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1
레벨이 갑이다
281화
“그러니까 현재로서는 총 서른 명의 통치자가 있다 이거지?”
“네. 그놈 말로는 그렇습니다. 곧 십여 명 정도가 더 통치자가 된다고는 하는데, 통치자 녀석들도 자존심이 워낙 강해서 함부로 자신들의 영역으로 오는 걸 보고 있지는 않을 겁니다.”
“힘을 키우기 전까지는 관리자 영역에 있어야 한다는 뜻이네.”
“네, 주인님.”
이서우가 생각하던 것보다는 통치자가 더 많았지만 상관은 없었다. 상급 통치자인 타난카도 무리 없이 상대할 수 있었으니 걱정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통치자들이 철저히 개인적인지, 아닌지는 확실치 않다는 거지?”
“네. 지금까지는 철저히 개인 위주인데, 주인님 같은 분이 나타나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습니다. 자기들 중에서 지배자가 나오면 인정을 하지만 외부 인간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건 극도로 꺼려 합니다.”
“뭉쳐서 날 몰아내려 할 수도 있다?”
“그럴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을 겁니다.”
“뭐, 당장은 통치자들과 부딪칠 생각은 없으니까 천천히 알게 되겠지.”
“주인님은 그러실지 모르지만 타난가에 의해 벌써 알려졌을지 모릅니다.”
“자존심 강한 그놈이?”
“아, 제가 살아 있는 걸 안다면 입을 닫기는 하겠네요. 괜히 꺼내 봐야 배신자 낙인만 찍힐 테니까요. 그럼 차라리 제 존재감을 내비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편이 오히려 나을 수 있겠군. 그렇지 않아도 네 존재감을 드러내는 좋은 방법이 떠올랐어.”
“무슨 방법인가요?”
다크는 살짝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이서우의 표정이 워낙 사악하게 느껴져 혹시라도 이상한 일을 시키지나 않을까 염려가 된 것이다.
“그리 어렵지는 않을 거야. 스트레스도 풀 수 있어서 오히려 네게 도움이 될 걸?”
“주인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더 불안한데요?”
“아, 그러고 보니 소개를 안 시켰네. 너보다 서열이 높으니 앞으로 잘 따라야 해.”
“네에?”
다크가 이건 또 무슨 황당한 일이냐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 그런 말을 하는지 물어보기도 전에 새로운 존재가 나타났다.
“주인님, 부르셨어요.”
“그래. 잘 있었지?”
“주인님이 잘 안 불러 주셔서 심심한 것 빼고는 나름 잘 있었어요.”
“오늘 네 부하 하나 소개해 주려고.”
“부하요? 와, 정말이세요? 심심했는데 잘 됐네요.”
이서우에게만 집중하던 백호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전투가 아니면 몸집을 그리 키우지 않아 50센티미터의 작은 크기지만 백호는 통치자와도 맞설 정도로 강해졌다.
하지만 다크의 입장에서는 그저 조그만 한 놈에 지나지 않았다.
손바닥보다 더 작은 백호를 베며 다크는 설마 쟤가 나보다 서열이 높은 건 아니겠지 하는 불신의 눈빛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늘 그렇듯 불길한 예감은 잘 맞는 법이다.
“어라, 이놈이에요?”
“맞아. 드래곤인데, 싸가지가 좀 없어서 교육 잘 시켜야 할 거야.”
“블랙드래곤들이 원래 좀 싸가지가 없어요. 과거 주인님께도 어찌나 개기던지. 여튼 저에게 맡겨 주세요. 제가 또 교육 하나는 기가 막히게 시키거든요.”
“든든한데?”
“헤헤.”
백호는 이서우의 어깨에 폴짝 뛰어올라 애교를 부렸다.
신이 난 둘과는 달리 다크는 망연자실한 얼굴로 백호와 이서우를 번갈아 가며 쳐다볼 뿐이었다.
“앞으로 백호의 말을 잘 따라야 할 거야. 살수를 쓰게 되면 그 순간 소멸한다는 것도 잊지 말고.”
“……네, 주인님.”
“어째 대답에 힘이 없다? 설마 내 명령을 벌써부터 안 따르겠다는 건 아니겠지?”
“서, 설마요! 제가 어느 안전이라고 감히 그런 불경을 저지르겠습니까. 말씀하신 대로 철저히 이행하겠습니다.”
