식물인간이 아니라는 뜻이냐?”
“그래. 그러니 네 할아버지가 찾아왔겠지. 안 그래?”
“어떻게 그런…….”
정민후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지금까지 절대로 불가능하다고 여겼는데, 어떻게 식물인간에서 벗어날 수 있단 말인가.
그래, 저놈은 잠깐 식물인간 상태였다가 깨어났을 거야. 그래, 고작 몇 달이었겠지.
정민후는 자신과 동일한 조건에서 깨어난 것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자신과 동일한 조건에서 깨어났다고 믿는다면 그동안 포기해 버린 시간에 대한 배신이나 마찬가지였다.
“현실 시간으로 5년 만이었다. 어나더 월드에서는 20년이나 되는 시간이지.”
“마, 말도 안 돼! 어나더 월드에서 20년 만에 깨어났다고? 20개월이 아니고?”
정민후는 믿을 수 없는지 불신이 가득한 눈빛으로 이서우를 추궁했다.
하지만 이서우는 숨김 없는 표정으로 정민후를 바라보며 말했다.
“네가 깨어나면 들통 날 거짓말을 내가 왜 해? 이곳에서 20년 이상을 썩으면서 머리도 둔해진 거야?”
“뭐? 이놈이!”
“쯧쯧쯧, 나도 네 마음이 어떤지 잘 알아. 하지만 기억해. 넌 이제 죽으면 끝이라는 걸.”
“죽으면 끝이라고? 여기서 죽으면 현실의 나도 죽는다는 뜻이냐?”
“그래.”
이서우는 솔직하게 말해 주었다. 당시 그도 누군가가 나타나 자신이 처한 상황을 솔직하게 말해 주길 바랐으니까.
“어, 어떻게 깨어날 수 있지?”
“이제야 관심을 좀 가지는군.”
“사실이 아니면 넌 오늘의 일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사실이라면 네가 후회할 거야. 난 이런 비난을 받고 참는 성격이 아냐. 네 할아버지가 하도 간곡히 부탁해서 참아 주고 있는 거지.”
“살아난다면 네 마음대로 해도 좋아.”
헛된 희망이라도 좋다. 이 지긋지긋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못할까.
정민후는 간절한 마음으로 이서우에게 매달렸다.
그의 간절함을 본 이서우는 피식 웃고는 입을 열었다.
* * *
“미, 민후야! 이보게, 최 박사, 최 박사!”
“네, 회장님, 부르셨습니까?”
“방금 민후가 움직였네. 분명 손이 움직였어!”
“네? 잠시만요.”
최 박사는 정 회장의 말을 쉽게 믿을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아니라고 대놓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랬다가는 정 회장을 믿지 않는 게 되어 버리니 믿는 시늉이라도 해야 했다.
그는 얼른 동공반응을 살폈다.
“회, 회장님!”
“우리 민후가 움직인 게 맞는가!”
“네, 회장님. 반응이 있습니다. 반응이 있어요!”
“하하하하. 드디어, 드디어! 어서, 깨우게. 어서 깨워!”
“하지만 회장님. 당장 깨어나지는 않습니다. 조금 더 지켜봐야…….”
“그게 무슨 소린가! 반응이 있었지 않나.”
“분명 반응은 있었지만 무려 6년 동안 깨어나지 않으셨습니다. 반응이 있다는 건 분명 좋은 징조지만 당장 깨어나는 건 무립니다.”
“그, 그게 무슨 소린가! 당장…….”
정 회장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르더니 제대로 호흡을 하지 못했다.
최 박사는 얼른 정 회장을 진정시켰다.
“회, 회장님, 진정하셔야 합니다. 자칫 도련님이 깨어나시기 전에 회장님께서 먼저 쓰러지실 수도 있습니다. 반응이 있으니 제가 꼭 깨어나도록 해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저를 믿고 맡겨 주십시오! 그동안 정 회장님을 실망시킨 적이 없지 않습니까.”
최 박사는 정 회장의 눈빛을 바라보며 간절히 호소했다.
그의 진심이 통한 것일까.
정 회장의 안색이 서서히 돌아왔다.
“후우. 내가 너무 흥분했구먼. 미안하네. 하지만 꼭 우리 민후를 깨어나게 해 주게.”
“염려 마십시오, 회장님. 신神을 납치하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깨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