“그렇지. 그래야 오래 살아.”
이서우의 경고에 다크는 모든 것을 포기했다. 인간에게 복종하는 것도 억울한데, 이제는 강아지(?)에게도 고개를 숙여야 하다니.
하지만 어쩌랴, 패배자는 말이 없는 법인 것을.
“자, 이제 여기서 볼 일은 다 끝냈으니 나가자고. 포털 열어.”
“네? 네, 주인님.”
이서우는 가로 1미터에 세로 2미터가 조금 넘는 백색의 공간으로 걸음을 옮겼다.
밖으로 나간 이서우는 다크에게 명령을 내렸고, 백호가 감시자로 그를 쫓았다.
그리고 잠시 후, 하이 레벨 대륙이 떠들썩해졌다.
“아아악! 드, 드래곤이 나타났다! 미친 드래곤이 나타났어!”
“시팔, 대체 누가 드래곤을 데리고 온 거야! 아오, 저 짱깨 새끼들 이제 하다하다 안 되니 드래곤까지 끌어들여?”
“뭐? 이런 개잡놈들을 봤나. 네놈들이 드래곤을 몰고 왔잖아!”
“아오, 시팔. 일단 피하고 보자! 짱깨 놈들 운 좋은 줄 알아라. 드래곤만 사라지면 죽었어!”
“그건 우리가 할 소리다, 이 잡놈들아. 드래곤만 사라지면 보자.”
여기저기서 드래곤이 나타났다며 난리도 아니었다. 브레스를 쏘면서 아주 주변이 쑥대밭이 되고 있었다.
사망자는 거의 발생하지 않았지만 다친 사람이 많았다.
이서우는 멀리서 이 모든 걸 지켜보고 있었다.
‘역시 고룡이어서 그런지 파워가 장난 아니네. 백호가 있으니 알아서 길을 잘 들이겠지. 그럼 난 이만 가 볼까나.’
전쟁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었기에 여기저기 신출귀몰 등장해 브레스를 쏜다고 다크가 바빴다.
그의 배후에 이서우가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전혀 알지 못했다.
백호가 다크와 함께 있었지만 은신을 하면 누구도 찾을 수 없기에 이서우가 개입되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한 것이다.
‘아오, 저 강아지 새끼 멀리서 지켜보기만 하네. 나도 빨리 밑에 한 놈 더 만들어 달라고 떼를 쓰든지 해야지, 원.’
투덜거리면서도 다크는 주어진 임무를 완벽하게 해냈다.
결국 전쟁은 드래곤의 개입으로 휴전을 맞았다.
다크는 타난카의 지역으로 돌아가 관리자들에게 통보했다. 앞으로는 자신이 이곳을 다스린다고.
물론 그 일도 이서우가 시킨 것이다. 이왕 타난카를 몰아냈으니 거대한 지역을 버리기가 아까웠다.
백호를 감시자로 붙여놨기에 이서우는 안심하고 벗어날 수 있었다.
저택에 도착한 이서우는 곧바로 소생의 정수를 제작했다.
‘속도가 엄청 단축되었는데도 이건 1시간이나 걸리네. 만들어지는 동안 빌딩이나 돌면서 사람들 반응이나 좀 살펴봐야겠어.’
길드원들에게 물어만 봐도 뉴 월드 소식은 금세 알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을 통해 듣는 것과 직접 확인하는 것은 차이가 있다.
이서우는 편안하게 산책하듯 각 도시를 찾아 살펴보기로 했다.
‘이럴 줄 알고 미리 받아 놨지.’
다크에게서 받은 마법 주문서를 이용해 용모를 바꾸었다.
블랙드래곤은 폴리모프라는 마법이면 충분하지만 이서우는 그런 마법을 쓸 수 없어 친절히(?) 다크에게 주문서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주문서는 하루 동안 유지가 되는데, 유지 시간 안에는 횟수 제한 없이 언제든 원래의 모습과 변경된 모습을 번갈아 사용할 수 있었다.
우선 가까운 본점부터 갔다.
프랑드에게 조용히 가서 상황을 이야기하자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이서우를 바라보았다.
“설마, 이 변장 주문서까지 장사에 사용하고 싶어서 그런 표정을 짓는 건 아니죠?”
“아이고, 이거 제 의도를 들켜 버렸네요. 상인 왕으로서 실격인데요?”
“속마음도 다 보입니다.”
“벌써 그 정도 경지에 오르신 겁니까?”
“그럼요. 그러니 조심하세요.”
“제 마음은 청정지역의 1급수와도 같습니다.”
“조금 전에는 전혀 아니던데요?”
“그거야 상인의 본능이니 어쩔 수가 없습니다. 직업병은 불치병이라잖습니까.”
“뭐, 그건 저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지금은 그 모든 걸 초월해서 초연했지만 뉴 월드가 직업이 되면서 이서우도 비슷한 경험을 했었다.
“프랑드 씨 얼굴을 보니 사업이 잘되고 있는 것 같네요.”
“그럼요. 본점은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려서 벌써부터 증축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지시만 하시면…….”
“오, 그래요? 그럼 기존의 계획대로 일을 진행하면 되겠군요.”
“물론이죠!”
“소상인들과 마찰이 없도록 신경 써야 한다는 거 알고 계시겠죠?”
“당연하죠. 오히려 소상인들이 더 좋아합니다. 유동인구가 워낙 많다 보니 수혜를 많이 받고 있거든요.”
“길드 단위로 거래를 해도 충분할 겁니다.”
“네. 개인들은 근처 소상인들에게 보내고 있으니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이템 한두 개 팔아 봐야 이서우에게 크게 이득이 되지 않는다.
이서우는 큰 규모의 거래만 하고 개인은 주변 상인들에게 넘겼다.
그렇게 하니 반발도 전혀 없었고, 그로 인한 분쟁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서우는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으면서까지 장사를 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돈은 이미 차고도 넘치니 정직하게 돈을 벌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그래서 계약서에 철저히 그 점을 명시했다. 현실에서는 편법이 가능하지만 뉴 월드에서는 불가능해 유저들도 철저히 지켰다.
은밀히 거래를 해도 다 드러나기 때문에 아예 딴생각을 할 수가 없으니 지금까지 잘 이행이 되었다.
모든 것이 원만하게 잘 돌아가니 프랑드로서도 빌딩을 관리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
“호텔은 좀 어떤가요?”
“말도 마십시오. 접속 제한이 풀리면서 이용자가 많이 늘었습니다. 바쁠 때는 공실이 없을 정도고 평소에도 절반 이상은 찹니다.”
“오, 그래요? 길드단위로 이용할 수 있는데도 그렇게 인기가 좋나요?”
“아이고, 말도 마십시오. 길드 건물이 있는 곳은 극소숩니다. 대부분 없다고 봐야죠. 그러니 회의나 모임을 할 장소가 마땅치 않죠. 이곳은 보안도 철저하고, 은밀히 모임을 할 수 있으니 서로 오려고 난립니다.”
“가격이 만만치 않을 텐데도 그 정도라면 빨리 100층까지 올려야겠네요.”
“그러지 마시고, 아예 쌍둥이 빌딩으로 지으시는 게 어떨까요?”
“쌍둥이 빌딩으로요?”
“네. 그것도 세쌍둥이로요.”
“세쌍둥이라. 흠…….”
이서우는 프랑드의 말에 잠시 고민했다. 땅은 얼마든지 확보할 수 있으니 빌딩을 짓는 것은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일이 너무 커지는 게 아닌가 우려도 됐다.
‘그래, 인생 뭐 있어? 이왕 할 거면 판을 키울 만큼 키워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
이서우가 미소를 짓는 것을 본 프랑드는 주먹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흠, 상황을 보니 그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네요.”
“100층짜리 건물 세 개가 똑같이 세워진 장면을 상상해 보십시오. 멋지지 않습니까!”
프랑드의 얼굴은 꿈에 부풀어 있었다. 그가 직접 세쌍둥이 빌딩을 지을 수는 없지만 관리는 할 수 있다. 단지 관리자의 위치에 있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럼 땅을 확보해 둘 테니 일꾼들을 모집하세요. 인원을 대거 뽑아서 빨리 지어 버리죠.”
“뉴 월드가 좋은 게 바로 그거 아닙니까. 한 달이면 100층짜리 두 개가 우뚝 서게 될 겁니다.”
프랑드의 말처럼 뉴 월드에서 불가능은 없다. 현실에서 1년이 걸리는 것도 이곳에서는 한 달 안에 완성이 된다.
“한 달 매출은 어느 정도죠?”
“자료는 이미 보내 드렸지만 워낙 바쁘셔서 제가 다시 설명드리겠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성장을 하고 있어 현재로서는 매월 1,000만 골드 수준의 매출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 중 200만 골드가 서우 씨에게 입금이 되고 있고요.”
“지점들은 어떤가요?”
“본점의 절반에도 못 미치지만 거의 70곳 가까이 되니 액수는 엄청납니다. 새로 생긴 곳의 매출이 조금 적어서 아마 서우 씨에게는 매월 4천만 골드 정도가 들어갈 겁니다.”
“매월 그 정도면 엄청나네요.”
“설마 아직 한 번도 입금된 돈을 찾아가지 않으신 겁니까?”
“제가 좀 바빠서 말이죠.”
“…….”
프랑드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벌써 몇 달이 흘러 가고 있는데 한 번도 입금된 돈을 확인하지 않았다니.
모르긴 몰라도 뉴 월드에서 사용하는 이서우의 전용 계좌에는 수억 골드가 입금이 되어 있을 것이다.
“험, 험. 여튼 새롭게 세쌍둥이 빌딩으로 탄생하게 되면 매출은 세 배 이상으로 뛸 겁니다.”
“그럼 다른 곳은 쌍둥이 빌딩으로 하시고, 본점만 세쌍둥이 빌딩으로 하는 것도 괜찮겠네요.”
“각 빌딩 매출은 소폭 감소하겠지만 전체 매출은 증가할 테니 더할 나위 없이 좋죠!”
프랑드는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좋아했다.
“높이는 100층으로 해 주시고, 모든 지역에서 동시에 공사를 시작할 수 있도록 하죠.”
“공사비는 어떻게 할까요.”
“이미 따로 일부를 빼 뒀을 텐데요?”
“그걸 다 투입할까요?”
“네. 아낌없이 투입하세요.”
“네!”
빌딩의 총매출 중 이서우의 몫은 30퍼센트다. 임대료와 호텔, 대형 몰 수익 중 상당수가 이서우에게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중 10퍼센트는 빌딩 관리와 확장에 쓰려고 따로 빼 두었다.
나머지 수익들은 입점한 상인들이 나눠 가졌는데, 적게는 순수익이 총매출의 0.5퍼센트 정도였고, 많게는 3퍼센트까지 가져가는 유저도 있었다.
“그럼 같이 잠시 각 도시별로 돌아볼까요?”
“바쁘지 않으세요?”
“잠시 시간이 좀 남아서요.”
“네. 그럼 제가 안내할게요. 최근 각 빌딩별로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수간이 생겨서 가까운 마을까지는 10분이면 갈 수 있어요.”
“그래요?”
“네. 와이번 이동사와 제휴를 맺어 편리하게 이용하고 있죠.”
“한 번에 이동할 수 있는 숫자가 많지 않겠는데요?”
“그렇지도 않아요. 공간 확장 마법이 걸려 있어서 한 번에 100명은 탈 수 있거든요.”
“공간 확장 마법은 꽤 비쌀 텐데 신경 많이 썼네요.”
“한시도 쉬지 않고 실어 나를 수 있으니 과감히 투자를 했나 보더라고요.”
“프랑드 님처럼 과단성 있는 인물인가 보네요.”
“대상인으로 꽤 유명세를 타고 있는 상인이 운영권을 얻어 잘 관리하고 있어서 사용자들은 편하죠.”
이서우와 프랑드는 와이번에 올라타서도 대화를 이어 갔다.
발전하고 있는 도시를 보니 이서우의 마음이 뿌듯했다.
“이번 전쟁으로 피해 본 곳으로도 가 보죠.”
“피해가 그리 크지 않아 벌써 복구는 끝났습니다.”
“빠른 대처는 좋네요.”
이서우는 만족스러워하며 피해지를 직접 방문해 격려했다.
확장공사 소식에 빌딩 상인들은 좋아했다. 자기 밥그릇이 작아질까 봐 걱정하는 이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이동시간이 많이 줄었다고 해도 10시간으로는 68곳을 모두 돌아보는 것은 불가능했다.
조세프 백작과 만나 몇 가지를 논의하고, 공사할 땅을 확보했다.
소생의 정수가 완성되자마자 저택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소생의 정수가 완성되었다는 소식을 정 회장에게 알렸다.
생각보다 훨씬 빨리 완성이 되어서 두 조손은 희망을 가지고 이서우에게로 왔다.